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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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적인 연금개혁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남한 연금체계 재편의 방향성에 대한 비판

사회진보연대
바야흐로 노동자, 민중의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남한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공세가 시작되고 있다. '좀 더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서'라는 치장을 한 이 공세의 핵심에는 국민연금과 기업연금이 놓여있다. 가히 노동자, 민중의 삶에 대한 치밀하고, 적극적인 공격이라 할만한데, 이 글에서는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을 둘러싼 현행의 논의가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도입 시점을 발표한 기업연금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기업연금 도입이 노동자, 민중의 완전하고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라기보다는 노동자, 민중의 생계를 볼모로 금융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팽창 전략에 핵심적인 이해가 걸려있는 사안이라 지적해왔다. 현재 국민연금 개정 논의와 맞물려 진행되는 기업연금 도입 논의는 마치 우리의 비판을 입증하려는 듯 최악의 수순으로 치닫고 있다.


연금개혁은 노동자,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

지금 국민연금 개정논의가 한창이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재정계산제도를 시행하게 되어있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올해 국민연금 재정을 다시 추계해야하는 것이 개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난 4월 1일 국민연금발전방안에 관한 공청회는 보건복지부 차원의 국민연금 개정안을 확정하여 추진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현재 국민연금제도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체계로 설계되어 있어 재정 고갈의 위험성이 크다는 문제의식이 개정논의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내는 돈은 높이고, 받는 돈을 줄여야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결과로 제출되고 있다. 총 3개의 안이 제시되었는데, 현행 소득대체율 60%를 유지하는 안은 내는 돈의 비율을 너무 많이 높여야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고, 나머지 안들, 즉 받는 돈을 내리는 안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그나마 공적연금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국민연금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업연금의 경우, 작년부터 주가가 떨어지고, 경제가 불안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던 '기업연금 조기 도입'이라는 처방이 이제 시행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재정경제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서 증시부양책의 일환으로 기업연금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 또한 3월 19일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센 '기업연금'이란 명칭을 '퇴직연금'으로 바꾸고, 그 적용범위를 4인 이하 사업장과 1년 미만 단기근속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노동부의 계획에 따르면 정부안을 상반기 중에 마련하고 관련법 개정을 거쳐 내년 7월부터 실제 가입이 가능하도록 내년 상반기까지 연금상품 개발 등 준비를 완료하게 된다.

여기서 이러한 국민연금과 기업연금에 관한 논의가 각각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국민연금 개정과 기업연금 도입은 상호간에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고, 이 두 제도에 관한 논의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등의 싱크탱크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 및 퇴직금 등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장기적인 대안은 세계은행이 권고하는 "3층 보장체계(공적인 연금을 최저생계비 보장 수준으로 한정시키고, 사적연금 도입을 통해 개별적으로 노후소득보장 방안을 모색하게 하는 체계)"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업연금 도입과 국민연금 개정 논의는 실제로 3층 보장체계로 전환해가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연금과 기업연금 사이에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에서 어느 정도를 차지하느냐가 이번 개정에서 결정되어야만, 향후 도입하려는 기업연금의 규모도 확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객관적인 진술이 감추고 있는 진실은 국민연금과 기업연금의 역할 분담에 있어서 공적인 성격을 가진 국민연금을 축소하겠다는 의지고, 그만큼을 사적연금의 역할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퇴직금과 국민연금으로 대변되는 노후소득 보장체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노후소득 보장에 매우 불충분하다는 점은 공히 인식되는 바이다. 그러나 이 문제점에 대한 진단이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사적연금에 더 많은 부분을 맡기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식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 모든 문제점의 해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 해답을 완성시키기 위한 근거들을 만드는 방식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안을 주장하는 자들이 펼치는 이데올로기 공세는 매우 파상적인데, 마치 다른 대안은 용납할 수 없다는 굳은 결의의 표현으로 비춰질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처럼 사활을 걸고 기업연금을 도입하고 국민연금을 축소하려는 노림은 무엇인가?


금융화 시대 자본 축적의 동력, 연기금

사실 현 시기 연금체제의 재편은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측면보다는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축적의 동력을 형성하는 측면에서 더욱 절박한 과제이다. 현재 남한 자본주의가 생존하는데 핵심적인 것은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 외국인 투자는 대부분이 주식, 채권, 외환 시장 등의 금융 부문에 유입되거나, 국내 기업의 지분확보에 투자되는 자본이며, 따라서 금융시장,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외자유치에 사활적인 과제가 된다. 이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이미 상당 수준의 금융 자유화 조치를 취했으며, 남은 것은 초국적 자본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 금융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기업연금의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기업연금은 자본시장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거대한 기반이 될 수 있다. 현행 퇴직금제도의 경우 퇴직금으로 지급할 돈을 사외에 따로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장부상의 부채로 처리했다가 퇴직금을 지급할 일이 생겼을 때, 회사의 비용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부채로 처리되어있는 퇴직금 누계액을 추정해보면 2001년 현재 84조 8천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이 액수는 2002년 주식 시가 총액의 1/3에 달하는 금액이며, 만약 이것이 기업연금제도 하에서 기금으로 적립된다면 그 자체로 장기적이고(노동자가 퇴직할 때까지 계속 쌓이는 금액이므로), 안정적인 어마어마한 자금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90년대 미국의 지속적인 주가 상승과 경제호황이 연기금의 안정적인 자금 공급에 기인한 바가 컸다는 평가가 남한에서의 연기금 출현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 이 거대한 자금의 대부분이 투자되는 곳은 바로 주식 및 채권시장이다. 그 이유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직면하여 생산적인 투자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과 더불어 적립된 기금은 필히 외부 전문기관(투신사, 보험사 등 금융기관)에 위탁하여 관리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연기금을 자본시장의 버팀목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도, 금융의 팽창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연기금들이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본시장(특히 주식, 채권 시장)의 적극적 투자가로 활동하면서 투자에 따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기업 및 자본시장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도 남한 자본주의가 기업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다. 남한의 금융시장의 경우 기업투명성이 부족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데 난점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이번 SK 사태를 기점으로 이러한 요구가 높아졌는데, 해외언론들은 한국 경제 상황이 생각처럼 나쁜 것은 아니고, 한국 기업들의 투명성을 제고하면 그 기업들의 주식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기업을 감시하고, 투명성을 요구하는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한에서 기업연금과 같은 새로운 연기금의 탄생은 거대한 자금 공급원의 탄생이라는 의미에 덧붙여 남한 자본주의를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가는 과정에 큰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기업연금, 과연 윈-윈(Win-Win) 게임인가?

기업연금 도입에 대해 자본의 금융화 전략에 노동자, 민중의 삶을 볼모로 잡는 것이라 비판했을 때, 기업연금 도입을 주장하는 많은 논자들은 기업연금이 노동자들에게도 더 많은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체계라 반박한다. 기업연금이 자본에게 축적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은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더 큰 파이를 생산할 수 있고, 현재 불안정한 퇴직금 제도보다 안정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잘라 말하자. 기업연금이 다른 어떤 제도보다 안정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공적연금의 축소를 전제하는 기업연금의 도입은 노후소득 보장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게 된다. 기존의 공적연금 중심 체계가 어찌됐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노후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기업연금, 개인연금 등을 도입, 확대하려는 현재의 시도는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은 공적연금이 보상해주던 범위가 축소되기 때문에 개인들은 별도의 노후소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후의 생계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되는 기업연금, 개인연금은 각각의 능력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된다. 즉, 많은 액수를 적립하고, 또 그것을 잘 투자하면 그만큼 자신의 노후소득이 커지는 것이다. 하기에 이러한 사적연금이 고소득 퇴직자들(사실 연금이 없어도 충분히 노후소득이 보장되는 사람들, 예컨대 골드칼라들)에게는 더 많은 연금액을 보장해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한 만큼의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도외시된다. 게다가 신자유주의가 추진하는 노동의 유연화, 불안정 노동의 확대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을 연금에서 배제한다. 이들은 기업연금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액수도 매우 적고, 개인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여유 재산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후는 알아서 책임져야 하는 사적연금 체계에서 노후소득의 안정성은 판돈의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저소득 불안정 노동층은 갹출금의 액수도 적을뿐더러 직장 및 소득이 불안정하기에 이마저 안정적으로 납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게다가 기업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은 그 운용에 있어서 철저히 시장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는 그 관심사가 아니다.
또 기업연금을 통한 노후소득의 자본시장 투자는 노동자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자본의 금융화에 따라 노동자 다수는 금융시장에 자산을 투입하게 되고, 기업연금의 발달은 가입자 모두가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자산을 가지게 되므로 노동자들을 더욱 금융시장의 이해에 종속시키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종종 생산부문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와 금융시장에서의 이해관계가 분열되는 경험을 겪는다. 금융시장은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이름으로 생산과 고용의 파괴를 동반하는 구조조정 추진을 촉구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개입과 간섭을 무조건 배격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자신의 재산과 노후소득의 많은 부분을 금융시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을 수호하고, 나아가 금융시장의 규율에 맞춰 효율적인 기업통치, 즉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착취에 기반을 두어 수익률을 높일 것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후소득을 위해 자신의 착취를 극대화하는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노동자, 민중의 안정적이고 완전한 노후소득 보장을 요구한다!

현행 퇴직금제도와 국민연금 제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이유로 어떤 식으로든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법정퇴직금제도의 경우, 기업 파산 시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어 비정규,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배제되는 문제,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되면서 퇴직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문제 등이 있다. 국민연금 역시 현재 보장하고 있는 소득대체율 60%가 국민연금을 쉬지 않고 40년간 돈을 내야 받을 수 있는 액수임에 반해, 실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실직 등의 이유로 20년도 채 납부하지 못하여 실제 수령액이 매우 취약한 문제가 있다. 두 가지 모두 노동자, 민중들의 안정적이고 완전한 노후소득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기되고 있는 문제해결 방안이라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안정적이고 완전한 노후소득 보장과는 턱없이 거리가 먼 것들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적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안정적으로 노인들에게 연금을 제공했던 공적 체계가 아주 믿을 수 없는 제도로 치부되고, 투기성이 극심하고 이윤을 좇아 들썩이는 금융시장이 더 안정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이윤을 좇는 사적인 기관들이 노후소득을 더 잘 보장해준다는 말은 숫제 노후 생계를 투기하라는 말이 아닌가? 결국 이것은 연금이 가지고 있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아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과 같이 최소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운 사람들의 노후를 더욱 어렵게 만들 따름이다.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을 둘러싼 논쟁에서 제1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은 노동자, 민중의 완전한 노후생계 보장이다.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는 노후생계를 보장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어떤 연금 체계냐'라는 정책적인 문제가 아니라, 늘어가는 노령 인구를 어떻게 부양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이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나누고, 사적연금을 키우려는 그들의 논리는 이 관점에서 보면 매우 기만적이다. 사적인 것이, 시장에서 관리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근거가 없다. '현재의 공적연금이 이러 저러하게 문제가 많은데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는 물음 자체는 이미 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진정한 쟁점은 노동자, 민중의 미래의 생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방식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더 궁핍하게 하는 것이어도 안되고, 현재의 가난이 노후에 지속되는 것이어도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은 현실의 힘의 논리 속에서, 실제 정책으로 입안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타진 속에서 종종 잊혀진다. 노동자, 민중의 소득을 금융화의 논리에 포섭, 팽창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는 것이 관건이다. 그것은 '3층 보장체계'를 염두에 두고 점차 사적연금의 역할을 키우려는 저들의 논리 자체를 거부하고, 연금의 민영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 어느 정도를 더 받을 것이냐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니다. 전 민중이 완전하고,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왜곡하는 모든 논의의 전제를 뒤엎어야 한다.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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