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19.07.10
민주노총 집행부, 제2의 경사노위를 추진하나?
구속 사태 이후 민주노총의 방향상실
7.18 총파업을 둘러싼 혼란
지난 6월28일, 민주노총은 단위노조 대표자회의를 통해 김명환 위원장과 집행간부들의 구속을 노동탄압으로 규정하고, 7월18일 총파업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김명환 위원장 구속에 따라 긴급하게 소집된 대회였지만, 정작 위원장은 전날 보석으로 풀려나 회의를 주재하고 구속 당시 논의되었던 투쟁계획을 그대로 결정한다.
구속된 집행간부들의 석방과 여러 현장투쟁이 절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쟁점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총파업을 조직하자는 논의가 충분히 합의될 만큼 진행된 적은 없다. 그러는 사이, 여야합의로 국회가 다시 열리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 개악안 심의 여부가 다시 쟁점으로 부각된다. 애초 위원장 구속 등 노동탄압 저지를 위해서라던 총파업은, 어느새 국회 환노위(고용노동소위) 회의 일정에 따라가는 탄력근로제 반대를 위한 투쟁으로 취지가 완전히 옮겨간다. 여기에 지난 7월3~5일 투쟁 이후 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을 결합시키자는 논의까지 병행되는 등, 애초 제시된 총파업의 이유, 목표는 계속 변화하는 가운데 지난 달에 정해놓은 날짜만은 그대로 진행되는 셈이다.
당장 7월18일 총파업을 둘러싼 민주노총의 혼란은 직접적으로는 위원장의 경찰 출석과 구속, 보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임기 중 투쟁으로 출석 요청을 받더라도 응하지 않아왔던 관례를 깨고, 김명환 위원장이 직접 경찰조사에 출석했다. 출석 기자회견에서 위원장 발언 내용으로 볼 때, 직전에 민주노총 조직실장 등 간부들이 구속된 상태에서 위원장, 조직의 리더로서 본인이 앞장서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리더십은 더욱 훼손되고 말았다. 검찰의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에도 구속적부심에 출석한 김명환 위원장은 결국 구속되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회의를 열어 총파업을 결의하기로 한 전날 위원장은 보석으로 풀려난다. 그런데 출석 과정은 이미 민주노총 안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집행부는 강행했고, 보석 과정은 공식 회의체에서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전날 위원장이 풀려난 상황이지만 긴급히 소집된 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서는 7월18일 총파업을 원안대로 결의한다. 민주노총 현 집행부에 비판적인 활동가들도 적극적인 비판은 삼가는 분위기였다. 총노동 과제에 대한 토론보다는 현안 투쟁이 예정되어 있는 각 단위노조가 자신의 투쟁을 지지해달라는 발언이 많았다. '현장파' 활동가들은 오히려 이번 총파업을 진행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위원장 구속을 둘러싸고 좌충우돌하는 투쟁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한다.
문재인 정부와 멀지 않은 민주노총의 정책요구
위원장 구속에 분노한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탄압을 규탄하며 불과 한 달 안에 총파업을 조직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정작 민주노총의 정치적 주장이 문재인 정부와 근본적으로 구별되지도 않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화할 가능성도 그리 없어 보인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문재인 정권보다 더 지지하는" 입장을 계속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든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든 대부분의 투쟁 구호가 "공약을 지켜라", "청와대가 책임져라"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집회에서 구호만이 아니라, 정책 방향도 문재인 정부와 구별된다고 보기 힘들다. 대표적으로, 민주노총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노동단체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지지하고 있다. 사회보장 정책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 연속 강좌'와 같은 사업에서 알 수 있듯, 참여연대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한다. 또한 ‘문재인 정부 2년 평가와 2020년 총선 의제 토론회’, ‘재벌 개혁 만민공동회’ 등을 통해 재벌 개혁 정책에 대한 경실련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한다. ‘사회공공성 워크숍’에서는 공공기관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발의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당시 국회의원)가 재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법’이 민주노총의 정책 지향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입장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나 국정과제를 제대로 완수하라거나 보완하자는 데에서 공통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며, 애초 공약·국정과제 등 정책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위원장이 구속된 상태에서도 이러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중요한 정치, 경제적 쟁점에 대한 입장이 문재인 정부와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투쟁이 가능한가. 물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개별 정책의 추진이나 위원장의 구속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 대응 투쟁을 할 수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해" 투쟁한다는 것은 이런 상태로는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 경제 정책의 입장과 민주노총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정책이나 최근의 정책 ‘선회’ 모두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경제위기 전개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겠으나, 그러한 준비도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스스로의 입장을 정립하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투쟁은 당연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제2의 경사노위를 추진하는 것인가
한편,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김명환 위원장 구속을 사후적으로 비판하면서, 굳이 경사노위가 아니라도 민주노총을 포함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쟁점을 다시 꺼내들었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단일 이슈이기는 하지만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명환 위원장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이 이제까지 문재인 정부와 구별되지 않았던 정책적 입장을 반성, 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당과 진행되는 협의는 단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이슈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다시 내부 논의하기 어려운 경사노위가 아닌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검토하자는 정부여당의 제안은 취약한 민주노총 내부를 다시 흔들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노조들은 민주당(후보들)과 정책협의(협약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20년 총선에서 이미 여당인 민주당이 당시와 같이 민주노총과 정책협약에 응할 가능성은 낮겠지만, 정책 협의를 통한 사실상의 정책 연합은 다시 추진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하반기 사업계획 중 상당한 부분은 내년 총선을 "대비"하는데 초점이 있다. 산하 산별, 단위노조에서는 대안을 찾고, 스스로 대안이 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정부여당과의 협의를 중시하게 될 우려가 높다. 그렇게 되면 투쟁동력이 약화되면서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 더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투쟁 목표는 바뀌었다고 해도, 민주노총이 당장 탄력근로제 확대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는 7월18일 총파업을 호소하고 조직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반대하는” 이상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번 투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와 같은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리더십 훼손만이 아니라 조직적 단결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세인식과 정치적 정책적 입장을 모두 발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