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한국정치 | 2024.03.06

민주당 공천 파동, ‘이재명당’의 완성인가

이재명 대표의 방탄정당으로 전락하는 민주당

사회진보연대
민주당 공천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2월 중순부터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권향엽 전 청와대 균형인재비서관을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에 전략공천했다가 논란이 일자 전략공천 결정을 번복한 사례도 있었다. 이쯤 되면 공천 파동, 심지어 공천 학살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과한 것이 아닌 듯하다. 이재명 대표는 본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세력을 쳐내고 완전한 사당화를 목표로 아주 거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불명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한 비명계 공천 배제
 
지난 2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의 중앙당선거관리위원장직을 수행하던 정필모 의원이 직을 사임했다. 사퇴 당시에는 건강상 이유라고 사임 이유가 보도됐으나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수행된 ‘유령 여론조사’를 실시한 업체가 선관위장도 모르게 민주당 경선 여론조사 업체로 끼어들었고, 정 의원이 이 사안에 대해 “통제 관리할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이 진짜 사임의 이유였음이 밝혀졌다. 의원총회에서 정 의원은 “나도 속았다”고 토로했다. (참고로 정필모 의원의 후임으로는 친명계로 분류되는 박범계 의원이 선임됐다.)
 
‘유령 여론조사’로 불린 이 여론조사는 비명계로 분류되는 현역의원을 응답 문항에서 배제하고 그 대신 친명 인사를 집어넣어 지역구 적합도 조사를 진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여론조사자료를 근거로 민주당의 지역구 공천을 결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 부평을 홍영표 의원이었다. 부평을 지역구 여론조사에서는 홍영표 의원의 이름을 빼고 친명계 이동주 의원(비례)과 4호 영입 인재 박선원 전 국정원 1차장 두 명만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결국 홍영표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여론조사를 한 업체는 ‘한국인텔리서치’로, ‘리서치디앤에이’의 옛 사명이다. 리서치디앤에이는 이달 초 민주당 총선 경선 ARS투표 시행업체로 추가 선정됐는데, 한 민주당 당직자는 언론에 애초 3개 업체를 선정한 뒤 업체가 추가된 상황이 “무척 이례적인 상황”이라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 업체가 이른바 ‘신명계’로 불리는 김병기 의원의 압력으로 인해 선정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김 의원이 ‘왜 리서치디앤에이가 빠졌느냐’고 당 선거관리위원회 쪽에 항의해 하루 뒤 추가됐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선정 프레젠테이션(PT)에서 우선순위에 오른 업체를 적절한 사유 없이 배제할 경우 오히려 불공정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결국 리서치디앤에이는 경선조사 업체에서 배제됐다.
 
경선조사 업체에서 배제됐다는 건 이 업체가 진행한 조사의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임한 꼴이었다. 이들이 수행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공천배제된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업체는 비명계를 쳐낸다는 자신의 임무를 다한 셈이 됐다.
 
 
밀실 공천, 비선조직 논란
 
‘유령 여론조사’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밀실 공천 논란도 함께 등장했다. 친명계 지도부가 당 공식기구가 아닌 비공개 회의에서 공천 배제와 관련해 논의했다는 의혹과 이재명 대표가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대표의 지시로 이 대표의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을 비롯한 실무 담당자 회의가 열렸고, 이 회의에서 각종 현안을 논의했다는 의혹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른바 ‘경기도팀’이라 불린 비선조직이 존재한다는 의혹이었다. 친명계로 알려진 문학진 의원이 이재명 대표에게 직접 전화통화로 지역구 적합도 조사에서 꼴찌를 기록했다고 통보를 받은 후, 이와 관련해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에 문의했더니 이번 조사가 이른바 ‘경기도팀’에 의해 진행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폭로한 것이다. 문 의원은 본인이 직접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성남 시절부터 경기도 거쳐서 중앙당에 와서도 당직을 갖고 있었고, 사법적 문제로 구속이 됐다가 지금 보석으로 나와있는”, “정 씨 성 가진 분”이라 말했는데, 결국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사실상 민주당 공천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언론의 취재 결과 ‘경기도팀’으로 일컬어지는 비선조직에는 정 전 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 김현지 이재명 의원실 보좌관(경기도청 비서관 출신)이 속해있으며, 이석훈 전 성남 FC 대표와 강위원 당대표 특보도 거론된다. 같은 보도에서 이 대표와 성남 시절부터 가까웠다는 한 인사의 말이 인용됐는데, 이 인사는 “‘이재명 비선팀’은 비밀리에 일부 이 대표 최측근 현역 의원과 공관위·검증위 등 요직을 맡은 인사에게 공천, 컷오프 대상자를 언질하고 이 대표가 최종 보고를 받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대표 측에 마련된 여론조성용 텔레그램 ‘정무방’을 거론하며 “이곳엔 정진상 전 실장, 이석훈 전 성남FC 대표, 강위원 특보, 김현지 보좌관이 모두 있었다. 특히 정 전 실장은 이 대표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빛과 그림자가 어떻게 떨어지겠느냐”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비주류에 속하는 한 관계자도 “이 대표가 과거 성남시장, 경기도지사일 때부터 지근거리에 있던 비선조직이 비명계로 꼽히는 현역들을 소위 ‘이재명 변호인군단’, 친명 인사들로 대거 대체될 수 있도록 ‘공천 컨설팅’을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이와 같은 주장을 “낭설”이라 일축했고,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사법처리된 최측근이) 주축이 됐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지, 그렇게 해서 정말 그게 드러나면 큰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물론 위의 언론 보도가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비선조직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밀실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과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조차 모르는 내용이 공천에 반영되고 있다는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박용진 의원은 자신이 하위 10% 통보를 받았을 때, 임혁백 공관위원장에 연락하자 임 위원장은 “저는 잘 모른다, 그냥 통보만 한다”며 멋쩍어했다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인터뷰했다. 또 여러 현역의원이 여론조사 논란, 밀실 공천 논란에 대해 항의하자 임 위원장이 한 중진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이 사실상 밀실 공천이 이뤄지고 있음을 인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현근택 변호사가 성희롱 논란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게되는 과정에서 정성호 의원이 이재명 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유출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의 공식적인 윤리 감찰 시스템이 존재함에도 대표가 사적으로 징계수위를 논의하는 건 사당화됐다는 증거라는 비판이었다. 최근의 공천 파동 이전에도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출처: 경향신문(24.1.9.)]
 
이런 지경에 이르자 한 언론의 사설은 임 위원장에게 지난 대선 당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사인(私人) 정당화”를 실천하는 이재명 대표를 위해 총대를 메고 있다면서,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연구에서 세계적 석학이라 평가받는 임 위원장이 민주주의의 핵심 주체인 정당을 사유화하는 행태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내쫓고자 하는 이견 세력을 함께 공격하는 발언을 하고 있으니 이런 비판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97한총련 세대의 민주당 진출
 
이렇듯 밀실 공천 논란 속에서 민주당 공천은 70%가량 완료되었다. 이재명 지도부는 민주당 공천이 쇄신공천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에서 언론을 향해 “민주당의 혁신 공천 과정에 발생하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소리는 침소봉대해 대란이라도 발생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서영교 최고위원도 “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결과를 보니 혁신의 공천이었다”고 평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혁신 운운하며 후보로 밀어 넣은 인물들은 강위원 더민주혁신회의 공동대표를 필두로 하는 97한총련 세대다. 강위원 대표는 비명계 송갑석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갑 출마를 계획했으나 음주운전, 성희롱 2차 가해 사건이 논란이 되어 결국 사퇴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 대표는 2월 1일 개최된 더광주연구원 신년회에서 적어도 “광주, 전남, 전북에서는 선수의 전면 교체가 필요하다”며 “그들(현역의원)은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에 동의하고 그 철학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이런 발언은 지역구 경선에 현역이 포함되면 그의 지지세력을 현역의원을 제외한 후보, 특히 친명 후보에 몰아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들은 90년대 학생운동의 정당성을 상실케 한 여러 사건에 대해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또 운동권 출신이지만 뚜렷한 이념을 지향하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무조건 흠집 내 무너뜨리려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들의 행동 양식은 얼마 전까지 정치양극화를 부추기며 한국 정치의 퇴행을 가속하는 세력으로 꼽히던 이른바 ‘개딸’의 방식과 유사하다.
 
 
불투명한 민주당의 총선승리 전망과 일관된 이재명 대표
 
지난 2월 22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하위 20% 평가에 반발하는 의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심사위원의 심사 의견도 있지만 동료 의원의 평가, 그걸 거의 0점 맞은 분도 있다고 한다. 여러분도 아마 짐작할 수 있는 분"이라 말하며 웃음을 터뜨려 논란이 되었다. [출처: 미디어오늘]
 
이재명 대표의 광폭한 행보를 보며 민주당의 총선을 걱정하는 이들은 작금의 상황이 총선승리로 가는 길이냐를 묻고 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패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당지지율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데드크로스’가 일어났는데, 3월 4일에 발표된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지지율 차이가 오차범위 밖으로 벌어졌다. (국민의힘 46.7% vs 더불어민주당 39.1%.)
 
그러나 민주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우려가 정작 이재명 대표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의 공천 파동에 대한 강한 우려와 함께 제기되는 불길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자신의 측근을 공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친 행보는 이재명 대표의 우선순위가 민주당 총선승리에 있지 않다는 해석을 낳는다. 즉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하는 게 최우선이고, 총선승리는 얻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게 타당하다는 해석이다. 이재명 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채 진행된 2월 27일의 민주당 의원총회 후 계파색이 없는 한 의원은 “이 대표의 목표가 더 이상 총선승리가 아닌 당 장악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져도 이재명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의 일관된 목표는 ‘이재명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 이후 그의 모든 정치적 행보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어 사법리스크를 방어하고 2027년 대선에 도전해 차기 권력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행해졌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2024년 4월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는 작년부터 총선을, 지금의 혼란을 예정하고 있었다.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는 작년 8월, 여러 설화에 휩싸이며 정당성을 상실하고 조기에 활동을 종료하면서도 꿋꿋이 최종 혁신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대의원 권한 축소와 현역의원 평가 기준 강화안(하위 10%까지는 경선 득표의 40%를, 20%까지는 30%를, 30%까지는 20%를 감산)이 들어있었다. 당시에는 당내 반발로 혁신안이 공식 의결기구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으나, 결국 11월에는 현재와 같은 총선 후보자 평가 기준이 통과됐다. (현역 하위 10%는 30% 감산, 하위 20%는 20% 감산.) 아무리 현역의원이라도 경선에서 30%감산이면 승산이 희박하기에, 의원 평가에 따라 대대적인 물갈이가 좌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를 위한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총선을 거친 뒤에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된다. 이때 총선승리는 결정적 변수가 아니다. 최악을 가정했을 때, 100석 정도라고 할지라도 온전한 이재명의 당인 게 이 대표에게는 더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도 103석으로 출발한 국민의힘 후보로 당선된 바 있다. 과거로 돌이켜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가 1996년 총선에서 대패해 70여 석만을 얻고도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재명 대표로서는 이런 사례를 꿈꿀 것이다. 아울러 대의원의 권한을 축소해두기도 했으므로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지지층의 지지에 힘입어 내년 8월에 진행될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권을 장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불안요소라면 이재명 대표 본인이 인천 계양을에서 생환할 수 있느냐인데, 이마저도 선거구 경계조정이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이뤄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재명당’이 될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는 의석수도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 ‘이재명당’의 완성은 이제 총선이라는 절차만 남겨둔 셈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되면 비선조직이 공식기구를 우회하여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숙의와 토론이 아닌 힘(당권과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는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수많은 비리 혐의를 받으면서도 제1야당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자기 친화적으로 당권을 유지하는 상황이 펼쳐질 예정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절차에서의 민주성이다. 숙의의 과정을 거쳐 합의하는 것, 그 과정에서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재명 대표와 그를 매개로 민주당에 진출한 97한총련 세대와 친명 세력에게서 이런 원칙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이것이 혁신이라 말하고 있다. ‘민주당식 혁신’이 이뤄지는 만큼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할 것이다. 민주당 공천 파동이 한국 정치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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