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02.28
첨부파일
social77.hwp

'미국 우산속의 햇볕정책', 그 한계는 드러나는가

편집부
2월 27일 한국의 김대중대통령과 러시아의 푸틴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쟁점은 미국의 전국미사일방어망(NMD)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의견이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런데 양국 공동성명에서는 "탄도미사일제한조약(ABM)이 핵무기 감축 및 비확산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대목이 포함됨으로써, 미국의 NMD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문제제기가 '우회적'으로 표현된 셈이다. 1972년 미소간에 체결된 ABM조약은 "미소 양국이 각각 200개 이하의 요격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고, 2개의 광역에서 배치할 수 있다", 따라서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미사일방어체계의 배치 또는 기지 건설은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써, 미국의 NMD 정책을 구속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공동성명은, 우회적이기는 하지만, NMD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온 미국의 현 부시행정부의 의사에 반하는 '이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정부는 NMD의 짝을 이루는 동북아 전쟁지역미사일방어망(TMD) 구축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온 한국정부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계기는 무엇인가? 누구라도 짐작하겠지만, 이는 대북정책에 대한 부시행정부와의 갈등을 암시한다. 즉 김정일위원장의 중국방문, 한러 공동성명, 그리고 3월의 김대중대통령의 미국방문 예정 등 최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정상외교는, 북미 미사일회담 중단-클린턴 방북무산-부시대통령 당선 등으로 이어진 북미관계의 위기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협상 중단과 클린턴 방북무산

지난해 10월 조명록차수와 올브라이트장관의 상호방문이 이루어지고 양국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면서 양국관계가 급진전되리라는 기대가 매우 높아졌다. 10월 12일 발표된 공동코뮤니케에서는 "쌍방은 그 어느 정부도 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는 내용과 함께, 매우 놀랍게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올브라이트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이러한 상호방문은, 북미간의 핵심현안이며 '페리프로세스'의 열쇠가 되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대포동')에 대한 협상타결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미사일협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최종타결에 이르지 못했고, 부시의 대통령당선이 확정되면서 클린턴 방북은 약간의 논란 끝에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협상이 중단된 이유에 대해 어느 측도 분명한 이유를 밝히지 않음으로 인해, 클린턴 방북 무산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의문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 미국의 한 분석가는, 미국이 장거리미사일 뿐만 아니라, 이미 실전 배치되어 있으며 일본과 남한을 사거리에 두는 중거리미사일('노동') 개발 및 배치 동결을 요구하였고 북한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미사일협상이 좌초하고 말았다고 설명하였다('부시정권과 북미사일', 셀리그 해리슨, 한겨레 2001.1.15). 이러한 설명이 사실이라면 향후 협상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클린턴 정부조차 협상 도중에 발을 빼버린 미사일 문제에 대해 부시 정부는 더욱 완강한 태도를 취할게 분명하며, 미사일협상의 중단은 다른 모든 대화의 중단과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콜린 파월 신임 국무장관은 최근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중단과 함께, 이에 대한 확실한 검증 그리고 북한 재래식무기의 감축을 추가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다. (확실한 검증조치란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최대한 자유로운 사찰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아무 대가없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이다. 또한 재래식무기 감축 역시 한미군사동맹의 재래식전력과의 상호감축이 아니고서는 협상이 성립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페리프로세스의 미묘하지만 중대한 변화 가능성

따라서 미사일협상에서의 태도 변화는 곧바로 ― 현재의 '페리프로세스'와 같은 ― 대북전략 전반에 대해 미묘하지만 이후 큰 차이로 확장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공화당계 분석가들은 부시정부의 접근방식이 "거래하고 싶다면 대화하자, 아니면 여기 내 전화번호가 있다"는 식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일각에서는 1994년의 제네바합의도 재검토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페리보고서의 기본논리는 "제네바합의는 북한 핵동결을 위한 중요한 합의로서 북한이 먼저 위반조치를 행하기 전에는 성실하게 이행되어야 하며, 또한 북한의 미사일문제는 북한이 위협이라고 간주하는 사안들을 지렛대로 삼아 별도의 협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에 비해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은 제네바합의 자체를 변경하거나 북한의 핵-미사일-재래식전력의 감축 요구를 제네바합의 이행과 연계하는 전략이 되거나, 제네바합의는 존중하되, 그외 추가적인 협상 의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구가 선결적으로 관철될 때까지 북한의 요구를 계속 무시하고, 만약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도발행위'를 할 경우 군사적 응징조치를 취한다는 '무시'(neglect) 전략으로 비화될 수 있다. 따라서 부시정부의 이러한 접근방식이 실행된다면,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이 지난 수년간 기울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의 어느 고위관리는 현재의 상황과 관련하여, 미국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며, 결국 페리프로세스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볼 때,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틀이 깨지고 '어쩔 수 없이' 미사일개발로 치닫게 되는 상황을 북한이 결코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준다. 따라서 이는 미국의 전략가들이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라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긴장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힘의 정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북한의 근본적 딜레마를 가리킨다.

햇볕정책의 자기모순

한편, 김대중정부는 출범 이래 미국의 주장대로 한미일 정책조정그룹이 북한 미사일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것을 수용하고 남북대화의 진척 여부와 무관하게 한미간의 군사동맹관계에는 결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면서 미국과의 정책공조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도록 심혈을 기울여왔다. 또한 미국의 NMD/TMD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북한의 일본에 대한 과거청산 및 식민지배 보상 요구에 대해서 어떤 태도도 취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단기적인 성과(이산가족상봉, 경제협력사업)의 의미를 선전하는 데에만 치중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미국과의 정책공조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란 구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치명적인 한계를 갖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결국 '햇볕정책'의 성공의 열쇠를 한국정부 자신이 가졌던 게 아니라 미국이 가지고 있었다는 매우 '평범한'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사실은 햇볕정책이 미국과는 구별되는 자신의 고유한 정책적 유인이 없다는 점을 통해 반증될 수 있을 것이다(특히 전통적으로 북한이 선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제들 예컨대 북한에 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기존 한미동맹관계 및 평화협정 관련 문제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 한국이 미국과 무관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갈 의제를 제시하기보다는 북미대화를 전제로 하여 식량·비료·전력 등 경제지원과 같은 단기적인 사안을 통해 북한을 대화에 끌어내려는 시도를 계속 반복해왔다는 말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국가보안법 철폐로 상징되는 바 통일문제에 대해 국민적 의지를 모아내려는 의사를 보이기보다는, 보수세력에게도 햇볕정책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게 하도록 주력하였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실제 중거리미사일이 한국과 일본을 사거리에 두는 만큼 미사일협상의 의제로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미국이 주장할 경우, 한국정부는 강력히 반발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왜 미사일개발에 나섰는가에 대한 이해가 배제된 채, 이미 한-미-일 3자정책조정그룹에서 3국의 대북정책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가 북한 미사일문제의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서, '대량파괴무기의 反확산'이라는 미국의 전략 목표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NMD 문제에 대한 중-러의 반발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것 역시 미국이 자신에게 심대한 타격이 될 것으로 생각할까의 여부도 불투명하다. 게다가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이 은밀하게 요구하는 미국 차세대전투기 도입이나 한미투자협정 조기체결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설사 단기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낳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오히려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의 자기모순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제어
평화
태그
노점상 이근재 노점탄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