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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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협박에서 청산협박으로

대우자동차 노조동의서 제출 이후

편집부
11월27일 대우차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한 "대우자동차 경영혁신을 위한 노사합의서(별첨)"에 잠정합의하였다. 지난 11월 7, 8일 정부·채권단의 부도협박을 이겨내었던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이 끝내 법원의 청산협박에 굴복당하고 만 것이다. 물론 이번 합의는 정부·채권단이 강요했었던 명시적인 인원감축동의서와는 그 내용과 성질이 다르다. 구체적인 인력감축 규모와 시한이 명기되지않았고, 노조의 경영혁신위원회 및 4자협의기구(노·사·정·채권단) 참여가 보장된 것이다. 노조로서는 적어도 법정관리이후 투쟁의지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비통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이번 대우차 노사합의를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땅히 대우차 노조에게만 과도하게 지워져있는듯한 대우차투쟁의 육중한 무게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반성과 새로운 투쟁의 결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부도협박에서 청산협박으로 : 한발한발 강화되는 집요한 정부, 자본의 총공세

11월8일 최종부도처리 직전까지 정부·채권단과 언론은 노조가 동의서를 제출하지않아 대우차가 최종부도처리될 경우 대우차는 송두리채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노조에 대한 부도협박의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막상 이들의 진정한 협박과 공세는 부도처리이후 더욱더 집요하게 전개되었다. 정부·채권단은 대우차 처리책임이 법원으로 옮겨진 다음에도 노조의 구조조정에 대한 동의 없이는 설사 법원이 법정관리를 결정하더라도 신규여신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법원은 이 장단에 맞추어 법정관리여부를 노사간의 구조조정 합의서 제출여부에 따라 결정짓겠다는 청산협박에 나섰다. 이에질세라 언론은 이같은 정부·채권단 방침의 배후에는 대우차 처리의 유일한 희망(!)인 GM의 암묵적 주문이 있다면서 연일 대우차 관련 업체들의 도산위기책임을 노조에게 돌려대기에 바빴다. 그결과 대우차 노조는 부평공장 가동이 전면중단된 상태에서 창원, 군산은 물론 부평공장 조합원들과도 분리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무직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노동직장발전협의회원 5700여명이 때아닌 애사(愛社)주의를 내세우며 사직서를 제출하자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몇가지 여지들을 남겨둔채 법원의 청산협박에 굴복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끝은 아니였다. 27일 합의서가 제출된 직후 사측은 그동안 숨겨왔던 외국컨설팅 업체의(아더앤더슨) 용역보고서를 내보이며 인원감축 규모가 종전의 3500명이 아니라 6500명 선에서 결정되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기시작했고, 언론과 채권단은 일괄매각이 아니라 분할매각안이 현실적이라는둥 노사합의서에 따른 노조권한과 경영참여폭이 너무 넓다는 등의 공세를 펴고있다. 뿐만아니라 11월28일에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공적자금제도개선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제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체결시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동의서 제출을 의무화한다고한다. 저들의 요구는 투쟁과 저항의 수준에 따라 그때그때 결정되면서 결코 끊기지않고 한단계 한단계씩 집요하게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매각실패, 부도책임의 전가

작년 8월 26일 대우자동차는 워크아웃 사업장이 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워크아웃(기업개선명령)이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채권은행단이 서로 협의하여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을 의미한다. 통상 이러한 워크아웃 상태에서 구조조정은 자금지원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고, 그 결과 기업은 채권단의 관리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기업개선작업이란 말뿐이였을뿐 정부·채권단의 대우워크아웃 과정하에서 대우차는 이미 망한 회사였다. 대우차 사태로인한 지역, 국민경제 전체의 붕괴를 막기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었지만 정부 채권단은 이 사회적 비용의 모든 성과들을 해외매각의 사전수단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채권단은 적기자금지원을하지않고, 추가적인 연구계발투자도 중단함으로써 워크아웃기간동안 도리어 막대한 추가부실을 키워 실질적인 기업회생에도 실패했을뿐더러, 해외매각의 전제조건인 인력감축과 회사분할/하청기지화로 인해 발생하게될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을 애써 은폐/외면하려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개별적 부담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정부·채권단의 정책은 믿었던 포드의 갑작스러운 인수포기로인해 결정적인 실패로 귀결되었다. 지난 워크아웃 기간동안 매달 돌아오는 어음을 대우차의 자력으로 충당할 여력이 없었음을 볼 때, 부도결정은 실제 채권단의 판단이었던 것이고 다만, 최종부도 결정을 내린 이유에 노조의 동의서 제출 거부가 명목상으로 있었을 뿐이였다. 또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우자동차의 주채권 은행은 국책 은행인 산업은행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워크아웃 상태에서의 최고경영자 선임권은 채권단에 있기 때문에 워크아웃 이후의 대우자동차에 있어 회사와 채권단과 정부의 입장은 다를 수 없고, 그렇다면 그 동안 회사측에서 자구안을 만들기 위해 노조와 협상하는 동안 산업은행에서 최종부도처리를 미루어 주고, 최종부도 후 정부에서 파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내놓은 일련의 과정은 분명 분위기 심각한 하나의 연극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종대 대우자동차 회장이 부품협력업체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조합이 동의서를 제출했더라도 부도는 났을 것'(연합/11.10)이라는 발언으로 인해 사실로 확인 된 바 있다. 결국에는 정부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마당에 채권은행 관리하의 '워크아웃'이나 법원에 의한 '법정관리'나 소소한 차이를 제외하면 동일한 상황에서 정부와 채권단은 왜 최종부도라는 무리수를 감행했을까? 법정관리 상태에서는 채무가 동결된다는 점에서 우발채무의 부담이 없어 오히려 부실 정리를 위해서는 보다 나은(Clear) 조건을 형성할 수 있고, 기아자동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최종부도로 인해 이미 퇴직자의 수가 자연 감소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어 인원조정의 효과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노조에 대한 강력한 여론몰이공세를 전개할 수도 있고, 경쟁력에 따라 부품협력업체까지 자연정리 되니 정부의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요, GM은 '무혈입성'인 셈이다.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같은 사실들을 어느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던 대우차 노조는 그렇기 때문에 11.8 부도당시 구조조정 동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이후 투쟁의 여지를 스스로 완전포기한채 워크아웃절차가 재개되든, 동의서를 거부하여 최종부도처리되든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도처리시 공장 가동중지로인한 하루 적자액이 100억원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1천5백억원의 한달 운영자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우차를 최종부도 처리시킨 이유 역시 여기있다. 바로 반성할 줄 모르는 정부·채권단의 해외매각/구조조정 정책, 그것이다.

해외매각저지, 생존권 사수, 공기업화 쟁취 투쟁은 아직 끝나지않았다

정부는 대우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현재까지도 GM의 인수의사 타진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또한 노조가 11.27일 굴욕적인 노사합의서에 싸인한 마당에도 노조에대한 갖가지 협박과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정-채권단의 대치는 20여일 전 상황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마치 이성을 상실한 듯 한 정부의 이런 태도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가 자본시장의 신뢰조차 잃어가고 있는 현재의 경제위기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반도체 경기 하락과 유가상승의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경기퇴조 징후는 더욱 뚜렷해지고, 과정의 반민중성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저항에 밀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에 쫓기는 형국에서 파국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우자동차 처리과정은 DJ정권의 1차 구조조정 실패와 맥을 같이하고, 2단계 구조조정의 결말에 맞닿아 있다. 27일 노사합의 이후 각 언론과 채권단은 "진작에 이루졌어야할 일로 환영 하지만", "이제 20일 전으로 다시 돌아갔을뿐"이라며 좀더 과감한 구조조정과 노조무력화의 길은 '산넘어 산'이라는 선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20일전으로 돌아간것도 환영할만한 일도 아니다. 다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않았다는 임전의 각오는 우리역시 그들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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