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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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중단되어야 한다

'살인미군 규탄'에서 '전쟁책동 미국반대'로 나아가자

사회진보연대
중동(中東)과 극동(極東)에서 전쟁의 위험이 커져가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국경지대와 인접한 쿠웨이트 사막에서 지난 21일부터 걸프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에 돌입하고 추가파병을 가시화하는 등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엔의 무기사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극동에서는 북한의 핵시설 동결 해제 조치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동결되었던 4개의 핵시설의 봉인을 제거하고 원자로의 재가동을 위한 핵연료봉 이동 및 장전준비 작업에 착수하는 등 핵동결 해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대북강경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3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알 카에다, 이라크, 북한과 3중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 있다며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력사용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예상을 뛰어 넘는 빠른 속도로 핵시설의 재가동을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음에도 미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발언의 수위를 더욱 높여 가고 있다.


명분 없는 이라크 공격 가능한가?

부시 미국 대통령은 8월까지 이라크가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등 모종의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해 왔으나 확증을 내놓지는 못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러시아·중국은 이라크가 테러 세력과 연계돼 있다는 확증이 없음을 들어 전쟁에 반대해 왔다. 결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11월 8일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보유 실태를 공개하고 유엔 무기사찰단도 실태를 현장 조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는 이라크가 '실태'를 유엔에 거짓 보고하거나 사찰단의 조사를 조금이라도 방해한다면 이는 '중대한 위반(material breach)'이며 군사 행동을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도 들어 있다.
사찰단은 11월27일부터 활동에 돌입했지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확증을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이라크도 과거의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파기했으며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가 유엔에 보고한 보고서를 가져가 검토한 후 '중대한 위반'이라고 선언했다. 이미 98년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기사찰 결과 탄저균 등 생화학무기를 개발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이번 이라크의 보고서에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했다는 내용이 빠졌고 이는 이라크가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것이라는 요지다. 이 선언으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은 기정사실화됐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가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를 시리아로 옮겨 은닉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혀 미국의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런 미국과 동맹국들의 행보는 내년 1월 27일까지 제출될 예정인 유엔사찰단 보고서의 최종 결론을 압박하고 이후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쌓기 위한 조치로 보여진다. 그러나 현장 조사 결과가 아닌 이라크의 보고서 내용을 문제 삼아 '중대한 위반'을 선언하고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미국의 태도는 애초부터 유엔의 무기사찰은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부시 정부가 이라크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지난 9·11테러 이후 변화된 미국의 안보전략의 큰 틀에서 파악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올 1월 연두교서를 통해 "미국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에 대해 기다리거나 위기가 가까이 오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선언했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세력은 물론 '위협이 되는'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는 선언이다. 이후 이 선언은 미국에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해 예방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통해 응징하겠다는 국방부의 '선제 공격(pre-emption)'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비타협적 요구들-미국식의 정치, 경제 체제-을 모든 국가가 수용해야 하며 이에 순응하지 않는 정권·사회와 정면대결 및 필요하다면 선제공격도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무력을 동원하여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자 더욱 힘을 얻게 된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와 달리 미국은 이라크가 '치명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성전'으로 사담 후세인을 '악마'로 상징화하고 전쟁을 '도덕적 명령'으로 묘사하는데 더욱 크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악의 세력', '문명의 적'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서양·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구도 하에 성서에서 묘사된 초역사적 정당성을 미국에게 부여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이슬람세계 내에서 극단적 종교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낳을 뿐 아니라 이슬람을 더욱 큰 혼란과 갈등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 걸프전은 새로운 지역질서의 주된 요소였던 이슬람담론의 지배, 종족·종교에 따른 분열, 국가 간 갈등을 자극하고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었다. 이라크의 경우 극심한 경제제재 속에서 국가의 자원을 독점한 정권의 호의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국민이 정권에 더욱 의존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소수민족 문제도 더욱 악화되었다. 이슬람 정치세력들이 지배계급과 외세 주도의 새로운 질서형성에 가담하고 이 신질서에 저항할 비종교적 비판세력이 철저히 파괴된 상황에서 이제 이슬람 민중들은 비타협적 투쟁을 조장하는 테러세력을 영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침공이 재차 감행된다면 이전의 걸프전과 유사한, 그러나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일방적·패권적 노선에 따라 반미정서와 테러리즘의 온상인 중동 지역의 판세를 역전시키고자 할 것이다. 미국경제의 악화로 세계석유시장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도 중요한 근거이다. 이라크의 정권교체를 시작으로 이미 악의 축으로 지정된 이란 뿐 아니라, 사우디, 시리아 등에 정치적 압력은 거세질 것이며 이스라엘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어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이번 전쟁 그 자체가 낳을 대량의 인명살상도 문제이지만, 이후 국가간, 종족간 갈등이 심화되는 위기가 민중들의 삶에 불러올 고통과 왜곡된 정치지형의 형성은 더 큰 비극을 불러 올 것이다.(이상 사회진보연대 11월호, [미국, 이슬람, 그리고 전쟁의 협주곡, 엄한진] 참고)


한반도 위기의 격화와 북한의 생존전략

중동에서의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기가 가중되는 속에 극동에서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 해제조치는 94년 제네바합의에 대한 미국의 불성실한 태도와 미국의 새로운 군사·안보 전략이 가중하는 위험에 대한 반발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의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계획을 구축해 왔으며 최근에는 <핵태세보고서>를 통하여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국가에도 선제 핵공격을 가할 수 있으며 그 명시적인 대상의 하나로 북한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제네바합의는 어떠한 구속력도 가지지 않아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위협은 계속되었고, NPT(핵비확산조약) 역시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의 제어는 불가능한 기만적인 체계일 뿐이다.(자세한 내용은 사회진보연대 11월호, [한반도와 미국 핵무기 위협의 현재성, 임필수] 참고)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제네바합의를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북-미관계로의 개선을 원하고 있다. 농축우라늄 기술을 개발한다는 미국의 의혹을 시인한 이후 북한은 '북-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대화를 재개하지도 않고 제네바합의 위반을 들어 중유제공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북한은 전력생산을 이유로 핵시설 동결을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은 "강경에는 강경으로"라는 북한 고유의 외교적 태도 이외에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할 동안 강경한 조치를 취해 이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 정책은 이미 군사화 초기 단계로 들어섰는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우선 미국의 전략 상 북한과 이라크의 지위는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막대한 석유자원이 존재하고 지역 내 친미적 질서를 만들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라크와 북한 및 동북아시아의 정치지형은 다르다. 아직까지 미국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중시하는 듯 보이며,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의 국가들과 협력적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북한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상의 분석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전체적인 군사·안보적 노선과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다른 전술적 판단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선제공격 포기 없는 평화가 가능한가?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중개자' 역할을 통한 북-미 직접 대화를 추진하거나 미·중·일·러가 참여하는 다국간 협의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2월 26일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면서 "북미가 결국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푸는 방향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시 대통령은 1월 중 특사를 교환하기로 했다.
이러한 김-노의 행보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전제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당선자는 현재 북한의 핵동결 해제 활동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이나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것이므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이 북한의 행보는 점증하는 미국이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반발이자 자국의 안전을 위한 최후의-하지만 군사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므로 위험한- 생존전략일 뿐이다. 이를 북한의 일방적인 협정 위반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따라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근본적으로 제거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 설령 94년의 제네바합의에 준하는 합의가 성립된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에서 확인되듯이 실질적인 미국의 선제공격의 포기와 한반도 군사전략의 변경이 없다면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의 중단과 나아가 9·11테러 이후의 미국의 일방적·패권적 군사·안보 노선의 중단에서 가능하다.


살인미군 규탄에서 전쟁책동 미국반대, 평화실현의 요구로 나아가자

2003년 벽두부터 전 세계를 전쟁에 대한 위협과 공포,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의 일방적·패권적 행보를 막아내기 위하여 남한을 비롯한 전세계 민중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실질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나아가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침공을 반대하는 전세계적인 반전운동에 연대하여, 9·11 이후 미국의 패권적이고 군사적인 노선을 저지해내야 한다. 이미 세계 각 국에서는 작년부터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해서 벌어져왔다. 내년 1월에도 전 세계적인 대규모 반전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남한에서의 반전시위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더욱 큰 호소력과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지난 성탄절을 맞아 영국에 거주하는 이라크 출신 어린이들은 "이라크를 공격하지 말아요. 평화의 기회를 주세요"라고 쓰인 카드를 블레어 총리에게 보냈다고 한다. 대규모 인명을 살상할 전쟁이 코 앞에 닥친 지금, 진정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 6월 두 여중생의 참혹한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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