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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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프라하 투쟁의 의미

최근 국제연대투쟁에 대한 약평

편집부
9월 26∼28일, 체코 프라하에서는 제55차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의 연차총회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이 대회는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춘계총회를 이어 매년 하반기에 열리는 추계총회이자, 181개 회원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금융계 인사 등 1만6천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였다.(당연하게도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과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도 1만6천여명 중의 일원이다) 그러나 26일 공식 개막된 연차총회는 27일, 예정보다 하루 서둘러 막을 내렸다. IMF 대변인은 "회의 대표들이 예상보다 빨리 일을 진행, 예정을 앞당겼다"며, "조기 폐막은 반세계화 시위와 상관이 없다"라고 궁색하게 변명하였지만 26일 밤의 격렬한 반세계화 시위를 피해 일정을 앞당긴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350여개 단체, 1만2천 여명의 격렬한 세계화 반대 시위가 180여개국 정상과 대표들이 참석한 '자본주의 대회동'을 서둘러 끝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프라하 IMF·IBRD 연차총회

이번 프라하총회는 비상사태나 다름없는 긴장상태속에서 치루어졌다. 체코 당국은 대회시작전부터 1만 1000여명의 경찰과 5천여 군병력, 최루탄 발사기와 장갑차, 물대포, 헬리콥터 등을 동원하여 시내곳곳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고, 각급 학교과 극장들은 문을 닫았다.
이처럼 개막된 총회의 주요 의제는 IMF 구제금융제도 개혁, 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한 정책협의 강화, 중채무·최빈곤국가HIPC들에 대한 외채 경감 등 두 국제금융기관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잡혀져 있었다.
'IMF·IBRD의 경제테러를 반대한다'는 시위대의 구호를 익히 예상한 듯,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는 "나는 그들 중 대다수가 합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우리의 과제는 세계화를 기회와 통합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IMF·세계은행은 최근 제3세계의 반대자들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난 4월 워싱턴 시위 조직위원와의 공개토론회에서,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제3세계의 빈곤퇴치를 위해서, 그리고 음식과 식수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아느냐? 너희들이 직접 가서 본다면 이러지 못할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였다.) 이에따라 빈국 부채탕감과 관련한 실질적이고 빠른 조치에 대한 요구는 거부되었으며, 총회마다 제기됐던 IMF 의사결정구조 개혁문제 역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IMF는 이번 총회에서 “IMF구제금융 졸업국가들의 사후관리 강화를 위해 IMF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차관잔액이 출자액(쿼터)보다 많은 회원국에 대해선 이사회 판단에 따라 정책협의를 재개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IMF 체제를 졸업한 국가도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하거나 위기징후가 나타나면 다시 IMF로부터 정책점검 및 감시를 받게 되며, 또 위기에 대비해 미리 자금지원을 예약한 뒤 위기징후가 나타나면 IMF자금을 도입할 수 있는 융자제도가 도입되게된 것이다.
이같은 IMF·세계은행의 자세에 비례하여, 이번 국제 시위대는 ― 지난 4월 워싱턴 시위의 연장선상에서 ― 제3세계 외채 지불 거부,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중단, IMF·IBRD의 해체 등을 주요 구호로 내세우면서 양대 기구와의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하였다. 특히 이번에는 작년 시애틀에서의 WTO 반대집회, 올해 워싱턴에서의 IMF·세계은행 춘계총회 등 미주 지역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의 바톤을 이어받아, 유럽 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동유럽 지역에서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인 다양한 사회운동들도 집결하였다.

국제금융기관들을 타켓으로 하는 투쟁전술의 부각

그렇지만 WTO·IMF·IBRD 국제금융기구들을 비롯한 각종 국제행사들을 방해하거나 무산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투쟁전술들이 채택된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행사들에 대응하기 위한 한시적인 국제 네트워크들이 구성되고, 서로 다른 이념과 투쟁 목표를 갖고 있는 집단들이 서로 얽혀 시위를 조직하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직접행동'을 주도하는 네트워크들이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이번 프라하에서와 같은 방식의 투쟁전술들이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서구에서의 신사회운동들의 출현과 '(비폭력)직접행동'이라는 상징적인 시위 방식의 등장, 1992년 리우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는 NGO들의 폭발적 증가라는 맥락과, 제3세계에서의 1980∼90년대를 걸치는 외채·빈곤과 구조조정의 악순환이라는 여러 맥락들이 중첩되어 있다.
서구에서의 신사회운동은 ―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상관관계를 맺었던 노동자운동의 정체를 배경으로 하여 ― 사회운동의 이념 및 이슈의 분화와 재수렴이라는 순환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나갔다. (혹자는 그 결과 형성된 사회운동들의 구조를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들'networks of networks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운동 단체들은, 대중적인 동원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최대적으로 이슈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다양한 상징적 시위 패턴들을 개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그 중 일부 사회운동들은 각국 정부들에 대한 견제자·비판자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고, 각종 정부간의 외교트랙을 보완하는 제2의 외교트랙을 보장받게 되었다(각종의 국제행사의 '부대행사'처럼 따라붙는 민간단체포럼). 즉 'NGO올림픽'으로 표현되는 바, 199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NGO운동의 '르네상스' 시대가 목전에 도달한 듯 여겨진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시애틀-워싱턴-프라하에서의 '직접행동'은 이렇게 구조화되려는 틀들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각종 사회운동 단체들이 주체가 되었던 대개의 대항회의가 NGO들이 동반자의 위상으로 '로비 전략'을 펼치는 장이었다면, 최근에는 제3세계의 나라들이 현재 겪고 있는 외채·빈곤의 문제를 세계적으로 직접 호소하고, 국제금융기관들을 전술적 타겟으로 하여 그 반대투쟁을 확산시키는 장으로서의 의미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들이 최근에 등장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다자간투자협정(MAI)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기업과 해외투자자의 권리만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MAI의 파괴적 위험성은 사회 각 부문 전반에 걸쳐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세계적인 수준의 연대투쟁의 활성화는 이후 세계화 반대를 공동의 목표로 하는 국제연대투쟁의 가능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제3세계의 외채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직접 관련되는 IMF·IBRD 총회에 대항하여 올해 워싱턴-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연대 집회들은 제3세계의 노동운동-사회운동의 입장들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주요 서방국가 정상회담에서 제3세계 외채경감 프로그램이 언급되거나, 국제금융체계의 불안정성이 야기하는 파괴적인 효과들이 일방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인식의 확산은 그 도화선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러한 흐름들에 조응하여, 얼마간의 사회운동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양산하는 다면적인 갈등들을 쟁점으로 하여 급진화되면서 연대를 강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에 맞서는 민중투쟁과 결합

물론 최근의 흐름들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세계화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는 각각의 운동단체들이 너무나도 다채로운 이념적 스펙트럼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바, 앞으로 일관성을 갖는 공동의 전망들을 만드는 게 가능하겠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진작부터 나오고 있다. 또한 네트워크형 조직, 운동형태들이 개방성과 유연성이라는 장점만큼이나, 전략적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음에 따라 일사분란한 투쟁전술들을 펼쳐나가기 어렵다는 지적 역시 만만치않다. 하지만 장기적인 운동의 전망이 현존하는 운동들의 단순합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면, 세계화 반대투쟁을 일관된 맥락에서 최후까지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나올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될 터이다. (물론 사회운동간의 연대와 조정은 언제나 항상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투쟁의 발전 경로에 있어서, 그 역할은 제3세계의 기층 민중운동으로부터 나오리라 예견할 수 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최근까지 일종의 '선도투쟁'의 효과를 가져다 주었던 국제금융기관 반대 투쟁이 각각의 지역 또는 국가로 환류되고, 노동자·민중운동이 수행하거나 수행할 구조조정 반대 투쟁과 정치적으로 결합되는게 긴급한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한국에서의 ASEM 반대투쟁은, 구조조정의 파괴적인 효과들에 대해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각급 기층 민중운동들이 주역으로 나선다면, 세계화 반대투쟁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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