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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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수급권을 내던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인가 국민기만생활파탄법인가

민중복지연대
12월 5일자 한 신문의 정치면에는 '현 정부의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제목 하에 지난 5일 "전세계가 한국을 칭찬하는데 여념이 없는데, 일부 정치세력과 일부 국민들이 국민의 정부가 이룩한 성과들을 폄하하고 있다"면서 "세계 각국이 마이너스 경제성장에 머무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겠느냐?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이한동 국무총리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 보다 앞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사에 전념하기 위해서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며 남은 임기동안의 경기부양 책임과 민생개혁의 소임에 주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연일 신문의 경제면에서는 내년의 경제성장률이 오를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며 저금리 기조의 유지와 환율정책의 신축적 운용, 부실기업정리 등 구조조정의 조속한 마무리, 노사관계 안정 등을 요구하며 아직도 국내의 구조조정과 경제성장에 대한 노력이 부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갈 길이 먼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현시기 가속화되고 있는 구조조정 일정과 공기업의 민영화 강행으로 표면화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대중정권은 안기부의 주도하에 9.11테러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조성하고, 테러방지라는 미명아래 최소한의 민주적인 권리를 짓밟는 '대테러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2001년 잔인한 겨울, 실업은 만성화되었고, 민중의 생존권은 파탄 상태이며, 공안정부의 매서운 바람이 노동자 민중 운동진영을 탄압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투쟁대오는 철도, 가스등의 국가기간 산업의 민영화 반대, 인터넷 내용등급제 철폐,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 장기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거리를 뜨겁게 달구며, 노숙투쟁과 연대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녀, 수급권을 내던지다
- 빈민을 죽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기초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저에게 노점과 수급권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그런데 노점조차도 포기한 저에게 정부는 월26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시청과 구청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지불해야 하는 약값만 해도 26만원이 넘는데....아파트 관리비만도 16만원인데....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거지? 그러면서도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인지?..."

지난 12월 3일 중증장애인인 최옥란씨가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과 함께 거리에서 농성투쟁을 시작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수급권자로 선정되어 지원받은 생계비를 반환하겠다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수급권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재산도 없을 뿐더러 달리 생계유지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 이념인 생산적 복지, 그리고 그 구체적 실현체인 국기법에 의해서 수급권을 보장받았다면 그야말로 최소한의 기초생활은 보장받게 되었다는 것임에도 빈민이며 여성이자 중증장애인인 최옥란씨가 그것을 거부하는 농성에 돌입했다는 것은 무엇인지 몰라도 분명 자신이 걸수 있는 최대의 것-생존-을 담보로 할만큼 자신은 현재 삶의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최옥란씨는 현재의 다른 투쟁상황처럼 구조조정에 의한 해고, 또는 실업과 같이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물결과는 조금 무관한 듯 보인다. 생계보호를 받지않으면 누가봐도 생존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중증여성장애인인 최옥란씨는 그전의 시대에도 생활보호법이라는 제도로 생계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제 당연하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로 선정이 된 그녀는 김대중 정권의 소신대로라면 여전히 최저 생계수준이지만 생활보호 시절보다는 좀 더 나은 생계보장을 받고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명동성당 앞에서 천막도 없이 농성중인 최옥란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생활을 하려고 해도 그럴수 없게 하는 빈민을 죽이는 법"이라고 했다. 이는 국민기초보장법이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과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실제로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단 말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현주소는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빈민을 더욱 빈곤하게 하는 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은 45개 시민단체가 구성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연대회의]의 노력의 일정한 성과물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김대중정권에 있어서는 IMF 이후 대량실업 사태와 빈곤층 양산, 소득의 양극화 속에서 사회적 불안국면 수습이라는 시급한 당면과제 해결의 욕구와 함께, 지속될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과정을 원활히 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에 의해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생활보호법은 적용대상이 워낙 협소하고 지원수준이 실제 생계보호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수혜자의 명칭을 '보호대상자'에서 '수급권자'로 바꾸는 등 국가로부터의 보호를 당연한 권리로써 명시하기 시작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시행 초기, 사회적 안전망 확보의 필요와 함께 최저 생계의 대상 확대와 지원금 상향조정 등의 조치를 통해 국민복지의 질적인 향상에 대한 전폭적인 기대를 주었다. 그러나 시행 일년이 지난 지금 김대중 정부의 초기 선전과는 달리 국기법은 수급자 선정기준의 강화, 낮은 생계급여, 형식적인 자활사업 등으로 인하여 최저생계 보장은커녕, 수급자를 자살로 몰아가고 빈곤계층을 더욱 빈곤하게 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 빈곤계층의 규모는 370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엄격한 선정기준(소득평가액기준, 재산기준, 부양의무자기준 등)과 예산부족, 행정인프라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현재 국기법 수급자 규모는 151만명으로 전체인구의 3% 수준에 불과하며, 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규모 370만명과 비교해도 41% 정도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생계급여를 포함한 각종 급여가 비현실적으로 책정되어 그나마 받는 생계급여는 실제 수급자들이 손에 쥐어 본 적도 없는 추정소득과 부양비 간주 등으로 인하여 삭감당하고 있다. 여기에서 추정소득이란 '근로능력이 있는 자로서 취업 및 근로여부가 불분명하여 소득을 조사할 수 없으나 주거 및 생활실태로 보아 소득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로서 어떻게든 수급자가 생계비지원 이외에 일말의 소득이라도 있을 경우가 예상된다면 실제 소득이 없을지라도 미리 생계비에서 삭감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몇가지 전제를 두고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추정소득은 월 9일에서 13일 가량 근로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건설일용직 1일 37,000원, 제조업 25,000원, 단순노무직 20,000원을 부과하여 약 한달에 18만원, 많게는 48만1천원까지 삭감되었다. 부양비 간주는 자녀, 며느리, 사위, 조부모, 손자녀, 생계를 같이하는 2촌 이내의 혈족(형제, 자매)이 있을 경우 실제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가 부양비를 주는 것으로 간주하여 소득으로 산정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경우에도 예를 들어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60만원인 경우(수급자 1인가구, 부양의무자 1인가족) 출가한 미혼의 아들은 8만원을 부양비로, 출가한 딸은 3만원을 부양비로 간주되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었다.
추정소득과 부양비간주등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생계비는 삭감되고 있다. 예를 들어 1인 가구 수급자의 경우 최저생계비가 33만원인데 여기에 타 지원액(의료, 교육, TV수신료, 전화설치비 등) 4만7천원을 공제하고 소득이 없을 경우 현금으로 28만6천원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수급자에게 지급된 평균급여액은 12만원이고, 4인가구의 경우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84만1천원이지만 실제로 지급되는 평균지급액은 35만1천원밖에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의료 보호 또한 1종의 경우 무료라고 하지만 타지원액을 통해 모든 수급자가 의료비 부담을 하고 있으며 비급여부분으로 인해 의료보호대상자들이 병원을 이용해도 역시 많은 의료비를 부담하게 된다.
자활사업은 노동의욕과 구직 노력을 확인해야만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수급자에게 행해지는데 실제로 그 대부분이 만성질환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건부 수급자 중 취업대상자는 노동부로부터 취업알선, 직업훈련, 자활근로를 받도록 하고 있고 비취업자의 경우 자활후견기관의 자활사업 참여와 공공근로에 투입되어 일정의 노동을 해야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조건부 수급자 40만 가운데 17%는 중증질환자이며 취업대상자의 23%와 비취업대상자의 55.3%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다. 조건부 수급에 의해 행해진 이들의 자활사업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이들은 노동연계의 조건을 두지 않는 생계보호를 받아야 할 수급자들이다.
그렇다면, 수급자수의 양적인 팽창은 있었는가? 이것은 단선적 수치를 비교하는 것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기간 실업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으며,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장기실업으로 인한 빈곤층은 더욱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최옥란 동지가 말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민을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게 하고, 생활을 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하는 빈민을 죽이는 법이라는 것이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신자유주의적 '생산적 복지' 정책의 또다른 이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이제 빈곤계층의 생계를 위해 주어졌다는 수급권이 빈민들에 의해 내동댕이 쳐지고 있다. 현실은 단순히 시행과정의 부족함이나 제도적 미비함으로 보기에는 수급자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어디선가 생산적 복지-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자기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수급권자에게 생존의 위협을 주고 있음에도 김대중정권의 생산적 복지정책은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될수록,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가속화될수록 '사회적 안전망'의 이름으로 노동자 민중에게 기만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생산적 복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복지마저 생산적이라는 전제속에서 국가책임을 최소화하는(그러나 많은 복지의 확장과 합리적인 배분의 외양을 띤) 이데올로기적 역할과 노동의 분할구조 강화 및 퇴출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더 낮은 노동시장으로의 투입을 유도하는 산업예비군의 두터운 형성을 외곽에서 수행하고 있다.
전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기초생활 보장을 위해 앞장서야 할 생산적 복지 정책은 어찌하여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 경향에 더 충실할 수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자본의 축적을 그 특징으로 한다. 끊임없는 자본의 축적과정은 이윤율의 상승을 추구하는데, 생산력이 발전할 수록 노동력을 첨단 생산수단으로 대체하고, 이를 통해 노동력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경향은 필연적으로 상대적 과잉인구를 양산시키고 소득의 양극화와 빈곤을 양산하게 된다. 여기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최하층은 앞에서 이야기한 구호의 대상이 되는 극빈층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정책은 양산된 상대적 과잉인구에 대한 관리의 역할을 갖게된다. 이러한 역할이란 산업예비군의 노동무능력자로의 탈락을 방지하고, 미래의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빈민에 제공되는 급여는 '그 사회에서 살기위한 필요 수준의 급여'가 아니라 노동을 하여 받게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보다는 항상 더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러한 원칙의 적용은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작용을 하여 국가로부터 생계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는 빈민을 '게으른자', '놀고먹는자'로 낙인찍히도록 하고, 노동자에게는 생존을 위해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하며 노동시장에 나서도록 만든다. 결국 신자유주의 하에서 생산적 복지란 정규노동시장에서 탈락된 노동자에게 노동시장으로의 편입을 끊임없이 강요하게 만들어 자본에게 보다 쉽게 사용될 수 있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개인의 근로의욕에 대한 부단한 노력없이는 복지마저 주어질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외형적으로는 복지확대로 보였지만, 내용적으로는 복지의 축소를 가져왔으며 이는 수급권으로 지급되는 생계비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던 빈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위기로 내몰았다. 혹한의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최옥란씨의 요구는 아주 단순하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현실적인 최저생계비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최저생계비에 기준도 불분명한 각종의 부제를 달며(소득평가액, 부양비 간주제와 추정소득 등) 실제로는 생활도 되지않는 수준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아플 때 고민하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며 교육받고 싶을 때 마음껏 받자는 것이다. 최옥란씨의 수급권 반환투쟁과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에서 보았듯이 스스로 생계를 쟁취하는 길에 나서지 않으면 최저생계 이하의 삶을 강요받을 것이다. 빈곤과 고용불안의 허덕이며 살 것인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기위한 투쟁에 나설 것인가! 이 명제앞에서 명동성당의 최옥란씨는 힘겹게 이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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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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