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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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자의 고해성사인가, 악어의 눈물인가

편집부
- '삶의 질 향상 기획단' 정책토론회를 보며

지난 2월 1일 대통령 비서실 '삶의 질 향상 기획단'은 한국노동연구원 등 4개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소득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가 개최된 배경에는 김대중정부 2년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저들의 언어로 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우리 사회에 미친 파괴적 효과를 어떻게 봉합하고 수습할 것인가? 라는 고민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지한 고민과 반성이 담긴 고해성사가 아니라 '악어의 눈물'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토론회 제목의 앞머리에도 '소득분배구조의 개선'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소득구조가 극단적으로 양분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노동의 불안정성과 장기실업이 구조화되고, 최소한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취약계층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한쪽에서는 스톡옵션과 수억대의 수입을 올린 벼락부자들이 신문지상을 연일 오르내리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장기실직자와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렇게 일그러진 현실에 대해서 권력과 자본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소득분배구조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토론회를 개최하고, 각종 정책들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빈부격차와 소득구조의 문제가 사회적 갈등과 분쟁으로 격화되기 전에 봉합해야 한다는 것이 정책토론회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득분배의 왜곡과 빈부격차 확대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무엇이 진정한 원인인가?

고용 구조를 비정규직, 임시직, 계약직과 같은 불안정한 노동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임금 비용을 최소화하고, 노동자의 단결권을 무력화시키는 ‘노동유연화’정책. 해외매각과 인수합병 등 초국적자본의 직접투자와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절대선으로 추구하면서 현재의 궁핍을 인내하게 강요하는 ‘금융화’정책. 공공기관과 최소한의 사회복지정책 조차도 시장논리에 위배된다면서 해체하려는 ‘민영화’정책.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바로 왜곡된 소득분배구조와 확대되는 빈부격차의 원인이다. 그러나 정책토론회에서 제기된 처방들은 이러한 원인을 진단하고 교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확대심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유배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은 기조연설을 통해 “경기회복의 온기를 온 국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인 소득분배구조 개선작업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국민의 정부가 집권 후반기 3년동안 추진할 중점 정책과제를 제시하였다. 이중에서 논란이 된 것은 고소득층에 편중되어 있는 상장주식 등 유가증권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와 연계하여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과 근로자의 우리사주 장기보유를 통한 재산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복지수석의 발언에 대해 재경부는 현재 기업 및 금융개혁을 추진하고 중소, 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할 시점에서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양도차익 과세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에 대해서는 미래의 성과를 배분하면서 위험부담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균형된 모습이 아니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혹여라도 이러한 정부내의 대립이 선과 악, 또는 개혁과 보수의 대립으로 비쳐지는 것을 우려한다.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소득이 있는 모든 곳에 과세한다’는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을 적용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소득, 그것도 거대한 소득이 형성되는 곳에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특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형평에 대한 파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대립은 과세를 할 만큼 주식시장이 안정적이고 활성화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인식차이일 뿐이다. 즉 이들에게 주식소유자와 주식시장은 통제와 관리, 과세의 대상이 아닌 부양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신주단지라는 점은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당연한 것이며, 그 세율은 누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무정부적이고 투기적으로 전개되는 주식투자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 아니 우리사주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반(反)노동자적 본성에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우리사주제도는 노동자의 복지증진과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한 제도가 결코 아니다. 우리사주제도가 제도화된 근거가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사주제도는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이며,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는 ‘개별 주식소유자’로 전락시키기 위한 것이다. 노동자의 복지증진은 주식의 불확실한 미래가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임금구조를 개선하고,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노동조건의 향상이라는 확실한 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의 정책토론회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소득분배구조가 더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자본과 권력의 신앙고백이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제안은 현실의 문제점들을 더욱 확대하고 심화시킬 뿐이며, 현실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유연화, 자본의 금융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의 저지와 분쇄를 통해서만 정정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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