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포퓰리즘 비판
| 2024.10.07
2. 탄핵 중독에 빠진 민주당
한국 정치를 ‘탄핵의 함정’에 빠뜨릴 것인가?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한 민주당의 몸부림
올해 7월 2일 더불어민주당은 현직 검사 네 명의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발의했다. 대한민국헌법에 따르면, 법률에서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탄핵을 소추할 수 있는데, 이번 검사 네 명의 탄핵 사유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헌법은 국회가 탄핵소추를 발의할 수 있는 대상을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으로 규정한다.)
엄희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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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재소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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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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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와 관련된 ‘술자리 회유’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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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신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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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윤석열 대통령 관련 명예훼손 사건 수사 중, 압수수색 절차에서 규정을 어겼다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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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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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와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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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7월 2일 검사 네 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에서의 탄핵 사유
민주당이 2011년의 일까지 가져와 이들의 검사직을 박탈하려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엄희준, 강백신, 박상용 검사는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대장동·백현동 개발 의혹, 대북송금 사건의 수사에 참여했다. 이재명 전 대표는 이번 탄핵안의 공동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피고인이 자신을 향한 수사와 관련된 탄핵안 발의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이 점을 의식해서 위와 같은, 관련 없는 사유를 내세웠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민국헌법에 따르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그 대상은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요컨대 네 검사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기각·각하하더라도 그 전까지는 검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 이미 작년 11월에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켜 그 직무를 정지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 탄핵안은 올해 8월 29일 헌재에서 기각됐다.)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홍승욱 전 고검장의 말처럼, 이번 검사 탄핵소추를 “정치 권력의 힘으로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법방해”로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올해 9월 23일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 왜곡죄’의 도입(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는 검사 등 수사 기관이 수사·기소 시 법률 적용을 왜곡해 사건 당사자를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만든 경우, 10년 이하 징역이나 자격 정지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9월 20일 이재명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징역 2년을 구형한 직후 이 법안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 의도는 명백하다. 실제로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서 검찰은 … 이재명한테 유리한 사진은 제출하지 않았다. 이는 ‘법 왜곡죄’상 처벌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대 법치국가에서는 “법정에서 검사가 소추 활동을 하고 유무죄가 밝혀지면 거기에 따라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상식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한국정치 현실에서 이는 수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검찰을 강력히 불신한다. 이번 검사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날,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최근 검찰 조직 행태를 보면 ‘모든 검사는 법 위에 평등하다’는 게 맞는 말 같다”면서 “부패 검사, 정치 검사를 단죄하기 위해 국회 권한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연설했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도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해서 입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해야된다. 이런 국가의 공권력을 남용하는 검사에 대해선 탄핵을 해야된다”라고 발언했다. 요컨대 국회 다수당이 초법적인 검찰을 통제해야 하며, 탄핵이 바로 그 수단이라는 것이다.
검찰과 민주당, 과연 누가 초법적 기관이 되려 하는가?
물론 현재의 검사 탄핵과 ‘법 왜곡죄’ 도입 시도는 이런 거창한 명분보다는,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한 것이다. 허나 근본적인 수준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 간의 권력분립에서 탄핵 제도가 있는 취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라고 규정한다. 최근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를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로 본다. 그 판결문들은 탄핵심판의 기능을 침해된 헌법질서를 회복하고 헌정을 수호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검사로 국한하면,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형법(검사의 직권남용죄나 뇌물수수죄 등에 관한 처벌 규정)이나 검찰청법, 공직자윤리법, 부패방지법 등에 근거하여 처벌될 수 있다. 해임이나 (해임보다 강한) 파면 수준의 징계에 관해서는 검찰청법이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검사의 해임은 징계처분·적격심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파면은 금고 이상의 형 혹은 탄핵을 선고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정리하면, 검사가 직권남용 등 직무수행에서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국회를 통하지 않고 검사를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충분히 존재한다. 다만 공직자의 위법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중대한 경우에, 법적인 처벌 외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헌정을 지키고자 그를 파면시킬 수 있는, 정치적 수단으로 탄핵이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령 트럼프 대통령 시절 하원이 통과시킨 탄핵안의 사유는 ‘반란 선동’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 주도로 국회가 통과시킨 탄핵소추안 네 건은 각하 혹은 기각됐다. 탄핵심판 자체를 열 근거가 없다고 보아 각하된 한 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제시한 탄핵 사유가 헌정을 위협할만한 중대한 문제가 아니며, 게다가 국회의 주장과 달리 대상자들이 법을 어겼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검사 탄핵안에 대하여, 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피의자가 항고, 재정신청 혹은 형사재판을 하면 되는데, 형사사법 체계에 맞지 않게 입법권으로 검사 탄핵을 시도한다는 법조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를 강행하는 것엔,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어 외에 다른 명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국회 다수당이라는 지위를 토대로, 탄핵안 통과 시 대상자의 직무가 정지된다는 점을 활용해 자기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자 탄핵을 남발하고, 나아가 ‘법 왜곡죄’를 도입해 검찰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이다.
‘법 왜곡죄’ 도입은 20대 국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처음 발의한 이래, 21대와 현재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시 발의했다. 발의자들은 여러 국가에서 ‘법 왜곡죄’가 존재하며, 특히 독일 형법을 모범 사례로 든다. (독일 형법 339조, “법관, 기타 공무원 등이 법률 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서 법률을 왜곡한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 참고로 북한 형법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이 조문의 실제 적용은 나치 시절과 사회주의 동독의 사법 불법을 대상으로 했다. 현재 민주당이 생각하는 바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법 왜곡죄’를 적용한 것이다. 게다가 기소법정주의(법적 조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기소)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검사의 기소 혹은 불기소 처분이 정당한지 판별할 객관적·법적 기준이 있는 반면, 기소편의주의(검사 재량)를 택한 한국은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차이도 있다. 즉 관점에 따라 법 왜곡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며, 고소·고발이 남발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독일과 달리 직권남용죄 등 판·검사를 처벌할 현행법이 이미 존재한다. ‘법 왜곡죄’ 도입 역시 근거가 약한 셈이다.
민주당은 검찰이 초법적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을 탄압하기에 이에 맞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약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나, 이는 결국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처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수사할 수 있게 해달라, 민주당이 수사권을 갖게 해달라”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기관 간의 견제를 통한 권한의 제한이라는 원칙을 깸으로써, 입법부의 다수당이 되려 권력이 집중된 초법적 기관이 될 길을 여는 것이다. 이렇게 됐을 때 가장 이익을 보는 자는 거물 정치인일 것이다. 검사는 권력자를 함부로 수사하거나 기소하지 못할 것이며, 자연히 고위 공직자 집단의 부패가 심해질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정치가 빠진 ‘탄핵의 함정’
‘탄핵의 함정’이란, 미국 정치학자 존 폴가-헤치모비치가 최근 라틴아메리카 정치가 탄핵의 악순환에 빠져 탄핵안 발의의 수가 급증한 상태를 표현하며 쓴 말이다. 이는 한 번의 탄핵 성공이 그 다음의 탄핵을 더 쉽게 만들며 나타나게 된다. 물론 한국 정치가 그 정도까지 퇴보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최근 민주당의 탄핵 남발 탓에 한국도 ‘탄핵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해졌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탄핵의 함정’은 과거 ‘쿠데타의 함정’이 민주화를 거치며 변형된 것이다. 1960-70년대에 라틴아메리카 19개국 중 12개국이 군부의 지배를 받았다. 권위주의 정부는 제도적 경로 즉 독립적인 의회나 사법부를 통해 축출될 가능성이 작았고, 대신에 군부 쿠데타가 빈번했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대통령제 국가들에서 탄핵이 정치의 핵심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대통령 탄핵에 국한하면, 1991년 파나마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9개국에서 22건의 대통령 탄핵 재판이 있었다. 이 중 12건이 성공했는데, 8건은 파면이었고, 4건은 탄핵이 확실한 상황에서의 사임이었다.
이는 탄핵심판까지 가서 판결이 난 경우만 센 것이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탄핵안을 발의했으나 표결되기 전 단계에서 폐기되거나, 입법부 표결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좌절된 경우가 수없이 많다. 가령 아르헨티나에서는 1983년에서 2018년 사이 대통령 탄핵안이 87건 제출됐다. 브라질에서는 1990년에서 2018년까지 의회에서 193건의 대통령 탄핵안이 제출됐다. (브라질에는 시민이 적절한 이유만 있으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른바 ‘탄핵법’이 존재한다.) 그 중 153건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에 몰려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파라과이, 페루에서는 탄핵 결의안이나 탄핵 위협이 입법부와 행정부 간 관계에서 ‘핵심 절차’로 자리 잡았다.
이런 탄핵의 악순환에는 당연히 구조적 원인이 있다. 행정부의 부패 스캔들, 경제적 성과 부진, 대통령에 대한 낮은 대중적 지지, 반정부 시위의 만연,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쟁이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다만 폴가-헤치모비치는 이런 요인들에 더해, ‘탄핵이 탄핵을 불러오는’ 경로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특히 2010-20년대에 탄핵 건수가 급증하는 현상에 주목하며, 구조적 요인과 관계없이 탄핵이 자체적으로 증식하는 방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① 심리적 장벽의 약화. 초기의 탄핵 과정이 정치인에게 탄핵 절차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관련 경험을 쌓게 함으로써, 탄핵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길 주저하던 정치인도 이를 채택하기가 쉬워짐.
② 정부의 정책적 역량 약화. 대통령이 법을 위반해 해임된 경우보다, 특히 경제적, 정책적 이유에서 해임될 경우 정부에 큰 혼란을 초래하며, 후임자가 전임 대통령의 몰락을 초래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더 어려워지고, 결국 정치적 정당성이 더욱 약해짐.
③ 아웃사이더와 포퓰리스트의 출마 촉진. 위의 두 요인과 맞물려, 정당의 강령이 빈약해지고, 대통령 후보 검증이 약화되며, 준비되지 않은 아웃사이더와 포퓰리스트가 걸러지지 못하고, 더 질이 낮은 자가 당선되며 정치적 정당성이 더욱 약해짐.
한국 정치는 ‘탄핵의 함정’의 초입에 들어섰는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런 설명을 적용할 수 있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아래의 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각 행정부 기간에 국회가 발의한 탄핵안들의 숫자를 나타낸다.
한국에서도 2018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성공한 이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의 발의 및 의결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각 정부 시기에 발의된 탄핵소추안 숫자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 4건, 이명박 정부 때 1건, 박근혜 정부 때 2건에서 문재인 정부 때 6건, 윤석열 정부 때 18건으로 증가한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의 경우 임기가 절반가량 남은 시점에서의 기록이기에, 현재 페이스대로면 30건을 거뜬히 넘기리라 예측된다.
탄핵 대상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 민주당이 발의한 18건의 탄핵소추안은 14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는 장관, 검사, 방통위원장, 심지어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도 포함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판사, 장관,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는 모두 민주당이 발의했다. (방통위원장 및 직무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 최초 통과 기록도 세울뻔했으나, 대상자 3명이 모두 통과 이전에 사퇴하며 탄핵안이 폐기됐다.)
물론 대통령 탄핵 논의 역시 나오는 상황이다. 올해 9월 25일에 ‘윤석열 탄핵 발의 준비 의원연대 제안자모임’이 민주당 등 야 4당 의원 중심으로 결성됐다. 이 모임은 탄핵 발의를 위한 법적 준비와 함께 필요한 의원 수 확보를 위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며칠 전인 10월 5일, 이재명 대표는 “말해도 안 되면 징치(懲治)해야 하고, 징치해도 안 되면 끌어내려야 한다”며 윤 대통령 탄핵을 강력히 암시하기도 했다.
앞서 라틴아메리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지금의 한국에 비추어 보자. 헌정사상 성공한 최초의 탄핵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도 똑같이 탄핵 발의 및 통과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민주당이 ‘탄핵 중독’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탄핵안들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이라기보다, 주로 정치적 이유에서 발의됐다. 게다가 탄핵 발의의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여러 글을 통해 민주당이 왜 포퓰리즘적인지 설명해왔다.)
이런 현상들을 보건대, 한국이 ‘탄핵의 함정’의 초입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게다가 라틴아메리카와 비교할 때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다. 한국 헌정이 1987년 개헌을 기점으로 군사 쿠데타를 민주적 정권교체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으나, 약 30년 넘게 지난 지금에 이르러 민주화 운동세력을 자임하는 이들의 주도로 한국 정치가 탄핵의 악순환에 빠지려 하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탄핵의 함정에 빠진 가장 심각한 사례로 대통령이 2회 탄핵된 브라질의 사례가 꼽히는데, 이 기록에 한국의 민주당이 도전하려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탄핵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민주당을 위시한 세력의 탄핵 중독이 뿌리가 깊고, 심지어 사회운동세력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도 이에 공감하는 자들이 있기에, 표면적인 수준부터 근본적인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에서 비판 여론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먼저 최근 민주당의 검사 탄핵 시도가 이재명 대표를 지키려는 정치적 술책에 불과함을 명백히 해야 한다. 이는 직무수행에서의 위법을 사유로 들지만 이를 처벌하는 기존의 법 대신 ‘탄핵’을 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법체계에 맞지 않으며, 국회가 통과시킨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사유는 헌정질서를 위협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 즉 결과가 어떻든 탄핵안을 통과시켜 행정부와 사법부의 직무수행을 중단시키는 게 목적인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각종 법안을, 해당 사안을 인식하고 해결하려 하기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해 정쟁을 유발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행태와 유사하다. 이재명을 지키고 정쟁에서 승리하고자 국정에 차질을 일으키고,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제1야당으로서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게 된 데에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있었다. 허나 반년 동안 민주당은 이런 여론을 활용하여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어에 몰두, 별반 다르지 않은 정치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계엄준비설 같은 근거 없는 음모론을 말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사회운동포커스》 「계엄준비설, 제1야당이 벌이는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음모론 남발」(2024.9.25.)을 보라.) 물론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검찰의 탄압 탓을 하며, 그렇기에 더욱 이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제1당이 되고서도 남 탓밖에 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무능함을 보여줄 뿐이다. 이 무능함의 근간에는 사법리스크가 가득한 자를 당 지도자로 내세운 민주당의 자정능력 상실과 이재명을 중심으로 한 사당화의 악순환이 있다. 이번 검사 탄핵 시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이에 어떠한 대의도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검사 탄핵소추안과 ‘법 왜곡죄’ 도입과 같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입법부의 행위가 한국의 헌정을 퇴보시킬 위험성도 인식해야 한다. 검사 탄핵을 정치적 목적에서 남용하는 게 익숙해지면, 특히 고위공직자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며, 한국에서 안 그래도 낮은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것이고,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는 가운데 국민의 불신을 이용하는 자들이 자의적 법 집행을 정당화하며, 결국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이 독재자의 자의적 법 집행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고자 발전해온 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김성균, 「헌정주의란 무엇인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4년 가을호를 참고하라.) 여기서 독재자란 전통적으로는 왕이었지만, 의회의 다수당이나 심지어 인민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혁명기에 국민공회의 대다수를 점했던 자코뱅은, 파리 민중을 대표하는 자신들이 부패한 사법부 대신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었고, 입법부 독재를 시행했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기에 인민재판이 난무했으며, 이는 대중을 선동하는 마오쩌둥의 독재권력을 강화했다. 두 사례는 정의의 이름 하에 사법부의 독립을 깨고, 법의 집행을 다수당에 정치적으로 종속하려는 시도가 결국 자의적 법 집행, 인권 탄압, 독재권력 강화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공직자 전체에 대한 탄핵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에서 민주당 주도로 탄핵안 발의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실을 짚어야 한다. 이를 빨리 끊어내지 못하면, 한국 정치 역시 라틴아메리카처럼 ‘탄핵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비교법학자·정치학자인 긴스버그는, 공직자를 해임하는 조항을 법률·행정명령의 수준이 아닌 헌법에 둔 것에는, 탄핵이 순간적인 정치에 좌우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합의가 전제로 깔려있다고 말했다. 즉 탄핵은 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며, 이를 남발할 경우 한국에서도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만성적인 정치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앞서 언급한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에 깔린 특유의 사법관 내지는 민주주의관을 극복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독재정권의 잔재가 엄존하고, 그 세력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적 세력을 초법적으로 탄압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즉 민주진보세력이 그들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강력히 남아 있다. 한편 자본주의에서 법은 지배계급이 인민을 억압하는 수단에 불과하기에 투쟁, 나아가 혁명으로 그것을 깨부숴야 한다는 생각도 좌파 일각에 남아 있다. 이런 생각은 ‘적’의 모든 행위, 심지어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조차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게 만들며, 탄핵 시도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인류가 발전시켜 온 인권, 법치, 민주주의 개념과 관련 제도의 복잡한 역사는 그런 단순한 이분법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그 역사는 그런 이분법이 오히려 권력분립을 무너뜨리고 독재권력을 강화했음을 보여준다. 사회운동은 자본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 국가까지 포함하여 각국 헌정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장기적으로 형성하고 확산함으로써, 사회운동은 탄핵 중독을 끊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