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199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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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세, 왜 인상하려 하는가?

김진균
설악산 대청봉에서 수렴동계곡, 백담사를 지나 이십리를 나오면 속초․거진을 거쳐 서울로 가는 버스길을 만날 수 있다. 그 동네에는 오래전부터 원조 순두부집이 있어, 설악산을 산행하려 가는 사람이나 하산하는 사람에게 맛깔스런 순두부맛을 선사해준다. 여기뿐만 아니라 강원도, 경기도를 지나 서울로 가는 여러 갈래길에 늘어선 것이 순두부집이고 두부집이고 칼국수집이다. 우리나라 강산에는 두부집이 그렇게도 많다. 아마도 그것을 만들어 먹는 콩의 소비량이 대단하다 할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음식을 장만하는 솜씨가 대단하였다. 콩으로 간장을 담가 음식의 기초자료로 사용하였으며, 집집마다 그 간장맛이 그 집 음식맛을 좌우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오곡 중의 하나였던 그 콩은, 밀과 함께 주로 미국에서 수입․충당한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 수입콩이 유전자로 조작된 것이 많으며, 맥주원료로도 그 유전조작된 콩이 사용된 지 오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순두부 이야기를 더 하지면, 보통사람들은 순두부집에서 안주에 걸맞게 소주를 시켜마시기도 하며, 산행후 하산해서는 시원한 맛을 즐기기 위해 맥주를 찾기도 한다.
70년대에 들어서, 국민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적은 임금에 장시간노동을 감행하며 경제성장의 역군으로 총진군하던 때 값싼 소주 ‘진로’로 피곤을 풀곤 하였다. 이제는 어느 누구나 대체로 소주를 찾게 되어, 모퉁이 구멍가게나 음식점, 호화스러운 연회장, 어디서든 소주는 국민적으로 호응을 얻어왔다. 외국인들조차 즐겨 찾을만큼 매혹적이고 대중적인 술이 바로 이 소주인 것이다.
이 소주가 한국인에게 이제 ‘비싼’ 술이 될 것 같다. 값싸게 즐겨마시던 소주를 앞으로 좀 더 비싸게 마셔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부는 중앙지 신문광고를 통해, 소주세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소주값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홍보하였다. 외국에서 주로 수입되고, 국내에서도 생산되는 양주의 주세가 100%인데 비해, 소주의 주세는 35%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런 주세 비교논리가 나오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근래 스카치위스키와 포도주의 최상국 수입국으로 떠올랐는데 그 수입양주의 주세가 너무 높아서 수출국의 이익이 많이 남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한국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소주는 양주와 동일하게 증류주인데도, 세율이 워낙 낮으니 그 소주의 주세를 올려야만 양주의 이익이 그만큼 확보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다. 그 양주수출국들은 대체로 WTO를 이끄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며, 한국 또한 야심차게 거기에 가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WTO를 이끄는 강대국들은 세계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철저하게 묶으려고 한다. 각 나라 국민들이 고유하게 전통적으로 즐겨하는, 그 어떤 문화적-역사적 품목도 그에 내재해 온 가치를 무시한채, 오직 시장에서 동일한 비용으로만 측정되는 상품으로만 취급한다. ‘너희 국가가 자동차나 반도체 등의 물품을 해외에 수출해서 팔아먹으려면, 너희들이 갖고있는 상품도 특별히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부는 비싼 광고비를 들여가며 “WTO가 주세를 올려라”하니 안 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검토는 달리 하겠지만, 경쟁력 강화의 논리는 결국 자기 나라와 그 국민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문화적으로 형성된 귀중한 가치들을 허무는 방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방향은 결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더 고통스럽게 일하도록 만든다. 이제 상품을 위한 경쟁력이 아니라, 상품이 문화적 맥락에서 인간공동체에 더 좋은 연대의 기초를 주는가하는 판단기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불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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