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4.03.19
민주노총 대대 유회, 진보당 지지 철회 여부를 놓고 격론
<민주노총 제80차 대의원대회> 지상중계
논쟁이 예고된 대의원대회
2024년 3월 18일 일산 킨텍스에서 민주노총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대는 민주노총이 진보당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켜져 가는 와중에 개최되었다. 안건으로 회계감사 선출, 2024년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이 상정되긴 했으나, 진보당 지지 철회가 중집에서 결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관련 논의가 어떻게 성안되어 토론될지가 관심이었다.
작년 9월 민주노총 제77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총선방침은 ‘친자본 보수정당과 위성정당’ 지지를 금지하고 있기에,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당 지지 철회는 자명한 결론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월 15일, 3월 4일 두 차례의 중집에서 4월 총선 지지후보 결정을 둘러싸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일부 중집위원이 총선방침대로 진보당 지지 철회를 주장한 반면, 진보당 성향의 중집위원은 “통합비례정당은 위성정당으로 볼 수 없다”는 기묘한 논리를 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려면, 민주당과 지역구 후보 연대를 열어둔 녹색정의당 지지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3월 4일 중집에서는 나머지 후보는 추후 재론하고 노동당 1명의 후보만 승인한 후, 3월 18일 임시대의원대회를 맞게 되었다.
민주노총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가맹산별 및 산하조직에서 진보당을 둘러싼 논란은 증폭되었다. 자체적으로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정한 조직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공공운수노조는 3월 6일 중집에서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며, 진보당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 후보 추천도 철회하고, 이를 민주노총에 적극 요구하기로 결정하였다. 화섬식품노조 또한 2월 22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정한 바 있다.
진보당 지지 철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당일 배포된 여러 유인물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날 배포된 총 10여 종의 유인물 가운데 진보당 지지 철회 여부를 다룬 것이 6종이었다. 그 중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지키고 올바른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노총 대의원과 조합원 선언>은 총 2039명이 참여한 것이었다. 이들은 ‘민주노총은 고민할 필요 없이 77차 대의원대회 결정을 집행해야’ 한다며, 진보당 지지 철회를 호소했다. 긴장된 분위기 가운데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시작되었다.
개회부터 시작된 논쟁
회순 통과도 되기 전에, 별도 안건으로 총선방침을 수정하려는 현장발의 시도가 있었다. 수정안은 ‘민주노총은 윤석열정권 심판과 진보정당 도약을 위해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 진보당, 노동당을 지지한다. 총선 이후 평가를 통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망과 계획을 구체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수정안은 ‘진보정치세력이 운동적 원칙을 견지한 채 다른 정치세력과 한시적, 제한적으로 연대연합하는 것을 이유로 민주노총을 지지정당에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진보정당의 자주적인 정치적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또한,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진보정당이 시민사회진영 및 보수정당과 22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비례선거연합, 후보단일화)를 추진한 것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으나 이는 총선 이후 평가하자고 주장했다. ‘자주적 정치적 판단’을 존중하자느니, ‘야권연대에 다양한 평가’가 있으니 추후 평가하자는 것은, 민주노총 총선방침을 위반한 진보당의 행태에 눈을 감고 일단 이번 총선은 넘어가자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이다.
안건상정을 둘러싸고 찬반토론이 이어졌다. 찬성 대의원은 “사업계획 및 예산과 총선방침을 별도로 해야 윤석열 퇴진 투쟁을 힘차게 할 수 있다”며 별도 안건상정을 주장했다. 반면 반대 대의원은 “77차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정치 총선방침은 많은 진통과 토론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위원장이 중재하고 조정해서 어렵게 결정했다”며, “우리는 정당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다. 노동자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로 방침을 결정했다고 기억한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다시 결정사항을 번복하자는 안을 토론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더 갈라치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민주노총 회의규칙 상 현장발의는 30명 이상 대의원의 서명과 참석 대의원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안건이 성립할 수 있다. 표결 결과 재석대의원 1003명 중 찬성이 482명으로, 과반 502명을 넘지 못해 안건성립은 부결되었다. 총선방침 수정안의 현장발의가 실패했기에 기존에 결정한 민주노총 총선방침의 정당성이 더욱 확고해졌다. 궁색한 논리를 덧붙일 필요 없이 기존 총선방침을 유지하고 집행하면 된다는 뜻이다.
2024년 사업계획 안건이 시작되자 논쟁은 이어졌다. 화섬식품노조 대의원이 “화섬 정기 대대 현장발의 안건 중 총선방침을 확인하고, 위성정당과 함께하는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의하며, 총연맹에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안건이 있었다. 300여 명의 토론을 거쳐 가결한 안건이었다. 그 내용을 포함한 스케치 기사를 송고했는데, 담당자가 지지 철회 입장을 다룬 것은 노동과세계에 게시할 수 없다고 전달하면서 만약 그 부분을 삭제한다면 게시할 수 있다고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대의원은 이는 가맹 산별의 의사결정을 무시한 것이며, 공식 언론기관인 노동과세계가 사전검열을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고미경 사무총장은 노동과세계 기사의 데스크 기능을 하는 교육선전실장의 결정을 존중한 것이라며, 민주노총에서 논쟁 중인 사안을 가맹 산하조직에서 별도 결의를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쟁이 중집에서 있었다고 말했다. 약간의 공방 끝에 이 문제는 양경수 위원장이 책임지고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회계공시 거부, 6월 총파업 수정동의안은 부결
이어 수정동의안 네 가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네 가지 수정동의안은 1) 회계공시 거부에 관한 안건, 2) 6월 중순 ‘최저임금 인상, 노조법 2‧3조 개정, 윤석열 정권 퇴진’ 민주노총 총파업을 사업계획에 추가하자는 안건, 2) ‘세계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자는 안건,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4) 총선방침 사업기조 및 목표를 수정하는 안건이다. 지난 대대가 늦어지며 성원부족으로 유회된 것을 의식한 탓인지, 양경수 위원장은 수정동의안마다 각각 2명씩 찬반 토론을 할 것을 제안했다.
첫 번째 수정동의안은 회계공시 거부 방침을 사업계획에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노조회계 공시제도에 따라 총연맹, 산별노조, 조합원 1천명 이상 개별노조는 정부의 노조회계 공시시스템에 회계 결산 결과를 입력해야 한다. 개별노조 또는 상급단체 중 한 곳이라도 공시하지 않으면 소속 조합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0월 24일 회계공시 수용 결정을 내렸다.
수정동의안의 요지는 윤석열 정부의 회계공시 요구는 탄압과 통제이기에 회계공시를 전면 거부하자는 것이다. 지난 2월 28일 금속노조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회계공시 거부를 결정한 바 있다. 발의 및 찬성에 나선 금속 대의원들은 금속노조의 결정을 언급하며 더는 윤석열 정부에 밀리지 말고 민주노총에서도 만장일치로 회계공시를 거부하자고 호소했다. 반면, 반대 토론에 나선 한 대의원은 “취지는 이해하나,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은 내셔널센터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수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노조로 거듭나고, 명분 있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회계공시는 공격이다. 이것부터 싸워야 노조를 지키는 길이다”며 회계공시, 타임오프 문제를 쟁점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반박도 있었다. 표결 결과 회계공시 거부 수정동의안은 재석 대의원 1002명 중 찬성 493명으로 과반 502명을 달성하지 못해 부결되었다.
한편, 두 번째 수정동의안으로 제출된 6월 총파업 사업계획 추가 건은 토론 없이 표결한 결과, 재석 대의원 1002명 중 찬성 315명으로 역시 과반을 넘기지 못해 부결되었다.
극명한 인식차를 보여준 한반도 비핵화 수정동의안 토론
세 번째 수정동의안은 2024년 사업계획 중 ‘국제‧한반도 정세와 민주노총의 과제’ 부분을 비판하며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할 것을 주장하는 안이었다. 해당 부분의 원안은 ‘미국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종속을 극복하고 국가적 자주성 실현과 평화지향의 외교정책 전환, 한반도 군사적 대결을 막기 위한 반전평화‧세계비핵화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함’이다. 여기서 밑줄친 단락을 ‘민주노총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는 강령과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는 강령을 재확인하며, 고조되는 한반도 전쟁 위기와 핵 위협에 맞서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생산‧반입‧사용, 폭격기와 잠수함 등 핵자산 전개와 핵전쟁 훈련에 반대함.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연대를 강화함’으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세계비핵화란 전세계 모든 핵무기가 사라지기 전에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국의 핵 보유를 정당화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 가장 대표적 용례는 지난 2016년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최선희가 “세계비핵화 전에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한 발언을 들 수 있다.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통일전술을 폐기하는 등 대대적인 대남전략 변화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세계비핵화를 명시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이에 대해 얼마 전 정세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다.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민주노총이 되길, 《사회운동포커스》, 2024.3.18.) 이에 민주노총 강령대로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명시하고 반전, 반핵,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자는 게 수정동의안의 취지다.
찬성 발언에 나선 공공운수노조 대의원은 “아주 당연한 것을 사업계획 논의에서 토론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안쓰럽다”고 토로하며, “오늘은 동해안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날아왔다. 누구보다 전쟁에 반대하고,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고 반대하는 내용을, 가장 대규모 대중운동 집단이자 사회운동 단체인 민주노총이, 왜 세계비핵화가 아닌 강령에도 있는 한반도 비핵화로 정확하게 명시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며 만장일치로 동의해줄 것을 주장했다.
반면 반대 발언에 나선 전교조 대의원은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글로리를 언급하며 “박연진은 극 중에서 고데기를 사용해서 문동은을 다치게 했다. 그런데 만약 문동은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데기를 들었는데 문동은의 고데기만 빼앗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북핵은 문동은의 고데기와 비슷하다. 북핵 생산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있다. 북은 이러한 미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을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북이 핵을 가졌기에 여태 공격받지 않은 것이다. 수정동의안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내에서 핵무기 생산을 중단하자는 것은, 북핵 생산을 중단하라는 말이다. 문동은의 고데기만 빼앗자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가해자인 박연진의 고데기를 빼앗아야 하듯, 진정한 비핵화는 미국의 핵부터 폐기해야 한다”며 수정동의안 부결을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공무원 대의원 한 명도 “군사패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현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는 게 먼저다. 미국을 몰아내야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자주적 평화통일도 가능할 것”이라며 반대에 나섰다.
마지막 찬성 발언으로 교육공무직 대의원은 “일각에서는 강대국의 핵무기에 대항하려면 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핵 억지력이라고 하는데, 이는 너무나 모순이다”라고 이전 발언자의 주장을 비판하며 “핵이 있는데 어떻게 평화가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강대국의 핵무기에 대항하는 방법은 우리 노동자 민중의 강력한 반전반핵 평화운동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북핵에 대한 민주노총의 분명한 입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윤석열 정부와 미국의 핵전쟁 연습을 비판하는 정당성도 떨어진다. 오늘 아침에도 동해에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런 일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평화를 추구한다는 민주노총의 강령이 공문구가 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 핵무기를 남한에 수입하는 것 모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반대해야 미국 등 전세계 핵무기 반대에 정당성이 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발언한 전교조 대의원의 주장에 반박하며 “문동은의 고데기에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의 학교폭력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극명한 인식 차를 보여 준 세 번째 수정동의안은 재석 대의원 992명 중 찬성 280명으로 과반을 넘기지 못해 부결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반대 토론에 나선 대의원들이 민주노총 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북핵을 옹호하는 발언에 나섰다는 점이다. 특히 전교조 대의원은 ‘북핵은 미국에 대항하는 북한의 정당한 자위권 실현’이라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펼쳤는데, 학교폭력에 빗대어 발언한 대목이 매우 충격적이다. 만약 그 대의원의 발언대로라면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고데기를 쥐어주며 맞서 싸우라고 가르치거나, 최소한 피해 학생의 ‘고데기’는 절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셈이어서 결국 이는 학교폭력을 묵인‧방조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국가 간 관계로 확장하면 북핵은 학폭에 대항하는 학생의 ‘고데기’이며, 다른 나라가 너도 나도 핵을 가진다고 나서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반핵평화운동이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결정대로 진보당 지지 철회” vs “윤석열 퇴진 위해 지지 유지”
지난 대대에 이어 이번에도 총선 사업계획에 대한 사업계획 수정동의안 토론이 시작되었다. 수정동의안을 발의한 금속 대의원은 “대대 결정에 근거하여 사업계획에 그 결정을 명확히 적시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의장이 지난 임대 결정을 뒤집자는 뜻이 아니라면 제출한 수정동의안은 토론할 것도 표결할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대대 결정을 집행해야 할 의장에게 이를 즉각 반영할 것을 호소한다”고 양경수 위원장에게 표결없는 의결을 요구했다.
누차 강조하지만, 실제로 77차 대대에서 이미 ‘친자본 보수양당과 위성정당’ 지지 금지를 결정했기에, 진보당 지지 철회 문제는 중집이 77차 대대 결정대로 집행하면 되는 것이다. 수정동의안 문제의식에 동의한 대의원들은 진보당의 행태를 규탄하며 지난 대대 결정대로 집행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진보당 지지 철회에 반대한 대의원들은 이에 대한 반론을 펴지는 않고 윤석열 퇴진 투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한 교육공무직 대의원은 울산에서의 일을 전하며 진보당 지지 철회를 촉구하는 발언에 나섰다.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이 울산 동구 이장우 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하고 기자회견을 한 것이 2월 2일이다. 이어서 민주노총 중집에서 이장우 동지를 민주노총 후보로 결정한 것이 3월 4일이다. 그런데 진보당은 3월 12일 민주당과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 동구 민주당 김태선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로 지지한다고 했다. 진보정당은 한입으로 두말하는 정당인가”라며, “민주당과 위성정당을 함께 만든 것도 문제다. 하지만 명색이 민주노총 지지정당인 진보당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77차 임시대의원대회 결정에 근거해서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 정치를 일궈보려고 현장에서 뼈 빠지게 노력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있다. 그런데 이 동지들을 민주당 지지에 줄 서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 정치가 아니다. 위원장은 작년 대대 결정대로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정해 달라”며 간곡히 호소했다.
다른 대의원은 제주에서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같은 제주시을에 민주노총 조합원이며 돌봄 노동자인 강순아 녹색정의당 후보가 있음에도 진보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불출마를 최근에 결정했다. 제주시을 진보당 후보가 민주개혁 진보 후보라 칭하는 민주당 후보는 친재벌 반노동 권력유착의 대명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 변호사다. 과거 선거에서 부자감세를 공약하고,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후보다. 어떻게 이런 후보를 민주개혁 진보 후보라 부르며, 민주노총 조합원인 녹색정의당 후보가 있는데도, 친자본 보수정당 후보와 손을 잡을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 반대만 외치면 부자감세와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해도 되는 것인가”라며 “제주시을 사례만 보더라도 진보당의 행태는 민주노총과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따라서 위원장은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단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전통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바로 세워나갈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다시 한 번 양경수 위원장의 결정 집행을 촉구했다.
반면, 진보당 지지 철회에 반대하는 한 건설노조 대의원은 “덤프트럭 600여 대가 윤석열 심판을 걸고 행진하니 칭찬을 많이 받았다. 이게 민심이고 조합원 요구”라며 “전체 진보사회개혁 민중세력들이 총선연대를 구성하여 연합정당을 만들었고, 1대1로 구도를 만들었으니 이게 윤석열 퇴진 아닌가”라고 주장하며 진보당 결정을 옹호했다. 그러나 진보당이 참여한 더불어민주연합은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가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며 인정한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다. 더불어민주연합을 마치 개혁 정당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통해 탄생한 정치적 성과물로 포장하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진보당 지지 철회에 반대하는 다른 대의원은 솔직하게 “진보당이 민주당에 합류한 걸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라 밝힌 이 대의원은 그러나 “정치적 비판을 넘어 진보당 지지 철회를 하자는 것은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민주노총이 진보당을 통해, 진보당이 참여한 더불어민주연합을 통해 윤석열을 심판하고자 하는 민주노총 안팎의 사람들과 단절하자는 것”이라며, “울산 북구 진보당 윤종오 후보가 지지 철회 영향을 받아 낙선하고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는 걸 주변 노동자들은 원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반노동 정치가 너무 싫고, 선거의 현실적 전망에서 민주당을 통해서라도, 또는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윤석열 심판을 하자는 걸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진보정당 후보가 독자적으로 당선되기 쉽지 않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놓인 녹색정의당은 진보당과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다. 윤석열 심판을 앞세워 민주당에 의탁한 진보당은 결국 독자 생존이 불가능함을 자기고백한 것이며, 민주노총 결정과 다른 길을 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는 와중에, 찬반 2명씩 발언이 끝나자 양경수 위원장은 바로 표결하려 했다. 표결강행에 항의하는 대의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양경수 위원장이 표결을 강행했고 대의원대회는 유회되고 말았다.
유회되고 만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공은 다시 중집에게 넘어가
이번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는 많은 과제를 남기고 유회되고 말았다.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대남전략 변화에도 한반도 비핵화 수정동의안은 부결되었다. 이는 민주노총 평화운동의 현 상황을 알리는 지표로서, 노동조합 내 반핵평화 관련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반핵 평화운동을 주장해왔던 활동가들로서는 이 결과를 냉정히 보고, 반핵의 목소리를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소홀했던 건 아닌지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평화운동 주체로서 민주노총이 나서려면 앞으로 부단한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진보당 지지 철회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 대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대 초반 별도 안건으로 총선방침을 수정하려는 현장발의 시도는 좌절되었다. 진보당과 민주당의 선거연합을 묵인하자는 주장에 대해 대의원들은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지난 대대 결정을 집행할 것을 촉구하는 요구에 대해서도, 표결을 강행하여 진보당 지지 철회를 하지 않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대의원들은 거부하였다. 77차 대대에서 결정했던 총선방침을 재확인하고, 이를 집행부 마음대로 해석해 민주노총을 특정 정파의 뜻대로 운영하지 말고 77차 대대 결정대로 중집에서 이행하라는 뜻이다. 공은 중집으로 넘어갔다. 3월 21일 민주노총 중집에서 진보당 지지 철회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