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3.11.21
하마스의 군사도발로 드러난 바이든 중동정책의 허점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한 달이 지나면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가 1만 3000명이 넘어서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루속히 휴전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들도 안전하게 석방되어야 할 것이다.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한 이번 전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바이든의 중동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바이든의 중동정책 핵심은 원래 이란의 핵합의(JCPOA)를 복원해 지역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주력하려면, 중동의 불안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를 중재하면서 외교력을 과시하자,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의 협정을 추진했다. 즉, 미국이 중국견제에 집중하려고 중동 관여를 축소하자, 그 공백을 러시아와 중국이 파고들었고, 중동의 기존 우방국들이 중러를 미국과의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다시 미국을 끌어들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마스의 군사도발로 바이든의 중동구상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아브라함 협정을 계승하는 사우디 이스라엘 협정은 반(反)이란 동맹구축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고립을 의미했다. 때문에 이는 하마스가 군사도발에 나선 요인이 되었고, 이란은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나 배후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란 핵합의 전망이 불투명해졌으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논의도 중단됐다.
바이든의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이란 핵합의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가진 주요 국가 간의 세력균형을 통해 중동지역의 안정화를 추구한다는 오바마 구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부시는 중동 민주화를 주도하겠다는 목표 아래 미국이 직접 개입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오바마는 무력개입으로 서구식 제도를 이식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중동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안정과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아시아 태평양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여기서 핵심은 이란이다. 이란이 핵무장을 한다면 중동정세가 한층 불안해지므로, 핵협상을 통해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핵합의의 특징은 이란의 완전한 핵프로그램 폐기가 아니라 ‘핵무기 획득 방지’라는 차선을 선택해,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되 15년간 저농축 수준을 유지하고 농축우라늄 규모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런 합의를 이란이 이행하여 정상국가로 거듭난다면 비록 갈등적인 상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도 미국의 중재 아래 중동의 세력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오바마는 이란과 핵합의를 타결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란을 세력균형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란 핵합의가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근본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무장을 지연시키는 것일 뿐이라며,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대신 강력한 경제제재를 통해 핵을 포기하도록 이란을 압박했으며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2020년 미국은 이라크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무인기 공격으로 암살하기까지 했다. 또한 이란을 역내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은 기존 우방인 이스라엘을 비롯한 수니파 아랍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했다.
바이든은 오바마를 계승하여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과의 핵합의를 복원하는 것을 중동정책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과정이 순탄치 않다. 오바마와 이란 핵합의를 도출한 이란의 온건파 정치인들이 트럼프의 일방탈퇴로 입지가 축소되어, 현재 이란 측의 협상 대상이 강경파 일색으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이란의 핵개발도 상당히 진척됐다. 핵합의 당시 이란은 저농축(3.67%) 우라늄 202.8㎏만 보유하기로 했으나, 트럼프가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의무사항 이행을 중단했다. 그 결과 이란은 올해 5월 기준 핵폭탄 2개를 제조할 만한 양의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란 핵합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가 당사국으로 참여했는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비협조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이란 또한 러시아에 드론을 수출했으며, 서방의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하는 등 러시아·중국과 관계를 밀착했다.
이러한 난관 속에서도 협상은 지속됐다. 경제제재로 인해 심각해진 경제난과 이로 인해 높아진 사회적 불만이 히잡 착용 거부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불붙어 이란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면서 이란을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했다. 미국은 이란이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해 우크라이나 전선을 교란하는 것을 제어하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란의 원유수출 제한을 완화할 필요도 있었다. 물론 이란제재를 느슨하게 집행한 것은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한 당근의 성격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협상은 교착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올해 8월 미국이 한국에 동결됐던 이란의 수출대금 60억 달러를 해제하고, 이란과 미국은 각각 수감자 5명을 교환하면서 작은 진전을 이뤘다.
이는 핵합의 복원의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평가받기도 했으나, 각자의 필요에 의한 일시적 긴장 완화라는 평가도 있었다. 근본적으로 미국과 이란이 서로의 요구안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미국은 핵합의를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2015년 합의안 그대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안보다 확장되고 더 장기간 이란을 묶어두는 합의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란의 미사일 개발 금지, 중동지역 내 친이란 대리세력(헤즈볼라, 하마스 등)의 준동 방지 등의 내용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제재로 경제난이 심각하지만,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 없다. 이슬람 혁명체제를 수호한다는 국시를 위해 국가의 위신을 지키는 것이 절대적이라, 경제난과 정치 불안이 정국을 압도하지 않는 한 이란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차기 대선까지 최대한 협상을 이어가면서 이란의 핵개발 속도를 늦추는 것이 바이든의 단기적 목표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바이든의 중동지역 동맹 관계
바이든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추진하고, 더불어 중동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대한 편향적 태도 속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방조하고, 사우디의 인권 침해 문제를 묵인했던 것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또한,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만큼 동맹국에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맹국의 현실은 바이든의 이상과 동떨어졌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정착촌 확장 및 합법화를 대표 정책으로 내세워 강경한 정책을 펼쳤다. 이미 60만 명의 유대인이 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네타냐후 연정 출범 이후에만 총 7000채의 정착촌 건설을 승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네타냐후는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스라엘에는 연성 헌법인 기본법만 있어서 의회에서 단순 과반을 확보한 정치세력이 마음대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결이 행정부와 의회를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인데, 이를 무력화하면 선거를 통한 독재가 가능해진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네타냐후가 사법개편안을 통과시키면서 29주 연속 이어져 온 반대 시위가 더욱 격렬해졌다.
바이든의 이스라엘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네타냐후를 백악관에 초청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임 이스라엘 총리를 곧바로 백악관에 초청하던 관례를 깨고 바이든은 네타냐후가 재집권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그를 초청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6월 네타냐후가 중국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국빈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자, 올해 9월 네타냐후의 백악관 초청이 성사됐다.
사우디에 대해서는 바이든은 대선 시기부터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사건에 대해 사우디의 사과 및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를 납치 피살한 배후자로 지목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압박한 것이다. 또한 바이든은 트럼프가 체결한 사우디에 대한 무기수출을 중단했다. 사우디에 판매한 무기가, 사우디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예멘 내전에서 사용돼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은 당시 국방장관이던 빈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의 확고한 군사 우위를 과시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결정했다. 그러나 내전은 종식되지 않고 격화되었으며, 사우디의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도 발생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초래했다.
이처럼 바이든이 전통적 우방국인 이스라엘, 사우디와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 관계와 사뭇 달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오바마 시기부터 시작됐다. 오바마는 부시의 중동 민주화를 위한 군사적 개입이 실패했다고 평가했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의 전략자산을 아시아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중동 산유 국가들을 상대로 한 ‘석유와 안보의 교환’이라는 전략의 위상도 달라졌다. 이에 따라 중동에서의 개입을 축소하고 동맹국과의 관계도 조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바마 임기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와의 관계가 갈등적이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 이란 핵합의를 추진해서다. 핵합의에 줄곧 반발하던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하원 초청으로 방문한 의회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정도였다.
트럼프도 중동에서의 개입 최소화 기조를 유지했으나 동맹과의 관계는 달랐다.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바람을 이뤄줬고,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다. 이는 이란이 핵무장을 통해 역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맹 간 연대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바이든 역시 중동안정을 통한 개입 최소화라는 기조 아래 동맹 관계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시기 반이란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벗어나되,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적정선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사우디나 이스라엘도 변화된 동맹 관계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급물살을 탄 사우디 이스라엘 수교
미국의 동맹 관계가 반전된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어서면서 이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미국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 내 석유산업을 규제하는 상황이라 바이든은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했다. 그러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심지어 2022년 10월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해 감산을 발표하여 바이든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미국 중간선거를 직전에 두고 이뤄진 감산이라 바이든에게 상당한 타격이었다. 이에 미국은 이번 감산을 사우디의 친러시아 행보로 판단하고, 미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다며 사우디에 경고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2023년 3월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 관계를 중재하며 외교력을 과시한 것이다. 양국은 2016년 이래로 단교 된 양국 간의 국교를 중국의 중재로 정상화했다. 그동안 중동 분쟁의 중재 역할을 언제나 미국이 자임해 왔는데 그 자리에 중국이 섰다. 시점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는 전국인민대표자회의 개최와 같은 날이라, 시진핑은 중동 최대 현안의 평화 중재자로서 조명을 받았다. 물론 시아파를 이끄는 이란과 수니파의 수장인 사우디의 세력경쟁을 획기적으로 해결했다기보다 긴장을 이완시킨 것으로, 양국이 단교했던 2016년 이전 관계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우디가 중국과의 협력을 과시하여 미국을 긴장시켰다는 점과 미국이 중동개입을 축소하면서 생겨난 빈자리에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상징성이었다.
결국 바이든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양국의 수교 추진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유가 안정화를 위해 사우디의 협조가 필요했고, 중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차단해야 했다. 그리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업적을 남긴 것에 반해 바이든은 아직 차별화된 성과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사우디 이스라엘 수교의 함의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는 미국이 사우디와 안보동맹을 맺고 원자력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대가로,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국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지만 사우디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1967년 이전 국경선으로 이스라엘이 철수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이 달성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중동의 역학관계 변화 속에서 양국이 경제-안보적 이익에서 일치하는 지점이 생기자 팔레스타인 문제가 점차 뒷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 사우디는 경제의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투자유치와 첨단기술 확보가 필요한데, 이러한 점을 이스라엘에 기대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시장을 확보하려면 사우디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의 위협인 이란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 안보협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던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개입 축소와 동맹 관계 조정으로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추고 이란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는 아브라함 협정의 완성을 의미한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정식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으로,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1979년)와 요르단(1994년)과 국교수립 이후 오랜만에 성사된 협정이다. 이어서 수니파 맹주 국가인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중동에 미치는 정치적 파장이 크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오랜 반목을 해소하는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 협정의 완성은 팔레스타인의 고립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국가와의 관계 정상화 확대를 통해 자국에 유리한 팔레스타인 평화안에 대한 주변 국가의 지지를 더욱 확보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착촌 문제, 요르단 계곡 합병, 예루살렘영유권의 해결에 있어서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주변 아랍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왔다. 이에 2020년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박탈감과 분노가 증폭됐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압바스는 무능하게 대처했고, 15년 만에 실시하는 선거로 돌파구 마련을 기대했지만, 선거가 연기되면서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자 2021년 5월 하마스가 로켓공격을 감행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와 국교를 수립하는 것에 반발하여 하마스의 공격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우디와의 수교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한층 강경한 대응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다르게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을 통한 해법(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정착촌 확장을 비판했으나, 실질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팔레스타인 문제를 방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허점은 결국 하마스의 대대적인 군사도발을 초래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사우디 협정은 반이란 동맹의 결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과 아랍을 묶어 이란 시아벨트를 압박하는 진영구축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 초승달 벨트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사우디-쿠웨이트-바레인-아랍에미리트의 연대에 이스라엘까지 동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의 안보협력으로 아라비아반도를 종횡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면 중동지역의 군사 안보 지정학에 변화가 생긴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어서다. 당연히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이란은 역내 대리자를 동원한 무력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이란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군사도발을 배후지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도전에 직면한 바이든의 중동구상
아브라함 협정은 이란 핵합의 구상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란에 대한 규정과 대응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을 협상 대상자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통해 정상국가로 거듭난 이란이 지역 세력균형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오바마의 정책을 계승한다. 반면 아브라함 협정은 이란을 중동 세력균형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위협국가인 이란은 협상이 아니라 동맹 강화를 통해 봉쇄한다는 트럼프의 정책을 계승한다. 오바마는 ISIS와 같은 수니파 테러세력을 격퇴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란과의 협조를 고려하였다면, 트럼프는 이란을 봉쇄하여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단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여겼다.
아브라함 협정은 동맹 강화를 통해 미국의 직접개입 비용을 절감한다는 취지가 있지만 동시에 반이란 동맹의 성격을 가지므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는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양국의 수교에 반발해 하마스의 군사도발이 촉발됐고, 이란이 배후로 의심받으면서 이란핵 협상 전망이 한층 더 불투명해졌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이란 핵합의와 아브라함 협정을 동시에 계승했다. 이란과 협상을 지속하되, 핵합의 복원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로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이란 내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오바마 시기보다 전반적인 조건이 악화했고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비협조가 겹쳐서다.
그러나 아브라함 협정의 결정판인 사우디 이스라엘 수교를 바이든이 처음부터 우선순위에 두고 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인권의 가치를 강조한 만큼 중동지역 동맹국에도 이 점을 요구하려 했으나,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파고들면서 바이든의 구상이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대선에서 내세울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사우디 이스라엘 수교를 밀어붙이다가 하마스의 군사도발로 바이든 중동 구상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역 군사작전으로 미국을 향한 아랍권 전역의 분노가 확산하면서 사우디 이스라엘 수교와 이란핵 협정 전망도 불투명하다. 또한 바이든과 네타냐후는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과 전후 가자지구 통치와 관련해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바이든은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에 신중할 것을 주문했고, 전후에도 가자지역을 이스라엘이 점령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하마스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전후에도 가자지구에 군사력을 유지하겠다며, 다른 팔레스타인 대안 세력에게 자치권을 넘기겠다는 미국의 구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전후처리 과정도 순탄치 않으리라고 전망된다.
이 같은 중동지역의 불안정과 미국 중동구상의 난맥상에서 확인되는 점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초당적 합의라는 전통이 파괴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당의 외교정책이 이상주의적 원칙과 현실주의적 대응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사실이 바이든의 중동정책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공백을 중국과 러시아가 파고들어 교란하면서 중동지역의 분쟁 해결과 안정화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