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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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

차이에 기반한 평등, 차별에 대한 거부를 위하여

편집부
90년만의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타들어가고 있다. 가뭄이라는 천재(天災)가 논바닥을 갈라놓고 농민의 삶을 메마르게 한다면, 이 땅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는 "노동법 개악"이라는 인재(人災)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민중의 삶을 송두리채 찢어놓고 있다. 구조조정·정리해고의 가속화와 대우자동차, 캐리어, 한통계약직과 114, 효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살인적인 경찰폭력, 용역깡패 구사대 폭력등 가뭄보다 더한 인재(人災)가 우리의 삶을 옧죄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노동법 개악은 '변형근로'와 '휴일무급화'를 통해 우리를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몰아넣고 있고, 노사정위내 '비정규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의 강화, '구조조정 특별법'을 위시하여 구조조정의 제도적 완성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의 맥락에서 모성보호법의 기만적인 처리가 놓여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기만적인 2년 유예 논란을 빚었던 모성보호법(안)은 출산휴가를 60일에서 90일로 연장하는 대신, 근로기준법 상에 존재하는 여성관련보호조항(여성에 대한 연장·야간·휴일노동·위험·유해업무에 관한 조항)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생리휴가제 역시 월차휴가제와 함께 노사정위원회에서 도맡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외 가산수당의 비율을 현행 50%에서 25%로 삭감하는 법안까지 동시에 처리될 예정이어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월 국회에서 통과될 모성보호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안이고 무엇을 위한 법안이란 말인가.

모성보호법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국회 환경노동위에 의해 대안 법률로 제출되었다. 2000년 6월 29일에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의 대표 발안으로 유급태아검진휴가 신설, 유급출산휴가 연장(60일->90일), 유·사산시 유급휴가 신설, 건강보험과 사용자의 모성급여 분담이 제안되었다. 이후 2000년 8월 24일 「여성노동법 개정연대회의」에 의해 산전후 휴가 30일 연장분에 대해 고용보험에서의 임금지급, 유급유사산휴가, 임산부의 건강검진휴가, 육아휴직시 소득의 일부조항, 가족 간호휴직제 등이 청원되었다. 3달 뒤인 2000년 11월25일 민주당은 한명숙 의원의 대표 발의로 임신여성보호조항, 출산휴가연장등의 내용과 함께 여성보호조항(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시간외근로)을 전면 삭제하는 내용이 제안되었으며, 12월에는 자민련 소속 정우택의원에 의해 생리휴가 삭제(안)이 제출되었다. 현재 이러한 내용으로 구성된 모성보호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지만, 6월 국회상임위원회를 앞두고 신속히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여성노동자의 기본적 권익을 완전 유린하고 있는 환경노동위의 개정안에 대해 「여성노동법 개정 연대회의」(여성단체연합, 여성단체협의회, 한국노총,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전국여성노조, 한국여성민우회, 민주노총 참여)는 근로기준법상의 여성보호조항은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고, 일부 여성노동자들의 '동등대우'에 걸림돌이 되므로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동의해주고 말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경우, 당시의 합의가 민주노총의 뜻과는 다르게 처리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이번 6·12 연대파업과 '총력투쟁 4대 요구안'의 하나로 근로기준법상의 여성보호조항 개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여성노동법 개정연대회의에 참여하는 단체와 다른 입장을 확정한 상황에서 「여성노동법 개정연대회의」에 대해 보다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야말로 전경련, 자민련, 민주당 정부의 기만적인 2년유예 논란속에서 정신을 잃고 초가삼간을 다 태워먹어버린 꼴이아닌가.
모성보호법의 즉각적인 실시와 출산비용의 사회분담화는 마땅히 이루어야할 우리운동의 당면과제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과의 차별과 가정에서의 임신, 출산, 육아 부담의 일방적 전담이 강요되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모성보호에 관한 여성노동법 개정'에 대한 여성단체들의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이것이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철폐하고,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한 그야말로 최소한의 요구이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성보호법 2년유예냐? 즉각 실시냐?"라는 허구적인 쟁점에 가려져, 보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2년 유예라는 반짝쇼의 이면에는 '모성보호'와 '여성보호'가 마치 맞바꿀 수 있는 것인냥 흥정대상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운동단체들 사이에서는 '모성보호'와 '여성보호'가 구별되어서 논의되고 있다. "생리휴가"를 계기로 촉발된 이 논의에서는, 임신·출산기능과 직접 관련되는 것은 '모성보호'로, 여성노동자를 보호하는 기타 사항들은 '여성보호'로, 그리고 자녀 양육의 권리는 '육아권'으로 구별·명명될 것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현재 전개 양상을 보면, 어느 것이 우선해야 한다는 선후의 논리가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별적으로 '모성보호'만을 중심에 놓고 '여성보호'를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되는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전세계적으로 '모성보호'는 대두되고 '여성보호'는 후퇴되고있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여성보호조항은 그 명칭에 있어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느낌을 주는 '보호'라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성원의 한주체가 당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보편적 여성'인권'과 '여성노동권' 보장의 개념으로 재정의되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로시간·야간 및 휴일근로·위험유해 업무에의 여성보호는 남녀 동등대우요구와 상충되는 예외조항이 아니라 차이에 근거한 보편적 인권과 노동권으로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성평등이란 차이에 기반한 평등이고, 차이가 차별을 양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성보호법 2년 유예사태, 그리고 다시 제기되고 있는 모성보호법 개정은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과 노동비용 축소라는 전반적인 노동법 개악 흐름과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보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는 '모성보호법을 전제로 한 노동법 개악의 시도'에 다름아닌 것이다. 특히 우리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방향이 타협할 수 없는 여성노동의 총체적 권리로부터 '모성'을 분리하여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는데 맞춰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현상적으로만 보아도, 한가지를 내어주고 더 많은 것들의 양보를 강요하며 전체 투쟁전선을 교란시키는 김대중정권의 기만적 작태가 현재의 모성보호법 개정 과정에서 역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성보호에 국한되지 않는 '여성'노동자들의 보편적 인권과 노동권의 문제가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후퇴시키려는 정부와 자본에 맞서 모성권 강화와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온전히 쟁취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며 여성보호조항의 후퇴없는 모성보호법이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되지 않고, 차이에 기반한 평등을 쟁취하기위하여.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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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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