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3.11.17
⑥대만 위기에 개입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일까요?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대만 위기는 중국공산당이 권위주의적 통치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대만 통일’을 제기하면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대만 시민들의 비판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는 ‘내정간섭’이 아니라 주권적 실체를 가진 대만 시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며, 중국의 대만 침공이 불러올 동아시아 전쟁 위기를 막기 위함입니다.
중국은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을 탄압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대만 시민들은 대만의 민주적 정치체제가 위협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중국의 강압적 태도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에 호응했습니다. 대만 시민에게는 통일 여부와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이들의 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중국의 ‘무력을 동원한 대만 통일’ 시도를 비판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일 수 없습니다.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와 대만 문제 부상
《민플러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신냉전 전략이 대만을 자극하며 중국을 노골적으로 포위 봉쇄했고, 그것이 대만 위기로 구체화했다고 주장합니다(이정훈 편집기획위원, 앞의 글, 2023.06.26.).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도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 방문을 결행한 것은 대만을 제2의 우크라이나화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국제질서를 구축하려고 대만 문제를 트집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중국은 가만히 있는데 미국이 갑자기 돌변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중국의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강화에 눈감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만 문제가 국제적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중국이 민족부흥의 역사적 과업으로 “대만 통일”을 격상시킨 동시에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해서입니다. 중국 정부는 경제의 고속성장을 강력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왔으나, 성장 감속 국면에 진입하자 민족주의와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대만이 중국 핵심이익 중에서 핵심인데요, 이유는 민족주의적 역사관에서 비롯된 영토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제3차 역사결의에서 중국은 현대사를 두 개의 100년으로 구분하여, 지금까지의 100년은 ‘굴욕과 분투의 100년’이고 앞으로의 100년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에 따라 중국은 굴욕의 식민주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아편전쟁으로 빼앗긴 홍콩과 청일전쟁으로 빼앗긴 대만을 수복하는 것을 ‘중국몽(중국의 꿈)’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적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과 시진핑은 권력집중이 불가피함을 주장하며, 비판적 논의를 봉쇄하고 디지털 감시 기술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중국은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협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홍콩 시민이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을 직접 선출하겠다며 시위에 나서자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이때 최루액, 살수차를 동원한 경찰의 진압을 시민들이 우산으로 막아내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또한, 2019년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제정을 강행하여 홍콩 시민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홍콩은 중국의 행정구역이지만 민주적 체제를 보장하겠다고 한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약속이 허울 좋은 말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대만에서도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는 ‘해바라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확고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홍콩 탄압을 지켜보던 대만 시민들은 홍콩이 대만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차이잉원을 총통으로 선출했습니다. 차이 총통은 2020년 재선에도 성공했는데요,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거부하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탈중국화’ 기조가 시민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아서입니다.
이처럼 중국과 거리두기를 표방하는 차이잉원 정부가 등장하자 중국은 반대 의사를 강력히 드러냈습니다. 대만의 탈권위주의 흐름을 차단하지 못하면 이것이 대만을 넘어 중국 본토에도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첨단기술 경쟁 속에서 대만은 독보적인 반도체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이 태평양에서 군사적 주도권을 행사하려면 대만해협 장악이 핵심입니다. 무엇보다 대만 통일은 시진핑 장기집권의 명분이기에 사활적 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대만이 중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기 위해 대만해협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하며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중국과 마찰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만 문제를 다루던 미국의 태도도 변하기 시작하여 점차 대만 문제가 미중 간의 민감한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내정간섭이 아니라 대만 시민의 권리
《민플러스》는 “민진당의 독립지향을 미국이 지원하면서 양안관계 위기가 본격화”되었다며, “주권국가의 자주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엇이 진보적이며, 무엇이 퇴행적인가 하는 점을 미국의 간섭문제와 연동하여 보지 않으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판단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만 문제는 “(중국) 내부 문제”로, 내부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민플러스 데스크 칼럼] 대만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 2021.11.04.). 대만 시민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면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며, 미국을 비롯한 제3국의 관여는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첨예해진 이유는 대만 시민들이 중국이 주장하는 통일 방식을 지지하지 않아서입니다. 즉, 미국이 종용해서 대만 시민들이 중국에 등 돌린 것이 아니라, 중국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해서라는 것이죠. 이러한 여론은 압도적입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공식화하기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2019년에도 이미 여론조사에서 대만 시민 88.7%가 중국이 대만과의 통일 방식으로 내세운 ‘일국양제’에 의한 통일에 반대했습니다. 2023년 10월 28일,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는 대만인 절대 다수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대만을 병합하려는 시도에 대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응답자의 88.1%가 중국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침범 등 군사적 압박에 반대했고, 85.3%는 ‘일국양제’ 통일에 반대했고, 86.2%는 대만해협 현상(현재 상태) 유지를 지지했으며, 83.7%는 대만의 미래는 대만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돈바스 지역] 도네쯔끄 인민공화국과 루한스끄 인민공화국의 분리독립은 미국이 관리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자진하여 종속되려는 우크라이나 우익정권의 책동을 거부한 것이고, 대만의 분리독립음모는 미국이 관리하는 인도-태평양군사동맹에 자진하여 종속되려는 대만 우익정권의 책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 돈바스에서 반미세력이 실현한 분리독립과 중국 대만에서 종미세력이 추구하는 분리독립 사이에는 형식적 유사성만 존재할 뿐, 본질적 측면은 전혀 다르다. 분리독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분리독립을 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젤렌스끼 정권의 궤멸, 종미하면 망한다는 피의 교훈”, 《자주시보》, 2022.02.28.
《자주시보》도 대만 시민들의 선택을 폄훼하며, 미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자주성도, 자기결정권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통일 여부와 방식에 관한 선택,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중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에 관한 선택은 대만 시민의 권리로서 존중받야야 합니다. 미국의 지원 여부가 ‘자주성’의 정당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군부독재에 맞선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미국의 지지 여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시민의 민주화 염원 자체가 정당한 권리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대만 시민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만약 미국의 입장을 기준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판단한다면, 홍콩 민주화를 위해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권리를 부정하게 됩니다. 미국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서는 시민들의 권리도, 탈레반의 인권탄압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권리도 미국이 지지한다는 이유로 부정하게 됩니다. 보편적 시민의 권리와 인권보다 반미(反美)를 우선하면, 이처럼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눈감는 ‘퇴행적’인 입장으로 귀결됩니다.
국제사회가 대만 시민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 아닙니다. 자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규탄하거나 제재하는 것을 내정간섭이라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중국과 별개의 주권적 실체가 있는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를 반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 될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말하는 ‘힘에 의한 대만의 현상변경 반대’란, 중국이 무력으로 ‘통일’을 시도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대만의 미래에 관해서 대만 시민의 선택을 존중하며, 강대국인 중국이 군대를 동원해 현재 상황을 바꾸려는 것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며 대만 문제에 침묵한다면,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대만 시민들의 염원을 중국이 군사력으로 짓밟는 것을 용인하는 셈입니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저지해야 합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대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만 위협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아시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의 평화도 달려 있습니다. 특히 핵무장을 한 북한이 상당한 위험요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할 경우, 중국과 북한이 미국의 대응을 분산시키기 위해 남한을 대상으로 군사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물론 전 세계 사회운동은 중국의 대만 침공에 반대해야 하며, 남한 사회와 사회운동은 더욱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당은 한국정부가 한미정상회담 선언문에서 ‘힘에 의한 대만의 현상변경 반대’를 명시한 것을 비판했습니다. “반(反)중국노선”을 확고히 한 것이라, 향후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은 경제와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도래할 것”이란 이유에서입니다(“신냉전 반평화 굴종외교로 얼룩진 한미정상회담”, 2023.04.27.). 전국민중행동 성명(2023.04.27.)도 한국정부가 대만 문제를 언급하여 “중국을 적국으로 돌렸고”,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켰다”고 평가합니다.
동아시아 전쟁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상식적으로 전쟁을 저지하려면 중국의 무력행동 의지에 경고를 보내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평화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진보세력이라면, 중국에 대만 시민을 향해 미사일과 포탄을 쏟아 붓지 말라고 주장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진보당, 전국민중행동 등의 성명은 한국이 대만 편을 들면 중국에 경제보복을 당할 수 있으니, 평화와 인권 문제에 눈 감자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중국에 무력행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면 오히려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상식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에 대한 대만의 반감은 미국이 부추겼으니 정당하지 않은 반면, 중국에 경고를 보내는 행동은 대만 통일을 방해하는 내정간섭이니 외세에 맞선 중국의 자위권 행사는 불가피하고 정당하다는 논리로 보입니다. 중국이 대만을 포화에 휩싸이게 하더라도 미국이 유도한 일이니 정당방위라는 것이죠.
그러나 대만 시민들의 중국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미국의 사주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중국이 대만과 정말로 ‘통일’하고 싶다면 대만을 총칼로 위협하는 대신 홍콩 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고 자국민 감시와 통제를 중단하며 대만 시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이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사회운동은 대만 시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를 비판하고, 동아시아 전쟁으로 번질 것이 자명한 중국의 대만침공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