국제동향
| 2023.11.17
④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일일까요?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모든 국가의 안보를 집단적으로 지키는 것이 UN의 원칙이므로, 침략을 당한 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앞으로 세계를 뒤흔들 일이며 결코 우리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멀리 떨어진 나라에 대한 ‘오지랖’이나 미국의 압박에 의한 ‘굴욕외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중국, 러시아의 대국중심질서보다는,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하여 크든 작든 모든 국가의 평등과 자유를 명시한 전후 세계질서를 지키는 것이 인류의 실리에 부합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고 우크라이나 현지를 방문한 데 대해, 야당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등 주요 민중운동진영 단위도 이러한 행보는 ‘국익’에 반하는 외교적 참사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한국과 인접한 러시아와 중국”(전국민중행동)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 얻을 실리가 전혀 없다는 주장입니다.
러시아·중국 대 우크라이나의 객관적인 국력이나 한국과의 물리적 거리, 교역 규모 등은 누가 봐도 현격히 차이 나는 것이 현실이므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느 쪽의 명분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와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표현대로, 각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자국의 실리와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움직이는 법이니까요.
모든 국가의 평등-자유를 명시한 전후 세계질서가 러시아, 중국의 대국중심질서보다 인류의 실리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실리와 이익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합 8천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둔 UN의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UN헌장은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大小)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대소 각국의 평등권’은 중요한 대목입니다.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확보 경쟁이라는 팽창주의로 나아가다보니 필연적으로 일어난 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초유의 ‘세계전쟁’이 두 차례나 일어났고, 또 식민지배와 수탈 속에서 세계의 수많은 민중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 그리고 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민족자결권 요구와 민족해방운동의 물결 덕분에 종전 이후 대부분 식민지가 해방되었습니다. 전후 세계질서에서 각국의 주권과 안보는 본질적으로 그 나라만의 사안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할 ‘공공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불과 인구 몇 만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들도 주권과 평화를 누리는 세계, 크든 작든 과거에 식민지였든 아니든 모든 국가가 명목상으로 동등한 1표를 가지는 새로운 세계가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가 영구 상임이사국인 UN 안보리의 존재는 예외입니다.) 새로운 국제질서는 강대국이 표면적으로나마 무력이 아니라 규칙을 사용하도록 했고,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에서 패전국 독일을 안정적으로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면서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불완전하나마 핵무기의 확산을 막았던 것도 이러한 국제질서의 힘입니다.
이러한 평등과 자유는 단순히 선언으로 지켜지지 않으므로, UN헌장은 이어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 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바로 이러한 UN헌장과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불법 침략 전쟁입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국제사회는 이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하는 대신 공동으로 대처할 책무가 있습니다. 이미 그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안임을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141개국)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UN총회 결의안에 동참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원칙대로라면 UN의 집단안보 시스템이 발동했어야 할 사안이나, 침략의 주체인 러시아와 이를 옹호하는 중국이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현실 때문에 실현되지 못한 것에 가깝습니다. 각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를 무너뜨리려는 이탈 행동이나 ‘외교적 실수’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원래 갔어야 할 경로로 가려는 노력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의 평화와 자유가 인류의 이익입니다
한미정상회담은 ‘신냉전을 강화하는 반평화’ 회담이었다. (중략)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등 반러시아 태도도 분명히 하는 양상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한국이 반중, 반러 대결에 앞장서게 되었다. 향후 중국과 러시아의 보복으로 한국은 경제와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도래할 것이다. - 진보당,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절대 안된다!”, 2023.02.03.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라고 말하며, 이 사안이 심각한 분쟁 사안으로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한국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동시에 전쟁이 잠시 멈춰진 휴전국가다. 우리 국민의 평화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조건에서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겠다는 발상은 러시아라는 초강대국을 적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또다른 전쟁위협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 겨레하나,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중단하라!”, 2023.04.20.
진보당, 겨레하나 등의 NL그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긁어 부스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그저 한국에서 7500km 떨어진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향후 세계를 뒤흔들 사안입니다. 만약 러시아가 전쟁에 승리한다면, 그 파급력은 가히 세계사적일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국경과 현상 상태를 바꾸려는 시도의 성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붕괴를 가속하고 세계 각지의 권위주의, 팽창주의 세력에 비슷한 군사적 모험을 부추길 것입니다. 이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서방세력의 군비증강도 훨씬 더 큰 규모로 각국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이뤄지기 쉬우며, 평화운동이 군축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사건이 분명히 보여주듯, 전후 국제질서는 온전히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이 지지해야 하는 방향은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어야 하지, 현존 질서가 대책 없이 무너지는 것 그 자체일 수 없습니다. 대안 없는 붕괴는 세계가 공통된 규범 없이, 힘과 힘이 맞붙는 과거로 퇴행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통일교과서, 《민플러스》, 통일시대연구원 등은 현존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틈을 중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질서가 메울 것이라고 전망을 제시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홍콩보안법과 신장위구르 강제노동수용소,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 한국·호주·베트남·필리핀 등에 대한 경제보복을 보면서도 이들이 “인류사적 진보,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 것이라 믿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러시아와 중국이 주장하는 ‘다극체제’ 구상을 한 번 들여다 볼 필요는 있습니다. 핵심은 세계를 각 지역 강대국 관할 하의 여러 지역으로 나누는 ‘세력권 분할’입니다. 이러한 구상은 ‘하나의 세계’(단일세계주의)를 지향하며 UN을 창설하고 미국과 소련, 중국이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맡은 전후 세계질서에 역행합니다. 이러한 전후 세계질서는 단순히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전후 세계질서는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소련 스탈린 서기장이 합의한 ‘얄타구상’에서 비롯하여 ‘얄타체제’로 불리기도 합니다. 소련은 전후 국제질서를 대표하는 UN과 NPT의 확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소련은 종전 직후 출범한 UN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맡았고, NPT 또한 1968년 3월 미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핵무기 확산 방지안’을 UN총회에 회부한 뒤 UN 안보리 결의안으로 성립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주역을 맡아 확립한 전후 국제질서를,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오늘날 앞장서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러시아는 올해 발표한 새 ‘대외정책개념’ 문서에서 이전과 달리 세계를 9개 지역으로 나누고, 구소련 국가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근외’ 개념을 부활시켜 구소련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는 세계 질서를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에서 중국과 미국의 양극체제로 재편하자는 구상으로, 사실상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국의 관할로 인정하라는 요구입니다. 이러한 구상 속에서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미래는 과거처럼 중국의 ‘천하’에 종속하는 것일 공산이 큽니다. 최근 러시아, 중국 정권이 자국이 ‘제국’이던 시절의 역사를 회고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세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순간부터 이미 대만과 한반도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시진핑 중국 주석은 3연임을 확정하며 대만과의 “통일 추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2022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UN 안보리의 규탄과 추가 제재를 지속적으로 막았습니다. 북한은 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다는 법을 만들고 남한 전역을 타격권에 두는 전술핵무기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법침공과 핵 위협,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단호히 반대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며 인류 공동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에 패배하고 대만이 중국군에 점령당한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그런 상황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의 지척에 있는 우리가 이전과 다름없이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러시아와 중국이 하고자 하는 바에 참견하지만 않으면 별일 없을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중국의 행태를 묵과하는 것이 과연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까요?
한편, 한국 경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현실이며, 그러니 대중, 대러정책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은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무조건 “그러니까 중국과 러시아를 화나게 하면 국익에 위배된다”는 식으로만 해석하는 태도는 근시안적입니다. 전후 세계질서와 그 일부인 ‘규칙 기반’ 국제무역은 한국,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한반도, 대만 섬과 같은 지역이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끊임없이 강대국들의 직접적인 이권 침탈과 식민지 쟁탈전의 장이 되었던 과거와는 다릅니다. 이는 심지어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1세기에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2001년 중국의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광활한 세계 시장에 대한 중국 상품의 수출에 날개가 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세계 사회운동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위선을 비판했듯, WTO가 상징하는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대책 없이 WTO 체제를 무너뜨리는 요소들, 대표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자국 우선’ 보호무역주의나 중국의 ‘한한령’ 등 경제보복이 대안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은 명확합니다. 중국의 국제무역 규칙 위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곡물 수출 봉쇄, ‘자원 무기화’와 같은 행태는 인류 모두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이를 그저 묵과하는 것이 과연 한국과 세계 경제에 장기적 이익일 수 있는지를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사회운동은 우크라이나 지원이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을 반대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개시되었으므로, 사회운동의 대응은 침략전쟁을 이어가는 러시아와 러시아를 직간접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규탄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운동에서 이러한 활동은 처참할 정도로 과소합니다.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것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원인이라는 왜곡된 묘사가, 침략전쟁에 대한 원칙적 반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 민주노총 통일교과서, 《민플러스》 등은 침략국 러시아를 미국 주도의 세계를 넘어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나라로, 대러시아 제재를 우회하여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돕는 나라들을 미국의 대러 포위 압박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들로 포장하기까지 합니다.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를 ‘평화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진보당이나(“미국의 비위를 맞추겠다고 소중한 ‘평화 원칙’을 허물겠다는 건가!”, 2023.04.19.) 전국민중행동이 주최한 촛불집회(“불법도청 주권침해 미국사죄 받아내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반대한다! 굴욕적 한미동맹, 윤석열 규탄 촛불”) 등을 보면 마치 이러한 대응을 과거 한국 사회운동의 이라크 파병 규탄 행동과 같은 맥락에 두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은 침략 지원이었던 반면, 우크라이나 지원은 침략에 맞서는 항전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구도를 의도적으로 뒤섞는 것은 결국 누가 침략국 편이고 누가 피침략국 편이냐에 관계없이 “무조건 미국을 규탄하자”는 진영논리입니다.
사회운동은 친서방과 반서방의 구분을 가장 중요시하는 진영논리를 따르는 대신, 침략국과 피침략국을 구분하여 피침략국 민중의 권리를 옹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당한 침략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민중과 어떠한 연대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