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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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신화', 말잔치는 끝났다!

정리해고와 노조파괴에 맞선 벤처노동자들의 투쟁

편집부
벤처의 신화속에 부패의 악취가 난다

1년 전만해도 벤처공화국이라도 된 것 처럼 벤처는 경제 위기하에 일자리 창출과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모순을 대신한 새로운 생산양신인 것 처럼 달아올랐다. 벤처자본가들은 벤처경제에서 인간은 자아실현의 열정을 가진 능동적 존재이며 일은 그 열정의 표현이라고 했다. 따라서 여가시간은 자신의 열정과 꿈이 멈춰 있는 시간이라고까지 하며 밤 새는 줄 모르고 일에 몰두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이 벤처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동안 벤처자본은 M&A를 통해 몸집을 부풀리거나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매출을 조작하여 더 많은 투기자본을 유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왔다. 외국기업의 한국 현지 법인을 세워 '이름도 없는 업체에 독점 라이센스를 주고, 벤처기업에 투자한 뒤 그 자금으로 기술을 사는 방법'으로 매출을 조작하기도 했으며, 코스닥 상장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을 해외로 빼돌리기까지 했다. 이것이 일부 벤처기업의 문제라고 할 만큼 벤처자본가 그들은 떳떳한가 말이다.
또한, 금감위의 부정과 코스닥 상장과 관련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가운데, 벤처자본과 정권의 부패의 사슬고리는 구조조정의 칼날위에서 암울한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민중의 가슴을 더욱 져미게 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수십조에 달하는 정보화촉진기금이나 벤처육성자금이 순수한 의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벤처캐피탈을 통한 정치자금의 유입문제가 계속해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골드러쉬로 비견되던 벤처의 주변에는 쓰레기 더미속에서 스며나오는 침출수의 썩은 악취로 진동하고 있다.

금융투기없이 벤처없다

우리는 벤처경제의 거품에 대해서 누차 경고해 왔다. '금융투기없이 벤처없다'라는 우리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모든 현실이 증언해주고 있듯이 벤처열풍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가 양산한 금융투기와 부패의 온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1996년 개장된 이후 버려져 있던 코스닥 시장과 벤처창업에 정부의 갖가지 지원·육성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이다. 이후로 20-30대의 신흥벤처갑부들이 탄생했고, 인터넷·주식투기열풍은 경제불황의 빈 자리를 채워갔다. 닷컴 기업들이 줄을 잇고, 벤처기업을 둘러싼 머니게임이 시작되었다. 벤처기업들은 소비처를 찾지 못해 안달이 난 과잉자본을 공룡처럼 먹어 치웠다. 사업계획서 한 장이면 수십억원의 자본을 끌어들이던 때가 바로 그때의 시절이며, 세상에 눈먼 돈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그들의 모습을 볼 때가 바로 그 때였다.
그러나, 거품이 빠진 벤처업계에 감도는 분위기는 썩은 악취와 함께 그들이 굴뚝산업이라 비아냥 거리던 굴뚝 기업들에서의 구조조정 '그 모습 그 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그 곳에는 와이-이론도 없으며, 스톡옵션을 통한 가치분배라는 말장난도 없이 노조파괴와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정리해고만이 존재하고 있다.

벤처기업, 부당 노동행위의 온상지

멀티데이터시스템 노동조합, 최초의 벤처노조인 이 노동조합은 현재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1월 4일 사측은 일방적으로 병역특례업체 취소 신청을 하여 병역특례직원 9명을 실질적인 해고 상태로 몰아 넣었고, 일반직원 1인을 부당전보하여 총 10명의 업무를 박탈하였다.
2000년 2월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5,60만원 받던 직원들의 월급을 동종업계 평균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린 후부터, 사측은 노동조합 때문에 경영이 어렵다느니, 노조 때문에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하며 노동조합을 핍박해 왔다고 한다. 게다가 투자 받은 돈의 대부분을 다른 업체에 재투자하는 등 "간판만 내걸고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의 부실경영만을 거듭, 틈만 나면 무능경영으로 인한 회사의 부실을 노동조합에 책임전가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경기의 냉각과 벤처기업 위기설을 기회로 회사의 자금 사정과 무관하게 '구조조정'의 이름 하에 직원 10명의 업무를 빼앗고 제 발로 나갈 것을 강요하였다. 그것도 노동조합의 집행부가 대부분 병역특례사원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병무청에 병역특례업체 취소 신청을 하여 노조를 말살하려 하고 노동자들을 심각한 고용불안 상태에 몰아 넣고 있다.
뿐만아니라 테헤란 벨리에 위치한 멀티데이터시스템 사무실 길 건너 디지털벨리라는 벤처기업에서는 사측의 무분별한 사업투자와 독단적 경영방식, 고용불안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지난 10월 노조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노조설립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측은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을 무더기로 9명을 해고하고 3명을 징계하였다.
그동안 벤처기업에서는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라는 식의 해고와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계약직 고용의 만연, 초과근로, 연장근로에도 불구하고 수당이며,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등 수 많은 부당노동행위들이 자행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와 벤처자본가들이 더욱 괘씸한 이유는 이를 보고도 못본 채 한 것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벤처의 신화, 대박의 꿈을 이야기하며 스톡옵션이라는 종이조가리 하나에 노동자들의 미래를 저당잡게 하고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유린하고 기만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가치의 분배는 스톡옵션을 통해 이루어진다...테헤란로의 벤처인들이 심야에도 시간외 근무를 즐기고 있고...전통적 노사관계에 관한 법체계와 벤처 문화간에는 분명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만약 노사관계 실정법이 벤처기업에 엄격히 적용된다면 모든 벤처 기업의 대표자들은 위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벤처 기업에 대한 노사관계법 적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특성에 맞는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

벤처 노동자 투쟁의 의미

노동과 자본은 꿈과 이상의 실현이라는 동반자적 관계, 노예노동이 아닌 장인노동이라던 자본의 말잔치는 이제 끝이 났다. 무엇보다도 벤처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동안 벤처의 신화속에서 자본과 정권에 의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억압당한 노동자들이었기에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벤처의 몰락과 부패 그리고 벤처노동자들의 투쟁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노동자는 오로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을 통해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벤처의 위기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결과의 직접적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벤처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구조조정의 결과로 한국경제가 다시 위기로 치닫는 것과 같이 벤처는 금융팽창의 직접적인 영향을 속에 발전했고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벤처의 위기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위기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것이며, 벤처노동자의 투쟁은 자본과 정권에게 위기심화에 대한 책임을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년 봄이면 10여개 내외의 닷컴기업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오늘날 벤처업계의 모습과 '벤처기업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김대중 정권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이는 것이 환영은 아닐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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