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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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 폭력진압, '정책의 변화'인가 '예고된 폭력'인가

노무현 정권의 기만적 통치방식에 맞서기 위하여

사회진보연대
6월 28일 새벽, 우리는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이 무장한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철도노조의 파업선언과 동시에 정부와 언론은 철도노조가 정부와의 대화를 회피하고 '명분 없는 파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왜곡선전했다. 그들에게 파업의 이유는 이미 관심 밖의 일이었고, 철도 노동자는 '파렴치한 불법세력'으로 매도되었으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공공의 적'으로 묘사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민중들의 고단한 출퇴근 전쟁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그들은, 어느새 민중들의 고통을 철도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았다.


철도 노동자들의 진정한 요구

하지만, 우리는 완벽히 짜여진 이들의 각본 이면에 존재하는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의 진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은 지난 4월 20일 철도노조 파업 직전 노정 간에 이루어진 합의내용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정부는 '기존 민영화 방침 철회와 철도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추진'이라는 합의사항을 '공사화(公社化)'로 둔갑시켰다. 즉 정부투자기관 중 공기업민영화법률 적용 사업장을 계속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투자관리기본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경영합리화라는 명분으로 공기업의 공공성을 계속 약화시켜 사유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하겠다는 기만적 발상인 것이다. 심지어 정치적 부담감을 느낀 정부(건교부)와 민주당은 이호웅 의원을 사주, 단독으로 의원입법하게 하는 술수를 부렸다. 그리고는 국회법에서 규정한 경과 기일조차 지키지 못하는 발의를 통해 대체토론도 없이 법안심사소위로 곧바로 회부하고, 제정법률이 거쳐야 하는 최소한의 의견수렴절차인 입법공청회도 열지 않은 채 법안을 졸속적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렇게 420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졸속입법된 철도구조개혁 관련 입법안 통과에 반대한 철도노조 파업의 쟁점은 핵심적으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회간접자본인 고속철도 건설재정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경부고속철도만 해도 12조에 달하는 건설비용을 정부가 책임지지 않을 경우, 국민의 공공교통수단인 철도의 가격상승과 심지어 수익성이 낮은 노선의 폐기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둘째, 철도안전과 직결된 유지보수, 개량사업은 운영부문과 통합되어야 한다. 철로 위로 열차가 달리는 철도산업의 경우, 승객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시설과 운영부문의 분리는 매우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통과된 법안에서는 유지보수는 불명확하게 위탁사업으로 남아있고, 개량은 시설공단으로 분리되었다. 하루에 20여 회씩 차단작업이 이루어지는 한국철도의 현실에서 운영부문과 분리된 개량사업, 위탁된 유지보수사업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작업이다. 지금도 매년 20~30명의 철도노동자들의 목숨이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셋째, 상업적·관료적 공기업화에 반대한다. 현재 법안은 상업적 이윤창출을 중심으로 사고함으로 철도산업발전, 공공성 강화, 국민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의 향상이라는 목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한해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죽음의 현장에서 노동자 권리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외침이요, 철도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투쟁이었던 것이다.


노동에 대한 입체적 공세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통해 철도노조를 고립시켰고, 결국 파업 직후 신속하게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대오를 강제진압, 해산시켰다. 그리고 복귀시한을 넘긴 624명을 직위 해제했고, 또 업무복귀명령을 위반한 8천여 명의 파업참가자를 전원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심지어 철도청은 철도노조를 상대로 영업손실액을 산정, 100억 원에 달하는 손배소송을 준비중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철도노조에 대한 초강경대응을 둘러싸고, 자본과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환호하고 나섰다. 정권과 자본은 철도노조에 대한 공격의 여세를 몰아 노동운동 길들이기를 위한 입체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자본가들의 집단적 이익을 옹호하는 전경련은 '철도노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바람직한 노사관계 정립에 전환점이 되었다'면서 시장원리 및 노사자율로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정부는 불법행위에 대해 징벌하는 '신노사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이들은 '신노사문화 확립을 위한 우리의 다짐'을 통해 불법행위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파업기간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며 노조 전임자의 급여는 노조가 스스로 부담하고 과도한 고용보호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들을 결의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보수 언론들 역시 노조의 불법파행 관행을 비난하며 정부와 자본에 포섭된 외국의 노사관계 모델을 소개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또 월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블룸버그 통신'은 '기업 이미지를 보호하고 투자자금 유출을 방지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은 노사문제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특히 해외 투자자들은 유연하지 못한 노동자들에 의해 주주의 가치가 짓밟히는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한국의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고인건비 구조를 개선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감원해야 하며 노조는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한 회사를 매각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방해하면 안 된다'며 초국적 금융자본의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노동, 자본 어느 편도 아닌 '글로벌 스탠다드'가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세계적 규범임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고된 폭력'인가, '정책의 변화'인가

한편 철도노조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초강경대응을 두고, '개혁의 후퇴'라거나 '정책의 변화'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국노총 관계자의 발언을 빌리자면 '경찰력 투입만을 놓고 보면 현 정권이 변화했지만, 이는 일련의 파업에 대한 국민여론 악화 때문'이며 '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수뇌부들의 기본적인 시각은 노사 균형론이며 여전히 노(勞)를 약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각은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도 일정한 흐름으로 존재했다. 이른바, '노무현이 이회창보다는 낫겠지'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 정권은 '사회통합 추진을 위한 노사화합'을 정책 방향으로 밝히며, 초기부터 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조정하여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이끌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출범 직후인 지난 3월에는 노동부 장·차관 뿐만 아니라 노사정위원장, 중앙노동위원장 등 신임 노동관련 기관장들이 줄줄이 민주노총을 몸소 방문, 노사정위원회를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이끌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은 노(사)정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겠다는, 다시 말해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을 참가시키겠다는 공세적이고 공격적인 의지의 표명이었다.
실제로 배달호 동지의 분신으로 시작된 두산중공업 투쟁이 장기화되자 노동부 장관은 즉각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 노동정책의 본질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던 철도노사의 정기 단협에서도, 2개월 넘게 무단협 상태가 지속되고 철도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하자 노무현 정부는 일견 노조 측에 전향적인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또 화물연대, 조홍은행 등 일련의 파업에 대해 큰 마찰 없이 요구안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전후 사정을 떠나 일단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를 높일만한 현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철도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노무현 정권의 정책변화'로 바라보는 것은 노무현이 누누이 강조해왔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몰이해일 뿐이다('기업하기 좋은 나라', 외자유치와 노동유연화). 김대중 정권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IMF의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대량 정리해고와 실업을 동반하는 파괴적 구조조정을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했다면, 노무현 정권은 사회갈등, 특히 노동운동의 저항이 국내 자본유치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적절한 사회통합 정책을 구사하는 방식이 요구된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 때문에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었다는 억지 주장에서 볼 수 있듯,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직 보호' 정책도 결국 노동·생활 조건의 하향평준화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의 실질적 강화나 개별사안에 대한 정권 차원의 개입이 친노동자적 정책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노무현 정권에게 중요한 것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진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노무현에게 유일한 잣대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진하는데 노동운동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필요할 것인지, '강력한 공권력으로 진압'할 것인지는 순전히 전술적인 문제다. 실제로 철도 파업 직후 청와대에서 밝힌 '신뢰의 선순환 구조'란 종국적으로 한국적 특수상황인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무(無)노동 유(有)임금', 해고 경직성 등 노조에 잘못 부여된 권한 및 관행을 없애거나 개선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전교조의 NEIS 투쟁이나 철도노조의 사태에서 보이듯이 노-정간의 합의파기와 같은 형태는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권의 현재적 기반과 조건을 볼 때,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 자본가집단, 보수언론들의 대대적인 공세를 빌미 삼아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태의 진실은 '정책의 변화'를 우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고된 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에 놓여있는 것이다.


노무현식 통치방식에 단호히 맞서기 위하여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배경으로 하는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정책적 방향을 현실화(관철)시키는 독특한 통치방식이다.
노무현은 후보시절 '촛불시위' 등으로 불거진 반미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미래지향적-동등한 한미관계'를 제출했고 이는 미국과 보수세력의 의심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은 한편에서는 보수주의자들과 이데올로기적 선을 긋고, 다른 한편에서는 '촛불시위'가 반미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수구'와 '진보' 사이에서 절충적인 지지대를 형성한 노무현은 국익론과 현실론을 동원하며 이라크 파병을 관철시켰고, 급기야 방미과정에서는 '실용주의' 외교를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반핵-반김' 집회 등 냉전적 보수세력들이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역으로 '햇볕정책'에 대한 '미망(迷妄)'을 강화했다.
이러한 모습은 노사관계를 풀어가는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두산중공업과 420 철도파업, 화물연대의 파업에 이어지기까지 정부의 개입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에게 '대화와 타협'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과 보수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친노조적(?)' 정책에 대한 보수 언론과 자본의 공세를 배경으로 정부는 전교조의 NEIS 투쟁을 교원단체간 갈등으로 비화시키며 약속을 쉽사리 파기할 수 있었다. 철도노조의 경우에서도 노동운동의 6-7월 파업투쟁에 대한 보수 언론과 자본가 집단의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배경으로 420 노정합의를 파기하고 강경진압으로 일관할 수 있었다.
이렇듯 노무현의 '반민중적 개혁'의 불안정성은 보수주의적 반격을 예고하는 한편,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시민운동을 비롯한) 개혁세력들의 지지를 유도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이 사태를 적합하게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공간을 봉쇄하는 효과를 양산한다. 특히 경제위기와 한반도 위기라는 조건은 노무현식 통치방식을 강화할 것이다.

애시당초 초민족자본의 투자유치 안정성을 사활적 과제로 설정했던 노무현 정부가 평화번영정책을 한미동맹의 강화로, 노동기본권을 글로벌스탠다드에 종속시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철도파업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미 노무현 정권은 언론을 통한 이데올로기 공세뿐만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파업대오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민중운동 진영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안이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애매한 기대와 안이한 인식을 버리고, 노무현 정권의 '예고된 폭력'에 맞서 전민중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대반격을 치밀히 계획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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