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5.04.08
계엄과 탄핵,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2025 상반기 서울지역 공개강좌 지상중계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부터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극단화된 정치양극화와 사회적 혼란이 한국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위기에서 우리는 다시금 ‘헌정’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헌정 수호나 헌정 복원이라는 말이 진영을 막론하고 회자되었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헌정’의 개념과 원리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탄핵 심판이 있기 이틀 전인 4월 2일에 진행된 공개강좌는 “계엄과 탄핵,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헌정’이라는 개념의 기원을 살피고 ‘헌정주의’의 관점에서 한국 헌정사를 되돌아본다. 나아가 현행 통치구조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진단하고,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후퇴 흐름 속에서 한국 민주정의 위기를 성찰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운동의 과제와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참가자들과 토론하고자 했다.
1. 화두
“탄핵 이후 ‘정치의 시간’이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날 강사로 나선 임지섭 정책교육국장은 이러한 화두로 강연을 시작하며, 현 정세와 관련한 몇 가지 논점을 제시했다.
#1. 대통령과 야당(국회) 간 극렬한 대립이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국면을 거치며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중적 갈등으로 격화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집회와 지금의 집회를 비교했을 때 양상이 유사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를 이제는 우파 집회도 외친다는 점이다. 같은 헌법 아래 살며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도, 진영 간 대립은 격화되어 정치적 경쟁 차원을 넘어섰고 서로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한국 정치에서 분열과 극단화가 이토록 악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2. 계엄 사태 이후 국회는 신속히 계엄 해제를 결의하였고 시민들은 즉각 광장으로 나섰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시민들의 성숙함과 광장 정치를 상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권위주의와 극우 대중운동의 부상을 지적하며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기도 한다. 만일 한국 민주주의가 전례 없는 사태를 극복할 만큼 힘이 있다고 평가하더라도, 그 힘으로 어떻게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 언뜻 보아 엇갈리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3.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면, 한국만 이러한 난리를 겪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퇴보 흐름이 대두됐는데, 탈냉전 정세에서 진행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가 출현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선거 지원 국제기구’(IDEA)의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국 자료에 따르면, 민주주의 후퇴국과 권위주의 국가가 점차 늘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국민주권을 우선시하며 대의제를 부정하는 인민주의가 부상하고, 행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푸틴 같은 권위주의적인 스트롱맨이 지도자로 등장했다.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던 미국도 트럼프 집권 이후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격하했다. 한국과 여러모로 닮은 대만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되지만, 북·중·러와 자유주의 진영의 갈등이 커지며 그 영향으로 정치양극화와 위기가 심화했다.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은 최근 한국의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4. 위와 같이 세계 전반이 민주주의와 헌정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 수호’ 또는 ‘헌정 복원’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내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특히 서부지법 폭동 이후 극우 대중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위험은 커졌고,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지배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우려는 타당하지만, 대중운동 간에 이어지는 충돌 그 자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란 세력 척결’의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내란 세력은 누구이고, 내란 세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그 범위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이고, 어떤 방법으로 척결할 것이며, 설령 내란 세력을 척결했을 때 한국은 정치 위기를 극복하고 헌정을 복원할 수 있을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대안을 찾기 위한 진지한 고찰과 토론이 필요하다.
본 강좌는 위에서 화두로 던진 질문들을 함께 논의하고자 ‘헌정주의’에 주목한다. 강좌의 키워드는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헌정주의’ ▲‘헌정주의 없는 헌법’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 ▲한국의 통치 형태 및 권력구조로서 ‘제왕적 대통령제’와 그로부터 파생된 ‘정치양극화’로 요약할 수 있다.
2. 헌정주의란 무엇인가
보통 헌법이라고 번역되는 ‘Constitution’을 사전에서 찾으면 순서대로 ‘헌법’, ‘정치체제’, ‘(기존의) 제도나 관행’이라는 뜻이 나온다. 헌법의 기원은 영국과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정치 관행과 정치과정을 중시하던 영국은 성문헌법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1688년 영국 명예혁명 이후 헌법은 “특정의 확고한 이성 원칙에서 유래한 일단의 법, 제도, 관례”이자 “공동체의 통치 원칙으로 동의한 일반적 체계를 구성하는 특정의 확고한 공공선을 지향”한다는 뜻을 지녔다. 한편 미국은 1787년 성문헌법을 제정했는데, 미국 헌법은 정부의 권한과 그에 대한 제약 규정을 담은 문서였다. 그리고 명문화된 헌법 조항뿐만 아니라 제도와 관습까지도 포괄하는 것이 헌정이다. 임지섭 국장은 “개인의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해 정부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법, 제도, 관습으로 제한하는 것이 헌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헌정주의’란 무엇일까? 헌정주의는 “통치 및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다. 여기서 헌법과 헌정의 목적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므로 헌정주의 역시 그를 목적으로 삼는다.
임지섭 국장은 헌정주의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영미의 헌정사를 소개했다. 헌정의 시초로 여겨지는 영국 헌정은 ‘법의 지배’와 ‘의회의 지배’가 핵심이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인치(人治)를 막기 위해 합리적이고 미리 정해둔 규칙(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칙을 만드는 곳이 바로 의회다. 의회의 지배란 자유민의 대표자로 구성되는 의회가 최고의 주권 기관으로서 의회주권을 가지고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 헌정의 역사는 아주 뿌리 깊은데, 1215년 대헌장(마그나카르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628년 권리청원과 1689년 권리장전을 거치며, “어떤 통치자도 법이나 재판을 통하지 않고서 마음대로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할 수 없다”, “국왕은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정지시키거나 조세를 거둘 수 없다”와 같이 현대까지 통용되는 원리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사법부는 왕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원리도 도출했다.
영국 헌정주의는 의회가 왕권을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과정을 거치며 형성됐는데 이를 ‘정치적 헌정주의’라고 한다. 한편 로크가 제기한 ‘소유적 개인주의’는 영국의 헌정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크는 “개인의 신체와 사상, 그리고 자기 노동에 기반한 소유를 침해할 수 없으며 그것이 개인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이는 영국 헌정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며 이후 자유주의로 이어진다.
이어서 강사는 미국 헌정을 소개했다. 영국에서 대륙으로 건너간 미국인들은 영국의 헌정을 수용했고, 연방을 이루기 전부터 각 주마다 헌법을 세웠다. 그러나 미국 헌정은 영국 헌정에 두 가지를 추가했는데, 바로 ‘인민주권’과 ‘삼권분립’이다.
1787년 제정된 미국 연방헌법은 인민에 대한 정부의 강압을 제한하기 위해 ‘인민주권’을 제시했다. 영국과 달리 국왕도 자연 귀족도 없던 미국에서는 인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게 했고, 압제가 있을 때 인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모든 인민에게 주권이 부여된 것은 아니었고 자격 요건이 있었다.) 그런데 강사는 인민주권이 곧 다수파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다수의 압제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었는데, 당시 제헌자들은 이 ‘민주적 전제주의’를 우려하며 소수자의 권리와 다원주의를 강조했다.
한편, 미국인들은 명문화된 헌법 없이 그때그때 관습에 따라 사안을 처리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불문헌법의 모호성과 함께 과도한 내용 변경 가능성이나 집행 불가능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함부로 수정하기 어려운 성문헌법을 제정했다. 이는 영국 헌정에서 발전·계승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미국 헌법 제1~3조는 각각 입법, 사법, 행정을 규정하고 있다. 각기 다른 세 기관에 권력을 부여하는 ‘삼권분립’을 명시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한 헌법의 집행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 헌정주의는 권력 삼부를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제도화하고 대통령과 행정부가 입법부와 유권자에게 소명 책임을 지도록 한다. 강사는 『미국 헌법을 읽다』(양자오, 2018)를 인용하며, 미국 헌법에서 인민은 자유롭고 정부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짚었다. 미국 헌법에서 “인민의 동의하에 정부에게 양도한다”고 적히지 않은 권리는 본래 인민에 속한다.
강사는 “따라서 인민의 여러 권리를 헌법에 나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부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제한하기 위해 정부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강사는 이렇게 영미의 헌정사에서 비롯된 헌정주의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니었으며, 현대 사회로 이행하는 구체적인 역사에서 도출된 원리라고 강조했다.

3. 헌정주의 없는 헌법’과 민주화
다음으로 강사는 ‘헌정주의 없는 헌법’에 대해 설명했다. 19~20세기에 이르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헌법을 제정했는데, 헌법의 본래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헌법을 도구화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 예로 19세기 말 제국주의 발흥기에 국가의 정당성을 천명하기 위해 군주가 신민에게 하사한 ‘흠정헌법’이 있다. 한국사에도 대표적인 흠정헌법이 있는데, 바로 고종이 만든 ‘대한국국제’다. 대한국국제는 공법(국제법)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대한제국의 정치체제를 전제정치로 규정하고 황제의 무한한 군권 행사를 보장한다. 이는 헌정주의를 결여한 것으로, 법의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일 따름이다.
강사는 ‘헌정주의 없는 헌법’을 연구한 헌법학자들을 소개했다. 먼저 독일의 카를 뢰벤슈타인은 20세기 초 가장 진보적인 헌법으로 평가받는 바이마르 헌법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과 나치의 지배를 낳았는지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그는 헌법을 3가지로 구분한다. 하위법들의 규범이 되고 헌정주의의 핵심을 잘 담고 있는 ‘규범 헌법’, 조문은 좋은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잘 작동되지 않는 ‘명목 헌법’, 현실에서는 작동하지만 헌정주의를 결여한 ‘의미론적 헌법’(또는 ‘모조 헌법’)이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조반니 사르토리도 뢰벤슈타인과 비슷하게 헌법의 종류를 구분한다. 뢰벤슈타인의 규범 헌법과 유사한 ‘보장 헌법’(또는 ‘본연의 헌법’), 의미론적 헌법과 유사한 ‘명목 헌법’, 명목 헌법과 유사한 ‘가장 헌법’(또는 ‘가짜 헌법’)이 그것이다.
이어서 강사는 20세기 아시아의 민주화 과정에서 성취한 헌정주의를 평가한 앨버트 첸을 소개했다. 첸은 헌정주의를 3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진정한 헌정주의’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성취된 헌정주의로 사실상 자유민주주의와 동의어다. 둘째 ‘공산주의/사회주의 헌정주의’는 소련식 당-국가 체제를 정당화하는 헌정주의로, 아시아의 특수한 맥락을 반영한 것이다. 셋째 ‘혼합 헌정주의’는 자유주의적 요소와 권위주의적 요소가 혼합된 것으로, 현실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첸은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진 가운데. 이 시기 아시아에서 ‘민주화’란 당-국가체제 또는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만,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시민의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제도가 확립됐다.
그러나 첸은 아시아의 민주화 과정에서 헌정주의와 민주주의가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임지섭 국장은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곧 인민주권의 실현인데, 첸에 따르면 아시아는 일당독재나 군부독재 체제하에서 다수의 의지를 반영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확립을 곧 ‘민주주의’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1987년 개헌 당시 대통령직선제를 곧 민주주의의 성취로 받아들인 한국을 떠올릴 수 있다.
강사는 헌정주의 본연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첸이 연구한 헌정주의의 네 가지 측면을 설명했다. 첫째, 헌정주의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통치자가 법의 지배에 따라 권한을 사용하는 통치구조(권력구조)를 갖춰야 한다. 둘째, 의회정치와 정당정치가 탄탄해야 하고 정치인 간에 헌법을 지키려는 정치문화가 있어야 한다. 셋째, 법의 지배가 실현되기 위해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충분히 독립되어야 한다. 넷째, 핵심적으로 시민사회와 시민의식이 중요한데, 주권자인 시민이 헌정주의를 얼마나 체현 또는 지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4. 헌정주의를 결여한 한국 헌정사
불행히도, 2000년대 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가 민주화에는 성공했으나 그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지체되거나 실패했다는 견해가 많다. 강좌에서는 이 문제를 ‘헌정주의 없는 헌법’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헌정사와 정치를 바라보고자 했다.
강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헌정주의 없는 헌법’이라는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양극화’로 나타난다. 두 현상은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의식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양극화를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나 어차피 다 같은 지배층의 통치 수단인데 우리가 이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지, 진보세력이 강력한 대통령 권한을 활용해 시원하게 개혁을 추진하면 되는 것 아닌지, 정치양극화는 새로울 것 없는 지배층 사이의 이전투구 아닌지, 오히려 정치양극화 속에서 제3의 대안세력이 부상할 수도 있는 것 아닌지 말이다. 강사는 이러한 의문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대통령중심제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실패’의 주요인이기에 이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사는 대통령중심제의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국민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의원을 직접 선출함으로써, 대통령과 국회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이원적 정통성’ 문제가 생긴다. 즉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통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이 둘이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교착 상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중심제가 양극화된 정당 체제와 결합했을 때 민주주의의 위기는 더욱 커진다. 한국의 극단화된 갈등을 돌이켜 보면, 의회 다수당의 단독입법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었고, 탄핵 남발로 공직이 공석으로 남게 됐으며, 여야 합의가 관례인 예산안은 파행에 치달았다. 남미의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듯,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대통령은 비상조치나 초법적 방법으로 갈등을 일소하려 한다.
강사는 이와 함께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도 문제로 지적했다. ‘정치의 사법화’는 합의와 정치 관습, 정치과정을 통해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라 사법부에 판단을 맡겨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는 법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할 사법부 자체가 정치화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검경의 수사와 기소, 재판관의 임명, 헌재의 판결 등을 둘러싼 정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민사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의회, 정당, 그리고 법의 지배를 몹시 신뢰하지 못한다. 한국이 민주화에 성공했으나 민주주의 공고화는 실패했다는 증거다. 덧붙여 강사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외, 2018)를 소개하며,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미국 역시 민주주의 공고화에 실패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강사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양극화의 기원을 한국 헌정사 속에서 되짚었다. 이에 따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원형은 1948년 제헌 과정과 이승만 정권부터 형성됐다. 1948년 제헌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통치구조를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처음 국회 헌법기초위원회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한다. 그런데 당시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이승만은 위기 상황인 남한에서 강력한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헌법 초안의 본회의 상정 하루 전에 대통령중심제로 바꿔버린다. 당시 대통령은 국가원수라면 가질법한 권한을 넘어, 아무런 제한 없는 계엄선포권과 의회의 고유 권한인 법률안 제출권 및 예산안편성권까지 가졌다. 한편 이승만은 국회와 대립이 격화할 때마다 군경과 대중운동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했다. 재선을 원한 이승만은 1952년 계엄령을 선포해 의회와 야당을 압박하고,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발췌개헌을 했다. 2대 대통령으로 재선출된 그는 이 과정에서 자유당을 만들고 3대 국회를 장악한다.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으로 자신에 한해 중임제한을 폐지하려 했다. 이처럼 이승만은 헌법을 변경해 제왕적 대통령제와 식물국회(기생국회)의 원형을 만들었다. 『독립정신』(1904)에서 엿볼 수 있듯, 그가 생각한 대통령은 단지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임금이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했다는 그의 정치관에 '헌정주의'는 없었던 것이다.
헌정사상 유일하게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제2공화국에서 핵심 쟁점은 민주주의(혁명)와 헌정주의의 대립이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반민주행위자와 부정부패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쟁 되었는데,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공판에서는 시위대에 발포 명령을 내린 2인에게만 중형을 내리고 나머지 인사에게는 가벼운 형량만 선고했다. 6월에 헌법이 바뀌었으니 기존의 사건에 새 법을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되며 기존의 사건에 대한 공소는 면죄된다는 면소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혁명파는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피고인들도 처벌해야 한다며 국회를 점거했고, 국회는 「민주반역자에 대한 형사사건임시처리법안」을 통과시켜 불소급 무효 개헌을 추진했다. 무죄로 풀려난 피고인들을 재구속해 처벌받도록 한 것이다. 당시 개헌을 주장한 민주당 신파의 이철승 의원은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는 법률이 부정할 수 없으며, 그 정치가 헌법을 위반해도 위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반민주세력 척결을 위해서라면 헌법의 불소급 원칙을 무효로 해도 되는 것인가? 과연 국민주권의 행사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강사는 헌정주의 관점에서 형법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권력자가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자의적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선례를 남기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이후 혼란이 계속되다 5·16쿠데타가 발발하면서 결국 군부의 지배가 이어진다. 이제 한국에서 내각책임제는 대안으로 수용되지 않게 되었다. 한편, 오늘날까지 적용되는 87년 헌법은 성공한 듯 보이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3공 헌법과 조문이 거의 일치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등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으나, 대통령중심제라는 통치구조는 큰 틀에서 유지됐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2000년대까지 지체되었다. 집권에 성공한 세력은 국가 개혁과 과거사 청산 등을 내세우며 계속해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강조하고,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보수세력 사이의 갈등 격화는 대통령직을 둘러싼 대결적 정치 문화로 이어진다. 이로써 정치세력들이 합의를 창출하지 못한 채, 상대편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거듭되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국가기구들을 물갈이하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은 헌법을 둘러싸고 번지기도 하는데, 특히 헌법소원과 탄핵 건수가 늘었다.
이러한 정치양극화는 결국 최종적 결정자이자 중재자로 여겨지던 사법부도 잠식한다. 이러한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와 법의 지배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꺾는다. 실제로 2016년 대국민 여론 조사 결과, 70.6%가 사법부 판결 불공정하다고 응답했다. 양극화된 두 정치세력은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정치적 동원을 강화하는데, 그들의 영향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양극화는 사법부뿐 아니라 대의기관에 대한 신뢰도 낮춘다. 한국인은 체제로서 민주주의에 만족하지만, 국회와 대의제에는 강한 불신을 표한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와 강한 리더 중심의 통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통령을 직접 몰아내고 새로 뽑으면 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일 수는 있어도 헌정주의라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한국은 권위독재정으로 역류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으나, 헌정주의 없는 민주정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게 강사의 진단이다.
5. 결론
시야를 넓혀보면,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의 심화로 인민들은 기성 정치가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대의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스트롱맨은 인민의 불만을 활용하며 권위주의 정치를 구사한다. 극렬한 정치양극화로 휘발성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국가정체성을 둘러싼 이념분쟁도 잦아졌다. 분열된 시민들은 상대를 절멸시켜야 끝날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정주의는 원체 미약했으나 더더욱 실종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숙고하자고 강사는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부정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이 정치양극화의 한 축을 자임하며 앞장서는 것에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날 강좌에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를 고민하는 많은 시민이 참여했다. 아래는 참가자와 강사가 나눈 질의응답이다.
Q. 의회에 대한 신뢰는 왜 하락하는 것인가? 의원 개개인의 도덕성 결여 문제인가,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하지 않아서인가?
A.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대통령중심제에서 국회가 하는 일이 없다보니 신뢰도 쌓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중심에 있고, 여당은 대통령을 뽑는 당이고 야당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당인 상황에서는 신뢰가 쌓일 수 없는 것이다. 의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예산안편성권이나 법률안제출권을 명확히 책임지고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정치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진보정당이 더욱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 제도 개혁이 필요하지 않나?
A. 특히 2010년대 진보정당은 득표율과 의석수 간 비례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선거 제도 개혁을 주장한 바 있다. 그 방법도 있겠지만 정당이 지역과 현장에 깊이 뿌리 내리고 대중 당원의 정치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현재로 올수록 형해화되는 듯하다. 진보정당 또한 너무 상층 중심으로 움직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사람들이 정치효능감을 얻고자 계속해서 직접 정치를 갈망하고 문자 테러 등 직접행동으로 강력한 리더를 선출하려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풀뿌리 정당을 통한 정치를 어떻게 재건할지 생각해야 한다.
Q.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도 고유의 한계가 있고 주요 선진국도 그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데, 체제의 개혁만으로 작금의 정치양극화를 해소하거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A. 말씀하신 대로 각 통치구조에도 한계는 있다. 이원집정부제에서도 대통령제의 결함 중 핵심인 이원적 정통성 문제가 발생한다. 프랑스 모델에서는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면 총리직을 야당에 넘기고 대통령은 한발 물러나 국가원수로서 외치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것도 일종의 정치 문화이자 합의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소수당에 불과한 자당에서 총리를 임명해 버릴 수도 있다. 한편, 내각제는 이원적 정통성 문제는 없지만 정당체계가 탄탄해야 한다. 정당체계가 무너지면 내각제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현행 대통령제가 극단화된 정치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렇게 볼때, 일단 한국의 통치구조 개편 방향으로 법률안 제출과 예산안편성권을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책임지고 온전히 맡도록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한편, 헌정주의 비교연구에서는 정치양극화의 대안으로 시민사회와 정당의 노력이 강조된다. 단기간에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
Q. 한국 헌정사에서 개헌의 목적은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거나 혁명 세력이 기존의 정부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민주화’도 억압받는 시민이 혁명을 통해 (나와 반대되는) ‘나쁜 것’을 강력한 권력으로 몰아내 주길 바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지금도 개헌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의회정치, 정당정치, 시민의식이 부재한 상황에 헌정주의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희망이 적어 보인다. 한국의 운동 세력은 무얼 해야 하나?
A. 한국 헌정사를 보면, 제헌 의회 의원 가운데 헌법과 헌정주의에 대한 식견을 가진 이들도 꽤 있었다. 다만 치열한 정치적 과정에서 헌정주의를 결여한 이승만 세력에 패한 셈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헌정주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사도 비슷한데, 당시 헌정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혁명이 인민의 압제로 이탈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헌정주의를 어떻게 살려내고 시민사회에서 이야기 꺼내며 확대할 수 있을지 운동으로 밝혀나가야 한다.
Q. 내전을 건강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해소할 수는 없나? 사회운동이 갈등을 줄여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요새 고민 많이 든다. 극단적 정치양극화로 인해 민주정이 내파하는 위기가 긴박한데, 동시에 이 지경이 되기까지 장기적인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운동은 당장의 극단주의를 제어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이념과 실천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내전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해소해 정치공동체를 이어나가는 방안이 바로 ‘헌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위법적인 비상계엄이나 트럼프주의를 지지하는 대중운동도 등장했는데, 이것 모두 대중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이런 대중운동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대중운동의 폭력화된 방향을 어떻게 순치하고 제어할 수 있을지는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