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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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현실적 투쟁으로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만들어가자

최저임금위원회 최종 결정일을 앞두고

사회진보연대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수많은 영세·비정규·여성노동자들에게 사실상 고정된 임금이 될, 최저임금의 결정 시기가 다시 돌아왔다. 사용자대표, 노동자대표, 공익위원 9명이 참가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 논의가 4월 25일 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각 2차례씩의 생계비 전문위, 임금수준 전문위를 거쳐 이제 마지막 결정일(6월 26일)까지 임금조율을 위한 몇 차례의 전원회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올해 경총이 제시한 최저임금은 시급 2,365원, 월환산(226시간) 53만4천4백90원이다. 노동자 측의 경우는 양대 노총 동일안으로 시급 3,100원, 월환산 700,600원이다. 최임위 사무국에서 조사한 29세미만 독신단신노동자의 최저생계비가 1,014,718원이라는 점만 감안하더라도 두 안 모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이 분명하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 70만 6백원!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임금을 국가가 법으로 보장해 강제하겠다는 제도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가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저임금 노동의 해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이 법은 1988년 제정되었지만 비로소 2000년 11월부터야 모든 사업·모든 노동자(물론 제외대상은 존재)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전반의 빈곤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최근에서야 본격적인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이 진행될 정도로 사회적 관심과 고민 역시 부족하기 짝이 없다.
경총 측의 주장대로, 법정 최저임금은 최근 3년간 전년대비 16.6%, 12.6%, 8.3%의 인상률을 보이면서 연속적으로 2자리대의 인상률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2002년 9월∼2003년 8월) 최저임금 514,150원은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 전체 임금의 1/3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비정규·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절대적 저임금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임시·일용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 노동자의 52%에 달하고 이들의 임금수준은 정규직 임금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남한의 경우 저임금을 규정하는 명확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지만, OECD가 빈곤선을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2/3로 규정하고 있고, 또 보통 최저임금제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풀-타임(full-time) 노동자는 임금 중위값의 절반 이하로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남한사회의 저임금 문제는 심각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최저임금 산정 기준은 몇 % 인상이냐라는 식의 숫자놀음일 수 없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임금이어야 하며, 설사 백보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전체 노동자의 정액급여 평균의 50%이상이어야 한다. 2002년 전체 근로자 정액급여 평균이 1,401,200원이었다. 차기 적용 최저임금으로 최소한 전체 근로자 정액급여 평균의 절반인 70만원 이상을 요구한다.


최저임금 현실화의 장벽: 변칙적 임금산정과 적용제외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당수가 포괄임금제, 연봉제라는 명목으로 법정수당·퇴직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체계 자체가 왜곡되어 이것이 저임금을 정당화시켜 주는 또 다른 기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 최저임금은 임금총액이 아니라 별도로 임금항목을 분류하여 최저임금 산정에 적합하지 않은 제 '수당'은 제외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액 산정 시 제외되어야 하는 임금으로는 ①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이외의 임금(예, 분기별 상여금 등), ②소정의 근로시간 또는 소정의 근로일에 대하여 지급하는 임금 이외의 임금(예,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③기타 최저임금산입에 적당하지 않은 임금(예, 연월차 수당, 가족수당, 통근수당 등) 등이다. 예컨대 최저임금이 70만원으로 책정되더라도 기타 수당을 합한 임금총액은 70만원 이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상의 또 하나의 맹점은 근속기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재계약)함으로써 임금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저 임금이 최고임금으로 뒤바뀌어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는 상황이며, "어차피 총액이 정해져 있고 임금세목은 거기에 짜맞추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 저임금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장시간노동을 수반한다. 현재 수준에서는 최저임금이 매년 조금씩 오른다 하더라도 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당사자들인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은 잔업·특근과 같은 초과근무시간(장시간 노동) 및 각종 수당 그리고 부업 등을 통해 임금을 보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율'에 집착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기한다"는 구호는 저임금의 단순한 '인상'으로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 '현실화'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법은 적용제외 대상을 규정하고 있어 그나마 쥐꼬리만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감시·단속적 노동자의 경우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이고 간헐적·단속적으로 이뤄져 대기 휴게시간이 많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이 제외되고 있다. 이는 특히 시설관리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노동을 정당화한다. 그런데 감시·단속적 업무의 규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이를 적용 제외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리고 요리사, 가정부, 보모, 유모, 운전사 등 소위 가내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가내노동법의 제정 및 가내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로, 2002년 10월 최저 임금법 개정을 위한 청원서가 제출되었다. 크게 ①최저임금 결정의 사회적 기준 확립-전체 근로자의 정액급여 평균의 50%이상, ②위원회 구성 및 운영의 민주화, ③적용 문제, ④적용제외 규정 폐지 및 개선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구조적 저임금: 공공부문을 정점으로 양산된 유연화된 노동시장

최저임금의 문제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권리의 문제라면, 최저임금 현실화의 근본적 해결책은 저임금을 양산하는 구조적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저임금의 문제는 97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인 노동유연화에 기인한다. 효율성, 경영혁신 등으로 인한 인력구조조정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 시켰고 그들의 임금을 구조적으로 저임금화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공공부문을 정점으로 일반 사기업, 대다수의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켰다.
특별히, 1997년 12월부터 본격화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살펴보면 2000년 연말까지 공공부문 사유화, 14만 명에 이르는 인력감축, 외주용역화, 각종 복지제도의 축소,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임금정책 연봉제 성과급제 도입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 신자유주의 임금 체계구축을 통해 임금유연화) 등이 관철되었다. 2001년부터는 이른바 '상시적 구조개혁 시스템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사전경영혁신 지침 제출 → 경영혁신 진행 → 사후감사 결과를 통한 예산배정과의 연계" 방식으로 일상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파견법이 도입된 이후 무분별한 불법파견(재하도급 포함)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의 다중적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특히 공공기관의 용역계약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최저가낙찰제'로 하도록 규정되고 있다. 조달청은 용역계약 예정가격을 책정할 때 용역노동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수준으로 계산하는데, 입찰의 과정에서 다시 최저가낙찰이 강제됨으로써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용역계약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인력감축 위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하면서 외주·용역화가 추진되고 이것이 공공부문에서의 저임금과 간접고용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IMF 구제금융이 도입된 직후 기획예산처의 진두지휘 하에 진행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관련기관 소속의 정규직 노동자 수를 대폭 감축시키고 임금하락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조직의 슬림화·효율화라는 명분 하에 대규모의 계약직, 임시직 노동자의 활용 및 민간위탁을 통해 고용불안정을 초래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조달청의 낙찰기준과 가격은 국가를 대신한 계약이니 만큼 필연적으로 일반기업의 공시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인력수급의 보장 고용유연화를 통한 비용절감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노동자는 인간이 아닌 물자일 뿐이다.


노동유연화 분쇄,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저임금 투쟁에 임하자!

현재 공공부문을 정점으로 민간위탁 혹은 사업부문을 작게 쪼개서 경쟁입찰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사업구조는 예산배정의 문제와 노동력 활용의 문제에서 이후로도 간접고용을 확대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문제는 결국 국가 예산지침의 방향전환과 직접고용을 통한 중간착취 배제를 통해서 풀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접고용으로 인한 고용불안 및 노동3권 제한의 문제는 불법파견에 대한 행정감독 강화를 통해 시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파견자체의 철폐를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는 문제이다.
또 최저임금법에서 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의 결정기준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이지만 실제는 사용자안과 노동자안을 막판 투표에 부치는 방식이다. 즉, 결국 공익위원이 어느 쪽에 손을 드느냐가 최저임금의 결정기준이 되는, '정치적 타협'으로 축소되어 있는 셈이다. 현재의 비현실적인 최저임금문제를 노사정위와 같은 최임위의 구조로 넘겨서는 안된다. 대신 최저임금 결정 논의가 최임위의 협상으로 가두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이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1차적 목표를 넘어 노동자 대중 내부의 소득격차 축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실질적인 투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저임금 투쟁은 노동자 대중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운동 내 연대를 활성화하고 미조직 노동자를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조직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 최저임금제가 최고임금제가 아니라 실제로 노동자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정최저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확보하고, 탈법적 임금체계를 근절하기 위해 포괄임금제 등을 금지해야 한다. 또 인력감축·외주용역화 중심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중단되어야 한다. 문제의식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작년처럼 운동진영 전반의 공동의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저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최저임금 심의위원회 기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확인하면서 장기적으로 노동유연화를 강제하는 법·제도 철폐투쟁과 노동유연화 저지를 위한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 나가자.
주제어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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