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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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주주운동의 승리, 민중의 절망…

편집부
- 데이콤 기업지배 개선안에 대한 우리의 비판

1.데이콤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안?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지난 3월 7일 데이콤이 발표한 '경영투명성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선안에 대해 기존의 경영관행을 뛰어넘는 '획기적' 조치이며, 기업지배 구조개혁의 모범안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사회의 1/2, 감사위원회의 2/3를 사외이사로 임명,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우리사주조합과 소액주주의 사외이사 추천권, 주요 내부거래에 대한 감사위원회 사전승인 등이 이번 개선안의 주요 내용인데 이에 대해 한 경제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데이콤의 경우가 LG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경영전략적 선택의 신호이기를 바라며, 재계 전체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선도하는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며 자못 비장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또한 이번 데이콤의 개선안은 참여연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던 소액주주운동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사회, 감사위원회 사외이사의 50%를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발표에 대해 언론과 주요 여론들은 효율적이고 투명한 기업경영과 선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위한 '개혁적' 조치이며, 소액주주운동의 긍정성을 적극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개선안을 창출한 주역이기도 한 참여연대의 평가이기도 하다.

2. 데이콤, 소수주주운동, 초국적자본이 공유하는 것

이번 개선안을 수용한 LG의 가장 직접적인 목적은 데이콤의 나스닥 상장 진입요건 구비를 위해 국제적 수준의 기업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함이였으며, 동시에 데이콤 인수과정에서 위장지분문제로 발생한 정부, 참여연대와의 갈등을 해소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LG는 데이콤의 강성노조에 대한 견제와 포섭이라는 효과 역시 노리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합의의 파트너였던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의 목표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을 위해 이전에는 타이거편드라는 초국적자본과 제휴하였고, 최근에는 템플턴그룹이라는 미국의 초국적자본과 전략적 제휴를 하여 5대재벌의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템플턴그룹은 국내증시에 30억달러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 미국의 기관투자가이다. 소액주주운동의 힘은 바로 미국의 초국적자본과 기관투자가들과의 제휴에서 나오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소액주주운동과 초국적자본이 공통의 이해관계와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주주행동주의, 넓게는 미국식의 자유로운 경제시스템을 의미하는 선진적이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주조합이 시장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감시, 견제하는 주요한 역할을 담보해야 한다'는 장하성 경제민주화위원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이번 합의의 현실적 효과는 노동조합운동을 주주행동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포섭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소수주주운동과 OECD 원칙

데이콤의 개선안은 정부의 2차 기업개혁안을 뛰어넘는 심오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기업개혁안을 줄기로 하여 데이콤이 그 시기와 속도를 조절한 것이며 소액주주운동은 이것의 추진동력이자 '개혁'의 외피일뿐이다. 그러기에 데이콤 개선안에 대한 평가(동시에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평가)는 결국 김대중정권의 기업개혁방안에 대한 평가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기업개혁안은 97년 12월 3일 체결된 IMF와의 협약에 의해 1차적 과제와 방향이 제시되었으며, 99년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통해 심화된 2차 개혁안이 제시되었다. 2차 기업개혁안의 구체적 내용은 99년 8월 재정경제부에서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과 2000년 1월 발표된 '기업지배구조 개선 법무부 자문단 권고안'에서 제시되었다. 이 모범규준과 권고안의 모태가 바로 OECD의 기업지배구조의 원칙(OECD 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nance)이다. 정부가 2000년 1월에 '기업들이 규모에 관계없이 투명하고 책임있는 경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정비'하겠다는 '국제적 기준'이 바로 OECD의 기업지배구조 원칙인 것이다. OECD는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개혁의 기준안을 마련하기 위해 95년부터 논의를 진행하였으며, 99년 5월의 각료회의에서 OECD의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이 '원칙'은 세계은행과 IMF의 자금지원의 조건과 정책권고의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초민족 자본과 미국의 강력한 규제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97년의 IMF 구제금융과 이에 따르는 구조조정 협약안의 내용도 큰 줄기에서는 이러한 자본의 국제적 기준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4. 숨겨진 진실

OECD와 IMF, 정권과 자본, 시민운동이 공유하는 기업개혁의 핵심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집행과 감독기능의 분화', '주주권리의 보장'을 통한 자본시장의 활성화와 투명화이며 그것은 '미국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의 수혜자는 노동자와 민중이 아니라 자본과 주식소유자로 철저하게 국한되어 있다. 고용구조의 왜곡, 노동의 불안정화, 구조적 실업의 재생산이 바로 이러한 선진적이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미국의 노동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로운 해고와 유연한(불안정화) 노동구조는 선진적 기업지배구조의 이면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선진화, 투명성, 효율성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어있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궁핍화를 방기한다면 그것은 '자본의 운동'일지언정 결코 '민중의 운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 바로 이러한 자본의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한국 자본질서를 합리화하고 개혁하자는 운동에 다름아니며, 그것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운동에 다름아니라고 판단한다.
이제 소액주주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과 NGO들의 지향이 무엇인지, 과연 그것이 개혁과 진보인지 진지하게 되물어 우리의 기준과 지향을 분명히 하고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김대중정권과 자유주의적 NGO들의 '개혁'담론이 노동자·민중을 겨누는 칼날이 되는 현실에서 '무기의 비판'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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