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19.09.03

“핵무기 대신 책을! 일자리를! 공공의료를!”

원수폭금지2019년세계대회 국제회의 발표문②

한나 켐프-웰치 영국 핵군축캠페인(CND) 런던 지부 부지부장
Hannah Kemp-Welch, Vice Chair,
London 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U.K.
 
 
※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고 기사: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로!
- 원수폭금지2019년세계대회 참가기①>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성사되도록 애쓰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영국 핵군축캠페인(CND;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CND는 작년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CND는 1958년 창립한 이래로 수십 년 간 핵무기에 대한 대중적 저항 행동을 다양하게 조직해 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운동과 협력하면서, 우리는 영국과 세계의 정부들이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PTBT; Partial Test Ban Treaty), 핵확산방지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과 같은 중대한 합의에 이르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트라이던트 대신 공공의료를" "트라이던트 대신 일자리를" "복지예산이 아니라 전쟁예산을 삭감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CND 회원들
 
2016년, 영국 정부는 트라이던트(Trident) 미사일 시스템(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과 핵탄두, 핵잠수함)의 현대화 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핵무기 반대 운동가이자 CND 부의장을 역임하기도 한 제러미 코빈이 당 대표를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1야당인 영국 노동당은 이 트라이던트 현대화에 찬성하는 당론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을 위한 협상을 보이콧하면서, 이 조약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이 조직한 기자회견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CND는 이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면서, 영국 정부와 모든 정당이 핵무기에 대해 입장을 새로, 제대로 정립할 때까지, 즉 일방적 군축 정책으로 선회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할 것입니다.
 
CND가 주최한 트라이던트 반대 집회에서 발언하는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CND는 다양한 지역별 모임으로 구성된 풀뿌리 운동입니다. 그 중에는 특정 분야를 대표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한 예가 CND 기독교도 모임입니다. 이들은 최근에 개빈 윌리엄슨 전 국방장관이 기획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사를 규탄하는 행동을 조직했습니다. 그 행사는 영국의 핵무기 시스템 보유 5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 차원의 추수감사절 행사였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 장소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렸고, 윌리엄 왕자(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손자)가 여기에 참석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무기의 도입을 ‘축하’했습니다. CND 기독교도 모임의 주도로, 수백 명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죽은 사람처럼 길 위에 드러누웠습니다(‘die-in’ protest. 참가자들이 죽은 것처럼 시뮬레이션하는 항의 형태를 말한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동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이 날의 광경을 보도했습니다.
 
2019년 5월 3일,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앞에서 핵무기에 대한 항의 시위를 하는 CND 회원들. "핵무기를 위한 추수감사절은 없다" "영국 정부는 핵무기금지조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
 
다음 달(9월)에 영국에서 열리는 DSEI(Defence and Security Equipment International은 영국 국방부와 국제통상부, 국방보안기구, 항공방위보안협회의 후원으로 격년 개최되는 영국 최대 규모의 무기 박람회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무기 박람회 중 하나입니다. DSEI에는 1600개 이상의 무기 생산업체가 참가하여 저격용 무기에서 탱크까지, 온갖 범위의 무기를 전시합니다. 이들은 심각한 인권 유린을 벌여온 나라들에 무기를 판매합니다. 이 박람회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권들의 대표들이 초대받았습니다. 또한 전기 충격기, 고문 장비, 집속탄(cluster bombs. 한 개의 폭탄 속에 또 다른 폭탄이 들어가 있는 폭탄을 말하며, 넓은 지형에서 다수의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 비인도적 무기)과 같이, 그 극악무도함 때문에 영국 국내에서 판매가 금지된 무기들이 DSEI에서 판매된 전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위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DSEI를 계속 후원하고 있습니다.
 
CND는 무기거래반대캠페인(CAAT; Campaign Against Arms Trade. 국제 무기 거래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영국 기반의 캠페인 조직. 1974년에 여러 평화운동 단체들의 연대체로 시작했다.)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들과 함께, 올해 9월 4일에 ‘반핵의 날’(No Nuclear Day) 집회를 공동 주최할 것입니다. 이는 DSEI에 맞서 2주간 이어지는 ‘무기 박람회 저지 행동 주간’의 일환입니다.
 
12월에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29개 회원 국가로 구성된 집단적 군사동맹 기구. 1949년 냉전 체제 하에서 소련 및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회원국 수장들이 런던에 모일 예정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참석할 것입니다. NATO 정상회의는 트럼프가 추구하는 핵 전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핵 동맹으로서 NATO’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은 국제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CND는 영국 및 국제 평화운동과 협력하여 런던에서 NATO 정상회의에 대응하는 시위를 조직할 것입니다.
 
2018년, "새로운 전쟁에 반대한다" "NATO를 반대한다"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CND 및 영국 시민들
 
이러한 시위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시민행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58년 첫 CND 모임에는 무려 5000명이 참가했지만, 현재 모임에서 제 또래 청년들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고, 냉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세대에게 핵전쟁의 위협은 요원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핵 전쟁 준비 태세와 이란과의 관계 악화, 그리고 핵무기는 영국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신임 총리(보수당의 보리스 존슨)의 태도는 점점 더 깊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년들이 역사를 공부하고 평화 운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시위가 마치 매주 으레 열리는 행사처럼 여겨지고, CND 로고(평화 기호. Peace symbol)가 패션 브랜드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핵전쟁의 위협은 지나간 시대의 문제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청년들의 에너지를 모아내야 하고, 베테랑 활동가들의 전략적 통찰력, 지식, 경험을 그들에게 전수하여 이를 새 세대의 역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융통성 있는 접근 방식을 마련하고, 차이를 긍정하며,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CND 런던 지부는 청년 조직화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 조직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디지털 활용 기술을 가진 회원을 모집하며, 창조적인 워크숍과 대규모 캠페인을 통해 우리의 행사에 새로운 이들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이 평화 기호는 원래 CND의 로고다. 1958년, 영국의 예술가이자 평화활동가 제럴드 홀텀이 Nuclear Disarmament(핵군축)의 'N'과 'D'의 수기 신호를 동그라미에 담아 만들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함께 전 세계에서 평화와 반전의 상징으로 퍼지게 되었다.
 
작년에 저는 잉글랜드 북부의 한 마을, 배로우-인-퍼네스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영국의 핵 미사일이 장착되는 뱅가드급(Vanguard class) 잠수함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현재 세계 4위 군수기업인 BAE 시스템스는 이 지역의 주요한 고용주이고, 사실상 이 마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을 곳곳의 공공서비스에서 BAE Systems 로고를 발견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영국 정부가 학교 시스템을 바꿔버려,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학교에 자금 ‘후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업 교재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군수기업이 후원하는 학교에서, 11세 어린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중 무기를 디자인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의 목록 써오기’ 같은 교재로 수업 받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전쟁과 무기는 정상적인 것이고, 사회에서 용인되는 요소이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우리는 어떠한 충돌에도 군사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배우게 됩니다. 현 시스템에서 이런 식의 교육은 크게 문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군사주의적 편견을 유포하는 교육에 반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끝없는 전쟁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야 하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자주 학교 학생들, 청소년들과 함께 일하는데, 그러면서 이들과의 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영향력을 느낍니다. CND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해마다 영국 전역의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참여합니다. 우리의 평화교육 담당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은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교사들을 위한 교육을 하기도 하고, 모든 연령이 사용할 수 있는 교실 교육활동 패키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핵무기와 평화 문제에 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교육에 들인 노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가족 전체가 이러한 토론에 참여하고 동의지반을 공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핵무기 철폐가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부모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상황에서 트라이던트 반대와 같이 평화를 위한 투쟁과, 군수기업의 업종 전환을 통한 일자리 유지 둘 다를 요구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2017년, 영국노총(Trade Union Congress)은 노동당에 국가 산업 전략의 차원에서 군수사업의 업종 전환 문제를 다루는 기관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트라이던트를 폐기해야 하는 근거는 분명합니다. 자녀 세대가 핵 전쟁으로 절멸할 위험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무기 현대화에 들어갈 2050억 파운드를 아껴 이 예산을 모두를 위한 교육 및 보건의료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히 부모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단결해야 하는 필요성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각자 지닌 기술을 활용하여 운동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민행동이란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는 눈에 보이는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런던 거리에서는 이미 매주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투쟁 방법의 효과에 대해 점점 회의적이 되고 있습니다. 가시적인 대규모 행동을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뿌리와 가지를 사회 곳곳에 널리 퍼뜨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즉 정보를 공유하고 동료, 학생, 부모, 정치인들과 함께 우리의 견해를 토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회를 진행하거나, 뉴스레터를 공유하거나, 전단지를 디자인하거나, 신문에 글을 쓰거나, 학교에서 연설을 하거나,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지역 선전전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운동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집단적 힘을 조화롭게 하나로 묶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운동은 성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도달하며, 더 큰 대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하면, 우리는 성공할 것입니다.
 
* 한나 켐프-웰치가 직접 촬영, 편집, 내레이션을 한 2019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실황 영상을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6YDUhdTOw
 
2019년 1월, CND 런던 지부 주최 <핵 발사 버튼 위 트럼프의 손가락>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한나 켐프-웰치
 
영국 핵군축캠페인(CND)은 1958년에 결성되어 영국 반핵평화운동의 우산 조직 역할을 했다.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충격과, 1948년 영국 정부의 핵무장 착수 선언, 1952년 영국의 첫 핵실험 등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전국적 조직으로 건설된 CND는 다양한 지역운동과 결합하며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운동을 형성했다. 전국에 걸쳐 수많은 지회, 위원회들이 만들어졌고, 이들 지역조직들은 핵무기 철폐를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압력을 행사했다. CND가 보수당의 핵 공세와 노동당의 애매한 입장 속에서도 영국의 일방적 핵무기 포기선언을 의미하는 ‘일방적 군축주의’(unilateralism)를 목표로 내걸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영국의 트라이던트 핵무장 시스템 해체, 핵 군사동맹으로서 NATO 에 대한 반대 등뿐만 아니라 UN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 추진 등 전 세계의 핵무기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제어
정치 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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