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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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의 딜레마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의혹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송금 의혹은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듯이 단지 절차상의 하자에서 빚어진 '의혹'일 뿐인가? 아니면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가 주장하듯이 노벨 평화상 만들기라는 음모가 숨어있는 정권의 치부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김대중 정부가 연루된 현대 대북 송금 의혹은 절차상의 문제도, 노벨상 음모도 아닌 햇볕정책의 구조적 한계로 인한 것이다.


대북경제지원의 출발과 한계

90년대 후반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른 북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충분한 경제 지원을 할 수 없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규정을 철회하지 않아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재원조달이 불가능했으며, 100조가 넘는 공적자금 조성으로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대북 지원 재정 수립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햇볕정책이 표방하는 남북 경제협력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재벌을 앞장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9년 방북으로 이미 북한과 교류가 있던 현대는 98년 소 떼 방문을 시작으로 햇볕정책의 선봉을 자임했다. 현대는 독점사업권을 획득했고,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챙겼다. 현재 밝혀진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불법지원과 국정원의 대북송금 지원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햇볕정책의 무능과 딜레마가 만천하에 드러나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떠올려야 하는 사실은, 햇볕정책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 전략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의 각론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햇볕정책은 북한의 경제위기 해결보다는 북미 무기협상의 수준에 제약된 경제협력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제약 속에서 한국정부는 빠른 가시적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시 정권 출범 이후 쉽지 않았는데, 부시 행정부는 99년 베를린 협정, 94년 제네바 협정 등 북미간의 제 협정을 모두 무시하는가하면, 한미일 정책공조그룹이 더욱 노골적으로 MD 구축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군사정책에 협조하고 북한을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을 요구하였다. 2000년 한국정부의 대북전력지원 협상 중단 압력, 2001년 PAC-3, 이지스함 도입 요구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햇볕정책의 구조적 한계는 바로 미국의 대북 정책으로 인한 제약 속에서 남북 교류의 가시적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당시 그나마 가능했던 대안들, 대북전력지원협상, 북일수교에 대한 정치적 지원 등에 대해 등을 돌린 채, 현대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햇볕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내오려 하였다.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의 대북송금의혹에 대한 "절차적 문제/내용적 성과"라는 해명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방도는 무엇일까?

물론 햇볕정책을 넘어서는 것이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가 주장하듯이 다시 미국의 충실한 군사동맹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는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90년대 이후 초지일관 핵-미사일 제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부시 행정부는 이를 클린턴 행정부 시절보다 위험한 방식, 미국의 군수자본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군사적 팽창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라크의 석유 지배권을 위해 유엔의 결의 없이도 전쟁을 강행하겠다는 부시의 결의가 한반도에서 재현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한미일 공조를 넘어선 국제적 지원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북한 사회의 붕괴는 유고나 아르헨티나 등 국가 붕괴 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평화 모색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마저도 말살한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대북 퍼주기 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북한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지원은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 미국 일방주의의 들러리 일뿐인 한미일 정책조정그룹을 넘어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중들의 반미-반전 투쟁이 절실하다

글을 마치며, 이러한 한반도 정책의 변화가 현재의 노무현 정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환상은 애시당초 가지지 말아야 함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노무현은 햇볕정책의 근본적 한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미일 공조를 넘어설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오직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될 수 있는 사항일 것이다. 지금 부족하게나마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연시키고 있는 힘이 전세계 민중들의 투쟁이듯이 말이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함성이 남한을 뒤덮고, 그리고 전 세계 민중들이 우리의 투쟁에 연대할 때, 그 때가 바로 햇볕정책의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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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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