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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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장,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개혁-3중주가 울려퍼질때 - 최근의 현대그룹 위기 사태에 대하여 -

편집부
현대건설의 7월말 유동성 위기로 재발된 현대사태가 그룹 전체의 지배·소유구조를 둘러싼 정씨일가와 정부, 채권단, 시장간의 거센 힘겨루기로 비화되어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 8월5일 현대측의 자구책(안)을 거부하고, ▶정주영, 몽헌 회장의 개인지분 매각·출연, ▶이익치, 김운규등 가신 경영인 퇴진, 정씨 3부자의 실질적 퇴진, ▶정주영 명예회장의 개인지분 매각규모와 현대상선지분 포함여부등 3개항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는 등 금융제재에 나설 방침임을 밝혔다. 이는 곧 현대건설의 '부도'처리와 현대그룹의 강제적인 해체-워크아웃을 불사한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현대측의 태도 또한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현대는 8일로 예정되있던 자구책 발표를 미루면서 한껏 버티고 있는 것이다.(빠르면 금주 말, 최종시한은 19일)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장과 정부에게는 대우사태에 이은 재계순위 1위 현대그룹의 파산을 버텨낼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정부와 현대측간의 이같은 대립은 7일 개각을 고비로하여 일정한 타협점들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행중인 정부-채권단, 시장, 현대간의 대립과 갈등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에대한 의문은 남는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현대건설의 유동성위기보다는 '시장의 신뢰'를 잃고만 현대측의 불명확하고 미적지근한 기업개혁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시장의 신뢰와 개혁의지를 지랫대로하여 들썩거리고 있는 이 위태로운 대결의 진실은 무엇인가.

정부-채권단과 현대측간의 쟁점

현재 정부-채권단의 요구들중에서 현대가 난색을 표하고있는 핵심적인 쟁점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1> 현대건설의 유동성 확보방안과 관련하여, 정주영·몽헌 회장의 사재출연, 2> 계열분리와 관련, 자동차, 중공업, 전자등의 명확한 조기 계열분리 일정-계획 및 몽헌회장 그룹지배의 열쇠인 현대건설보유 현대상선 지분 매각, 3> 지배구조 개선안 관련, 이익치, 김운규등 가신경영인 퇴진등이다. 지난 5일의 자구책안에는 이같은 항목들이 대부분 빠져있었다. 현대측의 항변은 1> 개인의 사유재산의 처분은 정부가 관여할 바 아니며, 2> 현대상선 지분 처분은 그룹지배구도가 흔들리는 사안이므로 불가하고, 3> 가신경영인의 퇴진은 이사회 결정사항이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지난 5일의 자구책안은 현대가 채권단에게 공식적으로 제출한 자구책이 아니였고, 7일 개각을 앞두고 정부측의 입장을 떠보기위한 맛보기용이였을 따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채권단의 발언은 거셀 수밖에 없었고, 현대와의 충돌은 더욱더 커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7일 개각을 분수령으로 정부-채권단 vs 현대간의 갈등은 3개 요구항목 전부에 걸쳐서 어느정도 이루어지고있는 듯 보인다. 현대건설의 주채무은행인 외환은행이 오늘(8일) 현대건설과 구조조정위원회 앞으로 발송한 공문에서 채권단은 이제까지의 입장을 보다 구체화하여, 1> 현대건설 유동성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여기에 정몽헌 회장의 계열사 보유주식 1700억원을 매각-출연하며, 2> 조속하고 분명한 계열분리와 현대건설 유동확보 차원에서 건설보유 상선지분 1000억원어치 주식을 매각할 것, 3> 3부자 퇴진 약속 이행 및 부실경영진 사퇴을 명기했는데, 이에대해 현대측이 매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는 것이다.(정주영-몽헌회장 보유 주식의 처분-의결권을 채권단에 이양하는 사재출연방식, 조속한 계열분리 계획등을 언급) 다만 부실경영인 퇴진 문제만큼은 당장에는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고있지만 주주총회등 절차를 밟아 시간을 두고 처리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는등의 태도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중심의 개혁정책을 중단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칫 제2의 대우사태가 재발되어 국민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거대재벌의 전횡에 맞서 싸우고있는 말그대로의 '개혁 전사'인 것처럼 보이는 정부-채권단의 요구에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한계들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사재출연은 어디까지나 사재헌납이 아니라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일종의 투자이기 때문에 (적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정회장 일가는 손해를 보기는커녕 더많은 이득을 볼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결국 재산의 상당부분을 현대지분으로 소유하고있는 소유경영자인 정씨일가로서는 이대로 현대가 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재출연을 통한 자구책의 실행이 경영권을 포기하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무난하게 자신들의 소유권을 지켜내는 길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채권단의 현대 정씨일가에대한 징벌적 요구의 본질은 정씨일가의 금융자본가로의 전환 속도와 비용부담에 관한 이해대립에서 비롯된 것이지, 경제위기원인제거 차원의 개혁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현대그룹의 해체 또는 계열분리의 속도와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강화되고있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즉 "재벌개혁의 진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공고화이다. 현 경제위기가 재벌체제를 택했던 독점자본 지배체제의 위기라면, 재벌지배체제의 핵심인 선단식 차입경영 조직형태·관행을 전환하고자하는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독점자본의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편들간의 격렬한 다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개혁 이데올로기는 위기에 처한 독점자본의 낡은 조직형태를 교체하고자하는 독점자본 분파들간의 경쟁과 갈등을 마치 실제하는 유일한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인 듯 관념화하는 것이다. 이같은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고용불안과 국민경제적 불안과 같은 자본위기극복 비용을 민중에게 전가케하는데 따른 저항을 봉쇄하거나 혹은 도리어 개혁에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기반이 된다.
셋째, 현재의 기업개혁을 작동시키고있는 소위 '시장의 신뢰'란 곧 '금융시장의 신뢰'라는 점이다. 현대를 압박하고있다는 '시장의 신뢰'란 위기에 처한 재벌체제를 갈음할 독점자본의 새로운 경영조직형태로서 금융주도적 기업지배소유구조를 도입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기업개혁의 대전제를 가르키며, 정부-채권단, 국내외 초민족 자본들과 (정씨일가와 현대를 포함한) 국내재벌들이 나누어가진 '금융세계화로의 입장권'의 신뢰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경제를 투기장화하기위한 개혁정책의 중단없는 실행아래 모여든 '투기자들의 신뢰'인 것이다.

작금의 현대사태는 대우사태의 여파로인한 금융기관의 부실이 가져온 기업자금난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8월말 이후 연말까지 돌아올 회사채 총 만기물량이 약 23조원에 달하며, 이중 현대 만기물량이 14.2%에 달하는 상황(특히 8월말 4600억, 12월말 2조)이다. 즉 현대그룹의 모회사격인 현대건설 자금난의 해결여부는 곧바로 8,12월 대란설의 실현여부와 직결되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엄중한 현 현대사태가 제2의 대우사태로 이어져 제2의 금융대란과 경제위기를 초래하지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98년의 한보,기아사태가 그러했고, 99년의 대우사태가 그러했듯이 '투기자들의 신뢰'를 져버리지않기위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재벌개혁정책의 폭력적 관철이나 재벌들과의 기만적인 타협, 그 어느쪽이 되었건 우리에게 돌아올 현실은 '독점자본의 위기'를 '민중생존의 위기'로 뒤바꾸는 "위기의 지속과 구조조정의 반복"만이 기다리고있음도 잘알고 있다. 재벌개혁을 빙자한 신자유주의적 기업개혁의 중단과 재벌총수 재산환수(출연이 아니라), 독점자본에대한 사회적 민중적 통제 및 민중생존의 국가책임을 쟁취하기위한 투쟁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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