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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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품어 안은 의사집단의 집단폐업

편집부
지난 30일,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7일부터 3일간 실시한 재폐업 찬반투표 결과, 찬성률이 66.1%로 나타나 8월 1일부터 전면 재폐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등 전국 주요 병원 전공의(레지던트)들도 이미 지난 31일부터 사표 제출과 함께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전체 의사 98%가 찬성한 전국 병의원 폐업 사태가 발생한지 불과 한 달만의 일이다.
의사들은 왜 재폐업하는가? 의사협회가 한 집회에서 결의문을 통해 밝힌 요구 사항은 ▲약사법 독소조항 개정 ▲회장 석방과 의쟁투 지도부 수배해제 ▲진료비 적정수가 보장 ▲정부의 의료보험 재정지원 약속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보건행정 책임자 문책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회장 석방과 의쟁투 지도부 수배 해제, 진료비 적정수가 보장, 보건행정 책임자 문책 등은 다시 폐업을 감행하기에는 너무도 국민적 설득력이 약하다. 정부의 의료보험 재정지원 약속이나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등은 그간 사회운동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던 바인 만큼 이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던 의사들로서는 이 또한 폐업의 근거로 삼기 어렵다.

명분 없는 의사들의 재폐업

가장 문제가 되었던 약사법 독소조항 문제는 약사법 개정으로 의사협회 스스로도 재폐업을 불사하는 투쟁의 명분으로 삼기에는 미약하다는 인정하고 있다(연합뉴스 2000. 7. 28). 게다가 지난 달 폐업 이후 변화가, 임의조제의 근거 조항이라는 약사법 39조 2항 삭제와 대체조제 제한 의약품 품목을 600품목 내외의 상용처방 의약품으로 지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약사법 '독소조항' 문제를 98% 의사가 폐업을 찬성하는 이유로 삼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의사들이 임의조제 문제에 대해 이렇게 강력히 항의한 적이 있었던가. 대체조제를 문제 삼을 만큼 약효 하나 하나를 꼼꼼히 따져 약을 썼던가. 먼저 스스로에게 묻고 주장할 일이다.
사실 의사 집단의 폐업, 재폐업 사태의 문제점은 '사회적 합의의 파기'나 '생명을 볼모로 한 이기주의'에 있다기보다는 의사집단의 반민중적 전문주의에 있다. 먼저 의사들은 자신의 주장과 요구, 행동에 대한 비판에 대해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모든 다른 집단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독선적인 태도를 보였다. 바로 전문성에 기반하한 '권력'을 절대시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는 의료개혁의 유일한 주체는 의사며, 대다수 국민들은 의사에 의해 달성된 의료개혁의 수혜자라는 비뚤어진 사고의 이면에 불과하다.

반민중적 전문주의에 숨겨진 신자유주의의 칼날

의사집단이 요구하는 내용도 이러한 반민중적 전문주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폐업 사태가 의사들의 경제적 이해 관계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역시 핵심 요구는 그간 약가 마진 소실에 따른 수입 수준의 보장이다. 그것이 의료보험 제도에서는 진료비 적정수가 보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의료보험 재정지원 약속'은 투쟁의 명분을 얻기 위한 장식물이거나 적정수가 보장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의사들이 약사법 개정이 아니라 정부의 의료보험 재정부담 50% 법제화를 내걸고 폐업을 했다면? 의사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부담을 도외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이 내건 주장의 반민중성은 한편으로 정부의 재정지원 약속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의료기관 요양기관 강제지정 폐지,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공적 의료보장 제도를 와해하고 현행 시장중심 의료체계를 강화하려는 이율배반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결국 오늘날 한국 의료보장 제도의 문제점을 '강제성'과 '저수가'로 파악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의사집단의 이해 관계만을 반영한다. 여기에는 국민의 처지에서 출발하여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본인 부담의 과중함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장벽, 국가와 자본의 비용 절감에서 연유하는 보험급여의 협소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란 설 자리가 없다. 게다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이란 현재에도 극심한 불평등 상태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약자의 의료 접근권마저 강탈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료개혁은 노동자 민중의 어깨 위에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작금의 사태가 반민중적 전문주의와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절묘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오히려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전략이 의료 분야에서 반민중적 전문주의를 큰 틀에서 방조하며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그간 낙후되어 있는 제반 관행을 합리화하고 투명화하는 근대화의 외양을 동시에 띠고 있는 터다. 의료 분야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정부는 의료기관의 경영 투명성 확보와 왜곡되어 있는 의료관행의 정상화를 위한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정부 의료정책 개혁은 이른바 '생산적인 복지'를 내세우면서, 의료부문의 공공투자를 삭감하고 의료정책에 시장기구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을 도입함에 주목하여야 한다. 실제로 정부는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의료기관 투명성을 확보하는등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끊임없이 보건의료 예산을 감축하고(김대중 정부 하에서 보건의료 예산은 전체 예산의 0.3%에서 0.2%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공의료기관의 민영화 및 민간위탁을 시도하여 왔다. 파산 직전에 있는 의료보험 역시 재정지원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호시탐탐 보험료 인상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사실상 의약분업에 소요되는 비용의 절반 이상이 민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실정이며, 개혁의 이름아래 민중의 건강권과 의료 공공성(국가책임)은 축소내지 해체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 의료대란 사태 논란속에서 단지 의사집단의 비도덕성과 몰염치, 혹은 이를 다스리지 못하는 정부의 조정능력 부재만을 탓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노동자 민중은 시나브로 의사들이 바라는 '의료개혁',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개혁'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노동자 민중을 위한 진정한 의료개혁의 과제는 노동자 민중 자신의 어깨 위에 걸려 있다할 것이다.
민중의 경제적 부담 증대없는 의약분업이 실시되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약 분업으로 인한 추가 소요 재정을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정부의 의료보험료 인상 반대, 공공의료 지원확대를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는 정부에게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추가적인 국고지원약속을 즉각 이행할 것과 국고지원 50%를 법제화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의약분업이라는 배에 승선하게 될 이들은 결국 노동자·민중들이다.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요구가 의약분업제도의 가장 중심에 놓여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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