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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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인상(油價引上)과 금융세계화

편집부
올들어 계속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국제유가는 8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걷잡을 수없이 급상승하기 시작하여 한때 걸프전이후 최고가인 37달러를 훌쩍 넘겨버리기도 하면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유가인상에 격분한 농민과 트럭기사들이 정유소 문을 봉쇄하고 서행운전으로 고속도로 통행을 막는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연일 벌이고 있으며, 미국은 끝내 지난주 22일에 전략비축유(SPR) 3천만배럴(매일100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결정하였다. 특히 국제유가동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경제로서 유가인상은 곧 제2 경제위기의 전초전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석유는 가격변동에 대하여 구입하는 양의 변동이 적고(비탄력성), 재생산이 불가능하며 고갈가능성이 높은 매우 특수한 상품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석유값이 오르는 현상은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3월 11달러선이던 국제유가가 18개월만에 30달러를 훌쩍 넘겨버린 일은 예사일이 아니다. 이 기간동안 석유 수요-공급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었을뿐더러 올 2분기 전세계 원유공급량은 7천6백만 배럴로 수요량(7천3백만 베럴)보다 2백40만 배럴이나 공급초과상태였기 때문이다. 과연 유가는 왜 오르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


유가급등의 원인

국제유가급등의 원인으로는 미국등 주요 원유수입국의 재고가 크게 줄어들고 난방용 수요가 늘어나는 계절적 요인과 정유산업에서의 병목현상등 기술적 요인,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재담합등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계절적 요인이나 기술적 요인만으로 설명되기에 현재의 유가인상은 지나치게 높으며, OPEC은 올들어 표면적으로는 감산-담합을 하지않고 오히려 3차례에 걸친 총 3백30만배럴의 증산을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OPEC 자원민족주의가 왜 재등장하였고 어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설명하지않고 그 재등장만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최근의 유가급등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산유국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서구유럽국가들의 높은 유류세의 경우 자국내에서 유가인상을 견디기위한 한 방편일 수는 있어도 유가인상의 원인일 수 없다. 그러므로 원인은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위기가 초래한 금융세계화와 그것의 현실태인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석유시장 개입과 중동지역 정세의 구체적인 불안정화에서 보다 면밀하게 찾아져야 할 것이다.

미국의 對중동전략과 새로운 중동정세의 출현

국제 원유시장은 지난 1973년 이전 `석유메이저(Seven Sisters)의 시장지배'에서 73∼86년 `OPEC주도'(자원민족주의를 내세우며 1960년 창립), 87년 이후 `현·선물시장 발전/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영향력 확대'의 3단계를 거쳐 변해왔다. 그리고 이같은 원유시장구조의 변화는 73·79 오일쇼크이후 석유자원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의 대중동전략의 변화흐름과 긴밀히 연관된다. 즉 미국은 오랜 종교적 민족적 갈등이 상존하고있는 중동지역의 분쟁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기거나 직접 개입하면서 중동지역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공고히 하는 한편 70년대 오일쇼크를 불러온 OPEC 중심의 석유시장구조와 유가결정 방식을 현·선물시장중심으로 바꾸었다. 이에따라 OPEC은 80년대에 들어서부터 내부분열과 시장수급에 따른 유가결정 방식에 적절히 대응하지못한채 그 힘을 잃기 시작했으며, OPEC 회원국 대부분은 지난 86년이후 배럴당 15달러(90년 걸프전 당시 제외)를 밑도는 저유가로인해 막대한 부채와 재정적자의 누적이라는 고통을 겪어왔다. 흔히 '진통의 시대'라 불리우는 이같은 중동지역 산유국과 OPEC의 80년대는 소련 붕괴이후 원유정치의 최상조건을 확정짓고자 미국이 유발시킨 91년 걸프전으로 그 정점에 다다르게된다. 미국은 이미 80년대 초반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란을 무력화시킨데 이어 이라크를 초토화시키고 리비아-이라크의 공조고리마저 끊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중동지역 산유국들은 70년대 말 탈석유 산업화정책이 최종적으로 실패한 이후 빠져들게된 역(逆)탈산업화의 길을(중심부 제국주의 국가들의 탈산업화와는 전혀 의미를 달리하는) 벗어날 기회를 완전히 잃게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어쩌면 '진통의 시대'와 그로인한 석유위기는 미국의 세계지배전략과 금융세계화를 매개로하여 재벌체제의(중화학공업중심의 수출지향적 공업화 성장전략) 실패와 그로인한 우리의 외환위기 및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우는 남미의 외채위기와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걸프전을 통해 미국이 마련해낸 중동지역 정세의 균형은 1998년 중남미의 산유국이며 세계 3위의 석유수출대국인 베네주엘라에서 체 게바라주의자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중대한 전환점에 다다른다. 메이저들이 석유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있던 1948년, 기존의 이권료대신에 이윤배분제(Profit Sharing System)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중동 '자원민족주의'와 OPEC결성의 기폭제를 제공한바있는 베네주엘라에서의 좌파집권은 침체에 빠진 OPEC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에 충분했기떄문이다. 실제로 차베스 집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국제유가는 서서히 회복하기시작했으며 차베스는 OPEC의 재건과 강화를 주창했고, 이라크의 후세인은 최근들어 쿠웨이트와 미국에 대한 강경한 비난을 재개하였다. 물론 이에대한 미국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은데, 미국은 베네주엘라의 외곽인 콜럼비아에대한 대대적인 군사원조와 유가안정을 위한 전략비축유(SPR)의 방출을 단행했고, 미국내 몇몇 보수 강경주의자들은 후세인 정권의 전복을 다시금 거론하기 시작했다.

유가밴드제의 불투명한 이행과 수급불안

이상과 같은 미국의 대중동전략과 중동정세의 변화에 따라 작년 3월이후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던 유가는 올초경 고유가와 3차 석유파동을 우려하는 진단들이 힘을 얻을 정도에까지 이르렀고, 8월이후로는 주요 석유 소비국들의 재고량 부족과 계절적 요인이 겹쳐 30달러선을 훌쩍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시작하게되었다. 하지만 OPEC은 지난 70년대와같은 석유가격 담합이나 감산조치를 시행하지는 않았다. 거꾸로 OPEC은 지난 3월 유가벤드제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다. 유가밴드제란 원유가의 상·하한선을 정해놓고 실제 가격이 일정 기간 이상 가격 제한선을 벗어날 경우 OPEC이 시장에 자동 개입해 유가를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제유가가 개장일 기준으로 10일 연속 배럴당 22달러를 밑돌면 산유량을 하루 50만 배럴 감축하고 유가가 20일 연속 28달러를 웃돌 경우 하루 50만 배럴을 자동적으로 증산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유가밴드제는 OPEC회원국들간의 이견과 중동정세의 불안정화에 따라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다만 OPEC은 3월과 6월, 9월 총 3차례에 걸쳐 3백30만 베럴의 증산을 합의했을뿐이다. 그렇지만 이정도의 증산 규모로도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올 2/4분기 수급규모상 현재와 같은 유가폭등은 방지되었어야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현재의 유가급등을 야기하고있는 또다른 주범인 초민족적 금융자본과 만나게된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석유시장 개입과 석유메이저들의 투기

미 나스닥 등 증시침체로 수익률이 떨어진 초민족적 금융자본들은 올해초부터 중소 원유공급사들을 대거 인수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곧 올 8월께까지 미국의 원유재고량이 24년만의 최저치인 2억3천만 배럴 규모로 떨어지리라는 판단아래 5월이후 석유메이저들과 함께 집중적인 원유구매를 시작하였다. 이에따라 7월말부터 8월초경부터는 석유현물가격이 선물가격에 비해 급격히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지난 9월10일 OPEC 총회에서 통과된 80만배럴 증산결정에 의해 총회 직후 유가가 하루만에 배럴당 2달러 정도나 크게 하락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9월10일의 결정은 그동안 합의만 되고 지켜지지않고 있던 유가벤드제에 따른 50만 배럴 증산에 30만 배럴이 추가된 것이었으며 그 또한 기존에 합의된 쿼터보다 실제로 많은 양을 생산해 온 일부회원국들의 생산량을 양성화시킨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급량 증가의 실질적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심리적 요소를 감안한 투기 자본의 개입이 원유시장을 장악하고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후확인이였던 셈이다.
또한 이들 금융자본의 움직임 자체와 석유가격의 불안정화는 환율과 금리, 주가등 금융시장의 불안정화를 낳게되어 금융시장의 불안정화와 유가위기는 서로간의 악순환적인 상승효과를 낳게되는데, 60%~70%에 달하는 높은 유류세로 진통을 겪고있는 최근 유럽지역의 유가파동은 연일 최저치를 경신중인 유로화의 불안정화와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이제는 OPEC의 감산 담합이나 전쟁과 같은 사건성 요인이 없더라도 언제든지 국제적인 고유가 파동에 직면할 수 있는 위험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며, 운명의 칼자루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경제위기와 유가인상

최근의 유가급등으로인해 정부와 신자유주의자들은 "97년의 위기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 발생한 위기라면, 현재의 위기는 허리띠를 너무 일찍 풀어서 생겼다"면서 "반도체 가격하락, 유가폭등 등의 외환(外患)을 이겨내기위해서는 늦추어진 내부 구조조정의 고삐를 다잡아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매우 당연한 듯이 정부는 유가인상으로인한 모든 비용을 또다시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가시키려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재벌체제의 위기와 그것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부침으로부터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는 한 중동발 석유위기와 우리의 외환위기는 결코 외환 내환으로 구분되는 별개의 것이 아닐뿐더러 실재하는 주범을 공유한다. 유가급등으로 우리가 부담해야하는 비용은 우리의 지리적 운명과 보이지않는 손이 아니라 미제와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의해 강제로 청구된 초과착취비용이며 우리에게는 이것을 거부할 마땅한 이유와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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