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인터뷰 | 2019.07.24

[계간 사회진보연대 발간 인터뷰]임금격차, 문제를 회피하지 말자

기존의 이익을 지키는데만 몰두하면 노동조합은 공멸할 것

인터뷰 정리: 김정래(정책교육국장)
계간 사회진보연대 발간 기념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노동자운동 평가> 필자 박준형 인터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과 방향상실이 심각하다. 경사노위라는 사회적 대화 참여여부를 떠나, 민주노총이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결국 문재인 정부 꽁무니만 쫓았다. 현재 탄력근로제 확대, ILO핵심협약 비준 실패 등 문재인 정부가 자신이 공약한 노동존중 정책을 파기하고 있음에도, 투쟁전선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호에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노동자운동 평가>를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지난 10년간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통해 노동자운동의 혼란스런 현재 상태를 설명한다. 노동조합이 단기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다시 전망을 수립하지 않으면, 향후에는 현상유지조차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글 전문은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클릭)
 
그렇다면 새로운 전망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박준형 실장을 만나, 글을 읽으면서 생긴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몇 가지 해보았다.
 
 

노동자운동은 개별적인 주체들의 특수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에서 지적하셨듯 현재의 민주노총은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 간, 주로 재벌·공공부문과 민간 중소영세 부문 사이의 임금격차 확대와 이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심각한 분할”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 모순과 대결하는 자신의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정세에서 노동자운동 스스로 단결하고 연대하기 위한 보편적인 요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조합이 요구안을 만들기 이전에, “누구”의 요구인지 먼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어느 범위에서 요구하는지, 어떤 요구를 제시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예를 들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한국 노동운동은 기업별 임금 극대화가 목표이고, 산별노조나 총연맹과 같은 초기업 조직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지원하거나 정당화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노조가 당연히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담보하는 조직인 것도 아니라는 점 역시 냉정하게 보아야합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대로 노조는 원래 자본주의 임금법칙을 지양하는 조직이 아니고, 오히려 그 임금법칙이 그나마 적용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조직이니까요. 말하자면 생계비 임금이나 생산성 임금을 노조를 통해서 겨우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노조가 없는 부문의 노동자들, 한국의 경우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조차 실현하지 못합니다.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상황을 보면, 어떤 요구안을 제시할 지 고민하는 것은 다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으로 이런 저런 요구안을 제시할 수는 있겠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임금인상, 혹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재벌개혁 등에 대해서요. 그런데 그 요구가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나 한국 사회, 경제의 변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검토된 적이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별로 그런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각각의 요구 자체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검토해보자는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물론 어떤 요구안이 정당한지 논의도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어떤 수준이 정당한지, 말하자면 올해 투쟁에서도 최저임금 당장 1만원 요구를 계속해야하는지에 대한 근거도 충분치 않죠. 그런데 정작 지금 한국 노동자운동에 더 필요한 것은, 노동자운동이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인 것 같습니다. 체제를 변혁하고자하는 것인지, 혹은 당면한 개별 사업장의 경제투쟁의 지지 엄호하는 것이 목표인지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개별 사업장의 임금극대화, 이를 위한 전투적 경제투쟁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데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근거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단은 그렇게 하다가는 투쟁하는 양 계급의 공멸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이 대안적 체제를 구성할 준비가 되기 전에 남한의 국민경제가 붕괴할 경우, 그것은 외국 자본의 지배이거나 혹은 야만일 것입니다.
 
노동자운동이 사업장별 임금 극대화를 넘어,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것인가가 문제라 봅니다. 그런 목표를 세운다면,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전체 국민경제 혹은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시야에 넣고, 투쟁에 있어서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 차원으로 사고할 수가 있겠죠. 물론 현재 민주노총 구조로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일 수는 있겠습니다.
 

임금격차와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인 쟁점을 묻고 싶은데요. 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들이 “제대로 된 정규직화”,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정규직의 호봉제(연공급)를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연공급 호봉제는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이라는 예외적 정세에서 생산직까지 확장되었지만, IMF 위기 이후에는 재벌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게만 실질적으로 작동하면서 임금격차 확대와 이로 인한 분열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부와 자본은 임금격차를 근거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오고 있는데요. 물론 글에서도 평가를 하셨지만, 좀 더 보충해주면 좋겠네요.

 
임금 수준과 이를 결정하게 되는 임금체계는 노동자 개인에게나 노동자 조직(노조)에게나 가장 민감한 쟁점이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전체 국민경제에도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노동소득분배는 국민소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많은 노조 활동가들이, 임금체계 개편을 정부와 자본의 임금 수준 억제책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문제가 지금 부각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로 인해 장기 저성장 혹은 붕괴국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임금인상이 불가능한데요, 자본 측은 당연히 임금억제를 통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노동조합이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부터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위기 시에 위기 부담은 상당히 불균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입니다. 경제위기 부담은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먼저 전가되어 해고와 임금저하가 일어나게 됩니다. 재벌, 공공부문의 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연공급 임금체계의 결합으로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심화되면서 노동자 계급이 사실상 분열됩니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이중노동시장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임금격차를 좁히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이 노조로 단결하기 곤란합니다. 일각에서는 고임금노동자들도 계속 임금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재벌·공공부문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 상태의 다수 노동자로 분할선이 그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는 노동운동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공격이 될 것입니다.
 
연공급 임금체계가 이러한 분할을 강화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임금체계 개편은 불가피합니다. 연공급이 평등주의적인 임금체계라는 주장은 기업에 한정할 경우에, 또 연령에 따른 임금격차를 정당화할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기업 안에서만 쌓이는 근속에 기반해서, 또 연령에 따라 임금차이가 3배 이상 발생하는 것이 왜 정당한 것인지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는 임신, 출산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여성들에게 저임금이 강요된다는 점도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자운동이 임금격차 문제를 회피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 문제의 해결을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게 되면 문제도 당연히 해결하지 못하지만, 노동조합을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 더 심각하군요.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뻔하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을 노조운동이 스스로 검토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칫 고임금 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에 대한 임금억제, 삭감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노동자운동이 스스로 장기 저성장시기에 임금체계 개편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합니다. 그것이 직무급일 수도 있고 어쩌면 또 다른 임금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안 수립을 자본 측에게만 맡겨놓고, 모든 임금체계 개편을 거부하는 방어적 투쟁만 벌인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금 격차 축소를 위해서는 기업별 교섭, 투쟁 구조를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별노조와 총연맹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산별교섭 등 초기업 교섭을 추진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교섭권을 집중해야겠죠. 단숨에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방향은 분명히 잡아야할 것입니다.
 

기업별 교섭과 투쟁 구조를 넘어서는 노동조합.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겠죠. 그렇기에 더욱 지난 역사에 대한 평가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의 확립이 절실해 보입니다. 이번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년 여름호 특집은 최근에 다시 강화되고 있는 반보수전선에 대한 비판을 지난 10년간 역사적 관점에서 다뤘는데요. 반보수전선의 기원은 1987년 이후 첫 대선에서 재야세력 일부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는 30여 년간 남한 민중운동에 커다란 질곡으로 작용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선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겠죠. 어떤 지점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번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특집의 다른 글(김동근, 「반보수전선이라는 막다른 길」)에서 주로 다룬 부분인데요, 민주노조 운동에 있어서도 지난 10년간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쟁점입니다.
 
돌이켜보면 1998년 IMF 구제금융협약과 이의 충실한 집행자를 자처한 김대중 정권이나,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노조 운동이 자기 노선을 제대로 정립하고 혁신하지 못한 것이 만시지탄입니다. 당시 활동했던 저와 같은 노조 활동가들의 큰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J-노무현 정권 당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전개한다고 했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 곧바로 보수야당(민주당)과 연합에 돌입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를 비롯한 노조운동 활동가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투쟁과 일관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2008년은 세계 금융위기 과정에서, 자본 측에서도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안 모색과 함께 신자유주의 비판이 모색되던 과정이었습니다. 노조운동은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혹은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 대기업의 정리해고에 대해 정권 반대 프레임을 중심으로 대응했고, 민주당과 연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져야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봉합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도 한계에 도달해 있고, 남한만 하더라도 당시와 같은 틈새시장에서의 성공과 상대적으로 신속한 회복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중·미 무역분쟁이나 한·일 무역분쟁을 보아도 그렇지요. 2020년대에는 남한 국민경제의 고유한 모순은 물론, 세계자본주의 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시기에 각 민족과 계급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겠죠. 노동자운동이 기존의 이익을 지키는데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공공부문에서는 기존의 이익이 충분하니 이를 방어하는 선택이 당연히 손쉬운 선택입니다. 반면, 체제 자체가 위기이니 이 체제 자체를 변혁하자는 운동도 가능하겠죠. 그런데 이것은 물론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현재 자본주의 국민경제와 세계체계의 모순을 인식할 수 있어야하고, 변혁노선과 이론도 역시 필요합니다.
 
사회진보연대는 후자의 길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한 자본주의 상태로 보나, 노동자운동의 상황으로 보나, 혹은 세계 좌파운동의 상태로 보나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정된 위기와 예정된 전개라는 점에서, 또 이제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저력을 생각할 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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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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