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01.17
첨부파일
social118.hwp

정치세력화인가 전선재편인가

2002년 복간호를 내며

편집팀


김대중정부 출범의 결정적 의미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권교체’에 있었다. 1997년 대통령선거 시기 불어닥친 외환․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필연적인 계기를 형성하였지만, 그 정치적 실행가능성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교체 및 민간민선정부의 등장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된 지배분파와 反패권 지역연합 더하기 보수-개혁 정치연합이라는 지지연합은 정책개혁을 위한 최상의 정치적 조건을 형성했다. 당연히 구조조정은 자본측에게도 고통스러운 과정인 바, 오랜 군사독재 기간 동안 형성된 재벌-정치가-정부관료 등 보수주의적 결합체의 조직된 저항을 정권교체를 통해 분쇄하는 것은 정책개혁의 사활적 과제였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으로 포장된 민간정부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세력 일부를 포섭하는 데에도 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형성된 지배분파의 안정성에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했다. 만성적 경제불황은 경제적 포섭의 물적 토대를 위협했다. 따라서 새로운 지배분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제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정치적 통합 능력이었다. 즉 새로운 지지연합의 지속적인 지지를 얻고, 재벌을 정점으로 한 보수적 부르주아 세력의 정치적 반격을 제어하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세력의 일부를 포섭하고 그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한에서만 안정성을 연장할 수 있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남한의 민중운동은 이러한 세력관계 위에서 출발했다.


노동운동의 ‘자기중심적 실리주의‘

YS 집권 시기, 정치전선의 점진적인 해체 위기에 놓여 있던 민중운동은 IMF 구제금융협약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방향을 놓고 다시금 심각한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김대중정권의 구조조정 정책에 큰 변수가 될 수 있었던 노동운동의 경우, 민주노총이 1997년 12월 ‘노사정위원회’ 설치를 정부에 먼저 요구하고 2월경에는 정리해고제 및 근로자파견법을 주요골자로 하는 노사정합의를 전격 수용함으로써, 초기에 그 운명이 판가름났다. 노동운동의 노선은 그 내부의 경합하는 경향들 중 하나였던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의 편으로 손쉽게 경도하였다. (즉 단지 실리를 취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특정부문의 이해관계를 전체 대중의 요구와 맞바꿈으로써 공동의 연대투쟁과 요구의 실현을 파괴하는 노선.)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오히려 실리주의 흐름이 전면에 부각하였다는 사실은 1990년대 노동운동의 대중적 토대가 어떻게 잠식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IMF 초기국면에서의 노동운동의 핵심적 투쟁고리를 모두 포기한 이후 노동운동의 공동투쟁전선의 대응 폭은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미 주요 합의를 얻은 김대중정권은 노사정위원회의 존재를 다목적으로 이용했다. 한편으로는 노동운동 내부의 실리주의 세력에게는 계속해서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이를 거부하는 세력을 ‘국민적 합의’를 거부하는 맹동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는데 노사정위원회는 수년간 적합한 역할을 했다.
IMF 초기 공동투쟁전선의 정치적 기반이 조기에 붕괴한 이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김대중정권은 기업-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강행했고, 각 부문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각개격파 당하는 궁지에 쉽게 처하였다. 더군다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급격하게 증가한 불안정노동층(半실업, 비정규직, 도시빈민 등)은 저항을 표출할 정치적․조직적 토대마저 매우 취약했다. 정책개혁이 취한 노동자 분할관리 전략 속에서, 일부 ‘노동귀족’은 주식투기과 우리사주 등 금융화 국면에 포섭되었으나, 노동자대중 전반은 불안정화의 매우 장기적 국면으로 진입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대중의 상황 역시 양극화한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안

김대중정권의 집권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노동운동 내부의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민주노총의 거듭된 ‘총파업‘ 선언에도 불구하고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황도 그 배경을 이루었다. 이 시점에서 노동운동은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고, 따라서 자신의 운동을 재평가하려 했다. 민주노총의 ’노동운동발전전략위‘(2000년) 논의는 그 단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방식 역시 실리주의적 경향이 노선을 생산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리주의 경향은 정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며 대적 전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주요 투쟁고리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의 문제를 엄격하게 제시하지 않는 가운데에도 막연한 희망사항들을 조합하여 어렵지 않게 ‘노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시 어느 평가에서는 ꋰ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초기 대응의 혼란, ꋰ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조직율의 하락, ꋰ국민적 지지의 취약 등을 민주노조운동의 문제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문제의 원인과 그 결과 드러난 현상을 혼동한 것이었다. 이 평가에 따른 ꋰ새로운 조직화 모델의 개발, ꋰ시민운동과의 연대 강화 등의 실용주의적 대안은 그 출발점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가 모호했다. 정치적 투쟁과제와 결합하지 않는다면 조직화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주도하는 지배분파를 정치적으로 타격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기운 시민운동 세력을 견인한다는 목표 역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처럼 엄밀한 정세인식을 제시하지 못하는 평가는 수세적 현실인식을 불러오며 나아가 노동운동 내부의 다양한 조직보전심리와 결합하기 쉬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조직보전심리에 의해 지배되는 생존권 투쟁은 연대를 지향하는 투쟁으로 발전하는데 한계를 내포하였다.


정권퇴진투쟁과 전선재편의 문제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다른 방향으로부터 시작되였다. 2001년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정권퇴진투쟁은 이러한 난관과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행되었다. 김대중정권 집권 중반기에 이르러 교육․의료․사회복지 등 기존 사회제도 전반의 기업화-금융화의 영향이 민중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소로 다면적으로 드러났고, 각계에서 대중적 투쟁을 조직하려는 흐름들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점차 민중운동 진영의 공동투쟁의 요구가 확산되었고, 각종 공동투쟁체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민중대회(및 전국민중연대)를 통한 정치적 결집과 일상적인 정치투쟁을 기획하려는 시도들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2001년 정권퇴진투쟁은 노동운동과 김대중정권의 출범 이후 양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한 사회운동 세력이 적극적으로 결합점을 찾으려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민중운동 진영이 정권퇴진투쟁을 통해 결정적인 국면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은 투쟁의 성과와 함께 복합적인 과제들을 제기하였다. 특히,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계획이 ‘총파업’으로 발전하는데 계속적으로 장애가 되는 요인이 무엇인가? 이미 심각한 분절화를 경험하고 있는 노동대중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중운동의 급진화와 이를 뒷받침할 대중적 토대의 창출로 일보전진할 것인가? 또한 민주노조운동이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계급대중을 대중운동-대중조직으로 포괄할 것이며, 정치전선의 주체로 형성할 것인가? 에 대한 대답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과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는 것들 뿐이었다. 따라서 이는 향후 민중운동이 대중운동-대중조직의 재편을 포괄하는 전선재편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과거로 퇴행할 것인가의 갈림길을 의미하였다.


민중운동의 정치적 이완

하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또다시 민중운동의 쟁점은 2002년 선거에 대한 대응방침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정권퇴진투쟁이 남긴 구체적 과제와 본격적으로 대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민중운동 진영의 정치적 이완을 의미한다. 이에 조응하여 노동운동의 주요투쟁 방향도 ‘주5일제도입’, ‘비정규직 보호입법’ 등 일부 정책적 요구를 중심으로 한 대정부요구투쟁으로 선회하고 있다. 다시금 총연맹의 기존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현상유지책으로 복귀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정권 집권 말기에 이르러, 만성적 불황은 심화하고 있으며, 노동자대중에 대한 타협의 물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타협의 ‘정치적’ 토대마저 붕괴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대중 전반이 장기적인 불안정화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노동자대중의 동질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따라서 정권과 자본측이 일부 경향을 포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대중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분절화 속에서, 노동운동 내부의 정치-이데올로기적 분화 곧 운동노선의 분화의 경향성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민중운동의 정치적 이완은 그 위험성을 제공한다.


정치세력화인가 전선재편인가?

현재 ‘정치세력화‘ 문제가 논의되는 고유한 방식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정당의’ 유의미한‘ 득표가 전술적 목표를 대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이다. 즉 한정된 시간 내에서 최대한 득표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 전면에 부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현재 정당명부제 도입을 위한 ‘정치개혁’ 투쟁이다. 그 결과, 현실의 정치지형 속에서, 동맹을 맺어야 할 대상 역시 심각하게 변화하는데, 현재 정치개혁을 우선적 과제로 제시하는 시민운동-부르주아 일부 분파가 주요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지배분파를 공격함으로써 견인해야할 세력은 계약과 타협의 대상 즉 정책연합의 대상으로 그 정치적 의미가 변화한다. 대중운동-대중조직 역시 이러한 목표에 부합하도록 운동과제와 형태를 변형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방향은 정권퇴진투쟁이라든가 구조조정 반대투쟁과 같은 계급적 쟁점과의 결합점을 만들 수 없으며, 전선재편의 문제의식과는 전혀 다른 활동경로로 나아간다.
또한, 이러한 정치세력화 구상은 노동자대중의 단결과 정치적 응집력의 창출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 각 ‘부문’의 요구를 정당이 선거정책을 통해 대변하는 것이, 실제적인 연대투쟁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운동 내부의 정치-이데올로기적 분화, 운동노선의 분화가 현실화한 상황 속에서, 각각의 요구를 정당을 매개로 절충하고 조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며, 대중적 투쟁 속에서 자신의 요구들을 공동으로 실현해 나가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중운동의 관심의 초점이 정당의 대선방침 문제로 맞춰진다면 이는 구래의 관성적 대응이거나 현 정세에 대한 정치적 무기력의 반영일 것이다.
현재의 과제는 기존 운동의 성과라는 허구적 신화에 기반하여 ‘정치세력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재개’를 위한 출발점을 분명히 구축하는 것이다. 즉 정치세력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대중조직을 포괄하는 전선재편으로 시작하는 것이 현재의 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모든 단위의 활동가들은 기존 대중운동 내부에 포괄되지 못했던 요구나 집단의 요구를 보다 급진적 관점에서 포괄해내면서, 기존 대중운동의 장을 확장시키고 계급적 대중운동의 연대질서를 구축하는 과제에 복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적 차원의 응집력있는 전선운동체의 건설과 지역차원에서 정치활동의 복원의 길이 열릴 것이다.
주제어
정치
태그
직장폐쇄 SJM 만도 용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