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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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동자운동을 다시 생각한다

113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이하여

사회진보연대
113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이한 오늘날, 세계는 역사적 이행이 개시된 격변의 장도에 놓여있다. 제국의 자본과 군대는 악랄한 전쟁책동과 무제한적인 금융적 팽창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세계지배가 몰락의 길에 들어섰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낡은 것의 부패와 몰락의 과정은 새로운 질서의 전면적 부상이라기보다는 무질서와 폭력으로 점철되며, 새로운 질서를 향한 대중의 열망은 거듭된 패배와 분열 속에서 종종 무력화된다. 희망은 무너지는 모든 것에 대한 망설임 없는 깨침을 통해 스스로의 시련을 뚫고 나아갈 장구한 투쟁의 다짐뿐이다. ‘금융세계화-노동의 불안정화 반대!’, ‘미제의 전쟁책동 분쇄!’라는 분명한 양대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의 확대심화를 통한 자주적 전진만이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IMF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 프로그램이 국민경제 위기극복을 위한 단기적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자본주의의 위기의 일단임을 몸소 배웠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경제적 발전과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사유화나 공공자산의 매각은 새로운 생산설비 추가와 무관했고, 공공서비스 질의 하락만을 부추겼다. 무역자유화는 비교우위를 점한 경쟁력있는 산업의 부흥을 창조한다는 애초의 선전과 달리 대다수 농민의 파산과 소수대기업의 시장지배, 해외수입에 대한 의존만을 낳았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해외 금융투기자금의 국내유입을 전면화했으며, 이같은 금융자유화를 통해 자본시장은 거대한 거품경제를 창조했다. 그나마 2001년이후 거품이 붕괴하여, 꿈의 시장으로 불리던 코스닥은 거대한 거품 뒤에 숨겨져 있던 온갖 부정부패를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시장의 기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남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을 통해 대다수 민중의 삶을 보증으로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됨으로써 안정적인 신용등급을 확보한 것이 유일한 생존전략이었다. 이로써 신자유주의자들은 안정적인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글로벌한, 그러나 철저히 미국적인 투자문화를 창조해냈는데, 이는 신축화된 노동과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여가의 확대라는 미명으로 과소비를 조장하여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자본의 이해에 철저히 복무하는 전략이었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바람으로 시작된 고용의 신축화(불안정화)공세는 900만 비정규-임시직 노동자를 양산함으로써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 그렇게 신축화된 고용체계는 임금의 신축화(성과급-연봉제, 연금개혁) 정책에 의해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금융세계화에 체계적으로 통합-배제되는 도정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반민중성과 기만성에 대한 저항과 반대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념의 부재와 민중운동의 대중적-조직적 토대의 약화라는 상황은 결국 대다수 노동자의 배제와 극소수 노동자의 선별적 포섭을 용인케 하는 실리적 조합주의로 경도되곤 한다. 경제위기 심화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개인적이고 수동적인 방어경향에 영합하는 실리적 조합주의는 일반적으로 현장 대중투쟁에 대한 경시, 지역공동체로부터 노조운동의 퇴각, 청원성 요구투쟁의 특권화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노조운동의 대안적 전략은 ‘사회운동적 조합주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대안전략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노선”에 의해 ‘사회적 조합주의’란 이름으로 왜곡된 채로 소개되었다. 애초에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회운동성’과 ‘변혁지향성’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전투적 현장투쟁에 대비되는 법․제도개선 투쟁(이른바 사회개혁) 중심성을 강조한 것이다. 짐작컨대, 그런 이유로 명칭 역시 ‘운동’에 중점이 놓이기보다는 현장과 대비되는 ‘사회’에 초점이 맞춰지고, 노조운동 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에서 찾기보다는 현장의 전투적인 경제투쟁의 경직성으로부터 찾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실업 및 불안정노동자의 증가와 여성, 이주노동자의 증가로 인한 기존 노동조합의 조직률 하락, 초민족적인 금융화 추세에 의한 산업공동화 및 자본철수(금융적 이탈)의 위험 등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부터 파생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으로 심화된 결과로서 노동기본권의 일방적 무시와 무력화 및 직접적인 노조파괴 공작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현장탄압공세와 전혀 별개의 사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단위 현장의 전투적 경제주의의 문제점은 지역적이고 전국적인 운동으로의 전망을 상실한 경제주의적 한계를 가지는 것이지, 투쟁의 강고함을 강조하는 전투성의 한계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일반적인 발전경로는 기업(현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전국으로 향하는 정치적인 사회운동적 발전경로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산업별 이해에 기반하여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 스스로도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 국민경제적 이해관계모델에 따른 사회적 합의주의, 혹은 국민국가의 개입에 의존한 법․제도 개선 투쟁으로의 발전은 전혀 사회운동적이지 않은 탈현장적인(개량화된) ‘정치적 경제주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더구나 기존의 남성-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는 실업,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기존노조의 조직률하락이라든가 미조직 대상사업 등의 관점, 대리적인 차별철폐투쟁의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한 사항들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를 저지하기 위한 사회운동적 관점이 핵심인 것이며, 불안정노동 스스로의 조직화와 기존 노동자 운동의 계급적 연대를 통한 평등실현이 관건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날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부흥과 혁신의 단초는 지역운동으로의 노조운동의 재진출과, 변혁적 이행 전망 복구로 요약되는 사회운동성의 복원 여부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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