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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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2천의 노동자 살생부가 공기업의 매각 가치를 높인다!

편집부
"청사진없이 증시침체에 한숨만", 공기업 민영화 또 표류하나... 5월10일자 한겨레 신문의 안모 기자에 의해 전면을 장식했던 기사의 제목이다. 한겨레 신문만이 아니다. 언제나 정부정책의 바람잡이 역할에 길들여진 언론이 일제히 민영화 정책을 촉구하고 나섰고, 심지어 MBC 에서는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차질없이 추진해온 철도청장의 성공담(?)이 미담인 양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민영화 정책에 대해 더없이 일관된 정부의 의지를 대변해주는 충견! 언론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올초 한전의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 매각이 늦춰졌고, 한국담배인삼공사의 해외 DR 발행이 연기되었다. 또한 한통의 전략적 제휴나 매각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 등은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청사진이 없어서도 아니며, 일관성없이 주무부처에 끌려다니기 때문도 아니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이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하며 버티기 작전을 구사하고, 최근의 증시침체가 투자자들을 망설이게 해서 빚어진 결과인 것이다. 최근 세계 100대 기업에 포항제철, 한국통신, 한국전력이 나란히 등단했다는 사실은 우량기업을 헐값에 판다는, 이 민영화를 둘러싼 황금시장이 얼마나 치열한 각축장이 될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의 민영화는 이렇듯 초국적 자본의 치졸한 이해와 투기자본들의 밀고 당기는 첨예한 '흥정'의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이뤄지는 흥정에 불을 붙이고, 매각의 가치를 높이며, 미래의 주가상승에 장미빛 전망을 제시하는 길이 무엇인가? 버티고 튕기는 초국적 자본과 투자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바로 정리해고를 비롯한 공기업 구조조정의 고삐를 더욱 죄는 길이다. 여기에 현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공기업의 경우 국정교과서, 한국종합기술금융, 대한송유관공사 등 3개사의 민영화가 완료되었고, 19개 자회사에서 통폐합이 진행되었다. 전영역에서 명예퇴직제도가 개선되었으며, 19개 공기업에서 퇴직금누진제가 폐기되었다. 복리후생제도는 과감히 축소되었다. 출연위탁기관의 경우, 핵심사업 위주로의 슬림화, 16개 기관의 통폐합, 20여 기관의 민간위탁을 실시했다. 이로써 99년 한해만 총 3조7천억원의 비용절감, 9조3천억원의 매각수입을 얻어냈다고 한다. 99년까지 2년여 동안, 정부부문에서만 1만7천명이 정리해고되었다. 공기업의 경우 3만2천명, 출연위탁기관의 경우 13만2천명이다. 공기업의 경우 2000년까지의 인원감축 계획이 4만1천명이라는 점을 감안해봤을 때, 정확히 9천이라는 숫자가 맞아 떨어진다. 최근 공기업의 9천명 추가 인원감축 계획! 그야말로 일관된 정부정책이 아닌가! 2001년까지 16만5천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출연위탁기관의 경우, 정확히 3만3천명의 발표되지 않은 살생부가 기다리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를 촉발해낼 수 있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은 잔혹한 정리해고와 함께 임금제도의 개악, 노동조건의 악화를 동반하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2차 민영화 및 경영혁신 계획의 핵심 중의 하나로 공기업 외부위탁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청소, 경비 등 단순업무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외부위탁 대상업무를 전산시스템 운영, 홍보 및 전시, 정보관리 등 사업분야로 확대 추진하며, 사옥관리, 구내식당, 배달 및 창고업무 등 60개 업무를 비롯해, 한국통신의 전보 배달업무, 도로공사의 통행료 징수업무, 주택 및 토지공사의 전산업무 등 69개를 추가발굴하여 외부위탁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즉, 정리해고만도 모자라 기존에도 주변업무 분야에서 차별받고, 도태되던 노동자들을 해당 업무의 청산과 외주를 통해 더욱 더 열악한 비정규직, 파트타임 둥 불안정노동화로 내몰겠다는 것이다. 즉, 광범위한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경영의 효율성과 매각가치의 극대화를 동시에 꾀하겠다는 것이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이 정리해고 및 불안정노동화라는 노동에 대한 강도높은 사정작업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투기꾼들의 미래의 주가상승에 대한 요구와 현재의 구매의욕을 촉진시켜내는 방향에서, 또한 초국적 자본의 무난한 진출을 보장하는 선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이러한 초국적 자본과 금융투기꾼들의 이해는 최근의 OECD 권고안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공기업 민영화 시 시장경쟁이 가능한 사업부문과 비경쟁사업부문을 완전 분리해 매각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OECD "규제산업의 수직적 분리에 관한 권고(안)"이 회원국들에게 제시되고 있다. 즉, 한전의 경우 경쟁력 없는 송배전 부문과 발전부문의 분리, 가스사업의 경우 가스배관망 운영과 가스 생산 및 저장의 분리, 통신의 경우 시내전화와 장거리 전화 및 이동전화 등이 분리되어 경쟁력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서둘러 매각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인 것이다. 노동시장에 대한 강도높은 구조조정에도 성이 안차, 핵심 노른자 부위만을 도려내어 헐값에 사가겠다는 파렴치한 작태를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하이에나와 같은 초국적 자본에게 국가 기간산업과 공공부문이 넘어간다면, 국민의 기본적 생활과 권리를 보장해왔던 공적 영역은 철저히 이윤착취 논리에 의해 유린당할 것이다. 일국의 전략적 산업은 국민경제의 안정성보다 투기꾼들의 이해에 좌우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국가주권, 민중의 경제주권 상실이라는 당연한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국민의 혈세와 노동자의 피땀으로 일궈온 국가기간산업과 공공부문은 명백히 '공적영역'이기에, 노동자 민중의 것이다. 국내외 자본의 이해와 금융투기꾼들의 결탁으로 난도질당해서는 안될 '불가침'의 영역인 것이다. 민영화를 둘러싼 자본과 투기꾼들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그 어떠한 논리와 공세속에서도 철저히 고용보장,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 공공성 사수, 경제주권사수라는 관점에서 민영화는 저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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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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