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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9
노동운동, 평화를 위해 새로운 질문을 건네자!
사회진보연대 충북모임 2024년 1차 기획강연 <새로운 평화, 노동운동과 함께> 참관기
지난 3월 13일(수), 사회진보연대 충북모임의 주최로 기획강연 <새로운 평화, 노동운동과 함께!>가 진행되었다. 평일 저녁임에도, 노동조합의 평화 운동, 민주노총의 국제 정세 인식에 관해 토론하기 위해 여러 산별 노동조합 활동가가 참여하였다. 강사인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2023년 사회진보연대 소책자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집필에 참여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활동, 대만연대전선노총 건설준비회 인터뷰 진행 등 다양한 국제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김진영 국장은 한반도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현실에서는 노동자민중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기에, 노동운동이 평화 운동과 함께 해야만 한다고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또한 노동운동은 생산과 경제에 관여하는 강력한 힘이기에 평화 운동에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제노총, 민주노총의 강령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노총은 평화의 유지와 강화를 열렬히 지지하며 대량살상무기 없는 세계와 전반적 군축을 향해 헌신한다.”(국제노총 강령)
“우리는 전 세계 노동자와 연대하며 국제노동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민주노총 강령)
김진영 국장은 이와 같은 강령을 실천한 역사적 사례 또한 설명했다. 예를 들어, 2004년 6월 민주노총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전쟁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 세계에서도 계속되고 있는데, 2022년 4월, 러시아 벨라루스 철도노동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며 벨라루스 영토를 경유한 러시아의 군사물자 이동을 방해하였다.
이처럼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은 이념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평화 운동과 함께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민주노총은 어떠할까? 3월 13일, 민주노총은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한반도 전쟁위기 주범 윤석열 정권 퇴진이 답입니다’라는 내용의 카드뉴스를 발간했다. 그러나 김진영 국장은 이미 문재인 정권 때부터 북한이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주요한 사건들이 있었고 현 상황은 그 연장선이므로, 정세를 단순하게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살펴보면,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미 대화는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이듬해인 2020년 6월, 북한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2021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을 겨냥한 장거리 핵무기가 아니라 남한, 일본을 겨냥하는 단거리 핵무기인 ‘전술핵무기 개발’과 군사정찰위성 개발 등을 포함한 ‘9대 군사과업’을 지시하고,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긴다”는 내용으로 조선노동당 규약을 개정하여 무력통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급기야 2022년 3월,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여, 미국과의 암묵적 합의였던 “북핵실험·ICBM 발사 중단과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중단의 교환”(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 김진영 국장은 평화 운동이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하는 정세인식으로 대중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였다.
나아가 김진영 국장은 “평화에 대한 민주노총의 원칙이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2022년 민주노총 노동자 통일교과서3 『패권의 종말과 대전환, 우리 노동자는』은 러시아와 중국을 ‘다극체제 전환 세력’으로 소개하며 ‘푸틴의 지지율은 60%대에서 80%대로 치솟았다’, ‘러시아 국민 72%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다’, ‘러시아는 돈바스 해방과 우크라이나 중립을 목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등의 서술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2023년 민주노총 노동자 통일교과서4 『위기의 한국사회, 노동자의 활로찾기』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2000년대 초반에 강대국들의 핵독점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북한이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하자 핵독점 체제가 붕괴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진영 국장은 이것은 북한의 핵무장을 ‘세계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채택된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에 도전하고 균열을 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뉘앙스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진영 국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민주노총 통일사업과 달리 진보적 가치, 원칙 있는 평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평화에 대한 인류의 원칙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김진영 국장은 1차·2차 세계전쟁을 거치며 약 8천 명의 생명을 잃은 후 인류가 참혹한 역사를 반성하며 채택한 UN(국제연합) 헌장은 전쟁을 막기 위해 크든 작든 모든 나라의 평등을 보장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력의 사용을 금지하며, 이를 어기는 행위는 모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무장은 우크라이나와 남한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평화와 이익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행위다.
“우리는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중략) 상호 간 평화롭게 같이 생활하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힘을 합하며, 공동이익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장하고, (중략)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을 결집할 것을 결정하였다.”(UN헌장 첫 장)
김진영 국장은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패권을 무너뜨릴 다극체제 전환 진영을 주도한다’는 민주노총 통일교과서의 인식에 대해,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세력이 과연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헌법 개정으로 ‘종신 집권’이 가능해진 푸틴 대통령은 올해 러시아 대선에서 5선에 도전했다. 푸틴은 임기 동안 ‘가정폭력처벌법 완화법’, ‘트랜스젠더 불법화법’ 등에 서명하여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이미 심각히 후퇴시켰다.
중국에서는 중국공산당 내부 관습까지 바꿔가며 시진핑 주석 1인에 권력이 집중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2022년 ‘백지 시위’는 억압되었다. 중국 정부가 건설한 신장위구르 강제수용소에서는 소수민족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가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문제는 자국 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데,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불리는 ‘일대일로’는 중국과 주변 국가의 경제·무역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기조 하에 사실상 주변 국가에 대한 경제적 지배·개입력을 높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부채를 명목으로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을 43년 동안,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을 99년 동안 조차하기로 하였고, 그리스 피레우스 항을 35년 동안 관리하고 운영할 권리를 획득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행보는 과거 홍콩을 99년 동안 조차한 영국 제국주의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김진영 국장은 미국 헤게모니는 분명 흔들리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이러한 러시아, 북한, 중국 등이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밝혔다.
2024년, 한국의 노동운동가인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켜나가야 할까? 1915년, 독일의 노동운동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시 전쟁을 지지하는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김진영 국장은 강연에서 “120만 조합원의 민주노총은 사회적 힘이 있는 조직이다”라며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만큼 우리 노동운동은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지고 원칙의 기준에 따라 대안적 세계를 성찰하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