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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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투쟁을 보내며

편집부
8.15, 2000년 광복절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역사의 새 장이 열리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반세기를 그리도 반목하고 질시하던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듯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감격이 2000년 여름을 강타하고 있다. 남북 화해와 이산가족의 상봉과 자유로운 왕래, 나아가 통일 한국, 그 누가 원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수만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거리로 쏟아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타는 듯한 폭염과 매연 속에 노동자들은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 반대, 구조조정 반대, 공안탄압 분쇄, 민중생존권 쟁취를! 롯데호텔노동조합과 사회보험노동조합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으로 시작된 이 뜨거운 여름은 50여일이 넘어가는데도 그칠 줄 모르는 열기를 뿜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의 목숨을 건 단식이 20일을 넘고 있으며, 연일 집회와 시위로 전쟁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민족의 장래에 대한 비젼, 민족의 자긍심과 자신감, 남북화해협력의 방안, 그리고 노벨인권상 후보다운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발전의 의지 등 현란한 문구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거듭거듭 강조해마지 않는 개혁의 필요성과 강력한 추진의지의 천명은 이산가족의 슬픔과 분담의 아픔을 악용한 이벤트의 정치적 성격을 극명히 보여준다. 즉, 기업·금융·공공·노동 4대 과제를 2001년 2월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자신감은 통일정국과 집권 하반기에 들어선 정부의 통치드라이브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후손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당장의 고통을 피하려고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이 중차대한 '개혁'의 성격은 분명하다. 임금단체협상 체결을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수천의 공권력을 투입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 서민들의 의료보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국고지원금을 의사들을 입막음하기 위해 퍼다바치는 것, 실업을 일상화시키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이에 대항하는 투쟁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폭력을 들이대는 것, 초국적 자본의 진출과 금융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온갖 포석을 깔아대는 것! 그러기에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에, 노동자·민중의 생존의 문제이기에' 우리는 이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200여명 가량의 사회보험노동조합 노동자들이 50여일을 넘도록 7000명이 넘는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상경해 그 강고한 대오를 지켜나가고 있다. 언제나 투쟁의 선봉에서는 사회보험노동자들과 롯데호텔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사회보험노동자들의 가열찬 투쟁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반기 경험했던 축협, 농민, 공공부문, 금융 그리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결권을 사수하고, 공권력의 폭력적 탄압의 부당함에 저항하며,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의 고삐를 끊어내기 위한 투쟁, 초국적 자본의 진출을 막아내고 그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구조조정 정책의 완결점인 노동시장유연화와 고용조정에 맞선 투쟁이라는 점에서 이 모든 투쟁이 한 괘를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투쟁의 과정에서 체험해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투쟁은 고립적이고 분산되어 있으며, 개별 사안의 치열함으로 신자유주의의 공세를 각개격파하에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가고 있다. 더구나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금융노동자들의 어정쩡한 합의에서 보여지듯이, 대우자동차 사무노위 노동자들의 포드에 대한 승인에서 보여지듯이 개별 사안에서의 굴복이 신자유주의의 전면적 관철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현 정부와 자본에게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우는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투쟁이 슬로건으로만의 통일이 아닌, 진정한 연대투쟁으로 이어지기를 목말라하고 있다. 요사이 고착화되어가는 국회청원과 대정부 교섭력 강화로 귀결되는 동투의 양상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장담하듯이 2001년 2월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그 반민중적 구조조정의 시나리오를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파탄시켜낼 것을 열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8.15를 지난 몇 년간 시달려온 신자유주의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날로, 하반기 구조조정 저지를 약속하는 날로 기억해야 한다. 2001년 4대 개혁의 완수라는 기치를 내걸고 노동자·민중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의 대오는 더욱 강고해져야 하며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자본의 이윤의 활로를 열어주는 금융화에 대한 전면적 반대 투쟁으로, 민중의 기본적 공적생존권을 보장하는 공공성의 확보와 국가책임을 확장하는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확장하는 투쟁으로, 비정규직의 완전 철폐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페지시켜낼 수 있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반기 우리는 사유화에 맞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연대전선의 확장을 예견하고 있으며, 포드로 낙찰이 확실시된 대우자동차를 필두로 다임러클라이슬러와 르노라는 거대 초국적 자본의 이해까지 얽혀 있는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마주하고 있다. 한미·한일·한칠레 투자협정으로 생존의 위협에 처해 있는 노동자·민중의 현실은 피할 수 없으며, 파견제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전면적인 고용의 위협에 처해 있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부도설로 한창 들썩이던 금융시장이 안정되리라는 기대와 주식시장이 부양되리라는 낙관이 위기 극복의 시나리오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몇 년간의 체험으로 신자유주의가 불러오고 있는 위기는 노동자·민중의 양보와 희생으로 조금 지연되고 있을 뿐임을 알고 있다. 정리해고, 고용불안, 공공성의 후퇴가 가져오는 자본의 비용절감이 이 '역사적 위기'를 조금 지연시킬 뿐이며, 위기는 더욱 큰 양보와 희생만을 요구할 것임도 알고 있다. 개별 사업장에서 불거지는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그 사안들을 관통하는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길일 뿐이며, 우리는 우리의 너무나도 정당한 사회적 생존권의 보장과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해야만 한다. 대중투쟁을 통한 자본통제를 실현해야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반기를 새로이 준비해야 한다. 8.15의 열기가 동투의 싸늘함으로 연결되지 않을 투쟁을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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