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4.03.29
좌파적, 진보적 우크라이나 연대 운동의 큰 밑거름이 된 ‘2월 연속 행동’
- 일본 도쿄에서 보내온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운동 참가자의 메시지
[편집자 해설]
일본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 ‘우크라이나 민중연대모금’의 이름으로 활동해온 가토 나오키 씨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2주년(2월 24일)과 일본 및 우크라이나 정부와 기업 조직 대표들이 개최한 ‘일본·우크라이나 경제부흥 추진회의’(2월 19일, 도쿄)를 맞이하여 일본 사회에서 열린 여러 우크라이나 연대 행사를 소개하는 글을 《사회운동포커스》에 기고했다. (번역은 이준혁 회원이 맡아주었다.)
가토 나오키 씨는 일본에서 핵발전소 반대 운동, 역사 왜곡 반대 운동 등에 몸담아 온 논픽션 작가로,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저서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은 한국에서도 출판되었다.
2023년 초, 가토 씨는 “일본의 과거 침략과 똑같은 러시아의 침략을 면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동료 기자, 노동조합․시민운동 활동가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 규탄 집회를 개최할 계획을 알리며, 이 집회에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에 연대하며 한일 시민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맥락의 연대 메시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사회진보연대에 보내왔다. 또한 사회진보연대도 비슷한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면 일본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 측의 연대 메시지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2월 23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연대 집회에서는 사회진보연대의 연대 메시지가, 2월 24일 서울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연대 집회에서는 일본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의 연대 메시지가 낭독되었다. (자세한 상황과 일본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의 연대 메시지 전문은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 규탄 세계시민 평화촛불집회 지상중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는 또한 사회진보연대의 <우크라이나 사회운동 연대기금> 사업에 영감을 얻어,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좌파단체 ‘사회운동’(Sotsialnyi Rukh, SR)에 대한 모금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민중연대모금’으로, 2023년 5월 24일까지 100여 명으로부터 약 84만 엔을 모아 우크라이나로 송금하였다.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 ‘우크라이나 민중연대모금’에 참여한 일본 시민들은 2023년 3월, ‘국제문제연구회’라는 명의로 『우크라이나 2014~2022: 대러시아주의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인들』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사회진보연대도 여러 차례 소개한 우크라이나 ‘사회운동’(SR),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FAR) 등을 포함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의 사회운동단체, 활동가, 연구자들의 글들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책은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기치의 글들을 모은 1부와, 유로마이단 혁명에서부터 크림 합병과 돈바스 내전을 거쳐 젤렌스키 정권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최근 우크라이나 정세에 관해 러시아의 선전과 가짜뉴스를 반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글들을 모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문제연구회’는 출간 취지를 “우크라이나의 자결과 인민주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계속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무조건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대두하는 극우와 파시스트 세력에 의한 세계 지배와 새로운 전쟁으로 가는 길을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사회진보연대도 패널로 참여한 ‘우크라이나 글로벌 연대 네트워크’ 동아시아 세션(2023년 4월 20일)에도 이러한 활동들과 일본 사회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여론을 보고하는 글을 보내오기도 했다.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년을 앞두고 사회진보연대와 일본 ‘우크라이나 민중연대모금’은 서로 활동계획을 공유하였으며, 사회진보연대는 ‘우크라이나 민중연대모금’의 2월 17일 집회(‘해바라기행동’)에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사회진보연대의 연대 메시지는 각각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의 지탄과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이 최근 밀착하며, 이것이 북한의 포탄 제공에 힘입은 러시아의 침략전쟁 장기화와, 남북관계를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남반부 전 영토 평정 준비”를 선언하는 등 북한의 더욱 위험한 전략 채택으로 이어져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모든 침략과 핵무장에 반대하는 한일 시민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동아시아 정세의 맥락에서만 중요한 행동은 아니다. 과거 피식민국-식민국 관계였던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오늘날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전쟁을 막기 위해 연대하는 것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폭력에 휩쓸려 있는 나라들이 미래에는 그러한 갈등을 넘어 인류 모두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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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은 지난 1년 넘게 계속된 도쿄 좌파에 의한 우크라이나 연대운동이 큰 성과를 보인 달이었다. 그 첫 번째 행동이 2월 한시적인 연대체로 결성된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연대행동’(이하 ‘해바라기행동’)이 주최한 <우크라이나 채무 무조건 탕감! 민중을 위한 지원을!> 연속 행동이다.
이번 연속 행동은 우크라이나 좌파단체 ‘사회운동’(SR)에 전달할 모금을 모았던 ‘우크라이나 민중연대 모금’(참가자 100여 명이 약 84만 엔을 모았다)과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집회를 주최해 온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 회원들, 그리고 세계은행과 IMF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조직해 온 ‘아탁 재팬’(ATTAC Japan)의 뜻있는 이들이 함께 개최했다. 이번 행동은 2월 19일 일본 정부가 주최한 ‘일본·우크라이나 경제부흥 추진회의’에 대해 다른 대안을 제기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후 경제위기를 겪었고, 이 때문에 세계은행과 IMF로부터 거듭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개혁’ 요구가 동반된 조건부 지원이었다. 이후 2022년 2월 러시아가 전면 침공을 개시했고,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향후 10년 동안 부흥에만 4,110억 달러(58조 엔, 약 517조 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금액은 우크라이나의 2022년 국내총생산(GDP)의 2.6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국제사회는 당연히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진행된 대(對) 우크라이나 지원은, 실제로는 군사적 지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채무보증’이다. 즉, 우크라이나가 세계은행과 IMF에 지고 있는 빚의 보증인이 될 뿐이며, 우크라이나에 신자유주의적 사회 조건을 더욱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은 전 세계 좌파 운동에, 우크라이나가 진 채무를 무조건 탕감할 것을 함께 요구하는 운동을 요청하고 있다. ‘사회운동’의 율리아 유르첸코는 “부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사회 보장을 해체하는 것은 ‘부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바라기 행동’은 이러한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조직됐다. ‘해바라기 행동’은 2월 17일 12시, 신주쿠역 앞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여, ‘민중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그 후 진행된 실내 토론회에서는 활동가가 우크라이나 민중과 사회운동의 현황을 소개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채무 관련 문제가 개발도상국이 국제 금융기관의 개입을 강요받는 세계적 채무 문제의 전형적인 사례임을 설명했다. 이 두 행동에는 각각 30여 명이 참가했다.
이 집회와 더불어 뒤에 적게 될 26일 포럼 ‘우크라이나 문화의 저항, 저항의 문화’는 한국의 사회진보연대와 유럽의 ‘우크라이나 연대 캠페인’으로부터 연대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식민 지배라는 괴로운 역사를 경험한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함께 침략에 반대하는 것은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일이 된다”고 보냈다. 유럽 우크라이나 연대 캠페인은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민의 자결권이 좌파, 국제주의, 반자본주의 운동 과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행사들은 공동발기인으로 참가할 이들을 인터넷으로 모집하여, 42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활동들을 바탕으로 19일에는 부흥회의가 열리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게이단렌) 회관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는 등 선전 활동을 5명 정도가 모여서 진행했다. 이때 외무성 앞에 가서 외무대신(외교부장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했지만 거부됐다. 서한은 이후에 우편으로 전달했다.
우리의 행동을 보고 많은 시민이 지지를 보내주었다. 트위터에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감사하다는 답글을 줄지어 달아주기도 했다. 참가자가 쓰고 있던 ‘해바라기 가면’을 보고 ‘귀엽다’고 하는 반응도 많았다. 도쿄의 온건한 진보․좌파적인 언론 《도쿄신문》도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또 우크라이나 문화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등단한 우리 동료들에게 정부와 가까운 한 우크라이나 연구자가 “당신들의 의견에 찬성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면 침공 2주년을 하루 앞둔 2월 23일에는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가 신주쿠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 10명 정도가 모여 ‘우크라이나에 연대하자’고 호소했다.
24일에는 재일 우크라이나인들이 시부야역 앞에서 주최한 항의 행동에 동참했다. 이 행동에는 우크라이나인을 중심으로 200명 정도가 참가했다. 이날 같은 시간의 다른 곳에서는 일본의 큰 반전운동 연대단체 등이 주최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부터 2년, 우크라이나에 평화를!>이라는 토론회 및 집회가 열려, 500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26일에는 ‘우크라이나 연대 네트워크’와 ‘우크라이나 민중연대모금’이 공동 주최하는 <우크라이나 문화의 저항, 저항의 문화>라는 행사가 열렸다. 여기서는 우크라이나 문화 연구자이자 국립민족박물관 연구원인 아카오 미츠하루 씨를 초청한 강연이 열렸다. 이 행사에는 35명이 참가했다.
아카오 씨의 강연 내용 중 핵심 주제는 ‘웃음’이었다.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식민주의적 멸시를 담아 우크라이나 희화화를 강화했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 코미디는 자국의 권력자와 사회·정치 문제를 비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멸시가 얼마나 황당무계한지 비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카오 씨는 이를 두고 힘을 발휘하는 시민사회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풍자의 힘’이라 지적했다. 게다가 전면 침공 후에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보다 선진국인 것처럼 여겨졌던 러시아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억압적인지 정면으로 비웃는 힘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주제는 ‘팝’이었다.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 팝(UkrPOP)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성에서 영감을 얻어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한때는 러시아 차트도 석권한 바 있다. “이것은 마치 일본에서 K-POP이 인기를 끈 것과 같다”고 아카오 씨는 말했다. 매력 넘치는 UkrPOP 몇 곡을 소개한 뒤 아카오 씨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곡이 돈바스 전쟁에 병사로 참여하고 이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를 겪고 있다는 여성 가수 ‘스타식’(CTACIK)의 곡, ‘적에게 보내는 자장가’와 ‘영웅은 죽는다’였다. 이 두 노래가 흘러나오자 회장은 숙연해졌다. 여기에는 전쟁의 상처를 내면에 안은 채, 갈등하면서도 저항 전쟁을 계속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고통과 마음이, 민족적이고도 예술적으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각각 행동의 참가자들은 모두 10명에서 30명 정도 수준이지만, 전부 같은 30명은 아니었다. 전체 참가자 수를 따지면 연인원 130명 정도 될 것이다. 이는 일본의 좌파적 우크라이나 연대 운동의 규모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연대가 확산된 것이다.
이번 2월 연속 행동의 의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채무 탕감 요구 등, 좌파가 우크라이나 연대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이해를 심화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이나 유럽, 그리고 물론 우크라이나와의 국제연대를 굳건히 했다는 점이다. 셋째, 우크라이나를 깊게 이해하는 학습의 장을 만들기 시작한 점이다. 러시아를 옹호하는 일부 좌파에 대한 비판을 일관되게 펼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내실 있는 연대운동을 향해 나아갔다. 앞으로도 이러한 성과를 더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예전 일본과 한국, 또는 일본과 중국 관계와 같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분노와 고통은 한때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같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침략 반대의 깃발을 내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한국 시민들과 연대하고 교류하면서, 동아시아에서부터 이 침략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자 한다.
한국 시민 여러분의 연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