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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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산업 사유화 3년(1997∼2000)의 일그러진 결과들

편집부
이동전화 요금 인하을 둘러싼‘조용한’ 공방

핸드폰 소음으로 세상이 어수선할 정도로, 누구나 이동전화를 가지고 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2000년 말이면 가입자수가 2,8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그야말로 갓난아기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이 핸드폰을 보유하는 시대가 도래할 듯하다. 이 괴이한 핸드폰 열풍에 대해 누군가가 한 이야기가 문뜩 떠오른다. 한국사회의 조급증,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철학적 탄식! 그러나 유행과 문화가 철저히 자본에 의해 계획되고, 주도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발상은 감성적 탄식에 불과할 뿐이다. 왠 핸드폰 타령? 핸드폰 이야기에서 ‘통신산업’이라는 공공부문, 한국통신이라는 공기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니 약간은 비약이란 느낌이 들지만, 허황되고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채 3년도 안되어 잊혀져버린 통신산업 사유화 정책과 그 결과,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재의 이동전화 요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새천년민주당조차도 건의했듯이 40%정도의 요금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 사회적 중론이다. 그러나 요금인하를 좋아할 자본가는 없기에, 더구나 5개사 경쟁체제로 존재하는 ‘경쟁’ 시장이 평등(?)하지 않기에 요금인하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SK텔레콤의 누적흑자가 자그만치 1조1천8백억원에 이르고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고 있는 준독점 상황에서 나머지 4사의 위기감은 클 수밖에 없다. 현재 SK텔레콤만이 16.1% 요금인하를 하겠다고 결정하였으며, 나머지 4사는 요금인하 불가를 주장하지만, 기존 가입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금인하를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사마다 투자자본이 2-3조원을 넘고, 아직 초기 투자자본의 회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4사의 부실화와 공도동망(共倒同亡)은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97년에 일어난 일 : 통신산업 사유화와 독점재벌 강화

과잉경쟁 상태에 처한 현재의 이동통신시장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자. 너무나도 쉽게 잊혀진 97년 한국통신 사유화 정책, PCS 사업자 선정을 둘러산 논란을 되돌아보자. 왜냐면 PCS 사업자 선정을 통해 낙점을 받은 3사와 기존의 이동전화 사업자인 2사의 경쟁체제가 바로 이 과정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PCS 사업자 선정에서 한국통신의 직접적 참여를 제한하고, 자회사 형태로의 참여만을 허용했고, 통신장비업체 1개, 非제조업체 중 1개 등 3개의 사업자를 선정했으며, 그 결과가 한국통신 자회사인 한국통신프리텔, 한솔, LG인 것이다. 이 시기 정부의 주장은 ‘통신산업에서 경쟁과 시장 질서의 도입’이라는 현재 공기업 사유화, 구조조정 논리와 동일한 것이다. 특히 한국통신 사유화 과정은 데이콤(국제전화, 시외전화)과 한국이동통신(이동통신)에서처럼 ‘자회사’를 통해 분할했다가 이들 ‘자회사’를 사유화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현재 데이콤은 LG를 최대주주로 하여 동양, 삼성, 대우, 현대 등이 결합되어 있고, 한국이동통신은 SK로 낙찰된 지 오래이다. 그리고 특혜를 받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고, 통신시장을 과점하고 있던 SK가 또 다시 포철이 대주주로 있는 신세기 통신을 인수한 것이다. 이러한 사유화 3년의 과정은 철저하게 독점자본을 위한 3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전체 기업들과 소비자들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적 영역으로서의 통신산업이 해체되고, 철저한 수익자부담의 원칙, 공공서비스의 포기, 정리해고와 노동강도 강화라는 반동적 결과을 낳았을 뿐이다.

‘경쟁과 효율’의 실체 ?

모두가 알듯이 현재 이동전화 시장은 충분히 과잉경쟁적이다. 길가와 상점, 심지어 학교내에까지 이동전화 가입부스와 선전을 위한 mall들이 즐비하다. 현재 이동통신사업자는 5개로 분할되어 있다. 시설장비 투자비가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략 1개 사업자당 2-3조가 넘는 초기 투자비가 필요하다. 특히 차세대 이동통신이라 불리는 IMT-2000 선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 쓸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었던 주파수 배정제도의 전면 개방등은 자본 참여와 시장을 더욱 확장시킬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주파수 공용통신(TRS)서비스나 발신전용서비스(CT2)등은 현재 PCS, TRS, CT2 등으로 각각 분할되어 있는 고유한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시킬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동전화시장은 하나의 시장을 놓고 더욱 격렬하고 파괴적인 각축장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통신산업의 기술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시장에서는, 과잉투자와 과잉생산, 과잉경쟁의 결과는 명백하다. 즉 경쟁과정에서 탈락하는 독점기업은, 대우사태의 파장과 마찬가지로 전체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며, 결국 ‘공적자금 투여’라는 국민의 부담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회생시킨 기업이 다시 사유화되는 악순환을 밟게 될 것이다.
중복․과잉투자의 대가로 이들은 비싼 요금을 강요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들이 주요 재벌들이라는 점에서 ―‘경쟁’이 요금은 인하한다기 보다― 경쟁적 담함을 통해 높은 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SK의 요금인하 정책은 과잉경쟁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독점적인 기업이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이후 나머지 4사의 불안정성은 전략적 제휴, 혹은 인수․합병, 부실화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상될 것이다. 과잉․중복투자와 과도한 경쟁이 아니라, 한국통신이라는 공기업을 통해 무선전화가 보급되었다면 결코 이러한 과도한 요금 책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든다 할지라도 시장 자체가 성숙된 상황이라면, 사적자본처럼 조급하게 자본을 회수하기보다는 공공성을 고려하여 값싸게 양질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동전화가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동전화를 소유하는 사회적 자원의 낭비 역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통신산업의 사유화’로 인한 공공성의 상실은 비단 이동전화 요금이나 서비스를 통해서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114 유료화와 전화국 통폐합의 문제가 그것이다. 한 건당 80원에 달하는 과도한 요금에, 시골이나 외지에는 전화국조차 없이 도회지를 찾아나서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유화의 결과는 정리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공기업 구조조정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칭찬받는 한국통신! 이들이 칭찬받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98년 2천8백명, 99년 7천 5백명이 정리해고되었다. 2000년에는 4천 7백명이 정리해고된다. 수천, 수만명의 일자리를 빼앗고, 그 가족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정책이 칭찬받을 정책인 것이다. 이러한 정리해고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2백60개에 달하는 전화국을 98년 84개를 통합시켰고, 2000년까지는 88개 광역 전화국으로 전면 개편한다. 이미 다양한 사업에서 철수하였고, 13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한국통신의 수익률을 높여주었고,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2001년에는 12조3천1백71원의 수익률을 달성할 것이라 호언한다. 이 수익이 공공성을 폐기하고 정리해고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삶을 피폐화시킨 대가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철저히 함구한 채 말이다.

잊혀졌던 진실

3년도 안된 사이에 한국통신 사유화를 둘러싼 공방이 사그라지고, 자본이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결론이 맺어지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구매심리를 자극하는 이동전화 사업자들의 유혹에 빠져 너도나도 비싼 요금의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산업에 공공성이 존재하기나 했었나, 이젠 아련한 기억일 뿐이다. 여전히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사유화 정책은 브레이크없이 강행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전력조차도 구매력의 유무에 따라 차별적으로 사고 팔게 되는 현실에 직면할지 모른다. 비싼 요금을 내면 나은 서비스를, 싼 요금에는 저질․불량의 서비스를 받는 현실이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왜냐면, 통신시장보다도 더 광범위하고 필수불가결한 전력시장, 여기에 수많은 국내외 독점자본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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