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4.09.24

누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협상을 가로막는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국가와 극단주의 무장집단은 평화프로세스의 궁극적 주체가 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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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사상 최대의 사상자로 이어져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끄는 군사집단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개전 1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쟁은 2008년 이후에 벌어진 다섯 번째 가자-이스라엘 무장충돌이자,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이후 이 지역에서 벌어진 가장 중대한 전쟁이다. 또한 지금까지 있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중에서 가장 많은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나왔다. 위키피디아가 정리한 사상자와 손실(2024년 9월 24일 현재)은 다음과 같다.
 
[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상자/ 레바논 시리아 사상자 (2024년 9월 24일 현재)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측의 전쟁범죄: 국제형사재판소 수석검사, 하마스-이스라엘 지도자 체포영장 청구
 
유엔 소속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는 2024년 6월 19일 유엔 인권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2023년 10월 7일부터 2023년 12월 31일까지 벌어진 전쟁범죄를 다뤘는데,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측 모두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벌인 행위 중에는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하는 행동도 포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규정에 따르면, 인도에 반한 죄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 예컨대 살인과 몰살, 강제이주와 추방, 투옥을 비롯한 신체적 자유의 심각한 박탈 등등을 뜻한다.)
 
보고서는 하마스의 군사조직과 여타 6개 팔레스타인 무장집단이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즉 고의적인 민간인 공격, 살인 또는 의도적 살해, 고문, 비인도적이거나 잔혹한 처우,자산의 파괴 또는 압류, 인간 존엄에 대한 잔학행위, 어린이를 포함한 인질 포획 등등. 또한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서도 전쟁범죄 책임을 물었는데, 전쟁수단으로 굶주림을 활용한 행위(가자 봉쇄), 살인과 의도적 살해, 민간인과 민간목표물에 대한 의도적 공격, 강제이주, 성폭력, 고문, 비인도적이고 잔혹한 처우, 자의적인 구금, 인간 존엄에 대한 잔학행위 등등. 또한 팔레스타인인 몰살, 팔레스타인 남성과 소년을 목표로 한 젠더 박해를 포함해 수많은 ‘인도에 반한 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7,000가지 증거를 수집해,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로 끌려간 이스라엘 인질의 귀환을 촉구하는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한편 보고서 발표에 앞서, 2024년 5월 20일, 국제형사재판소 카림 칸 수석검사는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죄로, 한편으로는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모하메드 데이프, 이스마일 하니예,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 지도자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칸이 체포영장을 신청한 하마스 지도자 중에서 2명이 사망했다. 먼저 2024년 7월 31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하니예가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던 중 살해됐다”고 밝혔고 하마스도 인정했다. 또한 2024년 8월 1일, 이스라엘군은 모하메드 데이프가 7월 13일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하마스는 이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칸 검사는 “그 어떠한 군인도, 지휘관도, 민간 지도자도,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채 행동할 수 없다”며, 국제법은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그럴 경우 “국제법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9월 9일 체포영장 발부를 서둘러 달라고 재판부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칸 검사는 영국의 왕실 고문(저명한 변호사에게 수여하는 명예직)이기도 한데, 노동당 출신의 신임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7월 27일, 네타냐후 체포영장에 반대한다는 전임 보수당 정부의 입장을 철회하고,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체포영장이 “국제형사재판소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며, “정부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법치주의와 법원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인권단체 ‘비셀렘’도 칸 검사의 영장신청을 환영했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영장신청 대상이 된 상황을 두고, “이스라엘이 깊은 도덕적 구렁텅이로 빠르게 굴러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을 향해 더 이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폭력, 살인, 파괴 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중재국들의 3단계 휴전 협상안 제안: 전쟁 중단을 위한 외교적 노력
 
이처럼 하마스, 이스라엘 양측의 전쟁범죄가 심각하고, 사상자가 누적되며, 인도주의적 위기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휴전을 중재하려는 국제적인 흐름이 이어졌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휴전안은 이집트와 카타르의 중재자들이 2024년 5월 5일에 제시한 3단계 휴전안이다. 영어로는 ‘ceasefire proposal’인데, ceasefire는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한 구속력 있는 임시적 휴전안을 뜻한다. 이에 비해 armistice는 모든 군사작전을 영구적으로 중단한다는 공식적인 합의로, 보통 정전이라고 부른다. 이보다 더 진전하여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에 합의할 경우, 이를 강화조약 또는 평화협정(peace treaty)이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시기 1953년에 체결된 협정은 armistice(미국측)/정전협정(북한측)으로 표현되었는데, 협정에 직접 서명하지 않은 한국 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휴전협정’이라고 불렀다.)
 
2024년 5월 6일 하마스는 이집트-카타르의 휴전안을 지지했다. 반면 5월 31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제안이라며 휴전안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이집트-카타르안과 거의 동일했다. 따라서 이 안을 기초로 하여 휴전협상이 진행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1단계는 6주간 전쟁을 멈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마스는 1단계에서 인도주의적 기준에 따라 (즉 여성과 19세 미만 어린이, 부상자, 50세 이상 고령자) 33명의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한다.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생존 인질이 33명에 이르지 않는다면, 하마스는 사망한 인질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교환하여,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인 1명당 3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석방해야 한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은 ‘충분한’ 양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해야 하며, 피난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해야 하며, 가자로부터 단계적 철수를 시작해야 한다. 잠정적 휴전 기간에, 양자는 적대행위를 영구적으로 중단하기 위한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
 
△2단계: 이스라엘은 영구적인 정전을 수용해야 하고, 그 후 하마스는 남아 있는 (민간인, 군인) 남성 인질을 석방하고, 그와 함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죄수를 석방해야 한다. 이러한 교환의 조건은 양측이 ‘지속가능한 평온’(sustainable calm)에 합의하고,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군을 철수하는 것이다.
 
△3단계: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사망한 인질도 인계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를 중단한다. 하마스는 군사적 능력을 재구축하지 않아야 한다.
 
* 이집트, 카타르, 유엔이 가지 지구 내에서 합의 이행을 감시하고, 유엔과 미국이 협상안을 보장한다. (최근 쟁점이 되는 필라델피 회랑은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곳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이집트와 카타르가 3단계 휴전안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마스가 ‘전쟁의 영구적 종료’를 추구한 반면, 이스라엘은 임시적 휴전에만 동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기 때문에, 이집트와 카타르는 양자의 입장을 연결한 안을 구성했다. 또한 2단계에서 논의하기로 한 ‘지속가능한 평온’이란 표현은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영구적인 정전’이라는 표현을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6월 1일, 미국, 이집트, 카타르는 공동성명을 발표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최종 합의에 임하라고 촉구했으며, 6월 10일 유엔안보리는 결의안 2735호를 통해 3단계 휴전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보리 15개국 중 14개국이 찬성했고, 러시아가 기권했다.)
 
하지만 협상은 지금까지도 타결되지 않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기습공격 후 압도적인 열세에 처해 있었고, 따라서 이스라엘군의 철수, 영구휴전, 팔레스타인인의 귀향, 죄수 교환에 관심을 보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군사력과 통치력을 파괴한다는 목표가 달성되기 전까지 영구휴전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가자지구에 침입한 이스라엘 탱크의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7월 5일 이스라엘 정부는 바르네아 모사드(대외정보기관, 정식명칭은 정보특수작전국) 국장을 수장으로 하는 협상팀을 카타르에 보내기는 했으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제시한 조건을 하마스가 거부했다. 또한 협상 중재자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이 협상에 큰 장애가 된다고 주장했다. 9월 초 이스라엘의 리버럴-좌파 성향 신문 《하아레츠》는 네타냐후 연정 파트너 인사의 입을 빌려, 네타냐후 총리가 이미 몇 주 전에 휴전에 합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휴전협상의 좌초: 누가 네타냐후 총리의 폭주를 막을 것인가
 
협상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9월 1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남부 라파 터널에서 인질 여섯 명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인질들이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라고 밝혔으나, 이스라엘 전역에서 “지금 당장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가 폭발했다. 시위대의 일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하야를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보도됐다. 이스라엘 인질 가족단체는 9월 1일 밤부터 2일 새벽까지 이어진 시위에 적어도 70만 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조합원 규모가 8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노조 히스타드루트는 9월 2일 하루 총파업을 벌여 휴전협상을 요구했다.
 
9월 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망한 인질을 추모하고 휴전협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전쟁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 내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졌음에도 휴전협상은 사실 좌초된 상태다. 미국 언론 《액시오스》는 정부관리의 말을 인용해, 백악관 참모들이 협상의 성공 가능성에 강한 회의감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백악관 사람들은 화가 났고, 좌절했다”, “당장은 내놓을 (새로운 협상) 계획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 휴전에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은 네타냐후 총리 본인이다.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의 수장인 다비드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 로넨 바르 신베트(국내정보기관, 공식명칭은 보안총국) 국장은 전쟁 일 년째가 되는 10월 초에 휴전 또는 정전으로 인질을 돌려받으려 했으나, 네타냐후 총리가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8월 말 안보 내각 회의에서 네타냐후 총리 주도로 이스라엘군의 (가자 남부) 필라델피 회랑 주둔을 승인했으나, 사실 주요 내각 인사들이 이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은 “이 문제를 당장 투표(결정)해야 할 타당성이 없다”고 말했고, 헤르지 할레비 군 참모총장도 “우선 일 단계 휴전에 합의한 후, 군 주둔 여부를 논의하자”고 주장했으며,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심지어 주둔에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격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왜 강경파 내에서도 초강경파로 일관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네타냐후 총리 개인의 생존게임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전쟁이 여기서 끝나게 된다면, 네타냐후 총리와 내각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게다가 이제는 인질의 생환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이유도 덧붙여져서, 사퇴해야 하는 상황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 네타냐후 총리 개인의 부패 피소 건이 되살아날 것이고 형사처벌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네타냐후 총리가 영원히 총리직에 앉아 있을 수는 없고, 언젠가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따라서 네타냐후와 손을 잡은 정치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이른바 카하니스트(Kahanist)와 손을 잡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축출과 선민사상을 강조하며 배타성을 추구하는 유대교 근본주의자다. 바로 이들과 네타냐후의 동맹이 이스라엘의 전방위적 무력충돌을 이끄는 정치적 배경이 된다는 말이다.
 
미국, 이집트, 카타르가 마련한 휴전협상안이 좌초된 후,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의 목표에 ‘북부 레바논 접경지역 주민의 귀환’을 추가했다.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은 북부 주민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전쟁의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레바논에 투입할 경우, 1992년과 2006년에 이어 세 번째이자, 18년 만에 레바논 헤즈볼라와 벌이는 지상전이 된다. 이스라엘은 9월 23일 레바논 남부와 수도 베이루트 북동쪽 베카 계곡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는데, 이 역시 레바논에 가해진 이스라엘의 공습 중 2006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전쟁범죄의 당사자가 평화프로세스의 주체가 되는 역설: 왜 평화프로세스는 실패하는가
 
런던정경대의 글로벌 거버넌스 전공 명예교수인 매리 캘도어는 『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그린비, 2010. 영어판은 2006년에 출판)에서 1990년대 초중반 유럽과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을 필두로 동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에 속출했던, 이전과는 다른 유형의 전쟁에 주목하여 이를 ‘새로운 전쟁’이라고 불렀다. 캘도어 교수는 새로운 전쟁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전쟁의 주체는 비(非)국가적 주체다. 즉 경제가 쇠퇴하고 그에 따라 국가가 쇠퇴하면서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이 침식된다. 조직범죄가 증가하고 준군사집단이 등장한다. 전투원/비전투원, 군인·경찰/범죄자 사이의 구별이 무너진다.
 
둘째, 전쟁목표는 바로 ‘정체성의 정치’다. 즉 민족, 씨족, 종교, 언어에 바탕을 두고 권력을 요구하는 정체성의 정치가 태생적으로 배타적이며 분열적으로 전개된다.
 
셋째, 전쟁수단으로 공포와 증오의 씨를 뿌리려고 불안조성 기법을 차용한다.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고 공포를 주입함으로써 주민을 통제하고자 한다. 그래서 대부분 폭력이 민간인을 상대로 행해진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분석하려면 이 항목에 주의해야 한다.)
 
넷째, 재정조달방식을 보면, 전투집단은 약탈과 인질, 납치, 암시장, 외부원조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폭력이 계속되어야만 외부원조가 유지될 수 있기에, 전쟁 논리와 경제작동 원리가 결합한다.
 
그런데 새로운 전쟁, 예컨대 보스니아, 코소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서방 국가들의 노력이 왜 종종 실패로 귀결되었느냐는 문제를 다루는 캘도어의 분석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서방은 잔혹한 ‘인종청소’를 동반하는 종족 간 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종족 간 분쟁의 당사자들을 평화협상의 당사자로 전환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캘도어 교수는 이게 바로 패착이었다고 분석했다. 즉, 종족 분쟁의 당사자들이 서방의 압력이나 각각 처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잠정적으로 휴전협상이나 평화협정에 합의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는 있다. 그러나 분쟁 주체들의 세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그들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무력충돌이나 전쟁범죄가 머지않아 재발되곤 한다. 따라서, 오히려 종족 간 분쟁의 당사자들을 평화협상에서 배제하고, 시민사회가 주도권을 행사하여 군벌 집단을 포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절실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분석 틀이 지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접근할 때 유용할까. 실제로 캘도어 교수는 2009년 2월 19일 《지금 민주주의》라는 인터넷 매체에 「가자: “새로운 전쟁”」이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글은 2008년 12월 23~24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70여 발의 로켓 공격을 감행한 후 전개된 짧은 기간의 ‘가자 전쟁’(2008년 12월 27일-2009년 1월 18일) 직후에 발표된 글이다.
 
이 글은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공습과 지상군 투입)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캘도어 교수에 따르면, 이스라엘 측의 전쟁 주체가 정부 당국이란 점에서는 전형적인 ‘새로운 전쟁’과 다르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전쟁이 일종의 ‘공동사업’(joint enterprise)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국가는 군수산업, 정보기관, 군대가 통치기관이자 정치적 권위로 통합되는 일종의 ‘전쟁국가’가 되었고, 그들에게 전쟁은 ‘공동사업’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가자 전쟁은 ‘새로운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이스라엘의 점령과 검문소 설치, 주기적 공격은 팔레스타인에서 통일적인 정치적 권위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무법상태를 유도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무장분파, 민병대집단, 파벌, 조직범죄집단이 점차 세력을 키웠다. 물론 하마스는 2007년 가자지구에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후, 타 분파들을 강력히 억압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처한 전반적인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이처럼 공격적인 집단의 네트워크가 계속 힘을 발휘할 토양이 유지되었다. 하마스의 소름 끼치는 말에 따르면 “그들이 우리의 집, 이슬람 사원, 학교를 공격할 때마다 우리가 그들의 집, 유대교 회당, 학교를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캘도어 교수는 가자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극단으로 치닫는 전쟁’이라기보다는 ‘끝이 없는 전쟁’(영구적인 전쟁정신병 상태)이라고 보았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먼저 테러리스트는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데, 민간인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 정부를 완전히 파괴할 역량도 없다. 즉 이들 간의 상호 폭력은 상대방을 완전히 절멸시킬 ‘치명타’를 가할 수 없고, 따라서 각자 나름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장기전만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혹자는 이를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누가 평화프로세스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전쟁국가, 팔레스타인의 극단주의 무장집단이 아닌 시민사회로부터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에서 보자면 2009년 시점에 제시된 이런 시각마저도 낙관적이었다. 2009년 가자 전쟁은 하마스가 70여 발의 로켓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측 5명, 팔레스타인 측 756명이 사망한 23일간의 전쟁으로 끝났다. 그러나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은 민간인 살해, 납치라는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를 취했고, 그 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2008년부터 2023년 10월 이전까지 발생한 모든 사망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러한 불행한 현실은 전쟁의 장기화가 전쟁의 극단화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 2008년 1월 1일부터 2023년 9월 19일까지 6,407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2008년 1월 24일부터 2023년 8월 31일까지 308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특히나 하마스가 왜 이번 기습공격 때 민간인 살해, 납치를 조직적으로 계획, 실행했느냐는 문제를 깊이 따져봐야 한다. 새로운 전쟁의 목적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고 공포를 주입함으로써 주민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사실, 따라서 전쟁수단으로 ‘공포와 증오’의 씨를 뿌리려고 불안조성 기법을 차용하며 대부분 폭력이 민간인을 상대로 행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전쟁이 지속되어야만 외부적 지원이 이어질 수 있기에 전쟁이 곧 그 집단의 경제활동이 된다는 분석도 숙고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한다면, 하마스나 이스라엘 측 모두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폭력을 조직적인 전쟁수단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그들의 전쟁목적, 즉 상대방의 궁극적인 제거에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당국과 하마스가 주체가 되는 휴전협정이나 정전협정 체결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우여곡절 끝에 언젠가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가를 이해할 수 있다.
 
사상자의 누적,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의 광범위한 파괴, 인도주의적 위기의 확대를 막기 위해 지금 당장 휴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스라엘 당국과 하마스 측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프로세스의 궁극적 주체는 양측의 전쟁국가 또는 극단주의 무장집단이 될 수 없고, 상호인정과 평화를 원하는 시민사회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주제어
국제
태그
하마스 이스라엘-하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