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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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의 교착상태, 누구의 책임인가

미국의 제네바합의 위반과 한미일 삼각공조의 본질

편집부
8월 8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제네바합의의 이행, 미사일계획의 검증가능한 억제, 그리고 한반도의 재래식 군사력위협 감축 등의 의제에 관해 북한과 협의하길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였다. 이는 지난 6월 6일 발표된 부시대통령의 북미대화 재개 선언 당시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입장표명이 곧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성실한 의지를 갖고 있는 반면 북한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부시정부가 지난해 10월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의 방미시에 채택된 '조미공동코뮤니케'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설사 클린턴정부 당시 이루어진 북미대화에서 일정 수준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기정사실화하지는 않을 것이며, 새로운 행정부의 시각에서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북미대화의 교착상태가 '강경파' 부시정부로의 정권교체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1990년대 혼란을 거듭한 미국의 대북정책의 역사적 귀결인 동시에, 2000년 말 클린턴정부 말미에 이루어진 미사일협상의 좌초의 결과인 것이다.(물론 이에 대해 미국 공화당 다수파 의회는 큰 역할을 했다) 부시정부는 그 후과를 배경으로 하여, 그것을 수습하기 위한 협상의 전략을 다시 세우고 있는 중이며, 북한은 그에 대한 대응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중인 셈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 후과를 메꾸기 위해, 미국-일본-한국간의 3각공조를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실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1990년대 미국의 '북한붕괴론'과 경수로 건설의 지연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의 중핵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즉 핵-미사일을 동결하고 종국적으로는 해체하는 것이다.(이외의 다른 것들은 그러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제네바합의(1994)는 그러한 미국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 북미간의 최초의 합의였다. 그 핵심적 내용은, 북한이 영변 지역의 핵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대신에, 미국이 그것을 대체하는 경수로형 발전소 건설을 책임지며 북한과의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기로 양국이 약속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두가지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위반하였다. 하나는 관계정상화의 약속을 접고, 한미 공동으로 4자회담을 역제안한 것이며(그것은 당시 남북관계에 비해 북미관계의 진전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김영삼정부에게 비토권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 하나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경수로 건설을 실질적으로 지연시킨 것이다. 물론 미국이 제네바합의 이행을 고의적으로 방기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에너지-식량위기와 김주석 사망 등을 빌미로 하여 '붕한붕괴론' 또는 '연착륙론' 등을 적극적으로 유포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책임방기의 후과로 인하여, 부시정부 등장 이후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는 양국간에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2003년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인도되는 해이자, 동시에 동결된 흑연감속로를 완전히 해체하고 1994년 이전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비롯해 '과거핵'을 규명하기 위한 IAEA의 핵사찰 작업이 시작되는 해이다. 그러나 공사 지연으로 인하여 미국이 2003년까지 핵심부품들을 북한에 인도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질 가망성이 매우 희박해지면서 갈등의 불씨는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그 최우선적인 의제는 바로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 건설이 늦어질 경우 보상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면서, 현재까지는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미국은 '제네바합의에 담긴 핵 非확산의 이정표가 연기되어서는 안된다'면서, 경수로 건설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2단계 사찰 활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지금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대북전력지원과 미국의 새로운 책략 : 제네바합의의 수정

그렇지만, 미국이 자신의 책임방기를 회피하면서 2단계 핵사찰을 강행하려 한다면 북미관계는 파국적 상황으로 인도될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일방적으로 북한의 요구를 묵살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제네바합의의 '개선'(수정)이라는 새로운 책략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바로 남한의 대북 전력지원 문제이다. 사실 대북 전력지원은 2000년 김대중대통령의 베를린선언에서의 대북 경제지원 약속, 그리고 6월 정상회담에서의 남북간의 암묵적 합의에 있어서 핵심적 내용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북한의 긴급한 전력부족 상황을 이용하여,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사실상의) 보상의 대체물로 남한정부의 전력지원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즉 남한의 전력지원을 대가로 경수로 건설 지연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전략) 이에 따라, 미국은 남한이 북한과의 협의하에 독자적으로 전력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여왔고, 그것이 북한과의 협상력을 저해할 것을 두려워해 온 것이다.
이러한 남한정부에 대한 미국의 '외교' 활동은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현재 시점에서 대북 전력지원 문제는 오리무중에 빠져있다.(전력지원에 관한 남북 실무회의에서, 북한은 그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요구한 반면 한국은 북한의 전력상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먼저 진행하자는 주장을 펼치면서, 대화는 중단된 상태이다) 그리고 이는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한 정부간 회담의 중단, 경의선철도 복원공사 중단 등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상태로 빠지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과 미사일협상의 연계

한편 북미간 미사일협상 문제도 큰 난항에 빠져 있다. 이는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 발표 이후 열린 북미 미사일협상의 좌초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북미간의 미사일협상은 북한의 국제협정 '위반'문제를 다루는 것이 결코 아니다.(즉 북한의 미사일의 개발 및 수출은 분명 북한이 주장하는 바대로 '자주권'의 영역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 문제를 협상의 의제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과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경제난을 매개로 하여 대북 식량·경제지원 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과의 미사일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했다. 이에 따라 클린턴정부 말미에 북한과 미국은 이미 장거리 미사일 관련 부품 및 기술의 수출, 그리고 특정 사거리의 미사일의 자체 실험 및 생산의 중단 문제에 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미해결의 문제는 미국이 북한 영토에 직접 들어가 '검증'(verification)하는 문제와, (일본을 겨누고 있는) 이미 배치된 약 100여기의 노동미사일의 해체 문제였다. 이는 여전히 큰 갈등의 소지를 남기고 있고, 미국으로서도 아직까지 뾰족한 전략을 입안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은 클린턴정부 당시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명문화된 협상타결을 이룬다는 단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노동미사일의 해체 문제는 북일수교 협상과 연계하여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북한의 대일정책의 요체인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 즉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일본과의 교전당사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전쟁배상금 처리 문제.)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포기와 미국-일본-한국의 경제개혁에 대한 지원을 빅딜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 재래식군사력 감축과 동아시아주둔 미군의 재조정

덧붙여, 부시정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재래식군사력 협상 문제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력 재조정 구상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미국은 자체적으로 1990년대 초반 입안된 '2개의 전쟁 전략'(win-and-win strategy)를 축소조정하고, 첨단 군사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에 배치된 10만명의 병력 및 기지를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은 자신의 대북협상 카드를 '낭비'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바, 이를 북한의 재래식전력 감축과 연계하여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찾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미국의 주요 관심 대상은 DMZ 주변에 대규모로 배치된 북한의 자주포·방사포 등의 재래식 화력이다. 이를 후방 배치하는 문제와 남한주둔 미군 중 지상군인 7기갑사단의 일부 감축하는 문제를 협상 의제화하려는 구상인 것이다)


한-미-일 삼각동맹과 부시정부의 대북정책

8월에 들어 북한과 미국간에 대화의 초기조건에 대한 공방이 간헐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양국간에 대화의 의지가 부재하지는 않지만 기본틀을 맞추는 작업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설사 북미간의 공식적인 대화의 재개가 선언된다고 하더라도, 실제의 진행과정은 매우 큰 갈등과 고비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앞서 지적한 바대로, 미국의 1990년대 미국의 대북정책이 견지한 기본적인 태도에 기인한다. 미국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의 경제난 심화를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에 대한 무장해제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고, 제네바합의 이행이나 관계정상화 등의 북한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미봉책으로 일관해왔다. 게다가 미국은 자신의 전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고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불거진 사태를 해결하고자 기도해왔다. 즉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자신의 패권을 안정화함과 동시에, 그에 수반되는 실제적인 비용은 일본과 한국 등에 떠넘기는 기본적인 구상을 계속 연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략대로 북미협상이 진행된다면 북한이 얻게 되는 '알짜' 효과는 그리 크지 않게 된다.)
따라서, 현재 북미대화의 교착상태가 해소되고 통일을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미-일 삼각동맹 구조가 해체되는게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의 전력지원 문제를 두고 보더라도) 현재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이 지속되는 한에서는, 남한이 미국의 전략에 대한 추종을 거부하는 상황을 기대하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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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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