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3.11.17

소책자를 마치며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사회진보연대
북한의 주장을 비판하며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만들 때
 
 
‘탈냉전’ 30년 시대가 끝났습니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해체되었습니다. 이로써 냉전 시대가 공식적으로 끝났습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확고해졌습니다. 미국은 다른 어떤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통해 세계 곳곳에 개입했습니다. 냉전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영원할 것이라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세계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세계입니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을 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이 익숙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세계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경종을 울린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고,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했고, 2012년 말 시진핑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했습니다.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그해 말 ‘이단아’ 트럼프가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 또한 여러 해에 걸친 과정이었고 많은 중요한 사건이 있었지만, 소련의 해체는 누구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더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신호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탈냉전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대응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사회운동도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야만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가 변화한다는 것은, 어제까지 상식이었던 것들도 앞으로는 있는 힘껏 노력해야만 겨우 지킬 수 있는 것이 된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무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점령지역을 병합하여 구시대적 ‘영토확장전쟁’을 부활시키고, 북한이 계속해서 ICBM을 시험 발사하는 데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UN 안보리 차원의 비판과 제지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모습은 이미 그런 현실을 보여줍니다.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이나 NPT 체제 바깥에서 핵과 핵 투발수단인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인류 모두의 이익을 침해하므로 공동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가 뭔가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았듯 NL 주류는 이러한 변화를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미국 패권이 몰락하는’ 증거고, 그 몰락을 앞당기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최대한 많이 병합하고,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고,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되고,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니제르 등의 사례처럼 세계 각지에 (비록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 ‘논란’은 있더라도) ‘반서방’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는 군부 정권이 더 많아지면 노동자민중에게 더 평등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런 정세인식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자칭 ‘진보세력’이 우크라이나, 미얀마, 홍콩, 대만 등지의 민중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서방의 앞잡이’, ‘다극세계 전환’의 배경으로 취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런 식의 정세인식과 정반대로, 국제정세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노동자민중이 가장 고통 받을 야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것은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은 노동자민중에게 가장 고통을 준다는, 상식에 기초한 주장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북한의 핵무장이 제지받지 않고 이뤄지는 세계가 현실이 된다면 곳곳에서 폭력 행사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공한다는 것은,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그 영토를 빼앗고도 정권이 유지되는 나라가 바로 우리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 성공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코앞에서 “중국과 한 나라가 되고 싶지 않다”는 2300만 대만 시민이 무력 점령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일본, 미국 등 주변국들과 국제 사회가 중국이 침공을 감행하는 것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다는 것은 미국과 국제 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잠정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이고, 남한 전역을 언제든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전술핵무기가 우리 지척에 남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웃들로 둘러싸인 우리의 삶이 과연 지금과 같거나 심지어 더 나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과연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쟁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세일까요? 반대로 극우 세력의 선동, 호전적인 군비증강론, 심지어 남한 핵무장론이 힘을 얻기 더욱 좋은 판이 아닐까요? 우리 이웃들이 더 큰 ‘꿈’을 추구하게 되면 그때 가서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규칙이 무너지고 힘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실리만 어떻게든 야무지게 챙길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은 우리의 위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 때문에 일어났다는 식의 논리를 한반도에 똑같이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북한이 남한이나 일본에 선제핵공격을 가해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본문에서 강조했다시피, 북한은 핵무력법령을 통해 이런 행위를 합법화했습니다), 70년간 유지된 한미군사동맹이 결국 근본적 원인이며, 이것이 한미일군사동맹으로 확장되는 최근 흐름이 북한을 더욱 위협했으므로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북한은 오랫동안 완고한 반서방 사회주의 국가였으며, 중국,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다극체제 주도 세력’입니다. 반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남한의 패배는 미국 패권의 몰락과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길 것이며, ‘비평화적 방도에 의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한미일군사동맹 해체”가 가장 중요한 구호가 될 것이며, 각국 진보세력의 임무는 자국 정부가 남한을 지원하는 것을 막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과연 누가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가로막고 있습니까?
 
실상 NL 주류의 입장은 결국 북한의 통일정책, 한반도정책 그 자체입니다. 이것을 남한 사회 내에서 충실하게 따른 것이 곧 주류 NL 운동이었고, 이런 활동을 받아들이지 못한 개인이나 그룹은 떨어져 나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통일정책은 갈수록 실질적 내용이 없어졌고, 그에 따라 NL 변혁론에 입각한 남한의 통일운동이 수행해야 할 역할도 더욱 더 원칙 없는 것이 되었다는 데 주목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수사적 차원에서라도 ‘남한의 변혁’이라는 전망을 제시할 때는 그에 부합하는 활동을 해야 했지만,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는 북한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합의할 수 있는 남한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 이들의 임무가 됩니다. 이에 따라 분당 사태 이후 NL 당권파만 남은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강령 삭제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거친 통합진보당 창당, 그리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가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문재인 정부조차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2019년부터 북한 당국은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의 전술핵 개발을 두고 “비평화적 방도의 통일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옹호하는 주장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민플러스》, 2021.02.01.).
 
결국, 북한 당국과 이를 추종하는 NL 주류의 운동은 오히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와 남한을 겨누는 전술핵무기 개발은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전쟁 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민통’(자주민주통일) 세력이라고 소개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태도에서 자주도, 민주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통일의 길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핵 개발 노선을 고수하며 4대 세습 의도를 드러내는 북한과의 통일을 바라지도, 가능하다고 여기지도 않는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4월 발간된 통일연구원 ‘통일의식조사 2022’ 결과는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처음으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보다 평화적 분단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습니다. 8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공개한 ‘2023 통일의식조사’ 결과에서도 통일이 ‘전혀’ 또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의 비중은 29.8%(20대는 41.3%)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서도 ‘분단된 현재대로가 좋다’는 응답이, 통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최소 30년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다’란 응답들이 각각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운동이 앞으로 이런 추세를 역전하고 통일을 바라는 여론을 확대할 리는 만무하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통일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북한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사회운동을 만듭시다
 
만약 NL 주류식 정세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천에 있어서도 이와 구별되는 뭔가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과 구별되는 실천은 찾기가 지극히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즉, 이러한 한반도·국제정세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고 거리를 두더라도, 실천적으로는 대부분의 운동세력이 이들과 구별되지 않는 활동을 하거나, 이들과의 명시적인 논쟁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의 ‘남북교류’ 사업, ‘북한 바로 알기’ 사업, 통일선봉대 등이 상징하는 NL 주류의 통일사업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반전평화사업을 독점해 왔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조차 부정하는 이런 ‘통일운동’으로 오늘날 반전평화운동을 대표하겠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몰정세적 주장입니다. 그러나 반전평화 관련 사업을 NL 주류 그룹들이 독점하고 이를 다른 정파들이 묵과하는 것이 시나브로 관행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12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의 이름을 달고서, 북한의 선제핵공격 법제화는 한반도 핵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통일교과서’가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화두에 오른 민주노총의 향후 정치세력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대통합 정당이든 선거연합정당이든 간에, 북한의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에 관한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유권자들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뭐라고 답할 것입니까? ‘합의된 입장이 없다’거나 참여한 세력 각각에게 물어보라고 할 것입니까? 반핵 원칙을 저버리고 북한 핵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세력이 포함된 당을 어떻게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것입니까?
 
당면한 총선 대응을 넘어, 사회운동이 북한의 핵무장, 권력세습과 인권에 대해 비판하면서 한반도 정세 대응을 할 수 있냐 없냐는 사회운동이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대중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입니다. 국제정세 대응도 이와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운동이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 보듯 해야 하고,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는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므로 아무 말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을 포기하자는 이야기임을 무겁게 인식해야 합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행보와 군사 위협을 묵과하면, 그것이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로 나아갑시다
 
‘반서방 연대’는 일부 NL 그룹들만의 주장만은 아닙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의 권위주의 정부는 연대를 과시하며 경제·군사협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권위주의 국가 연대에 저항하는 세계 민중의 투쟁과 연대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침략국인 러시아와 피침략국인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이 연대하여 푸틴 정권에 맞서고 있고, 중국 ‘백지시위’ 속에서는 대만, 홍콩, 우크라이나, 이란 민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한국 사회운동의 실천이란, 북한의 핵무장과 인권탄압에 반대하며, 권위주의 국가 연대에 저항하는 세계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길이 우리 자신과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구하는 길임을 확신합니다.●
 
주제어
평화 국제
태그
중국 권위주의 시진핑 대만 대만위기 다극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