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07.25

[네그리/하트] 제노아의 시위대들이 원하는 것

편집부

[7월 20일자 뉴욕 타임즈 opinion란에 실린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기고문입니다. 번역은 정혜주씨가 해주셨습니다.]


[네그리/하트] What the Protesters in Genoa Want : 제노아의 시위대들이 원하는 것

Michael Hardt & Antonio Negri
New York Times, July 20, 2001


제노아, 개방성과 예리한 정치적 복잡성 모두로 잘 알려진 그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가 이번 주말 혼란에 빠져 있다. 이 도시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의 이번 정상회담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들을 활짝 열어젖혔어야 했다. 그러나, 그 대신 제노아는 하이테크를 이용한 통제와 바리케이트들로 에워싸인 중세의 요새로 탈바꿈했다. 지구화의 현재적 형태에 대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어떠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러한 생각이 지도자와 지도받는 자들 모두를 제한한다.

여덟명으로 이루어진 이 집단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복잡성을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목표에 있어서 자비롭고 투명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세계의 빈자(貧者)들을 원조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그의 관심에 경의를 표하고자 했다. 그러나 진정한 의제는, 미사일 방어 체계의 건설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유력국들 사이의 관계를 재협상하는 것이다.

그 지도자들은, 그러나 이 시대에 뒤떨어진 연극에서 무대 뒤로부터의 지시를 따라하고는 있지만 어쩐지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로부터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아직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왠지 아닌 듯한 왕으로서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더 약한 군주들에 의해서 지지받고 있는. 이것은 좀처럼 미래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것은 1914년 이전, 노쇠한 왕실 권력자들의 기록사진을 더욱 닮았다.

제노아에서 정상회담에 대항하여 집회를 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나, 이들 구세대적인 권력의 상징들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지구적 체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혹은 심지어 미 제국주의의 개념을 통해서조차 이해할 수 없다.
제노바까지 이끌어갔던 많은 시위자들은 어떠한 국가 권력도 현재의 지구적 질서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위는 G-8, WTO, 세계은행 그리고 IMF와 같은 국제적 그리고 초국가적인 조직체들에게 직접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이 운동들은 때로 그렇게 보이는 것과 같은 반미 투쟁은 아니며 다른, 더 거대한 권력 구조를 겨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가 국가적이지 않다 해도, 우리는 오늘날의 지구화를 지배하고 있는 초국가적 권력들이, 그러나, 민족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대표성에 대한 민주제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선거도 없으며, 논쟁을 위한 공공 포럼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자들은 지도받는 자들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장님이며, 소경이다. (지도자들은 지도받는 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어떠한 경로도 없다.) 시위대들이 길거리로 나오는 것은 이것이 그들에게 가능한 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경로와 사회적 메커니즘의 결여는 그들(시위대들: 역자 주)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반지구화는 제노아(혹은 퀘벡, 프라하, 혹은 시에틀)에 있는 시위대들을 적절히 특징짓는 말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지구화라는 말의 정의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는 한, 지구화와 관련된 논쟁은 절망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시위대들은 사실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현재적 형태에 대항하여 연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이 고립주의자나 분리주의자, 혹은 심지어 국수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지구화의 물결과 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시위는 그들 자체가 지구적 운동이 되었으며, 그들의 가장 명확한 목표 중의 하나는 지구화 과정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지구화운동이라고 불리워져서는 안된다. 이것은 향(向)-지구화이며 혹은 오히려 부자와 빈자 사이 그리고 권력자와 무력자 사이의 불평등성을 제거하고 자기-결정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대안적인 지구화 운동이다.

우리가 이번 주말 제노아에서 울려퍼지는 다양한 목소리들 중 하나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다른,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우리 지구화의 현재적 형태를 지원하는 국제적 그리고 초국가적 힘들의 어마어마한 권력을 인식한다면 저항해봤자 소용없다고 결론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안적인 세상이 가능하며 정치학의 마지막 단어가 "불가피성"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을 만큼 멍청하다. 1960년대 역설적 이상주의의 복고인 하나의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활동가들이 태어났다.: 오늘날의 현실주의적인 경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 즉, 무언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

시위 운동은 민주적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며, 이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에게 동의하던 그렇지 않건 간에 제노아의 길거리에 나선 사람들에게 모두 감사해야 한다. 시위 운동들은,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주지 않으며, 우리는 이들에게 이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오히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정치적 욕망들을 창조함으로써 공공적 의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애틀의 길거리에서 제노아의 길거리까지 이어진 사람들의 바다에서 이러한 미래의 씨앗들을 보고 있다. 이들 운동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노조 활동가들과 생태주의자, 목회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함께 하는 그 다양성이다. 우리는 어떤 단일한 정체성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그러나 다양성에서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는 다자성의 출현을 목격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이번 주말의 제노아를 과거 이 도시가 르네상스 시대에 가졌던 새로운 형태의 교환과 새로운 생각들을 향한 개방성에 가장 명징하게 연결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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