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 2024.02.07
21대 총선의 혼란을 되풀이하겠다는 후안무치한 민주당과 야권연대 추종자들
녹색정의당은 미망을 버리고 야권연대를 거부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5일,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선거를 60일 남짓 앞뒀음에도 선거의 규칙이 정해지지 않아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에 권한을 위임해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그 결정이 민주당의 당리당략, 나아가 이재명 대표의 사익에 어떤 형태의 제도가 가장 유리한가를 기준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4년 전의 혼란에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민주당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선거제는 여야 합의로 정한다는 민주주의의 관습을 무시하고 제1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을 배제한 상태에서 나머지 야당과 이른바 “4+1 패스트트랙 협의체”를 구성해 공수처법과 함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켰다. 당시 민주당에 중요했던 건 공수처법이었다. 조국 수사를 비롯한 정권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공수처법을 발의했는데, 소수정당의 힘을 빌려야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통과를 목표로 하면서 패스트트랙에 소수정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제를 미끼로 사용했다. 만약 준연동형 비례제하에서 미래통합당이 위성 정당과 같은 방식으로 비례 정당을 만들지 않는다면 패스트트랙 협의체를 구성했던 범여권이 미래통합당의 의석을 가져오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일종의 게리맨더링이었다.
이런 속내를 모를 리 없던 미래통합당은 법안 통과 전부터 합의 없이 선거제도 변경을 강행하면 비례정당(위성 정당)을 만들 것이라 경고했고, 법안 통과 후 이를 실행했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이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최근 금태섭 전 의원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이재명 대표가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선언한 후 금 전 의원은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단언하지만, 민주당은 애초부터 위성 정당을 만들 생각을 하고 준연동형 비례 제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미 미래통합당이 합의 없는 선거제 변경을 방어하기 위한 위성 정당을 공언한 마당에 당시 민주당이 법안을 통과하면서 위성 정당의 가능성을 몰랐을 리 없다. 즉 상황에 따라 민주당이 직접 위성 정당을 창당해 소수정당에 갈 의석을 빼앗아 올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미 법안이 통과된 마당에 소수정당으로서는 민주당도 법안 통과의 주체이니 민주당이 위성 정당을 창당하지는 않으리라는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선이 다가오자 민주당은 소수정당에 돌아갈 그 몇 석이 아까웠는지 본인들도 위성 정당 창당을 승인했고,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했다. 이로써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고, 거대 양당이 직접 창당한 위성 정당에 더해 조그만 위성이라도 되어 보겠다는 이들을 포함한 온갖 소수정당이 난립했다. 유권자는 본인의 표가 어떻게 자신의 지지를 표현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4년 전의 혼란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자초한 일이었다. 본인들도 인정했듯 법안에 허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2020년 총선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제가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것은 국민의 시민의식 수준과 집단지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정도가 아니”라며 반대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또 위성 정당을 만들어 유권자에 혼란을 초래한 걸 수차례 사과했다. 거기에 위성 정당 없는 연동형 비례제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습관적 식언은 또다시 반복됐다.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이라는 위성 정당 창당을 공식화하여 4년 전의 혼란을 반복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진정 민주당의 과오를 반성하고자 했다면, 선거 규칙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서 그런 혼란이 발생했으니 이번에는 규칙만은 여야 합의로 정해보자고 말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반칙에 반칙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우리는 덜 반칙이라며 ‘준’위성정당이라는 궤변까지 곁들였다.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은 이 대표가 공언했듯 민주당이 비례 정당의 공천 논의를 주도한다. 그렇지만 대놓고 위성 정당을 만드는 게 면구스러우니 소수정당에 이익을 좀 나눠주겠다는 거다. 4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에도 4년 전에는 꼼수였던 것이 지금 자신이 말했기에 ‘덜’ 꼼수라며 ‘준’을 붙이니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겠다. 얼마나 뻔뻔한 태도인가.
연동형 비례제 유지의 배경
연동형 비례제 유지까지 흘러온 논의 과정도 문제다. 지난 연말부터 이재명 대표는 병립형과 연동형을 두고 갈지자 행보를 보여왔다. 그 행보의 유일한 기준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표 계산의 유불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월 말, 선거제도를 빨리 확정해서 제3지대에 준비할 시간을 벌어줄 이유가 없기에 2월은 되어야 선거제 확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전언이 보도되기도 했다. 현재 딱 그 말 대로 됐다. 또 연초에 연동형을 저울질한 이유는 이준석 신당이 여당의 표를 분산시키리라는 전망에 더해 진보진영이 이재명 대표와 밀착하겠다고 구애해오는 상황과 연관이 된 것이었다. 1월 말경 다시 병립형으로 돌아선 건 이준석 신당이 오히려 민주당의 표를 더 많이 가져간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비례대표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편이 나으리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내외부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던 중 이재명 지도부가 선거제도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전당원투표로 결정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민정 최고위원은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 지적했고,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 역시 당원투표가 거론되는 데 대해 “천벌받을 짓”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렇듯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책임회피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대선 공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2020년의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선택했다.
연동형을 유지한다고 해도 이 대표 본인의 영향력 아래 비례대표를 배치해야 하기에 위성 정당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말 바꾸기가 습관이 된 이재명 대표에게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일관성은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총선 승리도 철저히 이와 연관된다. 최근 친명 대 친문의 공천갈등에서도 알 수 있듯 친명 후보를 직접 공천하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목표다. 이는 나아가 다음 대선 도전의 기반이 된다.
지난 대선 이후 그의 모든 정치적 행보는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사법리스크를 돌파하고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것을 목표로 행해졌다. 이런 이 대표에게 연동형 비례제와 관련해 다당제의 다양성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이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결정을 역사적 결단이라고 치켜세우는데, 외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규칙을 사적 이익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이 정도로 민주주의는 안중에 없는 대표가 민주당 역사에 있었는가 되물어야 할 때다.
옳다구나 달려드는 소수정당
한편 이 대표의 선언이 있자마자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가장 먼저 민주진보진영의 담대한 연합을 제안해왔던 당사자로서 환영의 뜻을 표한다”며 “반윤 개혁 최대 연합 정당으로 승리하자는 그 길과 이 대표의 제안이 같은 방향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새진보연합은 더불어민주당에 비례연합정당을 제안했던 개혁연합신당 추진협의회가 결성한 단체다. 기본소득당을 플랫폼으로 사회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입당해 총선을 치른 후 각자 당으로 복당하는 형태를 취한다.) 진보당은 이 대표의 선언 직전인 2월 2일, “22대 총선에서 준연동형을 기초로 ‘야권 연합’”을 하겠다면서, 민주당에 “준연동형을 기초로 연합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결단하고 책임있게 나서길 촉구”했다. 이 대표의 선언 직후에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민주당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야권총단결을 제도로 촉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본인의 SNS에 게시했다.
새진보연합으로서는 민주당의 위성 정당을 자임하고 있으니 매우 기뻐하는 게 당연하나,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에도 참여하는 진보당이 ‘야권총단결’을 주장하는 건 굉장히 문제적이다. 거듭 강조하듯 민주노총은 거대 양당에 대한 지지를 금지하는 방침을 결정했다. 그런데도 진보당은 민주당과 밀착하려는 주장의 수위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
진보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은 이른바 ‘촛불 혁명’ 완수를 내걸며 민주‘진보’개혁대연합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진보연합의 속내는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진보당은 원내 교두보 확보에 있다. (“민주당 위성 정당의 멍석을 깔아주는 진보당과 개혁연합신당”, 《사회운동포커스》 1월 25일 참고.) 이들은 이재명 민주당의 집권이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인지, 진보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늘날 정치양극화를 부추기는 행위가 한국 정치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점에는 관심도 없다. 게다가 의석수 유지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문제가 많았던 연동형 유지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환영한다며 야권 연합을 하자는 적극적인 구애만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욕망만 존재할 뿐이며, 민주주의도 자신의 권력획득을 치장하기 위한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지난 총선과 다를 게 없음에도 최악은 면했다는 녹색정의당
민주당의 이번 결정을 진보개혁진영을 위한 결단으로 어떻게든 상찬하려는 현 분위기가 매우 우려스럽다. 그런 와중에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글은 여러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민주당이 결국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든다는 데 대해 분노하거나 강하게 비판하지 않아서다. 오히려 김준우 상임대표는 이 대표의 연동형 유지 선언을 두고 “최악은 피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여긴다”면서 “‘통합형비례정당’ 내지 ‘준위성정당’이 기존의 위성정당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야 한다, “2020년 더불어시민당과 같은 형태라면 시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녹색정의당의 인식은 매우 안이하다. 우선 최악은 피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난 2020년 총선은 최악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연동형이 유지되어 다행이라는 식의 인식에는 패스트트랙 연대에 대한 반성적 평가가 결여되어있다. 여야 합의를 통해 선거 규칙을 제정한다는 오랜 관습을 깨버리고 민주당의 정략에 휘둘린 사태에 대한 근본적 평가가 없었기에 이런 인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처리하는 데 정의당을 끌어들이는 명분이었고, 동시에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상대편 정당의 의석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게리맨더링이었다. 이보다 최악의 결과를 낳은 선거제도 개편이 있을 수 있는가.
점입가경으로 2020년 더불어시민당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피겠다고 한다. 이미 이재명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보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우리 주도로 위성 정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즉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은 민주당 주도로 간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민주당이 후보 결정에 표면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위성 정당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민주당은 비례 후보를 내지 않는 방식은 유지될 것이다. 결국 2020년과 본질적으로 바뀐 게 없다.
녹색정의당은 이런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번에는 어떻게든 2020년과 다른 점을 짜내서 민주당과 함께할 명분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심상정 의원은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이재명 대표의 고뇌를 이해”한다며 “사령탑으로서 민주당의 안전한 승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제3정당의 몫을 온전히 보장하는 큰 결단”을 내려 이번 총선을 다당제 연합정치로 전환하는 정초 선거로 만들자는 글을 게시했다. 특히 “다당제 국회로 교두보를 놓기 위해 겪어낸 아픔들이 제대로 된 국민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녹색정의당의 논의가 책임있게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글을 마무리했는데, 맥락상 녹색정의당에 민주당과의 연대 논의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결국 조국사태 당시 정의당의 과오를 반성했던 건 부정의에 눈감고 맹목적으로 민주당 편을 들었던 정치적 결정 자체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의석을 얻지 못한 것에 국한된 것이었나. 만약 의석을 만족할 만큼 따냈다면 그런 반성은 하지 않았을 것인가.
녹색정의당이 민주당과 협상을 통해 2020년보다는 의석을 더 딸 수 있다는 미망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여지를 남길 이유가 없다. 혹시라도 녹색정의당 내에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위성 정당에서 친민주당 세력과 의석을 적당히 나누는 실리를 취하고 후에 민주당을 비판하면 된다는 구상을 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것도 매우 안일한 생각이므로 거부해야 한다. 그런 구상은 녹색정의당은 급할 때는 민주당에 편승해 실리를 얻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뒤통수를 치는 파렴치한 세력이라는 비판에 무력하다. 아주 흥미롭게도, 21대 총선 당시 더불어시민당을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며 뻔뻔하게 항변했던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이번 연동형 결정을 “제3의 목소리들을 양당 카르텔 안에 편입시켜” 오히려 정치적 다양성을 죽이는 “망국적 집단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제3의 목소리들이 민주당의 정치적 이익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걸 본인이 해봤기에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진중권 교수도 “민주당은 꼼수 위성 정당인데, 꼼수가 더 나쁜 건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당들까지 줄을 세우기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할 소수정당마저도 민주당의 영원한 위성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녹색정의당의 현 인식은 이보다도 못해 보인다.
만약 녹색정의당이 민주당과 비례명부를 함께 논의한다면, 진보정당운동의 한 순환이 마감될 것이다. 녹색정의당은 야권연대를 향하는 어떤 논의도 강력히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과거 민주당 2중대로 복무했던 것을 반성하며 재창당을 외쳤던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길이다. 나아가 그것만이 추후 진보정당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