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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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비극인가, 문명의 충돌인가

아프간 보복공습 개시 10일, 미국의 '탈레반 이후' 구상에 부쳐

편집팀

지난 10월 7일 미국의 아프간 폭격으로 개시된 미국의 아프간 보복전쟁이 개시된 지 얼마 후, 한 국제인권단체는 이 보복전쟁이 6주 정도 더 지속되게 되면, 그리고 이로인해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식량공급이 계속 중단되게 되면, 약 10만의 아프간 어린이들이 아사(餓死)하게 된다고 보고했다. 이는 하루에 약 2300여명의 어린이들이 죽는다는 계산이 되고, 아프간 인구 2천만명에 비견해보면 실로 엄청난 수의 죽음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 미국 내 탄저균의 확산은 빈 라덴에 의한 '보복에 대한 보복'의 실현가능성에 힘을 더하고 있고, 이는 미국 전체를 정신적 공황 상태로까지 몰고 가고 있는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것이 진정 또다른 테러가 맞다면, 게다가 그 정확한 피해규모와 대상을 제한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생화학무기에 의한 테러라면, 아프간에서와 마찬가지의 엄청난 죽음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강요된 침묵과 아랍 민중의 분노

또한, 아랍지역 곳곳에서 연일 반미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랍국가들의 대부분은 이것이 보다 큰 시위규모로 확산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심지어 무력으로 이들 반미 시위대를 진압하기까지 하고 있다. 일례로, 아프간에서 가까운 파키스탄에서 반미 시위대에 대한 총격으로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마찬가지로 경찰의 총격에 수백명의 시위대가 사망하였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미국의 현실적 영향력에 따라 이미 분열의 길을 걸어온 아랍국가의 권력자들에게 보다 확실한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의 '성전동참' 요구에 호응하는 아랍인들의 반발과 저항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빈 라덴에 대한 아랍인들의 지지는 단순히 이슬람이라는 공동체적 유대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 라덴이 제시하고 있는 정치적 요구, 즉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의 미군철수와 팔레스타인의 영구적 평화에 미국이 적극 노력하고 보장할 것, 중동의 역사와 정세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들이 될 이 두가지의 요구에 대한 지지인 것이다.
현재의 아랍인들의 분노의 뿌리를 올바르게 분석하기 위해서 더욱 결정적인 점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다. 페르시아만 주변의 부유한 6개 국가(모두 합쳐 약 1000만명의 인구)를 제외하고, 무슬림의 다수는 석유자원이 매우 적거나 아예 없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들 국가는 최빈국이거나 중간소득 국가일 따름이다. 또한 이슬람 세계에 속한 대부분의 인민들은 새로운 세계적 체계에 통합될 전망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슬람의 분노를 가져온 것은, 예컨대 서방의 석유 지배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식민지(neo-colonial) 시기 동안의 민족 발전 전략의 실패, 그리고 현재의 세계화라는 에피소드인 것이다.
이슬람의 부흥에 대한 요구는 서양의 '배제'에 대한 '정체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ty)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아랍 민족주의의 전성기 당시와 같은 '종속적 통합'(식민지화)에 대한 대응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체성의 정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으며, 지리전략적(geostrategic) 요소가 될 조직적 프로그램의 통일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따라서 아랍국가의 권력자들은 서로 이미 분열해 서로간의 생존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모든 아랍국가가 '형제'라는 것은 이미 먼 옛 이야기이고 이미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범아랍-범이슬람이라는 명분을 쫓아 미국을 비판하고 고통을 받기 보다는 '침묵'이라는 현실을 택한 것이다.
즉, 미국과 아랍국가의 권력자들에 대한 아랍민중의 저항과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결코 미국과 등을 질 수 없는 권력자들간의 간극은 결국 대다수의 아랍국가들이 이번 아프간 전쟁에 그저 '침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만이 예외이다. 오히려 이들은 반미를 외치는 것이 생존전략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즉 미국이 확전을 감행할 경우 그 일차적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이들 두나라는 다른 국가들처럼 미국의 눈치를 보며 침묵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의 또다른 계산과 '탈레반 이후' 구상

미국은 분명 이번 전쟁의 목적을 지난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체포하는 것, 그리고 그를 보호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탈레반은 공습 및 폭격의 중단과 빈 라덴의 테러혐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해왔다. 미국이 탈레반의 요구인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탈레반이 빈 라덴의 신병을 인도한다면 어쩌면 이번 전쟁의 종식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탈레반의 어떠한 협상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확실한 증거가 없든지 아니면 그 증거내용이 뭔가 미국으로서 꺼려지는 내용이 밝혀질까봐라는 관측이 분분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미국이 확실한 증거 없이 탈레반을 붕괴시키려고 서두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번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체포하여 사태를 일단락짓는 것이 가장 단기적이고도 가장 분명한 목적이라면, 미국이 이번 전쟁에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다른 어떤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첫째, 미국은 아프간 개입을 통해 엄청난 마약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꾀하고자 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아프카니스탄이 새로운 거대 마약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전세계 불법 아편 생산량(6,000톤)의 76.7%에 달하는 엄청난 양을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총 31개 자치구중 18개 자치구에서 아편이 재배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아편 생산을 차단키 위해 UNDCP는 올해 이란에 사무실을 개소해 이란 정부와 공동으로 1,300만달러를 들여 약물통제 프로그램에 들어간바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된 지역에서의 마약재배는 일반화되어가고 있고, 단지 이에 대한 통제가 진정한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둘째, 남북으로는 카스피 해와 흑해를 지나 페테르부르크에 이르는 종축과, 동서로 카스피 해에 묻힌 석유 자원이 터키를 거쳐 지중해와 유럽으로 흐르는 횡축 파이프 라인을 미국이 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발틱 해와 동유럽을 포함하는 서쪽은 나토에 편입하고, 파이프 라인이 가로지나는 아프간에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다시 말해 카스피 해를 원점으로 삼아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이란을 밀어내고 서쪽으로는 유럽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한 기업은 탈레반과 협상해 1997년 컨소시엄 계약을 맺었는데, 약 20억 달러 규모의 컨소시엄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까지 천연 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 라인 부설 공사였다. 그러나 이 미국기업은 이듬해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컨소시엄을 포기했다.

따라서 미국에게는 이번 보복 전쟁을 통해 반미 성향이 없고 내전도 끝낼 수 있는 안정된 권력이 아프간에 들어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프간 공격을 앞두고 블레어 영국총리는 탈레반의 축출과 새로운 연립정부 구성의 뜻을 내비쳤고, 이는 파키스탄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준비되고 있다. 이 구상인 즉슨, 30여년전 국외로 망명간 자히드 샤 전 아프간국왕을 중심으로 아프간의 모든 부족을 망라하는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지원하에 빠른 속도로 남진하고 있는 반 탈레반 북부연합 세력과 자히드 왕은 범국민 연립정부를 출범 계획에 합의하였다.


미국의 구상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러나 이 구상의 제국주의적 음모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그 성공여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내전과정에서 탈레반이 과거 미국의 암묵적 지원하에 탄생했다는 사실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탈레반은 미국의 기획(즉, 중앙아시아에 대한 교두보 확보와 이란 및 러시아 견제)과 파키스탄의 병참지원,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지원의 산물이다. 탈레반은 이러한 지원하에 직접적인 대소항쟁의 전진기지와 보급창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일종의 무정부상태와 같은 내전상황에 환멸을 느낀 아프간 주민의 지지에 의해 단기간에 아프간의 거의 전영토를 수중에 넣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북부동맹을 지원함으로써, 즉 또다른 '내전'을 조장함으로써 탈레반을 축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손에 피한방울 뭍히지 않으려는,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들이 겪게될 상처와 원한은 아랑곳않는 미국의 전형적인 전략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설령 어느정도 안정적인 정권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결국 조만간 또다른 내전으로 게다가 그 원한과 갈등은 더욱 심화된 형태로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프간은 지난 30년간 계속되어 온 쿠데타와 내란과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프간의 부족들과 종파·정파들은 예로부터 모반·배신·음모·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미국이 '탈레반 이후'를 세워 놓는다 해도, 그것이 과연 미국의 기대대로 안정적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사이, 전국민이 난민이 되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비극은 그 도를 더해갈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장기간의 아프간 내전은 수많은 문제들을 양산했다. 국내적으로 항구적인 정파간 내전가능성의 잠복, 600만 이상의 난민, 설치된 위치조차 파악하기 힘든 엄청난 양의 지뢰들, 내전 및 테러지원으로 인한 경제제재 그리고 이로인한 기아 등등의 문제들을 낳았다. 그리고 내전의 장기화는 주변 국가들과 관계에서 정치적 위험을 내포하기에 이르렀고, 만약 내전이 또다시 격화될 경우 이 지역전체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게 되었다.
예컨대, 러시아의 경우, 아프간과 접경하고 있는 타즈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4개국에 이슬람이 유입되어, 불안정성이 심화('이슬람 위협론')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 (탈레반은 이 국가들의 국경을 넘어 반체제를 선동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그리고 쉬아파 이란은 당연하게도 순니파인 탈레반에 경계적일 수밖에 없고, 탈레반이 이란 내의 순니파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러시아나 이란이라고 해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의 수혜자가 되기를 결코 포기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아프간을 기반으로한 중앙아시아 패권전략의 본격화는 커다란 지역적 분쟁을 낳을 것이다.

또다른 내전과 지역적인 국가간 분쟁이 발생했을때, 그 최대피해자는 또다시 아프간 민중들일 것이다. 현재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일련의 구상은 결코 이들의 고통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오랜 민족간, 종족간 분쟁으로 인한 상처와 원한, 아픔과 갈등을 오히려 심화하고 그 해결을 한층 오리무중으로 이끌고 갈뿐이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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