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4.11.20

2024년 미국 대선 분석: 트럼프 지지자의 연합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③

사회진보연대
 
해리스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 민주주의 수호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이들이 중요하다고 본 이슈가 경제, 이민 문제였던 반면, 해리스에게 투표한 이들은 민주주의와 낙태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해리스 투표자와 트럼프 투표자가 중요하다고 본 이슈 [출처: NBC]
 
실제로 해리스 캠페인은 ‘민주주의 수호’를 가장 강조했다. 해리스는 연설에서 특히 두 가지 문장을 주로 사용했고 유행시켰다. 첫째, “나는 트럼프 같은 유형의 사람을 안다.” 이는 여러 범죄자의 유형을 상대해 온 검사 출신으로서 해리스가 보기에 트럼프 역시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둘째, “우리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구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를 혐오가 판치고 국민이 분열되며 민주주의가 파괴된 암흑기로 묘사하며, 트럼프가 귀환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뽑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허나 해리스 캠프가 이번 대선의 3대 쟁점에 관해 얼버무리거나 트럼프를 일부분 따라하는 등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내는 가운데 ‘트럼프는 안 돼’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자, 유권자 사이에서 해리스는 현실은 모르면서 이상만 설파한다는 이미지, 독자적 비전 없이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가령 미국인이 많이 보는 TV쇼 SNL에서 대선 캠페인을 풍자한 회차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해리스 캠페인을 ‘분위기는 신나지만 메시지가 모호’하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실제로 해리스의 유세들을 보면, 비욘세 같은 유명 가수가 공연하거나, 유명 배우가 나와서 좋은 말들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지만, ‘트럼프는 안 된다.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추상적 메시지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TV쇼 SNL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이런 상황에서 해리스 캠프는 캠페인 중반부터 낙태권 이슈를 밀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관들 탓에,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어졌던 일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선 과정 후반 때 해리스 캠프가 여성권을 부각하며,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인 ‘백인 여성’을 끌어들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이 나왔다. 실제로 대다수 집단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상승했던 반면, 백인 여성 집단에서는 2020년 바이든 대비 이번 해리스 지지율이 3% 올랐다. 다만 이를 큰 성과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낙태권 문제에 관해서, 트럼프 캠프는 연방대법원의 최근 결정이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 차원의 강제를 제거하고 각 주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낙태에 관해 결정할 ‘자유’를 준 것이라 주장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봤을 때, 민주주의 수호나 낙태권 보장 이슈가 경제와 국경위기 문제 대응의 필요성을 이기지 못했다고 평할 수 있겠다. 3대 쟁점에서 바이든-해리스 심판론이 거센 가운데, 이를 정면돌파 하기보다 다른 쟁점으로 우회했던 해리스 캠프가 메시지 측면에서 패배한 셈이다.
 
 
대중운동의 차이
 
메시지 측면 외에, 선거운동의 방식 정확히는 트럼프/해리스 양측 캠페인에 대중이 참여하는 정도와 방식이 달랐던 것도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트럼프 캠페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한 것에 비해, 해리스 캠페인은 상대적으로 공식 광고와 유세 중심으로 진행됐고, SNS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 이 차이는 캠프의 역량 차이 탓이라기보다는, 대중이 양측의 메시지에 호응하고 스스로 관련 컨텐츠를 생산·공유하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주의 관련 비공식적 매체의 사례 [출처: 유튜브]
 
트럼프 캠페인의 경우, 트럼프가 지시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많은 트럼프 지지자가 경제, 이민, PC의 세 쟁점을 중심으로 SNS에서 컨텐츠를 다양하게 생산·공유하고 있다. 폭스뉴스, 뉴스맥스 같은 언론사나 트럼프가 직접 만든 트루스소셜 이외에도,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매체가 많다. 가령 유튜버 ‘Peter Santenello’나 ‘Nick Johnson’과 같은 이들은 ‘주류 언론’이 포착하지 않는 ‘진실’을 밝힌다는 취지로, 미국 전역을 누비며 쇠락한 경제, 국경위기, 마약과 범죄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고, 인터뷰를 통해 대중의 불만과 트럼프 지지 여론을 보여준다. ‘Joe Rogan Experience’ 같은 유명 채널의 트럼프, 밴스 대담 영상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밴스와 트럼프가 나온 후 대선 판세가 완전히 넘어갔다는 분석도 있다.) ‘Daily Wire’ 같이 트럼프주의적 메시지를 각종 재미있는 형식으로 풀어내는 채널이나, 'Michael Knowles'나 ‘Tim Pool’ 같이 트럼프주의자들이 출연하는 채널도 유명하다. (언급한 채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런 컨텐츠들의 규모와 다양성, 인기는 해리스 지지자들이 생산·공유하는 것에 비해 훨씬 크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주류 언론의 예측이 빗나갔던 반면, SNS에서 활동하는 자들이 트럼프의 승리를 점쳤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해리스 캠페인에 대한 지지자의 참여 수준이 트럼프 쪽에 비해 떨어졌던 것은 양측의 기조 차이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해리스 캠페인 취재를 담당했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커피 맛이 똑같을 것이라는 신뢰감은 물론 중요하다. 해리스 캠페인의 연설 대본, 그리고 그녀가 초기 몇 주 동안 즉흥 인터뷰를 피한 것도 그런 논리를 따른 것이겠다. 하지만 이 신중하게 관리된 방식은 전체 캠페인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유세장은 활기찼고 음악도 훌륭했지만, 해리스는 예상치 못한 말을 하지 않았고, 유세에서 연설한 다른 연사들도 대체로 같은 대본을 따랐다.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하면, 트럼프 캠페인은 대중운동 중심으로 진행됐던 반면, 상대적으로 해리스 캠페인은 해리스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유세 중심이었고, 대중이 참여하는 정도가 더 약했다.
 
 
보수주의의 승리인가 인민주의의 승리인가
트럼프주의 하의 유권자 연합은 지속 가능할 것인가
 
공화당 정치전략가이자 『인민의 당: 다인종의 인민주의적 연합이 공화당을 재편하다』(2023)의 저자인 패트릭 루피니는 대선 직후 대담에서, 이번 대선은 미국 정치의 근본적 재편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양당의 지지기반 형성에서, ‘교육수준’과 ‘제도에 대한 신뢰’라는 구분선이 재산과 인종에 따른 과거의 구분선을 대체했다는 분석이다. 즉 공화당의 지지기반이 ‘부자 백인’ 중심으로부터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 다인종 저학력 인민의 연합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의 분열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다양한 공화당 대선 연합을 구축했으며, 앞으로 수십 년간 중요할 정치적 경향을 이끌었다. 이 경향이 계속된다면, 이는 과거 20세기의 계급 구분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당 시스템의 탄생을 의미할 것이다.” 심지어 루피니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룬 유권자 연합을, 2차 세계대전 후 민주당이 구축했던 ‘뉴딜 연합’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 유권자 연합은 뉴딜 연합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 먼저 경제적 조건이 다르다. 뉴딜 연합이 내부의 차이와 쟁점에도 불구하고 뭉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의 수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케인즈주의적 정책도 이런 조건의 결과이자 원인이었다. 반면 트럼프 연합은 불황에서 탄생했는데, 이들이 주창하는 트럼프주의적 경제정책이 뉴딜 연합이 겪었던 경제성장을 재현할 수는 없다. 이번 대선에서의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연합을 내파하는 원심력이 계속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루피니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한 논점을 던진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인종에 따른 구분선이 약해지고 교육수준이 더욱 중요해진 점에 대하여, 이는 단지 교육수준의 차이를 넘어, 근본적인 이념적 균열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 이념적 균열은 기존 제도에 대한 태도 차이, 나아가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태도 차이이다. “선거는 사람들이 정책 제안을 평가하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임상적 절차가 아닙니다. 선거는 인기 경쟁이자 이미지 경쟁입니다. 트럼프가 놀라운 점은 머스크의 지지, 팟캐스트 출연, UFC 경기 참여 등을 통해 자신만의 팝 문화 버전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유권자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투사해냈습니다. 이것이 본질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화당이나 민주당에서 이것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루피니는 이 점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핵심 메시지로 내세운 해리스 캠페인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정치에 불만이 있고 전통 정치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이 메시지를 들으면, 민주당이 시스템을 지지하는 당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싫어하고 불신하는 것을 민주당이 공유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죠. 정치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워싱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민주당이 현재 위치한 입장은, 특히 민주주의와 제도적 규범을 지키려는 문제에 있어, 정치인, 정부기관, 로비스트,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워싱턴 D.C. 내부 정치에 대한 대다수 미국인의 정서와 정반대입니다.”
 
정치란 인민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성 정치를 공격하며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팝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며, 공화당도 민주당도 깨닫지 못했던 이 정치의 본질을 트럼프만이 이해했고, 그래서 유권자 연합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계간 사회진보연대2024년 여름호의 트럼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는 트럼프주의의 핵심을, 현실에서의 불만으로부터 출발하나 이를 실제 문제와 유리시켜 ‘가해자’ 지배계급과 기존 제도를 향한 적개심으로 전환시키고, 문제 해결을 유예함으로써 오히려 불만과 지지를 계속 생산하고 유지하는 운동이라 보았다. 이는 민주당의 자유주의·진보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기존 보수주의 세력마저 축출한, 인민주의 운동이다.
 
트럼프주의적 정책을 1기 때보다 더 강경하게 밀어붙였음에도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미국 인민의 삶이 개선되지 못했을 때, 과연 적개심을 분출하고, 기존 제도를 파괴하고, 쾌락을 제공하는 ‘쇼’를 통해 지지자 연합을 언제까지 결속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세계가 얼마나 큰 혼란과 피해를 겪을 것인가? 이것이 이후 4년 동안 사회운동이 분석하고 대응해야 할, 중대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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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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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선 정치적 올바름 트럼프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