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19.05.01
공멸의 위기, 사회운동의 활로는 무엇인가
2019년 세계노동절 <사회운동포커스>를 창간하며
5월 1일 메이데이, 정부의 공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이 날을 노동절, 특히 세계노동절이라 부른다. 이름이야 어쨌든, 이 날이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확인하는 날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00년이 넘도록 투쟁을 이어온 노동자운동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885년 미국의 노동자들과 1889년 제2인터내셔널로 단결한 만국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살인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맞서 ‘동맹파업’을 결의했다. 이에 맞서 전 세계의 자본과 정부들은 세계노동절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압해 왔다.
오늘날 한국의 자본과 문재인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의 핵심 기조라던 ‘노동존중’은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기존의 노동공약은 후퇴했고, 추진 동력도 약화되었다. 사회적 대화라는 거짓 명분을 내세우며 ILO협약 비준이라는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와 노동법 개악, 탄력근로제 확대를 거래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을 분열시키고 자신에 대한 지지로 일부를 동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운동 스스로 단결하고 연대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있었는지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지금 문재인 정부를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을 고립시키는 새로운 전선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취업자와 실업자, 청년과 기성세대,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주민과 국민 등으로 무한히 분열하고 대립하면서 노동자계급 스스로 자기 통치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가. 그것은 현재 노동자운동 내에서 역사와 정세에 대한 인식이 상이하고, 그로 인해 공동의 보편적 대안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심화되는 경제위기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에서 시작한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정당성을 상실했다.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지난 20세기 대공황 수준의 연쇄 위기와 실업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의 모순은 지속적으로 심화되었다. 주변부 신흥국들의 위기는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중산층 몰락 등 중심부 선진국에서도 구조적 위기가 악화되고 있다.
경제지표의 현실은 떠들썩했던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허구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위기 이전의 성장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장기침체 국면에 있다. 기술혁신의 어려움, 연구생산성의 둔화 등 향후 2020년대의 성장률 전망은 더욱 낮아질 예정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회복세에 크게 기여한 중국 경제 역시 최근에는 성장 둔화 추이가 뚜렷하다. 미국과 중국에서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유럽 경제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하는 가운데, 청년실업, 이민자문제가 만연하고, 이러한 불만은 브렉시트 등 유럽연합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른바 ‘중진국 함정’이라는 추격성장의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의 인구와 자본축적 추세를 고려하면,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에는 1-2% 수준, 2030년대에는 1%이하로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수출경쟁력 하락과 제조업 전반의 위기 속에서 자동차·조선업 등에서 구조조정 지속되었다.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로 고용시장 전반의 침체가 심화되었다.
사회운동의 위기와 퇴행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정치 위기가 사회운동에 기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적 규모의 분업화된 생산과 무역 시장을 조직했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초민족적 기구를 통해 통치성을 형성해왔다. 이 과정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는 약화시켜왔다. 이러한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민족, 성별 등으로 분할된 자신의 정체성에 갇힌 채,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로만 일관하면 오히려 신자유주의보다 못한 퇴행적 요구가 될 수 있다.
또한 현대 정치 이념의 헤게모니적 형태인 자유주의가 약화되고, 여기에 맞서는 사회주의는 중국, 북한처럼 껍데기만 남았거나 몰락한 상태다. 어떤 이는 이념의 시대는 끝났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대이념의 공백을 전현대적인 종교 근본주의, 쇼비니즘적 민족주의, 무정형의 혐오와 분노가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해방은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만 가능”한데도, 대안의 부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환상과 의존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주변국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들, 특히 남성 백인 노동자들은 이러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에서 푸틴은 4선 도전에 성공하고,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렇게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 ‘스트롱맨의 정치’, 권위주의의 성격이 강화되면서, 일본의 재무장 시도 등 동아시아의 군사적 대결구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해왔던 기성정당은 위기에 처하거나 몰락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대신해 보호무역, 혐오와 배제, 이민 반대와 같은 반세계화·극우·포퓰리즘이 성장하고 있다. 2017년에 독일, 오스트리아, 2018년 스웨덴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했고, 2018년 이탈리아에서는 표퓰리즘 ‘오성운동’이 극우정당 ‘리가(동맹)’와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브라질에서는 ‘열대의 트럼프’라 불리는 보우소나르가 대통령이 되었다.
기만과 망각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국정과제는 집권 세력을 교체하는 것일 뿐,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재벌개혁론의 오류와 기만은 명백해졌다. 경제위기는 완화되기는커녕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여당이 보수세력을 탓하고, 대외여건을 핑계 삼는 모습은 한심하다.
민주노총이 이런 문재인 정부와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하고 반보수 투쟁으로 다시 회귀한다면 문재인 정부와 함께 몰락할 것이다. 제조업 위기, 청년 실업, 임금격차와 불평등 같은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애초에 해결할 수 없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조직된 노동자운동이 동조하고 기대할수록, 진정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은 약화된다. 그러나 결국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구조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기에,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운동성을 잃은 민주노총은 민주당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고, 민주당이 몰락하면 함께 몰락한다. 또한 그 몰락이 두려워 더욱 민주당에 힘을 보탤수록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은 사라진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의 신자유주의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대안이라 주장하는 것들도 사기다. 이러한 역사와 사실을 노동자운동이 망각하면, 범민주당 세력은 또다시 노동자 민중을 기만할 것이다. 자기가 집권하면 개혁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민주당의 계속되는 희망고문 속에서 조직된 노동자운동은 자기 이해만 추구하며 타락하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은 절망하거나 우경화될 것이다.
역사를 잊은 계급에게 미래는 없다
이러한 기만과 망각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노동자운동 스스로 대안이 되는 것이다. 현 정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함께 살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둔화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면, 내 임금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이웃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할 연대고용·연대임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본의 이윤 몫을 남겨둔 채 노동자끼리 임금을 나누자는 뜻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이 책임있는 대안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사상으로서 대안이념이 필요하다. 지난 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계가 있었던 지점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선배 열사와 투사들의 피와 눈물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 그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 정세에서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고, 계급역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운동의 대안을 토론하고, 실천적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다가오는 2020년대는 지금보다 더 노동자민중의 삶이 험난할 것이다. 우리가 알던 세계가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세계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안세계를 향한 이념과 사회운동의 재건이라는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사회진보연대는 비록 거칠고 부족할지라도, 노동자운동의 반성과 대안을 위한 논쟁을 촉발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여름 발간될 새로운 기관지 <계간 사회진보연대>와 함께, 2019년 세계노동절인 오늘부터 <사회운동포커스>라는 웹소식지를 발간한다.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사회진보연대가 새로운 웹소식지 <사회운동포커스>를 발간합니다!
<사회운동포커스>는 종합 사회운동웹진이 되고자 합니다.
#정세초점
지금 여기서, 사회운동이 주목해야 할 정세와 운동 전략을 토론합니다
# 노동보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노동자운동의 투쟁현장 소식과 고민을 나눕니다
#국제동향
해외 사회운동의 소식을 번역하거나 소개합니다
이 외에도 #기획연재, #비평, #민중건강과 사회(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소식지)등 다채로운 기획으로 찾아갈 예정입니다.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 www.pssp.org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