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 2023.12.21
진보당은 야권연대 호소를 중단하라
진보당의 ‘최대 진보’
진보당 윤희숙 대표는 지난 12월 12일 “특정 정당으로 들어가야 하는 ‘최소 진보’가 아니라 함께 시작하는 ‘최대 진보’”로 나아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진보의 단일 선택지’를 만들자고 했다. 이는 사실상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하는 선거연합을 거절하고, 임시가설정당 방식의 선거 연합정당 창당을 역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윤 대표는 12월 16일 진보당 결의대회에서 윤석열 검찰 독재를 멈추기 위한 야권 총단결을 주문했다. 민주당만으로 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없으니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그리고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대 진보연합’은 야권단결을 이끌어 총선에서 승리하는 열쇠를 의미한다.
야권연대를 호소하는 진보당
그런데 ‘최대 진보연합’이 야권을 단결해 총선에 승리하려면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한다. 진보정당들은 지역구 당선이 어려우므로 비례로 국회의원을 최대한 배출해야 하는데, 선거제가 병립형으로 회귀한다면 진보정당들의 원내진출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진다. 즉, 병립형 선거제로 원내진출 문턱이 높아지면 내년 총선은 국힘과 민주 양당의 대결 구도가 되면서 ‘최대 진보연합’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따라서 민주당이 최소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최대 진보연합’이 야권연대의 일 주체가 될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민주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재명 대표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해 선거승리를 위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서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모든 약속을 모두 다 지켜야 하나”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이재명 대표의 대통령 선거 공약 파기를 암시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공언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뒤집었던 것처럼,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포기할 것을 시사하자 앞으로 민주당 발언을 어떻게 신뢰하겠냐는 탄식이 쏟아졌다. 이처럼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선거제 개편은 논란 속에 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진보당이 행동에 나섰다. 12월 18일 진보당 강성희 국회의원을 비롯한 전북지역 시민단체들은 ‘전북도민 1천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에 “민주당은 사소한 당리당략 때문에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병립형 선거법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지역구는 야권연대, 비례는 야권연합 비례정당’이란 구호를 내세우며 민주당에 호남 지역구 기득권 포기하고 야권연대에 앞장서라고 요구했다. 이는 호남에서 지역구 후보를 결정할 때, 민주당이 단독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로 결정하자는 의미로 보인다. 그리고 야권연합 비례정당이란, 연동형 비례제 아래서 민주당이 별도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반윤석열 세력을 하나로 연합한 비례정당에 동참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강성희 의원이 참여한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구상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민주당과 적극적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거치고, 비례의석을 위해서는 민주당을 포괄한 연합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즉, 민주당에 야권연대를 간곡히 호소하는 모양새다.
야권연대, 친 이재명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고 증명해야 성사돼
그러나 문제는 진보당의 야권연대 주장이 민주노총 총선방침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진보당은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과 함께 민주노총 총선대응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총선방침으로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노총은 민주당과의 야권연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진보당이 민주노총 총선대응기구에서 나가거나, 반대로 민주노총 총선방침을 야권연대로 변경해야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야권연대가 성사되려면, 이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이재명 대표에게 충성할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확실한 반대와 이재명 대표의 대선 출마를 확고하게 밀어준다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회귀하려는 결정적 이유가 이재명 대표의 불안감 때문이라서다. 이재명 대표는 체포동의안이 민주당 이탈표로 인해 가결된 이후 충격을 받아 앞으로 더욱 철저하게 당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기조로 공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맥락에서 병립형은 비례후보들 하나하나를 이재명 대표가 검증할 수 있으나, 연동형비례제 아래 야권연합 비례정당은 대표의 영향력을 관철하기 쉽지 않고 형제자매 당이 난립할 가능성이 커서 이 대표가 병립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에게 충성을 증명해서 친명 국회의원이 당선된 효과를 내거나 그보다 낫다는 확신을 보여줘야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다. 즉, 야권연합을 이끌어갈 진보당의 ‘최대진보 연합’이 민주당 이중대를 넘어 친명 돌격대가 되어야 연동형 선거제 유지와 야권연합이 성사된다는 것이다.
최근 시민사회 원로들이 연동형비례제 유지와 진보정당과의 연대가 왜 이재명 대표에게 실이 아니라 득인지 설득하려는 자리가 있었다.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기운 것처럼 보이자 함세웅, 이부영 김상근 등 시민사회 원로들이 지난 11월 9일 이재명 대표와 면담을 한 것이다. 원로들은 여당과 싸우는 데 민주당 단독보다 진보와 힘을 합치면 위력이 더 강해지며, 특히 대선에서 더욱 그러하므로 민주당에도 손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민주당 의석수가 진보정당에게 가더라도 같은 편이므로 손해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재명의 승리가 야권의 구호라는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이 대표의 대선 가도에 야권이 돕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보인다. 야권연대가 성사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되는 자리였다.
지난 총선과 같은 시도, 야권연합 비례정당
야권연합 비례정당이라는 구상은 새롭지 않다. 21대 총선에서 정치개혁연합이 같은 시도를 했다. 그들은 민주당, 정의당, 민중당(진보당의 전신), 녹색당, 미래당 등에게 비례용 선거연합 정당 창당을 제안했다. 각 당이 비례후보를 파견해서 총선을 치르고 당선자들이 소속정당으로 돌아가는 형식이다. 명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래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에 대항하여 반보수민주세력의 국회 의석을 최대화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미래한국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의당과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강행 처리했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까지 해서 위성정당을 창당하기가 대단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 민주당에게 비례용 선거연합 정당은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군소정당에게 비례 앞순번을 배정하여 진보정당 원내진출 플랫폼이라는 명분을 제공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길을 우회적으로 터주는 경로가 될 수 있었다.
이에 녹색당·미래당·민중당이 동참할 뜻을 보였고, 정의당은 비례연합정당이 선거법개정 취지를 왜곡한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이 “이념 문제라든가 성 소수자 문제라든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의 연합에는 어려움이 있다”(2020.3.17.)며 민중당의 참여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다 결국 민주당이 위성정당인 시민을위하여를 창당하면서 정치개혁연합이 주도한 비례연합정당은 불발되었다.
이처럼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민중당을 포함한 비례 선거연합 정당이 부담스럽다며 독자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인데, 진보당은 별반 달라진 조건이 없는데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엽합 비례정당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에게 진보당과 손잡는다는 부담감을 뛰어넘을 만큼의 명분이나 실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달성되기 어렵다. 그런데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진보당이 그런 명분과 실리를 마련하기 위해 힘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진보당은 야권연대 호소를 중단하라
진보당은 지난 총선에서도 야권연대를 시도했고 이번에도 야권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강성희 의원이 다른 당임에도 친명 의원모임인 처럼회에 가입하고(논란이 되자 탈퇴), 체포동의안 반대를 위해 열성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친이재명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보당의 행보는 일관된다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문제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진보정당이 민주당과 연합하고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게다가 현재 이재명 대표는 다수 중대범죄 혐의가 있음에도 당 대표에 취임해 민주당을 사당화하여 방탄으로 활용했고, 강성지지층을 동원해 정적을 공격하면서 정치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견디다 못해 반발의 목소리가 분출하는데, 진보정당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 손 내밀고 이재명 대표를 옹호한다면 보수 양당을 넘어서는 대안세력으로 자임할 자격이 없다.
진보당은 아직 강성희 의원의 전에서 움직임을 제외하고 당차원에서 민주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화한 것은 아니다. 비판과 우려가 부담스러워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보당은 야권연대에 동참할 기회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진보당의 우려스러운 행보는 단지 진보당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진보당은 ‘최대 진보’라는 이름으로 진보정당을 아우르려고 시도하고 있고, 무엇보다 민주노총 총선대응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진보당이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이 민주당과 손잡는 길을 열어주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진보당은 야권연대 호소를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