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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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힘으로 개척한다

11월 투쟁, 어떻게 임할 것인가

사회진보연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로 조직되고 있는 11월 투쟁은 우리에게 섣부른 기대보다는 끈질긴 인내를 요구한다. 현재 진행중인 각각의 투쟁에 대해 호흡을 가다듬고 진단, 평가하는 것은 우리 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무능부패로 일관하는 지배정치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11월 들어 전개될 대부분의 투쟁이 처한 곤란은 장기간 준비한 대중동원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어디로 갈무리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여기에는 11월 대중투쟁의 성과를 대통령 선거에서 어떻게 수렴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착종되어 있다. 즉 선거시기 민중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여전히 미력하다는 것을 이유로 투쟁의 종착지가 기성 정치권(대선 후보)으로부터 확약을 받아내는 것으로 미끄러지는 것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세력은 민중들의 요구를 받아 안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국적자본과 국제기구의 요구에 부합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각종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제한된 행정부나, 정치 이념보다는 대중적인 이슈에 대해 그때그때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정당을 구별시키는 선정적 폭로만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민중의 요구가 진지하게 다루어지기란 애시당초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치상황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대통령 선거를 40여일 앞둔 현 시점에서 지배 정치권의 행태는 '바닥을 향한 경쟁'에 돌입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치권 일반은 오로지 널뛰듯 오르내리는 여론조사의 향배에만 정신이 팔린 채 이합집산·합종연횡·이전투구에 몰두하고 있다. 8·8 재보선 선거 참패 이후 사실상 야당으로 전락한 뒤 해체 일로를 겪던 민주당은 개혁세력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져버린 반동적 정계개편 말고는 자신의 욕된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와 '분당'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오로지 정몽준과의 야합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미 이들에게 있어 모든 정치활동의 목표는 아무런 원칙도 없는, 반이회창 단일후보를 통한 재집권의 야욕에 불과하다. 원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한나라당 역시 무능하기로는 피차 일반이다. 이들은 정확히 말해 무정견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 어떠한 적극적인 정치활동도 전개하지 않고 있다.
"대선에 팔려 국회 문닫는 나라"라는 보수일간지 사설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정기국회가 특별한 정치적 쟁점 없이 11월 8일로 한 달 가량 서둘러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치권은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전대미문의 증액경쟁을 벌인 다음, 법안심의에서도 옥탑방 양성화, 군인연금 인상 등 실효성 없는 선심성 법안만 서둘러 통과시키고, 마지막으로 정당에 대한 예산지원을 더 타내기 위한 공직선거법만 처리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국회는, 집권 말기에 이르러 거듭된 무능부패로 사실상 가사(假死)상태에 빠져있는 김대중 정부 최후의 '개혁', 다시 말해 미완의 신자유주의 개혁 정책 입안을 서두르고자 하는 행정부의 요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역설에 직면하기도 한다.
결국 대선을 앞둔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치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괜시리 민감한 사안을 건드려 손해날 장사하기 싫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러한 정치의 희화화 경향 하에서 선거가 이념이나 구체적인 정책의 차별화가 아니라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인기영합주의로 대체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정치권 압박·청원식 투쟁이 마치 '떡 줄 놈은 생각도 없는데 김치국 마시는 격'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쟁의 목표를 대정치권 압박·청원으로 설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재 민중운동 진영의 현실은 이러한 경향에서 전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노총은 지난 10월부터 주5일제 근로기준법개악·공무원조합법·경제특구법 등 자칭 '3대 쓰레기 악법' 국회통과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조직해왔다. 20만에 달하는 조합원이 총파업 찬반투표에 참가하고 국회 앞에서 펼쳐진 확대간부 상경노숙투쟁에는 3박4일 동안 연인원 5천여명이 참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비로소 11월 5일, 12만을 웃도는 조합원이 총파업에 참여해 22개 도시에서 '악법철폐'를 외쳐 노동부조차 96∼97년 노동법개정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동력이라고 실토할 정도였다. 4·2 발전노조 연대파업 불발 이후 근간부터 흔들린 조직을 복구하고 5개월만에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 체계에서 뒤늦게나마 하반기 투쟁계획을 확정한 뒤, 단 2주만에 총파업을 성사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일견 고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국회 앞 도로를 완전 점거한 집회대오가 총파업 결의대회 과정에서, 하루 전날 정권의 극악무도한 폭력침탈만행에 몸서리쳐야 했던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 공무원노동자대회를 성사시켜냈다는 점도 분명한 의의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의 이면에는 분명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여전히 미력하다는 것을 이유로 대신 국회를 압박, 가시적인 성과를 쟁취하려는 무의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번 총파업이 '주5일제 근로기준법 개정안'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를 저지한다는 명목 하에 조직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투쟁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대중투쟁의 역동성은 끊임없이 국회일정에 종속, 제한되기 일쑤고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대중들은 정치권에 대한 해바라기식 투쟁에 매몰된다. 그리고 총파업 규모는 은연중에 협상력과 동일시된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 들어 연례행사처럼 진행된 '대국회투쟁'은 그 형식 자체가 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하는 탓에 이러한 오류를 끊임없이 노정했다.
이러한 조건부 총파업의 후과는 민주노총이 주5일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파업 중단을 선언한 그 즉시 나타났다. 바로 다음날인 6일, 국회가 경제특구법을 국회 재경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3대 쓰레기악법'의 폐기라는 당초 목표는 유실되고 말았다.


자기방어적-근시안적인 투쟁을 넘어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으로

여기서 우리의 우려는 비단 특정 법안의 파괴적 속성에 국한된 것도 아니요, 이 법안 자체를 막아내지 못할 거라는 비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제특구법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주5일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회기 내에 처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중단하고 간부상경투쟁으로 대체한 현실에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추진되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올바로 간파하지 못하고 근시안적이고 자기방어적인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는 민중운동의 현실을 통탄하는 것이다.
기간 민중운동은 겉으로는 소리 높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한다는 것에 모두가 합의하면서도 그 실내용에 따른 투쟁형태와 조직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전방위적으로 자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대해 민중운동 진영은 각기 개별적으로 당면한 단위사업장 구조조정(정리해고)에 치중하거나 ―이번 근로기준법 국회 통과 저지 대국회투쟁처럼 사후적으로― 현안 쟁점에 대응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전에 줄곧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확인하였듯이 현재의 WTO-금융세계화 체제는 설사 이러한 현안 투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성과를 모조리 앗아갈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정책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듯이 의회(정당·정치인)나 행정부(정책입안 전문관료)의 신념과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규준으로 제시되는 자본축적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종속되기 때문이다. 관건은 해당 사안에 국한된 선전·조직화와 정책개혁의 사후정당화에 불과한 법·제도 반대를 넘어 반신자유주의-반정권 투쟁의 전반적 기조와 방향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투쟁에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투쟁은, 설령 외양은 대정권-대국회 투쟁일지언정 실상은 '법안' 저지라는 형태로 축소되는 것을 언제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능동적 투쟁으로 공동의 행동강령을 만들어나가자

한편 공무원노조는 11월 4∼5일 이틀동안 연가상경투쟁을 통해 공무원조합법 철회 공무원노조 합법화를 위한 대정부투쟁을 전개한 바 있으며, 특히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 대오의 경우 WTO-쌀수입 개방에 맞서 실수로만 무려 15만을 상회하는 동력이 조직되는 와중이다. 민주노총 역시 경제특구법 반대 투쟁을 중섐으로 10만 노동자대회를 약속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애시당초 빼곡한 투쟁 '일정'만으로 전선 형성이 가능할리 만무하다 했을 때, 핵심은 각계각층에서 분출하는 민중투쟁을 지지엄호, 확산시켜내는 동시에 이를 정확한 정치적 기조로 집약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계획'의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민중운동 전반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로지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전국민중연대(준) 차원에서 공동투쟁-공동협상-공동타결이라는 원칙 하에 추진중인 <민중대표단>일 것이다.
현재로선 향후 그 성사 가능성조차 불투명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바에 따르면 <민중대표단>은 민중연대투쟁전선의 형성 문제를 지극히 형식상의 문제로 대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선 직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해 "강력한 민중연대 투쟁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는 하지만 이는 공문구에 불과할 뿐이다. 상층 대표단이 꾸려지고 공동투쟁과제를 선언한다고 해서 공동투쟁의 조건이 즉각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공동투쟁-공동교섭-공동타결이 즉각 단결과 연대의 사상으로 격상되고 마치 현재 민중연대투쟁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인식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대중들로 하여금 단결과 연대를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할 기회를 박탈하고 대중투쟁의 역동성을 희석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상당하다. 예컨대 농민(쌀수입개방 저지)/공무원(공무원노조 인정)/철도(사유화 저지)의 투쟁이 공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별 요구의 단순합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공통의 전선을 형성하여 해결될 문제지, '민정(民政) 교섭'이라는 형태에 몰두하여 각각의 투쟁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설령 무능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약속을 받아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배 정치권은 철저한 무시전략으로 가거나 애매모호한 립서비스(최근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농어가 부채 탕감책이 대표적이다)로 거듭 민중을 기만할 뿐이다. 이미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김대중이 민중에게 선사한 것은 철저한 배신이었음을 지난 5년간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아도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반하는 대중들의 개별적 투쟁이 '자기실리적'-'집단방어적'이라는 혐의로 덧씌워져 왔음에 비춰보았을 때, 대통령선거에 의해 일정하게 규정된 현 정세에서 무능부패한 정치권을 압박하고 청원하는 투쟁 방식의 한계는 더욱 자명하다. 민중운동은 투쟁의 성과를 무능부패한 정치권을 압박하여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치환하는 미망(迷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 오로지 '민중의 해방은 민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투쟁 속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민중대표단>은 향후 투쟁을 위한 출발점을 구축하는 과정이지, 종착지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11월 투쟁을 전선 재편의 출발점으로

그렇다면 결국 11월 투쟁은 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가 결국은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화해할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동투쟁 과정 속에서 상승,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물론 대중투쟁의 성과를 집약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민중운동의 집단적 지도력은 여전히 부족하며, 공동투쟁의 경험과 지역적-대중적 기반은 일천한 것이 현실이다. 자칫 한판 대결의 후과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로 이어질 염려마저 존재한다. 그러나 패배를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의 투쟁을 처음부터 한계짓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려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당면한 현안 투쟁이 대선까지만 유효한 것이 절대 아닌 만큼 민중 공동의 행동강령으로 정식화하여, 향후 이를 중심으로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많은 오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피에 젖은 '노동자 선언'으로 불붙기 시작한 11월 투쟁은 10일 노동자대회, 13일 농민대회를 남겨둔 상황에서 일대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민중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원인에 대해 집단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현재 지역적-전국적 차원에서 실질적인 공동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농 특위를 매개로 한 전국민중연대(준)의 지역적-대중적 기반이 확장되고 있으며, 전국적 차원의 민중연대투쟁조직 구축의 흐름이 차츰 조직되고 있다.
우리는 11월에 전개될 개별 투쟁이 공동의 전선 형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11월 전개될 대중투쟁의 성과를 민중연대투쟁전선의 강화로 수렴하여 향후 보다 반동적인 형태로 편재, 새로 탄생하게될 정권에 맞설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자. 이것이야말로 IMF와 김대중의 등장을 '서 있는 채로' 맞이한 채 눈물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우리 모두가 11월 투쟁현장에서 마주치게될 서로에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당당한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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