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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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발간에 부쳐

반(半)신자유주의와 제2 인터내셔널의 망령에 맞서고자

편집부
[사회화와 노동]이 100호를 맞이하였다. 1999년 10월 창간된 이래 햇수로 3년만이다. 그간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반대', '구조조정반대', '노동의 불안정화 분쇄', '민중의 민주주의 쟁취'라는 4대 슬로건아래 한국경제(위기) 비판을 통하여, 현실의 노동자 민중투쟁을 지지 지원하고, 노동자계급의 내적 통일성의 획득을 통해 계급투쟁의 진전에 일조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이같은 우리의 노력과 고민이 나름의 성과를 낳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주장에 귀기울여준 독자들과 함께 연대해온 동지들의 몫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아울러 우리는 오늘, 사회화노동 100호를 맞이하여, "반(反)신자유주의를 가장한 반(半)신자유주의"와 "현실론으로 무장한 제2 인터내셔널의 개량주의적 망령"에 맞선 투쟁을 다시한번 호소하고자한다.


신자유주의자는 누구인가

우리나라에 자신이 신자유주의자임을 공공연히 자임하는 사람은 몇이나될까? 아마도 통화주의적 신보수주의의 전도사격인 자유기업센터의 몇몇 시장자유주의적 논자들 정도가 아닐까싶다. 그러나 그조차도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간의 분명한 차이점을 확인한다면, 정작 신자유주의자들은 누구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말로는 누구나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 김대중은 자신의 정책과 이념을 유럽의 '제3의길'을 원용하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명명하였으며, 재벌 역시 신자유주의적 재벌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외양을 띠고 있다. 하물며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민주당과 유럽 사민당정권들조차 신자유주의보다는 종종 좌파라는 말로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을 설명하곤한다. 이런 마당에 反신자유주의를 가장한 半신자유주의가 진보운동의 외양을 띠고 판을 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향해 사회주의정책정당이라고 공격하고, 자유기업원이 참여연대를 '시장경제의 적', '좌익'이라고 규정하는 웃지못할 촌극마저 벌어졌다. 하지만 좌익으로 매도(?)당한 참여연대의 장하성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기업지배네트워크(ICGN)'가 선정한 제1회 `ICGN 올해의 상' 수상자로 뽑혔다. ICGN은 미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영국보험자연합, 유럽투자회사연맹, 전미노동조합총연맹(반공노조로 유명한 AFL-CIO)등 세계적인 기관투자가, 투자자협회, 주주서비스기관 등으로 구성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기업지배구조개혁 전문단체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수렴되는 노동자운동의 모순

사태는 한국사회의 저열한 이념적, 철학적 빈곤만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에 관하여 그간 사회화노동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소액주주운동등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통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주도하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확인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같은 우리의 노력은 종종 일반적인(누구나 외치는) 신자유주의 반대, 민생파탄 규탄의 목소리에 뭍혀버리거나, 때로는 관념적 좌파의 이론적 편향이라는 악의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악의적 비판에 비례하여, 현재 노동자운동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수렴되고 있는 양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물론 한국노총은 그 선봉에 서있다. 얼마전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워킹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단위사업장에 노조가 많아지면 오히려 노동운동의 대오를 해치며, 사용자가 늘어난 노조전임자 임금을 모두 부담키 어렵기 때문에 복수노조허용을 유예했다"며, "(전임자임금지급과 함께) 복수노조 유예도 획득된 성과"라는 망발을 지껄여 대기도 했다. 이들은 모성보호법, 주5일제와 관련한 노동법 개악에 관해서도 이에 못지 않은 행태를 보였고,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의 주역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들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해 보이는 혼란함은 금융노조의 경우 가장 미묘하고도 극적인 형태를 띠고 드러난다. 한국노총내에서 가장 전투적이라던 금융노조는 지난해 파업투쟁을 벌인 끝에, 독일식 은행중심시스템을 자신의 대안으로 내오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독일식 은행중심시스템의 본질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가장 엄격한 의미의 통화주의에 기반해있으며, 금융노조는 관치금융청산이라는 진보적(?) 대안을 매개로 독일식 통화주의에 봉사하게된 꼴이 되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마도 지난 상반기 투쟁이 민주노총의 투쟁이였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권퇴진투쟁의 결의 역시 민주노총 중앙위의 결의에 기초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정권퇴진투쟁은 '개혁실종규탄'이라는 전혀 다른 지향점과의 불안정한 동거속에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다만 정세의 엄혹함과 투쟁의 급박함에 의해 이 불안정한 동거는 정권퇴진-구조조정저지투쟁이 (자연스럽게?) 우위를 점하는 양상으로 상반기내내 별다른 충돌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상반기 투쟁이 일정한 결말을 맺게된 현재에 와서, 이는 '진정한(올바른) 개혁정책 쟁취'가 정권퇴진-구조조정저지를 (역시 자연스러운 형태로) 압도해 버리고 마는 모양새로 역전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는, 민주노총 자신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거부의 태도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방식과 그에대한 보다 분명한 내부적 합의를 확보하지 못한 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이는 단지 민주노총의 '전투성'의 회복의 문제는 아닐터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계급투쟁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투쟁 주체들을 복구해 나가는 것이 당면한 과제인 상황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정치적 효과와 정권퇴진투쟁

그렇다면 이같은 혼란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언뜻 떠오르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개념과 엄밀한 이론적 규정의 부족이 문제인듯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어도 근원적 해결책에는 미달하는 부분적 방책이다.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흐려진 계급적대의 가시성속에서 부족한 것은 사회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이론적인 것의 절합이다. 민생파탄/민주압살로 요약되고, 대량의 빈곤과 실업, 폭력탄압과 금융투기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들은 의심할 나위없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의 반민중성을 증거하고있으며, 이는 조금이라도 진보적으로 채색된 안경을 쓰고 본다면, 너무나 명백하고 거대한 계급투쟁전선이 펼쳐져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의 통치불가능성, 국제관계의 불안정성, 그 자신의 포퓰리즘(인민주의)의 모순들에 봉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제도적 형태 즉 조직화한 계급투쟁의 해체와 탈정당화(正當化)라는 부정적 성공을 내포한다. 경제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재구성이나 계급투쟁전선의 복구로 귀착하기는커녕, 지리적 장벽뿐 아니라 인종적, 세대적, 성적 장벽들로써 프롤레타리아화의 차별적 측면을 더욱 근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귀착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올 상반기 한국사회의 노동자투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상반기는 어느때보다 힘겹고 작지않은 규모의 노동자투쟁이 이어졌으며, 이같은 노동자투쟁은 김대중정권의 무능/폭력/반민중성으로부터 촉발되었던 대우차 투쟁과 한통계약직 노조투쟁을 거쳐 마침내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에 이르게되었었다. 한편 동시에 올 상반기는 통일, 여성, 환경, 인권, 이주노동자, 보건의료, 교육, 정보통신으로 이어지는 그 어느때보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들이 표출되었던 특징을 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DJ식 정책개혁에 대한 총체적 비판과 저항을 경험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 실업/취업, 여성과 남성, 대공장/중소공장,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간의 적지않은 갈등과 분할을 경험하였다. 마땅히 이러한 상황하에서 제기되었던 김대중정권퇴진투쟁은 고립분산적이고, 조합주의(경제주의)적인 방어적 투쟁을 극복하고, 공통의 집단적 미래를 위한 정치적 계급투쟁의 슬로건이자 조직자로 기능하고자 했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상반기 김대중정권퇴진투쟁은 항복하기전 명예를 걸고 치룬 최후의 전투로 남아, 이제 우리는 그 대가를 어떻게 치루어야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닫혀진 우리의 미래를 열자!

상반기 정권퇴진투쟁에 대한 평가는 정권퇴진투쟁이 각각의 고립분산적이고 경제적인 투쟁들간의 연대를 도모하고, 정치적 계급투쟁을 조직해내는데 실패한 원인을 명확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이에 관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기조직된 (정규직 남성)노동자 '조직'의 이해로 노동자운동의 대표성이 과도하게 환원되었던 혹은 그로부터 과소하게 탈피했던 바에 대한 냉정하고 비판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한다고 본다. 나아가 이는 구체적인 노동자운동의 감축불가능한 다양성으로부터 즉각 기존의 노동자조직과 노동자운동, 노동자계급을 동일시하며, 끝내는 노동자계급의 내적통일성을 창출해내는데 실패한 채, 파시즘으로의 귀속이라는 '의도치않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제2인터네셔널류의 경제주의적, 개량주의적 망령과도 결코 무관치않은 관련을 맺는다. 위기에 처한 지배계급과 프롤레타리아화하는 피지배계급, 이들 양자를 관통하여 진행되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속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계급정체성'은 예정의 효과가 아니라 정세의 효과이자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명제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계급이 양반 상놈을 구분짓는 카스트가 아닌 다음에야 이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다. 다만, 계급투쟁은 모든 사회적 실천들에 걸쳐져있는 결정적 구조로서, 유일한 결정적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결정적 구조임을 승인하는 것이 주요한 이해의 고리이다. 계급투쟁이 다른 구조들의 보편성에 필연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바로 계급투쟁이 모든(다른) 실천들에 걸쳐있는 한도에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반기 DJ정권퇴진투쟁에 대한 평가는 정권퇴진투쟁의 과도함에 대한 우익적 비판이 아니라 정권퇴진투쟁의 과소함에 대한 좌익적 비판을 통해 무산된 꿈의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화와 노동은 더욱 정진해나갈 것이다. 이는 다음 세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첫째, 경제위기 하에서 (이를 볼모로) 노동자 민중운동 내부에서 기생하고 있는 노사협력적, 타협적, 시혜적, 개량적 입장에 대해 실천적으로 단절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대적전선을 흐리게 하고, 적의 본질을 가리는 반(半) 신자유주의들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이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와 그 세력에 대한 명징한 규명을 통해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이라는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오늘날과 같이 노동이 분절화되고 자본과 정권의 계급분할전략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통일성이 어떠한 계급주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명확히 하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계급주체가 과연 누구인가를 밝혀야 한다. 셋째,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성격을 보다 급진화시켜 내기 위한 풍부한 계급동맹의 전술들을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들을 지속시켜 나갈 것이다. 부족했던 것은 정권퇴진투쟁이였다.
구조조정에 목을 메고있는 정권과 그의 정책개혁 때문에 삶의 기반을 파괴당한 노동자들이 맞붙었지만, 대결의 양상은 결코 얼마만큼의 구조조정인가에 관한 샅바싸움으로 진행되지않았다. 오히려 전선은 구조조정지속-폭력엄단인가, 생존권사수-구조조정저지인가라는 비대칭적이고 타협이 불가능한 엄중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더 이상 내줄것이 없는 주인과 먹을 것을 요구하는 노예간의 싸움은 이미 노예제 자체의 운명에 관한 결정을 요구할뿐 주인의 양보도 노예의 양보도 사태해결의 결정권을 가지지못하는 것이다. SO-LA
주제어
경제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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