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5.02.12
트럼프가 불러올 위험한 세계, 사회운동이 정세의 돌파점을 찾기 위하여
신년 정세강좌 <트럼프 당선 이후 2025년 국제‧한반도 전망> 지상중계
지난 1월 9일,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주최로 백승욱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의 강연 <트럼프 당선 이후 2025년 국제‧한반도 전망>이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강연에는 온·오프라인 포함 40여 명의 활동가와 시민이 참여하였다. 본래 이 강연은 트럼프의 복귀가 국제‧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조망하고자 기획하였으나,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경악스러운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짐에 따라, 대통령 탄핵 국면부터 다루게 되었다.
![](data/focus/photo/3/2355/백승욱_포커스.jpg)
2016년 탄핵 국면과 비교되는 ‘소극 속의 소극’
백승욱 교수는 먼저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언급했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소극으로!”(「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비극에 해당하는 첫 번째 사건은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까지다. 시간이 흘러 소극에 해당하는 두 번째 사건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첫 번째 사건의 배역이 거의 그대로 등장하지만, 한 배역만 사라진다. 바로 민중이다. 그럼에도 너도나도 모두가 자신이 민중을 대변한다며 극이 전개되기에, 두 번째 사건은 소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승욱 교수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소극이라면 현재 상황은 “소극 속의 소극”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6년의 소극은 4월 13일 총선부터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까지의 1국면, 탄핵소추안 가결부터 3월 10일 헌재 탄핵 심판까지의 2국면, 조기 대선이 이뤄진 3국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계엄 사태 이후 상황은 1국면을 건너뛰고 바로 2국면으로 들어갔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2016년의 1국면에서는 운동진영 내에서 하야인가 탄핵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가 대다수의 견해가 하야로 모아졌던 반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탄핵 국면이 시작되었다. 사법의 시간인 탄핵 국면에서 사회운동은 밀려날 수밖에 없고, 민중의 목소리는 아예 무대에서 배제된다. 이처럼 건너뛴 국면 때문에 감수해야 할 대가들이 있다는 게 백승욱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백승욱 교수는 ‘87체제론’, 즉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파시스트적 집단에 맞서 민중들이 끊임없이 저항하여 승리한다는 서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87체제론’은 변형된 ‘계급전쟁’ 형태로 확장된다. 계급관계를 바꾸는 게 목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투쟁과 달리, 계급전쟁은 계급 제거를 목표로 한다. 계급전쟁의 가장 전형적 모습은 농민들이 지주를 섬멸하고 토지를 나눠 갖는 농민전쟁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제거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복잡한 구조와 모순에 대한 분석 없이, 사악한 특권층을 찾아서 처단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쉬운 그림’은, 새로운 적을 찾아 무한히 반복하며 더 큰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인 중국 문화대혁명은 극단적 폭력으로 종결되었다.
백승욱 교수는 ‘마키아벨리적’으로 지금 정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키아벨리의 핵심은 물질적 힘인 정치를 둘러싼 정교한 통치 시스템에 대한 분석으로서 정치유물론이다. 정치는 우리 편이 이기면 행복하게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세력 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과거에서 분석의 기준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승리주의적인 ‘87체제론’을 넘어 ‘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전환의 반복적 실패’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전환의 반복적 실패’란, 1991년 전후 한국에서 통치계급이 자유주의적 축적‧통치 구조를 전환하려는 시도를 집중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그 결과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즉, 1991년을 전후로 시도된 북방외교를 동반한 경제세계화, 유신체제를 탈피한 경제자유화, 3당통합과 ‘보수-혁신 구도’로의 통치구조 재편, 대북 정책의 외교‧통일 이원적 경로 형성이 모두 실패하거나 뒤틀린 방식으로 남으면서, 자유주의적 제도를 제대로 수선‧정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백승욱 교수는 한국이 처한 상황을 “빌려 받았던 벤츠 자동차가 달리다가 덜컹거리는 상황”에 비유한다. 우리가 설계도 조립도 하지 않은 이 자동차가 1987년에 멈추려고 하자, 이를 뜯어서 역설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실패했고, 대충 기름치고 닦고 조이는 데 그쳤다. 이후 30년 가까이 더 달리던 자동차는 2016년에 다시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자동차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점검하려는 시도는 없다. 차 부순 나쁜 놈을 잡아들이자는 주장, 이참에 새 자동차 사자는 주장, 알고 보니 차는 부서지지 않았다는 주장, 더 나아가면 차가 고장났다고 선동하는 놈들이 있으니 이들을 잡아내자는 주장이 나올 뿐이다. 아무도 자동차, 즉 한국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종합적 분석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세력도 마찬가지다. 이념도 없이 사법 보수주의를 고수하며 ‘경비병’을 자처하던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치며 ‘폭도’라는 게 밝혀졌다. 민주당은 급진적인 포퓰리즘 간판을 달고 실제로는 반자유주의와 반민주주의로 주행하며 오직 집권에 목숨을 걸 뿐이다.
백승욱 교수는 사회운동에 대한 뼈아픈 평가도 놓치지 않았다. 백 교수는 한국 사회운동이 “통치에 대한 분석을 포기”하고 “우리 민중의 위대함”만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관점은 아무런 진전된 분석도 결론도 없이 2008년, 2016년, 2024년 8년마다 ‘위대한 민중’의 등장에만 주목할 뿐이다. 한편, 백 교수는 현재 제기되는 개헌 논의에도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일상을 파고드는 논의가 되지 못한 채 정부형태 중심의 기술적 논의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오히려 민주노총과 같은 사회운동이 바라는 세상에 대한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회헌장 운동’이 출현하고, 이러한 운동이 발전하며 개헌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2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백승욱 교수는 2023년 출간한 저서 『연결된 위기』에서 ‘얄타체제’가 동요하며 세계질서가 2차 세게대전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대만 위기-한반도 위기가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귀환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가 앞으로의 핵심 쟁점이다. 백 교수는 트럼프가 주장하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미국의 세계 질서 관리의 책임을 굉장히 빠르게 방기하고, 그 책임을 지역 강국들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얄타체제 해체를 더욱 가속화하리라 전망한다. 그 과정에서 세계적 불안정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는 금융의 힘으로 강하게 통합된 탓에, 각 국가가 자체적으로 국내 위기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복지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권위주의적 정치체가 부상한다. 백 교수는 이에 따라 얄타 체제가 네 가지 권역으로 나뉘어 상이하게 해체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얄타 체제 골간이 남아 다자적 안보(나토)가 유지되는 유럽 권역이다. 둘째는 미완의 잠재적 다자적 안보지대인 동아시아 권역이다. 셋째 권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핵강국들이 참여하여 전통적인 세력균형 외교가 등장하는 무대다. 여기에는 인도, 파키스탄, 이란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다가 이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도 이 셋째 권역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권역은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국가로써 생존 자체가 어려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다. 글로벌 사우스는 셋째 권역의 강대국에 줄을 서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거나, 반대로 강대국에 의해 타격을 입고 있다.
백승욱 교수는 현재 정세에서 셋째와 넷째 권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현재 정세에서 위기가 가장 증폭되는 지역은 셋째 권역과 넷째 권역 사이, 바꿔 말하면 “강대국과 인접 영토 사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강대국의 ‘내정 문제’라는 맥락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중국-대만 위협이 모두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반면 강대국 간, 혹은 첫째 권역 국가와 셋째 권역 국가 간의 전쟁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백승욱 교수는 트럼프의 등장이 미국 역사에서 “앞선 시기와의 급격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역사에서 주요한 변곡점으로는 링컨, 루즈벨트, 레이건, 트럼프를 꼽아볼 수 있다. 링컨부터 레이건까지의 시기가 미국을 하나의 국가(Nation)로 통합하는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만든 시기라면, 트럼프의 시기는 이를 허물고 퇴각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럼프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의 인터뷰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퇴각해야 하는데 군산복합체가 아버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를 고려할 때, ‘아메리카 넘버 원’이 상징하는, 미국식 국제 질서 개입 방식이 급격히 종결되고 ‘아메리카 퍼스트’, 즉 미국의 이해관계가 최우선이 되는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백승욱 교수는 트럼프 2기에서 주목할 만한 쟁점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트럼프식 ‘거래의 정치’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권이 수용하기 어려운 인물을 장관 후보로 제시하고, 어디까지 수용될지를 타진하며 ‘거래’를 시도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관 후보자들이 장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임명된 게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들이 “각각의 부서를 폭파하러 가는 특공대”일 수 있고, 트럼프는 이들을 통해 ‘망치 들고 정치하기’를 실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론 머스크를 둘러싼 쟁점이다. 머스크는 본래 민주당 지지자였으나, 갑자기 돌변해 트럼프 대선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 백승욱 교수는 자율주행 자동차, X(구 트위터), 스페이스 X와 같은 핵심 사업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려는 것이 머스크의 목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기업을 우위로 삼는 머스크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추구하는 트럼프와 잠정적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고,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일례로, 머스크의 국적은 세 개다.
마지막 쟁점은 ‘딥 스테이트’(그림자정부) 해체다. 백승욱 교수는 트럼프가 말하는 ‘딥 스테이트’란, 곧 ‘법인 자본주의에서 기업에 대한 공적 규제를 실행하는 안정적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19세기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며 등장한 20세기 자본주의는 미국 중심의 법인 자본주의 시대였다. 사적 권리를 지닌 개인 간의 계약관계가 중심이었던 19세기 자본주의와 달리, 20세기 자본주의는 법률에 근거한 법인 간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이 관계를 조율하기 위한 법령과 제도가 필요해지면서 행정부는 매우 크고 복잡해졌다. 그런데 트럼프가 보기에 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은 무의미하다. 기업처럼 탄력적 조정도 불가능하고, 마음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관료들도 많기 때문이다. 1기 행정부 시기에는 실패했지만,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는 본격적으로 법인 자본주의의 공적 시스템을 해체하려고 나설 수도 있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 법인 자본주의의 기초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시도가 실제로 성공했을 때의 결과는 예상키 어려울 정도로 위험하다. 법인 자본주의는 기업에 대한 법률적 규제와 함께 노동조합에 집단적 권리를 부여하는 기획도 포함한다. 법인 자본주의를 파괴하면, 이 집단적 권리와 관련한 정치체들 또한 파괴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복지국가는 아니지만 사회보장 지출이 상당한 국가다. 트럼프가 ‘망치 들고 정치하기’를 실제로 실천했을 때, 미국 인민과 노동자계급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백승욱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까지 감행한 북한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먼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핵무기 고도화와 대남 전략 변경으로 이어진 북한의 새로운 전략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의 새로운 전략은, 2017년 6차 핵실험으로 만든 핵이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고 남한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오판에 대한 정정을 전제로 한다. 즉, 미국에 실질적 위협을 가하는 핵무력을 세우는 한편 남한을 배제해야 한다는 판단을 새롭게 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되 북한 본토에서 발사하지 않는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과 남한을 타격할 수 있는 전술형 핵무기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핵무력을 고도화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이에 따라 북한의 핵보유 전략은 기존의 촉매형, 즉 경제·외교·군사적 거래를 위한 핵보유 전략에서 2019년 이후에는 비대칭적 확전형, 즉 상대국의 재래식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분쟁 초기 단계에 상대국의 군사·민간 목표물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는 신속하고 비대칭적 확전 능력을 보유하는 전략으로 변경된다.
또한, 2022년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완전히 폐기하고 김정은 시대의 상징 이념이 된 ‘우리국가제일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김일성 민족’과 대한민국을 구분하는데, 근본적으로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 정치와 ‘우리 민족끼리’가 그릇되었다는 평가를 함의한다. 김정일 시대와 결별한 김정은은 더 앞선 시기인 김일성 시대로 돌아가는데, 이 시대의 북한은 소련과 중국 사이를 계속 탐색하며 중국이 자국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백승욱 교수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이 세 가지 함의를 지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지정학적 함의다. 북한은 러시아에 군사력을 지원하는 대가로 푸틴을 중재자로 삼아 미국과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트럼프는 푸틴의 보증으로 북한이 미국을 향한 전략핵은 동결·감축하되 남한을 대상으로 하는 전술핵은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거꾸로, 트럼프의 보증으로 현상 유지를 전제로 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될 수도 있다. 이는 한반도 분단과 유사한 방식인데, 다만 관리 대상이 될 전선이 2400km에 달해 매우 길며 현상을 관리할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러시아가 나토의 개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종전 관리는 독일이 책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독일 재무장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고, 현재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독일을위한대안(AfD)과 같은 극우파가 주도권을 잡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 역시 아브라함 협정에 기초하여 이스라엘 우위로 해결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의 미국은 유럽, 중동, 한반도에서 힘을 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전술핵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는데, 트럼프는 주한 미군 철수를 위협하며 안보 보장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남한에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군사기술적 함의다. 북한은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방공미사일 S-400을 지원받아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남한과 대등한 군사적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백승욱 교수는 이를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전쟁하는데 헤즈볼라가 어느날 갑자기 아이언돔을 갖게 된 것”으로 비유했다.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S-400으로 미사일 방어체계를 형성했으므로, 북‧중‧러가 공동의 유라시아 미사일 방어체계를 가동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군사운용적 함의다. 백승욱 교수는 언젠가 북한으로 돌아올 ‘참전 용사’들이 마치 과거 한국의 ‘월남전 참전 용사’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이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지지층 내지는 새로운 엘리트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승욱 교수는 중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트럼프가 다자주의를 버리고 푸틴도 이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시진핑이 다자주의 질서의 중심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이 과정에서 중국이 대내적으로는 통제를 지속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내년은 중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이 되는 동시에 시진핑의 네 번째 연임이 결정되는 시점이다. 백 교수는 시진핑이 현재 과시할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다시 대만에 위협적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4연임에 도전할 것인지 아니면 APEC 의장국가로서 유연한 태도를 보일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세의 돌파점을 찾기 위하여
백승욱 교수는 강연 도중에, 현재 혼돈을 겪고 있는 세계 정세를 설명하기 위해 “1933년 독일은 다시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치는 1932년 독일 총선에서 불과 33.1%를 득표했지만, 1933년 집권에 성공한 이후 파시즘과 세계전쟁이라는 비극의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질문은 파시즘과 세계전쟁의 시대로 가는 길이 현재 우리 앞에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백 교수는 정세가 엄중할수록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이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 정세를 분석하고 역사의 참조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정세를 돌파할 지점 또한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