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6.06
첨부파일
social44.hwp

'국민의 정부'와 경찰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가

최근 경찰의 집시법 개정 시도에 대하여

편집부
경찰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 포돌이 인형을 등장시켜 노동절을 축하하던 경찰이 이번에는 '집시법 개악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집시법 개정을 시사한 5월2일 경찰청장의 기자회견에 이어 오는 6월 14일에는 집시법 개정을 위한 시민공청회를 열고, 9월 정기국회에 최종 개정안을 상정시킨다는 계획이다. 산뜻해진 전경 패션과 폴리스 라인을 가볍게든 여경들의 미소뒤에 숨겨진 김대중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

집시법 개악안의 주요내용들과 문제점

먼저 이번에 경찰측이 밝힌 집시법 개정안의 주요내용들을 살펴 그 각각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경찰이 밝힌 집시법 개정의 핵심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주말이나 공휴일의 도심지 대규모 집회의 금지 또는 제한 2> 폭력시위 전과가 있는 단체나 개인이 신청하는 집회시위 금지 3> 집회시위 주최자가 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집회 참가를 배제할 의무 4> 이를 위반할 경우 주최자 처벌, 질서유지선 침범 때 처벌 강화.
한마디로 경찰측 개악안의 주된 요지는 '맘에 안드는 모든 집회는 금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각각의 문제점을 차례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1> 거의 모든 집회가 주말과 공휴일에 열리는 상황에서 주말과 공휴일 집회를 금지/제한하겠다는 것은 모든 집회를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끌고 가겠다는 말밖에는 되지않는다. 2> 경찰이 유도한 방어적 폭력에 대한 책임을 모두 '폭력시위 전과가 있는 단체나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이해되지않는 조치일뿐더러 한번 이루어진 사법조치의 효과를 자의적으로 영구화하려는 전근대적 발상이다. 3> '∼∼할 우려가 있는 자'라는 규정은 어떠한 객관적 기준도 없이 그저 '맘에 안드는 자'라는 말밖에는 되지않는다. 4> 현행 집시법만으로도 충분하고 과도한 형사처벌과 진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갖가지 처벌조항의 신설과 강화는 불필요할 뿐아니라 부당한 조치들이다.

착한시민과 나쁜시민은 누구인가?

그러나 이처럼 말도 되지않는 헌법적 법률적 상식적 문제점을 지닌 개악안을 뻔뻔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경찰에게도 그들이 창조해낸 그들만의 비장의 카드가 준비되어있다. 바로 "일반시민의 불편"과 "사회질서"이다. 지난 5월2일 이무영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를 소집하여 처음으로 집시법 개정의사를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행법은 집회시위의 주최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되어 있어 일반시민들의 불편과 질서파괴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집회신고 요건을 강화하여 이를 위배하는 집회는 금지할 방침이다"
경찰청장이 말한 '집회신고 요건강화'가 사실은 '신고요건 강화'가 아니라 자의적이고 초헌법적인 '집회허가제'로의 파쇼적 폭거임은 앞서 서술한 그대로이다. 문제는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은근슬쩍 전제하고 넘어간 '집회시위의 주최자들'과 '일반시민'간의 구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착한시민'과 '나쁜시민'을 나누어 사회의 위험을 관리하는 '두 개의 국민전략'이다. '두 개의 국민', '나쁜시민과 착한 시민'은 누구인가, 그 기준과 구분의 목적은 또 무엇인가. 파괴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의 관리와 통제라는 목적, 구조조정의 수혜자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피해자, 그래서 거리에 나선 죄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 죄로 나쁜 시민이 되어버린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이것이 진실이다 !
군사독재정권 시절, 우리는 경찰과 정권이 사용한 전가의 보도, '국가안보'의 잣대로 나뉘어진 '운동권/비운동권'의 구분아래 발생한 숱한 인권유린과 비민주적인 국가권력의 남용을 보았다. 이는 군사독재정권의 태생적 한계인 법적 전통성의 부재로부터 기인한 군사파시즘적 탄압의 유력한 이데올로기적 통치수단이였다. 두 번째 문민정부의 수장이 된 김대중 또한 이같은 탄압의 대상이였고 한때 그 역시 운동권으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이제 대통령이 되어 최류탄을 쏘지않고 여경들을 내세우면서 이번에는 "일반시민의 불편과 사회질서"를 위해 다시한번 '나쁜시민'들에 대한 '합법적(?) 탄압'의 칼을 뽑아든 것이다.

웃지못할 '외국공관 100m이내 집회금지 조항'

최근 우리는 경찰과 정권이 규정한 '착한 시민'이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현행(개악전의) 집시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과 그로인한 웃지못할 헤프닝 하나를 경험하고 있다. '외국공관 100m 이내 집회 금지조항'의 존재와 이 조항을 이용하여 외국 대사관을 자기소유 건물로 유치하고 있는 독점자본의 자기방어 행위들이 그것이다. 실제로 최근 광화문 4거리 부근은 이미 어떠한 합법집회도 불가능한 '평화의 거리(?)'로 바뀌어버렸다. 삼성과 현대등 주요 독점자본들이 자기 소유건물로 온두라스, 파라과이 등 외국대사관을 유치하여, 그동안 자주 집회가 열리던 구(舊)동화빌딩 앞, 교보생명 근처, 정부종합청사 후문, 광화문 열린광장등, 이 모든 곳을 집회 금지 지역으로 뒤바꾸어 버린 것이다. 최근 매향리문제와 SOFA 개정, 한미일투자협정 문제로인해 전국민의 집중적인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일 대사관이 이 '100m 금지조항'으로 법과 제도를 통해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는 왜곡된 현실이 바로 잡히기는 커녕, 이제는 한국의 주요 독점자본이 제3세계의 해외공관을 방패막이로 하여 법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미국대사관 보호라는 식민지적 발상에서 비롯된 집시법의 독소조항은 이제 건물있고 돈있는 독점자본가들의 철갑옷이 되어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한낱 공문구로 전락시키게 된 것이다. 독점자본의 사설경비원로 전락한 경찰과 집시법의 신세가 참으로 한심하기만하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 되어야한다.

60%대에 이른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만에 이른 빈민과 넘쳐나는 실업, 2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는 이러한 수치상으로 볼 때 폭동전야을 방불케한다. 국민의 정부라 자칭하는 김대중 정부와 초민족자본들은 이같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고 그 대안의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마련한 대안이란 또다른 위기를 만들어낼 새로운 구조조정의 재개과 이번 집시법 개악시도와 같은 경찰적·정보적 통제의 강화일뿐이다. 군사독재정권과 다른 김대중의 민주주의라고는 넘쳐나는 빈민과 실업자의 수를 최대치로 조절하고 그들을 불만을 관리하며 훈육하고자하는 사회적 복지와 포돌이의 가증스러운 웃음, 그리고 집시법 개악을 시도하기전에 개최하는 '시민 공청회'가 전부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어야한다.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