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2019.07.16
[계간 사회진보연대 발간 기념 인터뷰] ‘다시 촛불’보다 제대로 된 평가를
계간 사회진보연대 발간 기념
<반보수전선이라는 막다른 길> 필자 김동근 인터뷰①
김동근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은 "박근혜 퇴진 촛불이 근본적인 사회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민주당 재집권으로 수렴된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금 촛불이 일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포기를 뒤엎고, 또 촛불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지금,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있어온 노동자사회운동을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동근 조직국장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호에 <반보수전선이라는 막다른 길>을 발표했다. (글 전문은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j2019&category1=1&nid=7855 )이 글에서 그는 광우병 촛불,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시작된 반보수선거연합, 세월호 투쟁, 박근혜 퇴진 촛불 등 지난 10년의 주요한 투쟁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과는 다른 주장을 펼쳤다. 사회운동포커스는 김동근 조직국장을 만나 글의 주요한 내용에 대해 질문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반보수전선이라는 막다른 길>은 박근혜 퇴진 촛불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퇴진 촛불이 민주당 집권으로 이어졌다고 해서 그 의미를 지나치게 폄하한다는 견해도 있을 듯 보입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이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운동이었다고 보시나요?
박근혜 퇴진 촛불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운동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유례없이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가 동반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능·독선·부패의 상징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인상적인 결과, 문재인 정권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기대감 등이 반영된 듯합니다. 물론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와 기대는 최근 들어 상당히 무너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객관적 시각으로 차분히 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글에 쓴 것처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는 “퇴진 촛불이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사회 대개혁으로 나아가는 시민혁명의 과정이다”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당이 집권한 것을 두고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기보다는 대통령 권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면서 개헌 논의를 좌초시키는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대통령 중심 국정 운영을 더욱 강화하는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에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어지는 논란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검경수사권 조정과 윤석렬 검찰총장 지명 등으로 이어지는 최근 상황은 대통령 권력의 사법부 장악 시도라고까지 보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비교할 때 참여연대·민변 등 시민운동진영 인사들이 정권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인데, 이것은 민주주의와 관련이 없지요. 그런가하면 소득주도성장의 파산, 재벌개혁의 실종, 노동법·노조법 개악 등을 볼 때 현 상황이 사회 대개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측면을 주목할 때 퇴진 촛불의 성격을 어느 정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도 박근혜 퇴진 촛불에 열심히 참여했었는데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당연한 얘기지만 촛불에 참여한 시민들이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라거나, 노동자사회운동이 퇴진 촛불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퇴진 촛불에 참여한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적당히 덮고 대선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민주당을 비롯한 제 정치세력들의 퇴행을 거부했고, 재벌체제와 작업장 민주주의 등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퇴진 촛불에 참여한 노동자사회운동의 역할도 일정 부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권이 보수적이라고 해서 퇴진 촛불이라는 대중 운동까지 보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급진적인 측면과 보수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진, 퇴진 촛불의 모순적인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씨가 거국중립내각과 책임총리를 주장하고, 추미애 전 당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민주당이 지리멸렬하던 시점에서 대중은 일체의 수습방안을 거부하고 단호하게 즉각 퇴진을 외쳤습니다. 이 당시 민주당은 대안이기보다는 오히려 조롱의 대상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탄핵소추안 가결을 기점으로 촛불집회는 급격히 소멸하고, 어느새 대중들 사이에서 민주당이 “촛불혁명”을 대변하는 것처럼, 문재인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지도자인 것처럼 표상됩니다. 탄핵 이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 자체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의 정서가 급격히 반전된 것은 일종의 집단적 기억상실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왜 그렇게 된 거죠?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저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노동자사회운동의 주체적인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노동자사회운동이 민주당과 시민운동진영이 주도하는 반새누리당이라는 실체 없는 전선에만 매몰되면서 민주당과 구별되는 대안적 흐름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대중은 민주당 지지로 수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나라당과의 소소한 차이를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신자유주의 개혁과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노무현 정권이 본격화한 것이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정책 기조를 계승했다는 점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한다면 새누리당의 대안은 민주당이 될 수 없습니다. 기존 정치 세력이나 특정한 지도자에 의존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 속에서 대안적 실천을 만들어 나갔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 속에서 민주당과 시민운동에 운동의 주도권을 의탁해온 결과, 노동자사회운동이 퇴진 촛불 국면에서 독자적인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퇴진 촛불에 참여했어야 하는가 하지 말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왜 이러한 상황에 처했는가 하는 질문 속에서 지난 시기 운동을 차분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지난 시기 운동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지만, 다시 2017년 하반기로 돌아간다면 박근혜 퇴진 촛불이라는 대중 운동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하되, 박근혜 퇴진 촛불이 가진 한계를 분명히 인식했어야 합니다. 퇴진 촛불 당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사회운동이 보였던 태도, 즉 퇴진 촛불을 실무적으로 지원하면서 퇴진 촛불의 방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태도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재벌체제 개혁, 노동권 확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방향을 민주당이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사회진보연대 외에도 이 같은 주장을 했던 민중운동 단체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민주노총은 퇴진 촛불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 태도를 취하면서 대중으로부터 독자적 세력으로 인식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퇴진 촛불 이후 민주당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총이 퇴진 촛불 국면에 어떻게 개입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은 다시금 평가해봐야 할 것 같군요.
그렇죠. 역사에 만약은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평가를 위해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퇴진 촛불 이후 현재까지를 생각해보면, 퇴진 촛불에서의 수동적 태도가 박근혜 퇴진 이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의존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더 큰 문제겠지요. 사실 문재인 정권 초기부터 개헌에 대한 태도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라는 본질적 쟁점에 무관심하다는 점, 사드 배치와 위안부 쟁점에 대한 입장변화 등을 통해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내적 한계 역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구요.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지나치게 저자세로 일관하는 한편, 문재인 정권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하위파트너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결국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최저임금인상 정책의 실패와 노동법 개악으로 파산했고, 경사노위를 매개로 한 사회적 대화 역시 정권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세를 객관적으로 인식했다면 소득주도성장론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민주당에 의존하는 대신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독자적인 입장과 운동을 만들었어야 했지요. 이른바 “촛불혁명”의 정신을 문재인 정권이 담보하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잃어버렸던 것은 뼈아프게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운동에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진영의 주도성이 더 강해졌습니다. 이들이 문재인 정권의 출범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처럼 과잉 해석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점 역시 인식해야 합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광범위하게 참여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주요 선거에서 소위 “민주대연합전선”을 강하게 추동하는 등으로 민주당과 더 긴밀하게 결합해오다가 문재인 정권 출범으로 화려하게 복귀해서 정권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이러한 측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 속에서 반보수전선을 강화해왔던 역사를 반성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물론 평가의 대상에는 사회진보연대 역시 포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