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4.09.13

우크라이나, 불확실한 겨울을 앞두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세 이후 전망

사회진보연대

“다리가 없는 시체, 팔이 없는 시체, 심지어 머리가 없는 시체까지 잔해에서 끌어내 수습했습니다.”

- 2024년 9월 3일 러시아가 폭격한 폴타바 병원 잔해수습 응급대원 인터뷰

 

“크렘린은 광기 어린 제국의 야망에 눈이 멀어 지금도 러시아 영토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민간인의 생명을 긴급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이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모두 정복하려는 푸틴의 광적인 욕망의 대가는 누가 치를까요? 무고한 국경 주민들입니다. 그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 <쿠르스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포슬레≫(러시아 좌파매체)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의 진격과 우크라이나의 치명상
 
우크라이나 전황 지도 [출처: 뉴욕타임즈]
 
러시아는 지난 수개월 우크라이나 최전선인 동부전선에서 느리지만 멈춤 없이 진격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보급로와 가까운 포크롭스크 인근 방어선까지 진격했다. 러시아군은 최전선 공세와 더불어 키이우, 리비우, 하르키우 등 주요 도시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전선의 구분 없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계속 죽거나 다쳤다.
 
우크라이나 구조대원이 9월 1일(현지시간) 하르키우의 한 백화점 주차장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살아남은 남성을 위로하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즈]
 
지난 9월 3일 폴타바 군사연구원, 병원에 떨어진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53명의 사망자, 260여명의 부상자, 5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병력, 무기, 물자 모든 것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진격은 압도적으로 강한 나라의 침략 공격엔 손 쓸 방법이 달리 없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9월 3일 러시아가 두 발의 탄도 미사일로 폴타바 시를 공격해 50명 이상이 사망한 후 구조대원들이 군사 교육 기관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즈]
 
우크라이나는 2022년 9월 하르키우 공세로 도시를 수복하고 흑해 함대를 크림항구와 서부 흑해에서 몰아냈다. 서방의 무기지원과 군사훈련지원에 맞춰 군대를 현대화하기도 했다. 드론으로 러시아 점령지역 인프라를 공격하여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늦췄다. 이러한 저항은 러시아와의 압도적인 힘 차이를 현실적인 조건으로 하는 방어 전략이었다. 2년 동안 힘겹게 방어를 지속해 온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동부전선 진격과 같은 ‘드라마틱’한 성과를 낼 수 없었다.
 
러시아군의 총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이 약속한 군사 지원이 예정보다 느리게 도착했음에도 우크라이나는 시민의 저항 의지로 버텨왔다. 그러나 최전선에서 짙어지는 패색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렸다. 서방의 지원과 시민의 저항 의지라는 두 다리로 버텨온 우크라이나에 이는 치명상이었다.
 
 
쿠르스크 공세와 불확실한 미래
 
2024년 8월 6일 우크라이나군이 국경지대인 러시아 도시 쿠르스크에 진격했다. 쿠르스크 공세는 우크라이나 정규 군대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한 첫 사례다. 비밀리에 이뤄진 이번 공세는 서방은 물론 러시아도 사전에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국경을 빠르게 무력화했다. 러시아의 대응은 느리고 일관성이 없었다. 폭격, 사망, 실종, 부상, 학살, 공습, 침공, 점령 … 2022년 2월 24일부로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라면 진부해진 상황에서도 쿠르스크 공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8월 7일에도 대피 명령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스스로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시 공무원들이라도 확성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사람들에게 어떤 대피 옵션이 있는지 알려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쿠르스크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포슬레》 [출처: 사진/뉴욕타임즈]
 
우크라이나 정부의 입장과 언론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쿠르스크 공습의 목표는 네 가지다. 첫째,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대의 사기를 높인다. 둘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와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인 세계 여론에 저항 의지와 역량을 증명한다. 셋째, 러시아 내치를 흔들고 향후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확보한다. 넷째,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 군대를 분산시킨다.
 
이번 쿠르스크 공세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는 항전 의지를 환기하는 효과를 낸 반면, (특히 국경지대) 러시아 시민들에게는 혼란을 주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군대는 ‘더 버티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던 승리의 경험을 얻었다. 전쟁이 ‘집 앞까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 온 러시아 시민들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직접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러시아 국경지대 주민들은 대피 명령 조차 제대로 내리지 않는 러시아 정부의 느리고 무책임한 대응에 반발했다. 더군다나 이번 쿠르스크 공세는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1년이 채 안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탱크를 타고 러시아로 들어가는 것이 기쁘고, 그들이 탱크를 몰고 우리나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승리의 제국을 자처하는 러시아의 권위에 타격을 입히고 완충 지대를 만들었다.” - 쿠르스크에 진격한 우크라이나 군인 인터뷰 [출처: 뉴욕타임즈]
 
그간 우크라이나가 최전선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커졌던 파트너 국가들 사이의 회의적인 분위기도 달라졌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기동성과 융퉁성을 보인 이번 쿠르스크 공세는 서방에서 무기지원을 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보았던 보았던 전문가들의 평가를 재검토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서방은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한 지원 무기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데 미국과 NATO, EU는 이번 공세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이번 공세에서 남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공세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의 큰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동부전선의 최정예 부대를 쿠르스크로 재배치 했는데, 러시아군이 동부전선에서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공세를 유지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 만약 러시아가 내부 혼란을 정리하고 국경 방어에 집중한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점령해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전략이 지속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러시아 본토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공격으로 더욱 커진 확전 위험을 세계 여론이 감내할 수 있을지도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이번 쿠르스크 공세는 우크라이나의 생존과 미래를 건 도박이었다. 우크라이나가 현재 가지고 있는 병력, 탄환 등 전쟁물자는 두 개의 전선을 감당할 수 없다.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지원 물자의 규모가 동부전선과 쿠르스크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할지도 확실하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패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는 불확실한 겨울을 앞두고 있다.
 
 
확전위험이라는 지렛대?
 
러시아 군인들이 러시아 남부 군사 지구의 알려지지 않은 위치에서 전술 핵무기 훈련의 첫 번째 단계에 참여하고 있다. [출처: 러시아 국방부/로이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핵위기를 고조시켰다. 2023년 3월,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이전 배치할 수 있다고 선언했고, 2024년 5월 미국과학자연맹은 위성사진을 통해 벨라루스에 핵탄두 수용 시설로 추정되는 군수품 저장고가 건설 중임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 러시아는 남부 지역에서 전술핵 훈련을 공개적으로 진행했으며, 9월에는 핵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닉의 첫 번째 배치 시설로 보이는 곳이 건설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4년 8월 27일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이 이미지에는 러시아 볼로그다에 있는 핵탄두 저장 벙커 5개(오른쪽)와 발사 지점(왼쪽 아래) 등 러시아 핵추진 순항미사일 배치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보인다. [출처: 로이터]
 

우크라이나는 최근 쿠르스크 공세 이후 서방이 제공한 무기의 러시아 본토 사용 제한 완화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의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접근으로, 푸틴이 주장하는 ‘큰 손해 없이 반드시 승리하는 전쟁’이라는 서사를 흔들고, 러시아가 침략으로 인해 치러야 할 경제적·정치적 비용을 증가시키려는 의도다. 젤렌스키는 이번 공세와 러시아의 무능한 대응이 푸틴의 '핵 레드라인' 위협이 과장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르키우의 파괴된 학교에 서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 [출처: 뉴욕타임즈]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확전 위험은 날로 상승하고 있다. 세계는 이러한 위험을 분명히 우려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확전 위험을 지렛대 삼는 수단과 목표, 우크라이나의 수단과 목표는 구별하여 평가해야 한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수단으로 확전위협을 가하는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 지원을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확전위험을 감수하면서 러시아 본토를 대상으로 작전을 전개한 목표는 러시아의 침략 공격 저지와 러시아가 점령한 자국 영토의 수복이다. 
 
러시아는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선제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며, 우크라이나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점령 지역을 자국 영토로 병합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동부 전선의 전황과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전술적 목표만을 설정하고 있으며 러시아 영토를 통치하거나 병합하려는 목표가 없다.
 
결론적으로 피침략국가의 저항 의지를 꺾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핵무기를 통한 확전을 시사하며 세계의 핵 위기를 고조시키는 침략국가 러시아와, 핵무기나 핵우산이 존재하지 않고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여 침략을 저지하려는 피침략국가 우크라이나를 동등한 선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침공을 멈추면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도 멈춘다는 단순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024년 6월 24일 포크롭스크 폭격으로 아들을 잃은 한 시민이 폭격 현장의 차량 옆에서 슬퍼하는 모습.
[출처: 뉴욕타임즈]
 
2024년 5월 17일 하르키우 폭격 후 건물 밖에서 발견된 시신. [출처: 뉴욕타임즈]
 
 
나가며
 
지금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특히 돈바스 지역은 거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2024년 6월 기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파괴된 건물 210,000채 중 절반이 돈바스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돈바스 지역은 바로 2022년 2월 24일 푸틴이 ‘특별 군사 작전’을 통해 해방하겠다고 선언한 곳이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건물을 지도에 표시한 그림이다. 파괴된 건물은 총 21만 여채로 추산되는데, 그중 절반은 돈바스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출처: 뉴욕타임즈]
 
러시아의 침략 공격 직전 우크라이나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었든 폭력과 학살, 파괴를 통해 '더 나은 우크라이나'를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취약성을 지적하며 정부 부패, 포퓰리즘,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의 국가 정체성 혼란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침공이 없었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진보적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웃 국가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행위는 진보적 가능성이 희박한 수준을 넘어 퇴행의 확실한 지표다. 실제로 2023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러시아는 180개국 중 141위로, 104위인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부패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푸틴의 권위주의 통치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 문제를 이유로 러시아를 침공하려는 나라는 없다. 이는 예방 공격이 금지된 국제 기준 때문이기도 하지만, 침략을 통해 진보를 도모하겠다는 발상이 근본적으로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러시아에 지속적이고 단호하게 침략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이제 러시아가 ‘선의’로 전쟁을 멈출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침략을 받은 국가에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러시아의 선의에 기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길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항복’에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그간 국제 사회가 지켜온 영토 불가침 원칙과 예방 공격 금지라는 약속을 침략국가인 러시아에게 내어 줄 수 있는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어준 결과로 러시아의 ‘진격’과 그로 인한 충돌이 우크라이나에서 멈출지 유럽, 더 나아가 세계 전체로 확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군비 지출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편 더 나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손이 아니라 전쟁 중에 있는, 그리고 전쟁 이후를 살아가야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용기와 자기 역량에 달려 있다. 전시에도 우크라이나 사회의 진보적 가능성을 모색하며 활동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시도는 이러한 전망에 희망을 제시한다. 세계 사회운동이 러시아에 침략 중단을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2024년 4월 28일 키이우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맞이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한 노동권 보호”사회포럼 [출처: 우크라이나 ‘사회운동(SR)’ 텔레그램 채널]
 
2024년 8월 24일, 명확한 복무 조건을 요구하는 여성 군인, 어린이들의 피켓 시위에 참여한 리비우의 '사회운동(SR)' 활동가들. [출처: 우크라이나 ‘사회운동(SR)’ 텔레그램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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