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4.01.16
2024년 노동정세 전망②: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이 오답인 이유
인구감소와 성장률 하락에 대응해 경제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연금, 노동,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개혁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시장 위기와 변화에 대처하겠다는 목표로 실행되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경제구조개혁이라는 취지에 제대로 부합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인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낮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사법치주의’ 양대 축으로 실행되었다. 역대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과 유사하게 노조 및 노동계의 강한 반발과 대립 구도 속에 추진되었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임금체계 개편, 근로자대표제 개선이 대표적 이슈였고 고용노동부가 작년 상반기 발표한 <노동시간 개편안>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상생임금위원회> 발족과 운영도 상당한 갈등을 불렀다.
‘노사 법치주의’는 2022년 하반기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업무 개시 명령을 기점으로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 노사 불법행위 근절(5대 불법행위: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불공정채용, 직장 내 괴롭힘), 대기업 노조 고용세습 단협 시정명령, 불공정 채용 금지, 노조 사무실 및 노동단체 지원사업 전수조사를 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올해 초에는 노조 운영‧회계 서류비치‧보존의무 확행 자율점검 기간(22.12.29.~23.1.31.)을 공시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했다. 또 보조금이 지급되는 노조사무실 지원사업 전수조사를 진행해 문제가 지적되면 사용 경과 불인정과 즉각 환수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노조의 타임오프제 기획감독 중간결과를 발표해 관리감독에 들어갔으며 노조의 기존 활동 관행에 대대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노동유연화에 대한 과도한 집착
정부는 노동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규범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살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에 따라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을 우선적인 노동개혁 과제로 설정했다.
<근로시간 개편안>은 ‘주69시간’ 논란과 함께 노동계의 전면적인 반대에 직면했고 15일 만에 재검토에 들어갔다. 11월 13일 고용노동부는 노사‧국민 여론을 수렴해 이후 추진계획을 재발표했는데, 입법 등 정책실행을 유보하고 일부 업종에 국한하여 노사정 대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한편 2023년 초부터 <상생임금 위원회>를 발족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도 진척시키고 있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이 연공 호봉제를 직무, 성과급으로 전환하는 의제만이 아니라 “업종별 다양한 원하청 상생모델 개발, 임금격차 실태조사, 현장 의견수렴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적극추진”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는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한 특정 인사에 대한 비판을 부각하며 정부 차원의 임금체계 논의과정을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노동시간 개편 등 정부의 유연화 정책은 격차 해소나 산업구조의 변화, 저생산성에 대응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라 볼 수 없다. 정부는 노동규범의 현대화라는 이상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기업의 비용 절감 요구를 수용해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으로 급격한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에만 집착한다. 대표적 사례로 연장근로 총량제는 현행제도로도 충분히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상황에서, 기존 노동시간 제도에서 예외적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던 연장노동의 개념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불가역적인 제도 변화를 추진하다 반대여론에 부딪친 것을 들 수 있다.
한편 팬데믹 충격 이후 노동시간은 급락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일제 취업자 감소와 단시간 노동의 증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고용률 격차가 그 요인이다. 그러나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노동시간의 감소와 산업적 격차와는 무관하게 정부의 노동개혁 초점은 내부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문제 삼고 비판하는 것에 맞춰있다. 이러한 방향은 과거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취지에도 그 정당성이 미달하고 노동시간이 줄고 있는 노동시장 변화와도 모순된 방향이다.
‘노사 법치주의’가 노동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주69시간’ 논란이 불거진 이후 정부는 노동개혁의 우선순위를 ‘노동시장 유연화’ 보다 ‘노사법치’로 이동했다. 여소야대 국회와 노동유연화 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이 크기 때문에 노동유연화 의제로는 노동개혁의 실행동력을 취약하게 만든다고 본 것이다.
한편 정부는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에 대한 강경한 대응이나 노사관계에 대한 각종 규제와 감독이 “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노동개혁의 성과”라 인식했다(여의도연구원, 윤석열 정부 1주년 시리즈 세미나 3 <노동개혁 성과와 향후 과제>, 2023.5.9.). 최근 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양대노총 회계공시 수용은 늦었지만 다행이며 이후 투명하고 신뢰받는 노동운동 확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점을 강조했고 노동개혁의 성과가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대응, 건설현장 단속, 노조회계 공개의 일련의 흐름을 구체적 성과라 판단한 만큼, 향후 조직노동을 일정한 규범과 체계로 통제‧관리하는 것을 노동개혁의 동력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성과라 일컫는 ‘노사 법치주의’는 노사관계에 있어 실정법에 대한 준수 의무 강조와 법 위반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앞세운다. 그러나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노사관계를 ‘법치’를 기준으로 규율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한국은 자율에 따른 노사 간 규범이 제대로 형성되는 과정이 없었고, 그런 이유로 법과 국가의 강제력을 통해 노사 모두 상대를 제압하려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법치를 기준으로 노사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노사 갈등구조를 증폭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노동개혁이 인구감소시대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노동시장의 체질을 변화한다는 취지라 했을 때, 노사, 노정 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거시적 변화에 대한 공동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노사법치를 앞세우는 ‘개혁’은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키우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노조탄압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 설정한 노동개혁의 정세적 취지나 맥락과 무관한 오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 불안정성에 대한 대응과 쟁점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는 ‘노사 법치주의’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이외에 ‘일자리 불확실성 대응’이 핵심 과제로 제출되어 있다. 1)기업구인난 해소 2)취약계층 일자리 장벽 제거 3)노동시장 참여 촉진형 고용안전망 개편 4) 고용상황대응 세부계획이 구체 내용이다(2023년 고용노동부 주요업무 추진계획 2023.1.9.).
“1)기업구인난 해소”에서 두드러진 정책은 외국인력의 유연한 활용방안이다. 구체적으로, 외국인력의 신속입국과 인가기간 확대(90일=> 180일)를 추진하고, 일반고용허가제(E-9)업종을 확대하며, 한국어 능력을 갖춘 외국인력을 우대하는 장기근속 특례 제도를 신설하고, 출국-재입국의 과정 없이 국내에 최대 10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며, 총 고용허용인원을 상향 적용하고 신규고용허가서의 발급 한도를 폐지한다는 것이다(5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에 대한 총 고용허용인원 20% 상향 적용).
“2)취약계층 일자리 장벽제거”에서 여성의 출산-육아-돌봄의 전 과정에서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것과 고령자가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및 중장년 이전직 지원을 강화한다는 정책에는 고령자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고용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고 계속 고용장려금 지원을 확대하고, 퇴직예정자 재취업지원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중장년 재취업 지원을 강화한다는 계획이 있다.
이처럼 정부의 노동개혁에 “일자리 불안정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핵심과제로 설정된 배경에는 노동시장에 관한 불안정한 전망이 반영되어 있다.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노동력 유입을 확대하고,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없애기 위해 노동시간과 임금체계를 유연화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관점에서 노동개혁 과제는 당장의 고용지표에서 드러날 수 있는 인구감소의 불안정성을 예방하고 낮은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대책들이다.
각론적 쟁점을 넘어 구조개혁에 대한 비판과 대안 필요
지금까지 윤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방식은 일부 노조와의 대립 구도를 의도적으로 부각하여 개혁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방식이었다. 노동개혁이 노동계와의 대립과 갈등 구도를 지속하는 방식으로만 추진되었을 때, 경제구조개혁이라는 본연의 취지와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사법치나 유연화 정책에 대한 갈등과 논란은 정부와 일부 조직노동 사이에 국한되어 있는 쟁점들이었다. 어쩌면 노사법치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관철하려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노동운동 간의 공방은 노동개혁의 핵심 쟁점을 비껴간 각론적인 쟁점에 집착한 갈등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인구감소에 대한 경제구조 해법에 어떠한 긍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저인구-저생산과 노동공급의 위기에 대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대처방안이 노동개혁의 본질적 쟁점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위해 고려해야 할 쟁점들이 있다. 먼저 인구절벽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 해외노동력 유입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열악한 노동권을 누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또 단기 인력 활용을 넘어 영구적 거주를 고려한 이민정책까지 고려했을 때, 노동시장에서 발생하게 될 일자리 경쟁이 격화된다면 노동운동은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여성 노동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려 인구구조 변화의 부정적 충격을 완충한다는 정부의 처방은 단기적 고용지표의 상승에는 유효할 수 있으나 저출산 대책과 상호 모순될 수 있다. 저출산 대책이 여성고용률 상승과 별개의 대책이 될 수 없다면, 모성권과 재생산의 권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조직노동이 정부의 노동개혁을 비판할 때 집중하는 의제가 아니며 마이너한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자운동의 노동개혁 비판은 조직노동의 시야와 노조의 당면한 이익을 넘어서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 밝히는 논의와 투쟁이 되어야 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대안과 다른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노동의 대안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어야 노동자 계급이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